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노트/복음과사도행전

신약성경은 어떻게 형성되었나?

편집장 슈렉요한 2015. 3. 7. 22:53

제1장 신약성경의 형성과 그 배경사



구약성경과 비교를 하자면, 신약은 그 배경이 되는 시대가 아주 짧다. 오로지 나자렛 예수의 삶에서부터 시작하여 신약성경이 완성되기까지 전승의 여러 단계가 모두 이루어졌다. 신약 성경도 다양한 문학형식을 보이고 있는데 그 양식을 통해서 단계들을 비교적 정확히 알아 볼 수 있다. 



1. 신약성경은 어떻게 형성되었나?



"나도 전해 받았고 여러분에게 무엇보다 먼저 전해준 복음" (1코린 15,3)


히브리서의 서두에서 "하느님께서 예전에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여러번에 걸쳐 여러가지 방식으로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지만, 이 마지막 때에는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1,1-2)라고 말한다.



신약의 형성도 구약과 유사한 단계들이 있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계시와 신약성경의 형성이 오로지 한 순간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구약성경이 매우 긴 형성과정을 거쳤으며, 이스라엘이 역사 안에서 체험한 하느님의 모습이 오랜 기간을 거치면서 비로소 기록되고 성경의 각 부분들을 이루게 되었듯이, 신약성경의 경우 비교적 짧은 기간이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삶으로부터 신약성경이 완성되기까지는 구약에서와 유사한 단계들이 있었다.


계시 헌장의 표현들을 빌면, "모든 계시의 충만이신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행적과 말씀"으로 하느님을 드러내 보이시며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셨다. 그분은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마르 1,14-15)


그분은 이렇게 말씀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설교하시고 가르치셨을 뿐만 아니라, 치유와 용서의 행위를 통하여 당신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가 이미 와 있음을 알게 하셨다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루카 11,20). 그러나 당신 자신에 대한 전승을 기록하는 작업은 전혀 하지 않으셨고, 당신 제자들에게도 처음부터 당신의 말씀과 행적을 기록해 두라고 하지는 않으셨다. 예수 전승의 문서화는 그 다음 세대에서 이루어졌다.


말로만 설교한 건 예수 재림이 곧 올 것이라 믿었기때문


사도들의 설교도 처음에는 구두로만 이루어졌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곧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했기에 후대를 위해 기록을 남길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에수 전승은 "목격자로서 말씀의 종이 된 이들이" (루카 1,2) 전해주는 증언을 통하여 보존되었다.


문헌화가 필요하게 된 사정


문헌화가 필요하게 된 이유는, 첫째로는 그리스도교가 지역적으로 확장되었고, 둘째로는 전승이 전달되는

시간이 연장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해서 전승의 새로운 단계가 시작된다. 문헌화가 필요하게 된 첫 번째 이유, 곧 그리스도교의 확장에 대해 좀 더 생각해보자. 팔레스티나 밖에도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이 생겨나게 되면서 그 공동체들을 위한 글들이 필요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신약성경에서 가장 먼저 생겨난 부분이 서간들이라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가장 먼저 생겨난 건 <서간>이었다


바오로 사도의 경우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파하고 신자 공동체들을 형성시켰는데, 그러다보니 어떤 지역에서 떠나 있으면서 그곳 교회에 서신을 보내거나 질문에 응답해야 하는 경우들이 생기게 되었다. 신약성경에 들어있는 서간들을 보면 열두 사도가 예루살렘의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는데, 이는 아마도 서간이 무엇보다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교회들을 위한 연락 수단이었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계속해서 직접 구두로 설교를 하는 게 더 일반적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열 두제자 서간은 없었다. 그들은 팔레스티나에만 있었다


또한 열 두 제자들은 거의 팔레스티나에 머물렀고 다른 지역 교회들에서는 '목격자들'이 아닌 이들, 즉 직접적으로 예수님을 접하지 않은 이들도 제자들의 협력자로서 그리스도교를 전파하는 역할을 하게 됨에 따라 점차로 이들을 위해서도 예수님에 관한 전승을 기록해둘 필요가 생겨났다.


목격 증인들의 세대가 끝나가고 있었다


둘째 이유인 시간적 연장에 있어서는, 목격 증인들의 세대가 끝나가면서 그들이 구두로 전해주었던 것들을 문서로 남겨 충실하게 보존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60년대 이후 베드로를 비롯한 주님의 제자들이 순교하게 되고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던 이들, 첫 그리스도인들에게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인물들도 점차로 세상을 떠나게 되면서 그들이 기억하고 증언했던 내용들을 문서로 남겨두는 것이 필요해졌던 것이다.


