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노트/신부 윤종관

순교, 그것은 과거의 일이 아닌 오늘의 삶이어야

편집장 슈렉요한 2014. 9. 21. 23:55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순교자 대축일

이동경축, 연중 제25주일

2014년 9월 21일 09시 만수리공소


순교자들을 쏙 빼 닮은 모습 

순교, 그것은 과거의 일이 아닌 오늘의 삶이어야 ... ! 



 

9월 20일의 축전

 

어제(9월 20일)의 축전을 신자들의 편의를 위하여 오늘 주일(主日)에 공식으로 경축합니다. 이 축전은 우리 보편교회의 전례력에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축일’이라 적혀 있습니다. 이러한 축일의 명칭은 103위의 성인들 한 분 한 분 모두를 동등한 성인으로 추앙하여 그 성덕을 전 세계의 모든 가톨릭 신자들에게 알리고자 하는 것입니다만, 이 103위성인들 이름을 하나하나 모두 적어서 표기하자니, 이 축일 명칭 자체가 너무 길어지므로 교회는 편의상 이 분들 중에 두 분의 이름을 앞에 쓰고 나머지 101분의 이름을 생략하여 ‘동료 순교자’라 부르며 이 축일 명칭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103위 성인 모두를 기억해야


그러므로 오늘 이 축제는 김대건 성인과 정하상 성인 두 분의 이름만 기억하고 지낼 축일이 아니고, 나머지 101분 모두의 이름도 일일이 기억하여 경축하여야 하는 축일입니다. 가톨릭기도서 49-55쪽의 ‘103위 한국 성인 호칭 기도’에 이 모든 분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축일 명칭을 김대건 신부님과 정하상 성인 이외에도 예를 들어, <이호영 바오로 성인의 축일> 그리고 <정국보 프로타시오 성인의 축일> 또 그리고 <김효주 아녜스 성녀 축일> 등으로 일컬어야 합니다.

 

124위 복자들도 함께 기억하자


그리고 지난 8월 16일 서울 광화문 앞에서 교황님 주례로 시복식을 거행한 124위의 순교복자들도 오늘 함께 기억할 수 있습니다. 그 124위의 한국 내 별도 축일은 5월 29일로 정해졌습니다만, 오늘 함께 기려도 좋을 것입니다. 그 124위 순교복자들의 축일 명칭도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라 기록하고 있습니다만, 그 123위의 한분 한분에 대해서도 그 생애와 치명행적을 우리 후손 신자들이 기억해야 합니다.

 

몇 분이라도 구체적으로 기억하자


치명성인들 가운데 각자 다만 몇 분이라도 이 9월 순교자성월에 신자 분들께서 기억하며 존경하고 본받도록 하기 위하여 수년 전에 저는 다른 본당에서 꾀를 써본 일이 있습니다. 교우님들 각각 어떤 순교성인 이름에다가 ‘이번주간 나의 성인’이라는 명찰을 만들어 주간별로 돌려 달고 지내게 한 것입니다. 그렇게 ‘이번주간 나의 성인’ 명찰을 주간별로 돌려 달고 지내면서 103위성인들 가운데 몇 분의 모습을 찾아보게 되면 그 가운데 신자 각자의 처지에 따라 자신과 비슷한 성인의 삶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상상해보았던 것입니다.

 

103위 중 성직자는 11명


그런 의도를 따라 참고적으로 103위 성인들의 신분을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103위 가운데 성직자는 열 한 분인데 세 분의 주교님과 여덟 분의 신부님이 계십니다. 여덟 분 신부님 중에 김대건 성인 한 분이 한국인 신부님이십니다. 이런 열한 분 성직자 외 92명의 순교자가 평신도들이십니다. 성인들 가운데 절대 다수가 평신도이십니다.


절대 다수가 평신도

 

이 평신도 가운데 남성 치명자 45분, 여성 치명자성인 47분이십니다. 남자 성인 가운데 네 분은 공직자이셨는데 그 중에 한 분은 정삼품 승지 남종삼 성인이 계시고 두 분은 군인이셨고 한 분은 역관(譯官)이었습니다. 이 네 분의 공직자 외에 나머지 41분의 남자 성인은 평민 출신이셨는데 그 중에 21분이 교회 신자들의 회장이셨습니다. 그러므로 남자 성인들 가운데 20분은 그야말로 평범한 신자들로서 농부나 상업인(商人)이나 머슴살이를 하던 분들입니다. 그 가운데 한 분은 어린 소년이셨습니다.

