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서가 생략한 나머지 이야기는 우리의 이야기
부활 제3주일
2015. 4. 19. 09:00 하부내포성지 만수리 공소
복음서가 생략한 나머지 이야기는 우리의 이야기
부활은 늘 현재진행형이기에!
오늘 부활 제3주일 역시 부활 대축일과 똑같은 날입니다. 오늘 복음 성서의 내용이 바로 그렇습니다. 즉 오늘의 루카복음서 24장 35∼48절에서 볼 수 있는 예수님의 부활 발현 사화가 그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과 제자들과의 만남이 그것인데, 이렇게 예수님의 부활 당일에 있었던 일련의 사건만 보도하고 루카복음서가 그 다음에 제자들에게 일어난 이야기는 전해주지 않는 점에 대하여 우리는 유의해야 하겠습니다. 즉 부활의 날 하루 동안에 일어난 일만을 전해주고는 그 다음의 일은 전해주지 않고 이 루카복음서는 끝나고 맙니다. 왜 그랬을까요?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
이에 대해서는 오늘 우리가 읽은 마지막 말씀으로, 즉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마지막 말씀으로 대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루카 24, 48) 하셨으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 당일 이후로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는 예수님의 제자들 곧 사도들에게서 증언을 들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 후 사도들이 증인들로서 활동한 것에 대해서는 이 복음서를 쓴 루카 자신이 나중에 기록한 사도행전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사도들의 증언을 들어야 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부활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알려주시는 일을 그 부활 날 하루로써 사실상 마치셨던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사도들로부터 증언을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제1독서로 읽은 사도행전 3장에서와 같이 베드로를 위시한 사도들이 증언하기 시작하여 우리에게까지 예수님의 부활이 전해지고 있음을 봅니다.
부활 당일엔 무슨 일이?
그러면 부활 당일에 있었던 일이란 무엇입니까? “주간 첫날 새벽 일찍이”(루카 24, 1) 무덤에 갔던 여자들이 열려진 무덤 속에서 부활의 소식을 듣고 사도들에게 돌아와 그 사실을 전하였지만, 그에 대하여 사도들은 여자들의 헛소리라고 치부하였고, 베드로 역시 무덤에 가서 확인하고서도 주님의 부활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였다고 루카복음서는 그날 아침의 정황을 보도합니다(루카 24, 1∼12 참조). 그리고 그 자리에 있었던 두 사람의 제자가 예루살렘을 떠나 걸어가던 길에서 만난 분으로부터 깨우침을 받고 엠마오 마을 집에서 저녁식사를 하던 중에 그분이 곧 예수님이었음을 알아보게 됩니다(루카 24, 13∼32 참조). 그러한 두 제자가 그날 저녁에 예루살렘에 모여 있던 사도들에게 돌아와 그 경위를 설명하였다고 루카복음서는 이어서 보도합니다(루카 24, 33∼35 참조). 되돌아온 두 사람이 그렇게 증언하던 중에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또한 부활하신 분으로 오십니다(루가 24, 36∼43 참조).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그날 있었던 일을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온 민족에게 당신의 이름으로 선포하라고 사도들에게 당부하셨다고 루카복음서가 보도하고 있습니다(루카 24, 44∼49 참조).