신약도 구약처럼 실제 사건과 기록 사이에 거리가 있다


구약성경의 형성과정을 다룰 때, 역사적 사건과 그 역사가 기록되어 성경 본문을 형성하게 되는 것까지에는 거리가 있다는 점을 지적했었다. 그것은 신약의 경우에도 근본적으로는 마찬가지이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예수에 관한 기록들은 모두 부활 이후에 기록된 것이다. 예수께서 공생활 기간동안 제자들과 함께 계실 때의 말씀과 행적만을 보고 바로 그 자리에서 적은 것이 아니다. 그래서 신약성경에 들어있는 예수에 관한 모든 기록들은 부활의 체험을 근본으로 하고 있다.


부활 이전 제자들의 삶이 예수께서 누구이신지를 점차로 깨달아 가는 과정이었다고 한다면, 그분께서 누구이신지를 결정적으로 드러내 보여주는 부활 사건을 통하여 과거의 모든 기억들이 새롭게 이해되고 그 전에는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없었던 그 분의 말씀과 행적을 이 사건에 비추어 알아듣게 되는 것이다. 


1-1. 서간


신약성경에서 가장 먼저 형성된 '바오로 친서들'


신약성경의 서간들은 바오로 사도가 직접 쓴 친서, 친서는 아니지만 바오로 이름으로 된 서간들, 그리고 다른 이름의 서간들이 있다. 신약성경에서 가장 먼저 형성된 본문은 바오로 친서들이다. 50년대부터 직접 쓴 것이다. 이 서간들은 그가 복음을 전파하여 세운 교회들에 보낸 것들로서 공적인 성격을 띠며, 본래 신학 이론을 설명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각 교회들이 당면한 문제들에 대해 논하는 게 중심이었다. 그래서 각 공동체의 구체적 상황에 따라 서간 내용도 상당히 달라진다. 당연히 신학적 측면에서도 모든 주제들을 균형있게 다루는 게 아니라, 각 교회 상황과 연관된 요소들이 강조된다.


테살로니카 1서, 코린토 1~2서, 갈라티아서, 로마서, 필리피서, 필레몬서가 거의 확실한 바오로 친서들이고, 콜로새서와 에페소서의 친저성에 대해서는 학자 의견이 갈라져 있다.


아닌데, 이름을 달고 나오는 서간들


바오로 사도가 순교한 다음인 70~100년대에는 바오로가 직접 쓴 것은 아니지만, 그의 이름으로 된 서간들이 나온다. 이에 속하는 게 테살로니카 2서, (콜로새서, 에페소서), 그리고 개인을 수신인으로 하는 티모테오 1~2서와 티토서이다. 이 서간들은 바오로를 존중하고 그의 정신과 전통을 이어가려 했던 제자들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된다. 묵시문학 작품들이나 외경의 여러 책들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당시 문화적 배경에서는 어떤 사람이 직접 쓴 글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를 저자로 내세우는 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는 점을 기억한다면, 특히나 바오로 사도가 복음을 전했던 교회들을 위한 가르침들이 그를 저자로 일컫는 것은 바오로 사도의 권위를 해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가 교회들을 위하여 지니고 있던 역할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특정 공동체가 아닌, 일반 신자들을 위한 서간도 있었다


그 밖에 특정 공동체를 위한 게 아니고 후대 일반 신자들을 위해 작성된 서간들로서 베드로 1~2서, 야고보서, 유다서, 요한 1,2,3서가 있다. 이들은 모든 이들을 위한 것이라는 의미에서 '공통서간'이라고 일컬어지며, 친저성 문제에 있어서 개별 서간마다 차이들이 있기는 하지만 서간 제목에 언급된 저자가 반드시 실제 저자인 것은 아니다.


히브리서는 연설문에 가깝다


마지막으로 히브리서의 경우에는, 수신인도 발신인도 언급되어 있지 않으며, 형식적으로도 서간이라기 보다 연설문의 성격을 보여준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신약성경의 서간들은 예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다음 각 시대의 교회들을 위하여 작성되어 갔다. 그리스도인들이 처음부터 구약성경과 대등한 또 하나의 '성경'을 쓰려고 했던 것은 아니며, 신약성경은 교회의 필요에 응답하면서 점차로 형성되었다.




1-2. 공관복음서와 사도행전, 요한복음서



복음서의 형성과정은 3단계


서간들보다 형성과정이 더 많이 논의되는 것은 복음서들이다. 복음서라는 것은 그 문학 유형 자체가 신약성경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새로운 것인데, 복음서의 형성과정은 3단계로 요약된다. 첫째는 예수 말씀과 행적, 둘째는 그리스어로 '케리그마'라고 하는 제자들의 선포, 셋째는 복음서 저자들의 저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케리그마는 선포


이 가운데 먼저 '케리그마'를 살펴보면, 케리그마(Kerygma)는 그리스어로 '선포'를 뜻한다. 특히 사도들이 구두로 했던 설교로서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중심내용으로 하는 것이었다. 처음에 이 설교는 유다인들을 향한 것이었고, 예수님의 삶과 말씀에 대해 많은 설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 죽음과 부활로 이루어지는 구원을 선포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가 예언자들이 예고했던 바로 그 메시아임을 확증하고 회개를 호소하는 것이었다.