 

여성으로 치명하신 성녀 47분 가운데 한 분은 여회장이셨고 나머지 46분은 평범한 여신자이셨는데, 그 가운데 14분은 과부이셨고, 15분은 가정주부이셨고, 17분은 동정녀(處女)이셨는데 그 중에 두 분은 어린 소녀였습니다.

 

103위 치명성인 중에 아홉 분은 감옥에서 돌아가셨고(獄死) 다른 94분은 군문효수(軍門梟首)나 참수(斬首) 및 교수형(絞首刑)으로 공개 처형 당하셨습니다. 47분의 치명성녀들 중에 다섯 분은 감옥에서 돌아가셨지만 42명은 아녀자임에도 불구하고 무참하게 공개참수 내지 교수형을 당하신 분이십니다.

 

우리 충청도에서 처형당하신 분은 보령 갈매못에서 주교님 한 분과 신부님 두 분 그리고 두 분 회장님께서 군문효수로 순교하셨고, 한 분은 공주에서 교수형으로 순교하셨습니다. 갈매못에서 치명하신 다섯 분 성인의 유해는 우리 하부내포 지역에 묻히셨습니다. 순교하신 대부분의 성인들께서는 서울에서 순교하신 분으로 기록되고 있는데, 이것은 당시 처형에 대한 정부 당국의 기록으로 그 이름이 남았기 때문이고, 오히려 공식 기록이 잘 남아 있지 않거나 아예 기록조차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교회에서 시성식(諡聖式)을 해드리지 못하는 우리 충청도의 순교자들은 공주와 홍성(洪州)에서 수백 명에 이르고 해미에서는 3천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 외에도 당진, 면천, 예산, 아산과 대전 근교의 진잠과 연산과 부여의 홍산 등지에서 치명하신 분들이 수백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 분들 가운데 치명 행적을 기록상 세세하게 찾아서 124위를 금번에 시복할 수 있었습니다. 해미, 홍주, 예산 대흥, 청양 정산 등지의 우리 충청 지역에서 치명하신 분들 다수가 시복의 명단에 들어있습니다. 그 분들 중 황일광 시몬 복자께서는 홍주 출신의 백정 신분인데 제가 사는 지역인 옛 홍산 고을에 사시던 중 다른 곳으로 피신했다가 체포되어 고향 홍주에서 치명하신 분입니다.


1만명으로 추산되는 치명자들 


기록상 이름을 남겨 놓지 못한 치명자들이 우리 충청도 지역에서 수천 명에 이르며 전국적으로는 대략 1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오늘 우리가 추앙하는 103위의 성인들 외에 1만 명에 이르는 순교자들은 사실상 일반신자들입니다. 124위 복자들 중 주문모 신부님만 성직자이고 다른 모든 분들은 평신도이십니다. 이렇게 성인 및 복자 227위 외에 헤아릴 수조차 없는 무명의 치명자들을 오늘 우리는 함께 기려야 할 것입니다.

 

