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노트

오염된 눈을 씻고 자기 눈으로 세상을 보는 계기가 되길

편집장 슈렉요한 2015. 5. 19. 23:00

기성언론에 오염된 눈을 씻고 자기 눈으로 세상을 보는 계기가 되길


이대학보의 칼럼 사과문을 통해 대학 언론의 희망을 새로 세워야



"아니나 다를까. 폭력시위는 추모제에 참여한 좌파.친북단체가 세월호 유가족을 앞세워 반정부 구호를 외치며 청와대로 진격을 시도했던 것이 원인이었다."


"대학생들은 앞으로 계속해서 추모제가 어떤 목적으로 진행되는지, 참가자들은 진정으로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로 참가하는지 살펴봐야 할 것이다."


위의 글은 이화여자대 학보사 '이대학보'의 2015년 5월 4일자 <1495호 이대학보>의 여론칼럼면 [상록탑]의 내용 중 일부입니다. 제목은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마음만큼 중요한 것'이고, 부제는 '추모라는 이름하에 정치적 목적 드러내는 단체 조심해야'입니다. 그런데 이 칼럼에 담긴 주장은 조선이나 동아일보같은 기성 언론의 프레임을 그대로 흉내내고 있습니다. 제목과 부제에 담긴 뉘앙스도 많이 비슷하게 느껴집니다. 이대학보 주장에 따르자면 세월호 추모시위에서 벌어진 폭력적 형태는 좌파친북단체때문입니다. 그것도 '아니나 다를까'입니다. 이 칼럼 작성자의 고민은 딱 이것 한가지로 보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역시 '진심'보다 사회질서를 문란하게 만드는 '본심'을 드러내는 이들을 나름 증거까지 들이대며 칼럼은 비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칼럼에서는 빠트린 게 너무 많습니다. 단 한가지만 이야기하자면, 경찰은 (정청래 의원실 자료) 5월 1일 노동절 하루에만 지난 2년간 사용했던 9.5톤보다 4배나 많은 40톤의 캡사이신을 뿌려댔지만 그런 경찰의 진심 아닌 본심을 칼럼이 묻지는 않았다는 겁니다. 임수경 의원은 4월 18일 집회에서 일어난 충돌과 관련하여 "국가가 유가족과 국민의 상처를 어루만지기는 커녕, 인체에 유해한 캡사이신 2년치를 단 하루만에 살포한 것은 공권력을 남용하고 헌법상 보장된 집회의 자유를 억압한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세월호 관련 집회에 대한 경찰의 진압방식은 숫자로 드러납니다. 1개월 가량 세월호 집회에서 사용된 캡사이신의 양은 지난 해 12개월(1년간) 사용량 485리터보다 많은 522리터라고 합니다. 경찰의 강경한 입장은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과 박래군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공동운영위원장을 소환조사하는 데에 이르렀습니다. 이 두사람이 세월호 관련 집회시위에서 불법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5월 13일 출석을 요구한 것인데, 이에 대해 박래군은 '공안탄압'이라고 주장합니다. 민주노총과 시민사회를 향한 경찰의 소환조사를 통해 세월호 진실을 규명하려는 요구를 잠재우려는 의도가 있다는 것입니다.  


[박래군 /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공동운영위원장]
"시민사회단체, 민주노총까지 (소환)하는 건 유가족과 시민사회 단체를 분리시키려고 하는 거고요. 시민사회단체를 좌빨 내지 종북세력으로 외부세력이 개입해서 유가족들을 대정부 투쟁으로 끌고 가고 있다 변질시키고 있다는 게 저쪽(정부)의 입장인 거고."


‘세월호 과잉진압’ 경찰, 이번엔 유가족과 시민사회 이간질?

국민TV 2015년 5월 13일자


세월호 추모 시위에 대한 경찰의 강경진압을 보도하는 언론은 무수히 많습니다.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대학보의 칼럼작성자는 조금만 찾아봐도 쉽게 알게되는 관점들을 몰랐던 것일까요? 외면했던 것일까요? 1년이 지난 현재까지 왜 이런 일이 벌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이 과연 있었나 싶습니다. 오히려 '진심'과 본심'을 증명하는 데 관심을 쏟습니다. 칼럼의 작성자가 밝힌 이유는 이런 것입니다.


