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노트

"대학은 세일즈하기 편한 상품을 생산하길 원했다"

편집장 슈렉요한 2015. 3. 9. 10:05

"대학은 세일즈하기 편한 상품을 생산하길 원했다"



지난 해(2014년) 5월 7일 중앙대 철학과 2009학번 김창인 학생이 자퇴를 선언하며 남긴 말입니다. 김 씨는 "모두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문제를 고민하게 하고, 경쟁을 통한 생존을 요구하는 대학은 세일즈하기 편한 상품을 생산하길 원했다”며 “대학은 기업이 아니고 나 또한 상품이 아니다. 난 결코 그들이 원하는 인간형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저항을 해보려한다"고 선언하면서 대학을 비판하는 마지막 저항의 몸짓으로 자퇴를 선언했던 것입니다. 그는 또한 "내가 대학에서 배운 것은 정의를 꿈꿀 수 없다는 것”이어서 “대학을 그만둔다”고 밝히고, “기업화 돼가는 학교가 ‘낙인찍기’를 통해 자신의 학생회 피선거권을 박탈하는 등 괴물로 변해간다"는 언급을 한 바 있습니다.


사실상, 중앙대학교는 2008년도 대기업 두산이 인수한 이후에 빠르게 변화해갔습니다. 그리고 그 변화의 핵심은 '기업화' 과정이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기업화'라는 것은 시장이 원하는 것을 산출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반대로 당장의 시장이 원치 않는 것은 아예 판매는 물론 제조도 안하겠다는 속셈이 깔려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대학을 바라보는 기본적인 가치관이나 시선이 '시장, 제조, 생산, 판매' 등의 단어로 귀착되는 것이기때문에 오늘날 중앙대학교의 변신은 좋게 말하면 '산학협력선도형 대학'으로 '선진화'되는 것이고, 달리 보면 '대학의 교육적 가치가 시장에 잠식'된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대학들이 대기업의 손아귀에 있습니다. 삼성이 재단으로 버티고 있는 성균관대학교와 두산이 있는 중앙대학교, 그리고 현대의 울산대학교, 한진(대한항공)의 인하대, 포스코의 포항공대, 과거 쌍용의 국민대 등을 열거할 수 있습니다. 이 중에서 울산대학교와 포항공대는 기업이 직접 설립한 대학이기도 합니다. 


20년 넘게 하버드대학교 총장(1971~1991, 2007년 interim)을 역임했던 복 총장(Derek Bok)이 2003년 펴낸 저서인「University in the Marketplace」(시장 속의 대학)에서 기업화되어가고 있는 대학에 대해 이런 진단을 한 바 있습니다. 



사회적 입장에서 대학 상업화의 긍정적 측면은 첫째, 기업과 공공의 필요성에 대한 대학의 관심을 집중할 수 있고, 두번째로, 현실과 지나치게 동떨어진 교수활동을 자제하게 만들며, 셋째로, 대학의 값진 아이디어가 실험실 안에 갇혀있지 않고 기업에 제공함으써 유용한 상품과 서비스로 전환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부정적 기능도 분명 존재한다. 시장의 압력과 이윤동기가 명백히 개입된다는 것이다. 자원의 효과적 배분이거나 경제성장이거나 효율성의 촉진이란 생각이 스며들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러한 위협 요소들은 교수, 대학, 궁극적으로 사회 전체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 결과적으로 대학의 교육과 학문이 지닌 순수성과 신뢰성에 대한 대중의 믿음은 서서히 잠식될 것이다. 대학이 점차 스스로의 규범을 훼손시켜 훗날 돌이킬 수 없는 상황까지 갈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은 성균관대의 직원 4명이 2005년 우리말로 번역했는데, 성균관대 출판부에서 나온 번역서의 제목은「파우스트의 거래」, 부제는 ‘시장만능시대의 대학가치’입니다. 이 책을 옮긴이들은 나름 고민 끝에 ‘영혼을 파는 대학의 변화’에 대한 심정을 제목에 담은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아무튼 이 글을 쓰게 된 배경은 2015년 3월 9일(월) 경향신문 31면에 [시론]으로 등장한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의 글을 읽은 때문입니다. 중앙대학교 영문학과 85학번이라고 자신을 밝힌 이 씨는 중앙대학교에서 최근 벌어지는 구조조정안에 대한 우려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2015.3.9(월) 31면 시론.


이동연 교수님의 글을 한가지만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모교의 이번 선진화 계획이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 안이 어쩌면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중앙대학교의 정체성을 뿌리채 흔들릴 수 있다는 판단때문이다."


 [시론]인문·예술 죽이는 중앙대의 대학기업화 이동연 |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중앙대학교는 2018년이면 100주년을 맞이한다고 합니다. 중앙대 홈페이지의 이사장 박용성의 인사말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습니다.


2018년에 개교 100주년을 맞는 우리 중앙대학교는 지난 1세기 동안 수많은 인재 육성으로 국가와 사회발전에 기여해왔습니다. 이제는 글로벌 시대에 세계적인 명문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데에 총력을 다할 것입니다. (중략) 학문단위 재조정에 이어 5개 계열별 부총장 제도 (중략) 성과형 보상제도 (중략) 이러한 제도개선은 오직 사회가 원하고 국가에 공헌하는 인재양성이라는 목표를 위한 (이하 생략)


중앙대학교 이사장 박용성은 두산그룹 창업주 박두병의 3남입니다. 이 분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세계적인 명문과 어깨를 나란히'하는 것이 대학 선진화 계획의 목적이라면, 가장 명문대학이랄 수 있는 하버드 대학에서 20여년간 총장을 역임했던 데렉 복의 충고는 귀담아 들을만 합니다.



시장 원리는 상업적 자극이 강력해서 유용한 발견물을 공개하거나 수익성 있는 교육을 개발해야하는 것이다. 그것은 건전하고 책임있는 시민, 도덕적이고 성찰적인 인간을 양성하자는 학생 교육의 목적과 매우 다른 것이다. 도덕적 성찰은 수익과 무관하다. 위대한 철학서와 역사서의 서술이나 자연적이고 사회적 진리의 발견이 수익과 관련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대학 내의 많은 활동과 유능한 인재들이 수익성있는 교수와 연구로 점점 더 몰려들면, 훨씬 더 중요하고 오래된 가치를 지닌 다른 형태의 교육은 충분치 못한 자원때문에 방치될 위험에 놓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