부활날 하루만 기록하고 끝맺은 루카복음 이후에 대한 궁금증
이러한 일련의 그날 사건을 보도하는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사실에 대하여 계속 어느 누구에게서 다른 누구에게로 증언이 이어지는 과정(여자들이 사도들에게, 그리고 길 떠난 두 제자가 돌아와서 사도들에게, 그 다음으로는 사도들이 온 민족에게 증인이 되도록 이어지는 과정)을 루카복음서는 보도하고 있습니다(루카 24, 1∼49의 내용). 그런데 그 내용은 그날 하루 동안의 사건으로 보도됩니다. 그리고는 즉시 예수님의 승천을 간단하게 보도 하고나서(루카 24, 50∼53 참조), 그 이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주지 않고 있습니다. 그 부활 날 이후에 대해서는 마치 공란과 같은 것으로 남겨 두면서 이 루카복음서는 끝맺음을 하고 있습니다. 즉 부활 날 하루에 있었던 일만을 기록하고 루카복음서는 그 다음에 대하여는 우리가 궁금해 하도록 남겨두고 있는 것입니다. 그 궁금하게 남겨 놓은 공란이란 증인으로 파견 받은 예루살렘의 사도들 이후 온 민족에게 이르기까지(루카 24, 47 참조)의 우리 증언이 이어지도록 남겨진 공란이라 할 수 있습니다.
루카복음서가 생략한 까닭은?
그렇다면 우리가 그렇게 궁금해 하도록 부활에 대한 그 다음의 체험 이야기를 루카복음서가 생략한 이유가 무엇인지 알만 합니다. 오늘 우리가 봉독한 바대로,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루카 24, 48) 하신 말씀에서 유추하여 그날 이후의 일에 대한 보도를 생략한 이유에 대하여 깨달을 수 있습니다.
교회의 증거로 부활이 전해져야 한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그날 이후의 부활 체험은 온 세상에 나가서 증언할 제자들의 말로 전해져야 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즉 부활하여 오시는 예수님 친히 당신 부활을 증명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부활 날 이후에는 이제 사도들이 전해주는 증언으로부터 시작해서 오늘의 우리에게까지 증언이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증거로 부활이 전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증인이다” 하고 말입니다. 이 말씀은 곧, 부활이란 우리를 통해서 늘 계속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부활이란 과거의 일이 아니라 늘 현재 진행형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증언하며 늘 진행형으로 보여야 할 부활이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그날 저녁 때 제자들에게 발현하시어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 성경을 깨닫게”(루카 24, 45) 하셨듯이, 늘 우리의 마음이 열리면서 퍼져나가야 할 뉴스인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깨달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증언으로 계속 전하는 일이어야 합니다. “성경을 깨닫게 하여주시는” 그 일은 우리가 이렇게 모여서 말씀의 전례를 거행하는 자리에서 오늘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모인 이 자리에서 성경을 깨닫는 오늘은 다른 날이 아니라, 곧 예수님 부활의 그 날과 같은 날입니다. 우리가 모이는 날, 이 날은 곧 주일입니다. 모여 있는 우리에게 부활하신 주님께서 오시는 날입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에게 접근하여 동행하시면서 말씀을 하시고 성경을 설명하여 주시듯이(루카 24, 32 참조),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이 세상길로 나가서 멀어져 가더라도 따라오시며 우리에게 뜨거운 감동을 일으켜 주시는 분으로서(루카 24, 32 참조), 오늘도 우리가 모여 있는 여기에 오셔서 우리의 마음을 열어 주시며 성경을 깨닫게 하여 주시는 말씀을 하십니다(루카 24, 45 참조).
주일마다 부활주일을 체험하는 것
이러한 일이 매 주일 이렇게 우리가 모여 있을 때 일어납니다. 즉, 주일에 우리는 부활주일의 그 같은 체험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부활주일 당일의 체험을 매 일요일에 함께 하는 일은 사도 시대 이후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계속하는 일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사도시대 직후 2세기에 순교하신 교부 성 유스티노 순교자 주교님께서 아래와 같이 증언하십니다.