"고백하자면, 며칠 동안 필자는 의심했었다. 1년 전 아이를 잃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던 그때의 부모들이 맞을까. 그런 부모들의 아픔에 함께 하고자 했던 국민들이 맞을까 하고."


그러면서 나름대로 각종 증거를 들이댑니다.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에 참여한 단체 800개 중에 좌파.친북단체가 다수 포함돼있던 것이다.

가짜 세월호 추모 사이트를 만든 20대가 구속됐고 비슷한 시기 열린 세월호 추모 촛불집회에서 약 30명이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다. 


결국 이 칼럼은 세상의 뭇매를 맞았습니다. 이 글을 쓴 기자는 사과문을 실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사과문에 과연 '진심'보다 궁색한 '본심'이 더 담겨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저는 안타까웠습니다. 유가족과 뜻을 함께하기보다는, 세월호 집회를 자신들의 개인적인 목적에 이용하는 일부 단체로 인해, 유가족분들의 당연하고 정당한 요구까지 빛바래고 힘을 잃는 것 아닐까 하는 우려가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를 구분해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습니다."


이 사과문에도 기존 칼럼의 주장이 드러납니다. 고약한 방식입니다. 안타깝다고 말하고 있지만, 정말 무엇을 안타까워하는지 잘 모르고 있어 보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 기자의 칼럼때문에 대학의 수준과 정체성을 드러낸 이화여대의 현재 자화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과문에서는 여전히 '순수 유가족'과 '다른 본심'을 구분하자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구분해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구분당한 '다른 본심'은 폭력단체이고 친북.좌파단체이기때문이라는 칼럼의 주장과 연결됩니다. 그러나 '순수한 유가족'과 '다른 본심을 가진 이'로 구분한다면 유가족을 도울 수 있는 방식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세월호 참사는 유가족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이 당면한 복잡하고 종합적인 문제입니다. 세월호는 그것이 드러난 종합적 형식이 아닐까 싶습니다.


현재 해당 칼럼 인터넷 지면에는 원문 글 위에 작성기자의 사과문이 있고, 그 위에 <1495호 상록탑 관련 이대학보사 입장표명>이라는 3개의 글이 함께 실려 있습니다. 데스크의 불찰을 사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2015년 5월 18일(월)자 사과문이 별도로 실렸습니다. 


"칼럼이 하고 있는 '주장'의 근거는 불명확했고, 칼럼에 담긴 논리 역시 일부 신문의 보도 프레임을 충분한 성찰없이 옮겨 쓴 것이었습니다.... 해당 상록탑은 지극히 단편적인 모습만을 보고, 그 모습 너머의 '진실'을 보려는 노력에 소홀했습니다.... 이러한 저희의 태만으로 인해 상처받으셨을 모든 분들께 진심어린 사과의 말씀을 전합니다."


이대학보의 사과문은 기성언론에 오염된 눈을 씻고 대학 본연의 눈으로 세상을 보려는 의지를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사과문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싶습니다. '진실'을 추구하려는 대학의 진정한 주인공인 '학생'의 '의지'를 읽을 수 있습니다. 학생이 제품으로 전락하고 대학이 기업의 취업공장으로 변해가는 세상입니다. 기업화되어가는 대학은 취업에 민감합니다. 그러면 학문의 진실과 인격의 존엄함은 '가치중립적인 학문의 추구'라는 그럴듯한 미명에 묻혀 숨을 죽이게 됩니다. 대학의 자유로운 토론은 정치적으로 탈색되어 무미건조한 내용으로 변질됩니다. 왕성한 논쟁과 공동체적 이슈의 생산은 어이없는 선전선동이나 상업적 홍보로 뒤바뀝니다. 그래서 오늘날 대학은 너무나 많은 것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대학이 원래 건전하고 책임있는 시민을 키워내는 곳이란 사실을 잊어가고 있습니다. 도덕적이고 성찰적인 인간을 양성하는 곳이란 사실을 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근래에 세상이 던진 비난의 화살을 용기있게 맞은 이대학보사가 세상의 아픔에 귀를 열고 인간의 미래를 인간이게 만드는 희망의 보루로 성장하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