요한의독서노트

[악마기자 정의사제] 06. 돔 헬더 까마라 주교가 1989년 한국에 왔었다

편집장 슈렉요한 2016. 12. 6. 23:30

브라질 대주교이며, 노벨평화상 수상 거부자 돔 헬더 카마라

카마라 주교님이 한국에 1989년 왔었다!



가난한 이웃을 돕는 방법은 별로 어렵지 않다. 배고플 때 찾아가서 식사를 대접하고, 추운 날 헐벗었을 때 옷을 사입히고,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을 때 음료수 사서 병문안 가고, 또 빵 한덩이 훔치다 감옥에 갇혔을 때 면회를 가면 된다. 이처럼 아주 작고 가난한 이에게 하는 자선이야말로 예수님에게 하는 것과 똑같은 것이라고, 그래서 천국으로 가는 열쇠를 얻는 행위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신 바 있다. 


그런데 여기에 한가지 문제가 있다 어제 배고픈 사람이 오늘도 배고프고, 딱 보니까 내일도 배고플 것 같고, 게다가 굶주림을 해결했더니 이상기온으로 100년만의 추위가 가시지 않는 날에 헐벗고 추위에 떨고 있게 되었을 때, 그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개인적 차원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사회적 차원에서 해결해야 하는데, 사회적 차원의 궁극적인 완성은 정치적 해결이 될 것이다.


정치란 바로 불우하게 만드는 잘못된 제도들을 몽땅 고칠 수 있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사회의 구조가 가난한 사람을 더 가난하게 만든다면, 우리는 하루의 자선이 아니라 평생의 자선을 실천할 수 있는 방식에 매달려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있다. 바로 그 문제를 지적한 분이 브라질의 유명한 돔 헬더 카마라 대주교다. 



* 돔 헬더 카마라 (Hélder Câmara,1909.2.7-1999.8.27). 브라질의 가톨릭교회 대주교이자 해방신학자


그 분께서 하신 유명한 말씀 "정의와 사랑이 없으면 평화는 언제나 거대한 환상일 것이다."

이 말은 바로 평화는 정의를 전제로 한다는 뜻이다. 정의(正義)가 없는 평화란 어불성설이란 것이다. 형님 먼저 아우 먼저일 때, 정의가 형님이고 평화는 아우님이다. 정의가 서면 평화가 서는 것이다. 


돔 헬더 까마라 대주교님은 이렇게 풀어 말씀하셨다. 

"내가 가난한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면 사람들은 나를 성인(聖人)이라 부르고, 내가 가난한 이들에게 왜 먹을 것이 없는지 물으면 사람들은 나를 빨갱이(사회주의자)라고 부른다."


책 [악마기자 정의사제]의 55쪽를 보니, 이 유명한 그리고 노벨평화상의 수상을 거부하기도 했던 카마라 주교님께서 1989년 세계성체대회 당시 한국을 방문하셨다고 한다. 한 평생을 정의와 평화를 위해 사셨던 이 분은 브라질 인민들이 깨어나고 각성해야 한다면서 이런 말씀도 하셨다고 한다.

"꿈을 가지십시오, 꿈을! 한 사람이 꿈을 꾸면 그 꿈은 한 사람의 꿈이지만, 모두 같은 꿈을 꾸면 그 꿈은 현실이 됩니다." 

책을 통해 1989년에 한국에 카마라 주교가 왔었다는 소식을 알게 된 필자는 당시의 기사들을 찾아보았고, 그 중 경향신문과 한겨레의 인터뷰 기사를 찾을 수 있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989년 10월 3일자 경향신문 인터뷰 기사에 따르면

10월 4일부터 8일까지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성체대회를 위해 2일 한국에 온 세계적 해방신학자 헬더카마라 대주교(당시 80세)는 빈자(貧者)에 대한 사랑이 그의 해방신학의 요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기사에 따르면 1964년~85년에 걸친 장기간의 군부독재 통치 하의 브라질에서 그는 "일부가 호사를 극한 삶을 누리는 반면, 대다수 국민이 동물처럼 사는 현실을 외면하고 어떻게 우리가 하느님의 사도일 수가 있느냐"면서 토지개혁과 인권수호를 외치면서 온갖 박해와 고초를 겪었다고 한다. 호화스러운 대주교관을 등지고 천변교회에 살면서 빈자들의 절규를 전달하던 그의 모습은 군부정권에게는 눈에 가시였지만, 그의 담대한 양심이 남미의 민주화를 이끌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그는 "해방신학은 지금 태어난 게 아니라 이미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셔서 인간의 많은 고뇌를 해방시키면서 시작됐다."고 말하면서 "인류를 고충과 고뇌에서 해방시키려고 한 예수의 삶이 해방신학의 시작"이라고 하였다. 또한 "가난한 이웃을 잊어버린 채 입으로 하느님만을 찬미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예수 그리스도가 그랬던 것처럼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동시에 실천함으로써 그리스도를 닮으려고 노력하는 데서 해방신학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한 1989년 10월 7일자 한겨레 인터뷰 기사에 따르면

"세계 어디서나 크고 멋들어진 도시들이 호화판을 이루고 있는 옆에 참혹한 빈민지역이 자리잡고 있다"고 세계적인 불평등과 빈부격차를 지적한 뒤, "군비경쟁으로 해마다 소비되는 돈이 지구에서 빈곤과 기아를 모두 쓸어내고도 남을만큼의 엄청난 거액"이라고 하였으며, "더욱 무서운 일은 오늘날의 군비경쟁은 지상에서 인간의 생명만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를 완전히 몰살해버리는 데까지 이르렀다"고 하면서 "하느님은 세계의 창조자"인 반면, 인간은 "세계의 반창조자"가 될 충분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