헤아릴 수 없는 무명 순교자들


헤아릴 수 없는 무명 순교자들의 그 후예들이라 자처하는 오늘날 우리 자신들의 삶 속에서 그분들의 모습을 되찾자고 저는 말하고 싶습니다. 그 무명의 수많은 치명자들의 모습이 사실상 평범한 신자들의 모습과 더 가깝다고 저는 말하고 싶습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이 있는데, 이와 더불어 인간의 역사에 대한 시각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고 오늘 저는 말하고 싶습니다. 호랑이가 살아생전에 그 위용을 자랑하던 무늬를 몸에 걸치면 호랑이처럼 권력을 멋있게 보일 수 있다고 착각해서였는지 오래 전에 고관대작 사모님들의 호피무늬 코트 로비사건으로 세상이 떠들썩했습니다만, 그렇듯 호랑이는 살아서의 위용을 또한 죽어서도 가죽 값으로 들어내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아마도 그 값이 그렇듯, 인간이 남겨 놓는 것도 생전에 쌓은 업적을 후대 사람들이 알아보게 하는 것 역시 호랑이 가죽 같은 것이라서 세상 사람들은 업적으로 이름 남기기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교회 지도자들 사이에도 치적경쟁이나 하듯 신자들의 정신적 물질적 부담을 아랑곳하지 않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지요. 교회기관건축을 위하여 실제적으로는 가난한 교우들이 살림살이를 쪼개어 희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가시적 업적은 교회 성직자의 이름으로 기록되지요. 그것은 우리나라의 1960-70년대 대다수 국민들 특히 노동자 농민들이 먹지 못하고 잠자지 않으며 피땀 흘린 대가로 이룩한 근대화의 공덕을 마치 독재자 박정희 대통령이 이룩한 덕분으로 칭송하는 경우나 비슷한 것이지요. 이러한 현상에 대하여 제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어느 지도자들을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사실상 세상의 역사란 지도자 이름의 역사라기보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사람들의 살이 녹고 뼈가 삭은 역사로 읽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역사란, 왕조사를 기록한 것이라기보다 이름 없는 사람들 곧 민초(民草)라 할 또는 그냥 백성이라 할 많은 사람들의 삶으로 엮어 이어지는 것, 그것이 참다운 역사라 해야 할 것입니다. 빛나는 이름을 나열하는 기록에서가 아니라 이름 없는 사람들이 이어온 삶의 맥박 속에서 참다운 역사를 읽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의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실제 삶으로 읽을 수 있는 신앙의 역사, 그것이 바로 평범한 신자들의 삶이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여, 선조들의 신앙 증거, 즉 순교의 역사가 한낱 이름으로 기록 된 것으로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천주교 신자들이 오늘날 살아가는 모습을 볼 때 “아! 옛적 선조 때부터 천주교 신자들이 이렇게 살아 왔구나!” 하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역사를 보여야 할 것입니다. 김대건 신부님을 비롯한 자랑스러운 이름들이 참으로 귀중함은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위대한 이름들의 주인공들이 남긴 족적들을 알리고 그대로 따르라 하는 것은 평범한 신자들에겐 너무 벅차기도 합니다. 그보다 더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은 위대한 이름과 더불어 동시에 이름을 알 수 없는 더 많은 평신도 치명자들의 삶을 오늘날까지 계승하는 평범한 신자들의 삶으로 우리 신앙을 증거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변변치 못한 후손일수록 자기 집 조상이 무슨 큰 벼슬을 했다고 늘어놓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후손이 사는 모습을 보고 그가 어떤 조상의 후손인가를 알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듯이 순교란 과거의 일이 아니라 오늘의 우리에게서 똑같이 진행되고 있는 신앙 증거의 삶이어야 합니다. 그것은 오늘의 우리 모습이 순교 선열들의 모습을 쏙 빼다 닮은 것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순교자들을 닮은 우리의 그 모습은 어떻게 확인 될 수 있겠습니까? 올바르지 못한 일에 가담하지 않기 때문에 손해를 보고서도 마음으로 진정 기쁜 신자라면, 목숨 빼앗기면서도 신앙 증거를 할 수 있었던 순교자의 후예일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비웃음 속에서도 올바른 길을 외롭게 갈 수 있는 사람들이 진정 이 세상살이를 나그네의 삶으로 알고 천국 본향을 바라보며 죽음의 길을 기꺼이 갈 수 있었던 선조들의 후예일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길은 어차피 지나가는 길,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고독의 길이요, 그래서 버림받은 삶의 길을 갈 수 있었던 치명자들의 후예다운 정신을 가다듬기 위하여 그 형극의 발자국을 따라 기도를 하며 이 순교자 성월을 지내는 우리입니다. 주일(主日)에 세속체면과 놀이에 빠지지 않고 하느님께 나아오기를 기쁨으로 삼는 체질의 신자라면, 관직을 빼앗기고 산속에 들어가 가난하게 살면서도 신앙으로 행복할 수 있었던 박해시대 선조들의 후예다운 신자일 것입니다. 세속의 물결에 휩쓸려 쾌락을 찾아다니기보다는 성경 말씀 하나라도 더 찾아 읽고 교리공부로 영혼의 양식을 얻으려 노력하는 신자라면, 밤으로 몰래 성경과 교리서를 읽으며 영혼무장에 게을리 하지 않았던 박해시대 선조들의 후예다운 신자일 것입니다. 교회활동을 통해서도 사람들 앞에 생색내는 것만 찾거나 본당신부의 칭찬을 기대하지 않고 묵묵히 기도하며 하느님께서 아시는 것으로 기쁨을 삼는 신자라면, 가족친지들로부터 버림받고 감옥에서 병들고 굶어 죽어가도 하느님께 감사기도 올리며 천국을 바라볼 줄 알던 치명자들의 후예다운 신자일 것입니다. 그러한 치명자들의 후예답게 진정으로 신앙의 맛을 알고 살기 위하여, 우리는 각자 우리 성인들과 복자들 가운데 평범하고 잘 알려지지 않은 분의 행적을 찾아 본받도록 이 순교자 성월이 다 가기 전에 그분들의 생애에 관한 서적을 읽어보면서 각자의 모델이 되는 분을 찾아보기도 해야 할 것입니다.