“‘태양일’이라고 하는(즉 ‘일요일’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날(주일)에는 도시와 시골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집회를 열고(교우들이 다 모여와서) 사도들의 해설집이나 예언자들의 글을 시간이 허용하는 데까지 읽습니다(‘말씀 전례’를 한다). 독서가 끝나면 그 다음에(성경 말씀을 읽은 다음에) 주례자는 방금 들은 아름다운 교훈들을 우리 생활에서 본받도록 권고하고 격려합니다(주례자가 강론을 한다). 그러면 함께 일어나 기도를 바칩니다(‘보편지향기도’ 즉 ‘신자들의 기도’를 하고). 그러고 나서 빵과 포도주를 제단에 올리고(예물 준비 즉 봉헌 예식을 하고), 주례자가 온갖 정성을 다해 기도와 감사송을 바칩니다(‘성찬 전례’의 진행을 한다). 그러면 회중들은 ‘아멘’이라고 큰소리로 응답합니다. 그 다음에 감사의 기도를 바친 그 음식을 분배하여 참석자가 각기 그것을 받아 모시며(즉 ‘영성체 예식’을 하고), 참여치 못한 이들에게는 부제들을 통하여 그것을 보냅니다(환자 봉성체를 한다)”(성 유스티노, ‘제1호교론’ Cap. 66~67 : PG 6, 427∼431 : 성무일도 II 부활 제3주일 독서 중 참조 : 인용문 가운데 괄호 안의 내용은 미사 전례에 해당되는 것임).
교회는 주님을 만나는 일을 계속해오고 있다
이러한 유스티노 교부의 증언과 같이 사도시대 이후 교회는 주일마다 성경 말씀을 읽고 강론과 기도로 교우들의 마음을 열어 놓은 다음에 성찬예식을 거행함으로써 부활하여 오신 주님을 만나는 일을 계속해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오늘 우리들도 그 자리에 모여 주님을 만나고 있습니다. 그러한 부활의 체험은 사도들 이래 예루살렘에서 비롯하여 오늘의 우리에게까지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는 일로써(루카 24, 47 참조) 지금도 여기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렇듯 부활하신 그분을 만나는 일이 주일마다 우리들이 모인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지 않습니까? 부활하여 오신 그분의 이름으로 회개하여 죄를 용서받는 평화의 기쁜 소식을(루카 24, 47 참조) 그 부활의 날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하도록 사도들 이래 우리 모두는 파견 받고 있습니다.
남겨놓은 자리가 곧 우리 시대의 과제
그래서 우리는 이 일의 증인으로 세상에 나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한 일이 우리들의 일로써 계속 일어나서 복음서의 뒷이야기로 우리들 사이에 기록될 수 있도록 루카복음서는 그 부활의 날 예루살렘에서 본 예수님의 발현 이후를 여백과 같이 남겨 놓았던 것입니다. 그 남겨 놓은 자리가 곧 우리가 증언할 부활의 삶이 이루어질 우리 시대의 과제인 것입니다. 즉, 루카복음서가 생략한 부활 당일 다음의 이야기는 우리의 삶 속에 씌어져야 할 이야기인 것입니다. 세례로써 시작한 우리의 새 삶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음을 증명해야 할 우리의 과제인 것입니다. 그러한 새 삶을 다짐하기 위하여 주님 오신 이 자리에서 주일마다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으로써, 즉 ‘주간 첫날’(일요일)이 될 때마다 고백하는 신앙으로써, 매번 우리는 그 부활의 날에 오신 예수님을 그날 저녁에 뵙게 된 사도들의 방에서 일어난 일과 같이 체험하는 것입니다.
그 새 삶을 시작하는 날은 이렇게 ‘주간 첫날’인 주일(主日)마다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새 날을 시작하는 기쁨을 주일마다 얻고 있습니다. 이 기쁨을 세상에 전해야 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제 밖으로 나갈 파견 명령을 받고 있음을 다시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루카 24, 48).
이 말씀은 2천 년 전에 예루살렘의 어느 방에서 사도들에게 하셨지만, 또한 오늘날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도 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증인인 것입니다. 우리 자신들이 그 증인으로서 세상에 파견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가슴에 담으면서 세상에 전하러 갈 자세로 신앙을 고백합시다! 부활은 2천 년 전에 한 번 있었던 일이 아니고 오늘날 우리에게도 늘 현재진행형으로 체험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