복음이 원래 집중했던 것


신약 성경에 들어있는 이러한 설교의 예로는 사도 4,8-12에 실린 베드로의 설교가 대표적이다. 1코린 15,3-7에서 바오로는 자신이 전해받은 "복음"(15,3)의 내용을 그대로 다시 전해주고 있는데 여기에서 복음의 내용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셨다는 것에서 시작한다. 루카 24,44-48에서도,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당신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증언하라고 명하신다. 처음에 복음의 핵심은 오직 여기에 집중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방인 선교는 어떻게 이루어졌나


이와 달리 이방인들이 그리스도 신앙을 받아들이는 경우, 예를 들어 사도 10장에 나오는 코르넬리우스와 같은 경우에는 세례를 받기 전에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 전반에 대해 배우는 것이 필요했다. 사도 10,37-43에서는 베드로가 코르넬리우스에게 한 설교가 기록되어 있는데, 세례자 요한의 세례에서 시작하여 갈릴래아와 유다 지방에서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 그분의 죽음, 부활, 부활 후의 발현을 모두 포괄하는 이 설교는 이미 복음서들의 기본 줄거리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이 때의 '복음'은 기록된 문헌이나 책이 아니라 말로 행하는 설교였다. 여기에서부터 복음서가 형성되어 간 과정은 루카 1,1-3에 잘 나타나 있다. 


문헌화 작업이 일찌감치 존재했었다


"우리 가운데에서 이루어진 일들에 관한 이야기를 엮는 작업에 많은 이가 손을 대었습니다. 처음부터 목격자로서 말씀의 종이 된 이들이 우리에게 전해 준 것을 그대로 엮은 것입니다. 존귀하신 테오필로스 님, 이 모든 일을 처음부터 자세히 살펴본 저도 귀하께 순서대로 적어 드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루카에 따르면, "목격자" 곧 예수님의 삶을 곁에서 보고 직접 그 말씀을 들었던 이들의 시대가 지난 다음, 복음서가 형성되기 이전 시대에도 이미 "이야기를 엮는 작업"에 손을 댄 이들이 있었다. 이 때 만들어진 작품들이 어떤 것인지는 구체적으로 말하기 어려우나, 구전으로 전해지던 이야기들을 단편적으로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이었으리라고 추측할 수 있다. (짧은 설교, 예수님의 행적이나 가르침에 관한 기록들) 우리는 지금의 복음서들 안에서도 복음서 저자가 예수님의 어록을 사용한 흔적을 알아볼 수 있다.


독자들의 문화적, 종교적 배경 등이 달라진 원인


예수 전승의 문서화가 최종적으로 완성된 것은 주로 이러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엮어진 복음서들을 통해서이다. 가장 늦게 작성된 요한 복음을 제외한 마르코, 마태오, 루카 복음서들을 비교해보면 이들 사이에 많은 공통점들과 차이점들이 나타난다. 공통점들이 있는 것은 복음서 저자들이 같은 자료를 사용하기도 했고, 또 복음서들끼리 서로 의존하기도 했기 때문이며, 차이점들이 있는 것은 각각의 복음서 저자들이 고유한 자료를 이용하기도 했고, 또 저자의 배경과 관심, 각 복음서가 대상으로 하는 독자들의 문화적, 종교적 배경 등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Q(Quelle, 원천, 사료)는 예수어록


가장 먼저 기원전 60년대 중반부터 70년 경에 마르코복음서가 작성되었고, 마태오 복음서와 루카 복음서는 대체로는 이 마르코 복음서를 따르면서, 독일어의 Quelle(원천, 사료)라는 단어를 줄여 약자로 Q라고 부르는 '예수 어록'을 참조하고 또한 마태오와 루카 각각의 고유 자료를 더하여 생겨났다. (70~80년대) 루카 복음서 저자의 경우에는,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다룬 복음서 외에 예수님의 승천 후에 있었던 교회 초기 역사를 담은 사도행전도 저술하였다. 


요한복음서의 경우


요한 복음서는 공관 복음서들과 별행되면서도 많은 차이점들을 보인다. 이 복음에 들어있는 신학적 성찰은 1세기 말에야 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 요한의 이름으로 되어 있는(*) 묵시록 역시 1세기 말의 것으로, 박해를 받고 있던 교회에게 상징과 표상들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역사의 주권을 쥐고 계심을 말하고 있다. 


(* 요한복음의 경우에도 실제 저자는 사도요한이 아니라고 생각되며, 요한묵시록의 경우, 실제 저자가 아닌 다른 인물로 저자를 내세우는 것은 묵시문학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기법이다.)




가톨릭교리신학원 통신신학교육부 제2단계 1학년(3학년) 봄학기

가톨릭신학연구실 편찬교재 [신약1(공관복음.사도행전)]

제1장 신약성경의 형성과 그 배경사 ① 신약경전의 형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