 

담대히 그리스도를 찬양하라


오늘 본래 연중 제25주일에 읽는 독서 중에 바오로 사도의 다음과 같은 말씀을 새겨듣고 싶습니다. “살든지 죽든지 나의 이 몸으로 아주 담대히 그리스도를 찬양합니다. 사실 나에게는 삶이 곧 그리스도이며 죽는 것이 이득입니다.”(필리 1,20∼21) 그렇습니다. 육신으로 사는 지금 나의 이 세상살이에서 삶 자체가 그리스도와 같은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이란 말로만 고백할 것이 아닙니다. 죽음이 덮쳐 와도 부서지는 몸으로 끝까지 참 신앙이 증거 되어야 합니다. 선조들이 갔던 그 치명의 길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같은 방향의 길이라는 것을 우리 몸의 움직임을 통해서 증거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가는 신앙의 길이 세상의 길과는 다르다는 그 역설(逆說)에서 더욱 선명하게 증거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늘 미사의 제1독서 지혜서 3장에서 보듯, 역설적(逆說的)으로 우리의 삶이 그 증거이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의인들이 벌을 받는 것 같지만, 그들은 불사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지혜 3, 4)라는 역설이 바로 우리를 두고 하는 말이어야 합니다. 즉 박해의 함정 속에서 의인의 모습은 드러납니다. 세상은 오늘도 그렇게 우리의 올바른 길, 즉 의인의 삶을 증거 해보라는 식으로 우리에게 질시와 따돌림과 고독과 수치로 엮은 고통의 그물을 뒤집어씌웁니다.

 

그러나 치명자들의 후예인 우리는 바오로 사도의 다음과 같은 말씀을 우리 자신들의 말로 외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께 선택된 이들을 누가 고발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을 의롭게 해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로마 8, 33) 라고 말입니다. 이러한 확신으로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가면서(루카 9, 23 참조), 세상으로부터는 ‘도살될 양처럼 여겨지는 걸’ 우리의 처지로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로마 8, 36 참조).


진정한 순교자의 후예

 

세상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인가 아닌가를 늘 시험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세상의 시험은 비난의 손가락질, 혹은 그릇된 길과는 다른 방향의 우리 길을 이상하다 여기면서 내젓는 손가락질일 수 있습니다. 오늘의 순교자다운 삶의 모습, 그것은 세상이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천주교 신자들은 참 이상한 사람들이야! 손해 보면서도 무엇인가 믿는 게 있어서 저렇게 사는 것 같아…” 이런 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와야 순교자들의 후예인 것입니다. 치명선조들을 쏙 빼닮은 모습의 우리이어야 합니다. 순교! 그것은 과거의 일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삶이어야 합니다.



출처: 가톨릭성지 하부내포 공식 Daum 카페

http://cafe.daum.net/southnaepo/Dvt8/114




부여외산면 만수리공소 담당 하부내포 성지 윤종관 가브리엘 주임 신부

1947년 6월 충남 부여 출생. 1960년 소신학교인 서울 성신중학교에 입학가톨릭대 신학부를 거쳐 1974년 12월 사제가 되었다이탈리아 로마 우르바노 대학원 석사와 베를린 자유대학 박사과정 유학을 마치고 1985년 귀국해 해미 본당 초대 주임으로 6년간 성지를 조성했고, 2001년 안면도 본당이 설립되자 대전 도마동 본당 주임과 대전 서구지구장직을 2년 만에 끝내고 자청해 갔다열악한 환경의 안면도 사목 6년을 마친 윤종관은 2007년에 버려지고 잊혀진 하부내포 성지 전담 사제로 부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