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노트/복음과사도행전

[마태 1-4장] 하늘나라의 시작, 이스라엘만을 위한 복음이 아니다

편집장 슈렉요한 2015. 3. 18. 23:00


제3장 마태오 복음서

4. [마태 1-4장] 하늘나라의 시작


"다윗의 자손이시며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마태 1,1)

마태오 복음의 저술 의도를 한마디로 말하면 예수님께서 구약에서 약속된 메시아이심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 메시아에 대한 수용과 거부가 복음서 전체의 주된 흐름으로 자리잡고 있다.



4-1. 예수 그리스도의 유년기(1-2장)


⑴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의 탄생(1,1-25)


마태 1-2장의 내용은 다른 복음들에 나오지 않는다. 또한 1-2장은 마태오 복음을 이해하는 데에도 중요하기 때문에 다른 부분보다 더욱 자세히 보아야 한다. 1장에 실린 족보는 이미 마태오가 예수님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준다.


다윗의 자손이며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


무엇보다도 "다윗의 자손이시며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1,1)라는 명칭은 이미 저자의 그리스도론을 담고 있다. 1차적으로 이 족보는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그 백성에 속하시고 다윗 왕조의 후손이시며 메시아 희망의 담지자이심을 처음부터 강조하고 있다.


루카의 족보와 비교하면 확연히 드러나는 마태오 족보의 특징


이러한 특징들은 마태오 복음의 족보를 루카 복음의 족보와 비교했을 때에 더욱 뚜렷이 드러난다. 루카 복음의 족보(루카 3,23-38)는 예수님에게서 시작하여 모든 인류의 조상인 아담에까지, 그리고 하느님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감으로써 보편적인 차원을 마태오보다 더 강조하고 있다. 또 다윗에서 스알티엘까지, 곧 왕정시대 전체에 대해 마태오의 족보와 루카의 족보는 전혀 일치하지 않는데 여기에서 마태오의 족보는 출생에 따른 계승보다 왕조의 계승을 더 우선하고 있다.


왜 밧 세바라고 하지 않고, '우리야의 아내'라고 했을까?


그러나 이 족보에 언급된 여인들은 다른 측면을 보여준다. 예수님의 족보에는 마리아 외에 네 명의 여인들이 등장하는 데, 그 가운데 타마르와 라합은 가나안 출신이었고 룻은 모압 여자였으며, "우리야의 아내"라고 일컬어진 밧 세바는 히타이트 사람의 아내였다. 족보에서 "밧 세바"라고 하지 않고, "우리야의 아내"라고 한 것은 독자에게 이를 상기시키기 위한 것이었을까? 하여튼, 복음의 첫번째 장인 예수님의 족보에 이방인 여인들이 들어가 있다는 것은 이미 이 복음이 이방인들을 향해 갈 것이고 그들이 복음을 받아들여 하늘나라를 차지하게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스라엘만을 위한 복음이 아니다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이시며 아브라함의 자손"이시지만(1,1) 그 복음은 이스라엘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또한 족보에 나오는 여인들은 비정상적인 경로로 아들을 낳아 이 족보를 이어갔다. 이들은 놀라운 방법으로 메시아의 가계를 이어나가는 하느님의 도구들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아브라함의 후손들과 이방여인들이 신비롭게 결합되어 있는 이 족보는 매우 간략하고 도식적이다. 그러나 마지막에 그 도식이 깨진다.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에 담긴 숨은 뜻 


"...는 ...를 낳고"라는 틀을 따른다면 "야곱은 요셉을 낳고 요셉은 예수를 낳았다."가 나와야 할 자리에,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1,16)라는 구절이 끼어들기 때문이다. 고대인들에게 있어서 법적인 아버지는 혈연상의 아버지와 동등한 위치를 갖기에, 요셉이 법적으로만 예수님의 아버지였다 하더라도 족보에서는 "요셉은 예수를 낳았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래서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1,1)이 되시는 것이다. 그러나 1,16과 같은 표현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요셉의 인간적인 개입이 없이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셨음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족보는 예수님이 약속된 메시아임을 알리는 것 


그러므로 마태오 1장에서의 족보가 말하는 바는 첫째로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된 메시아로서 다윗 후손에게서 태어나셨고, 둘째로 그 예수님은 이방인들에게도 하늘나라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시며, 셋째로 예수님은 순전히 인간적인 출생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놀라우신 계획과 섭리로 태어나셨다.


'구약성경의 성취'라는 주제 


예수님께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태어나셨는지는 1,18-25에 실려있다. 여기에서 첫번째로 눈에 띄는 것은 '구약성경의 성취'라는 주제이다. 신약성경의 많은 곳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약이 성취되었음을 알리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마태오는 예수님의 삶에서 많은 일들이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따라 이루어진 것임을 열 번에 걸쳐서 강조한다. (1,22; 2,15.17.23; 4,14; 8,17; 12,17; 13,35; 21,4; 27,9)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이시며 아브라함의 자손"이시라고 말했던 마태 1,1과도 연결되어, 예수님께서 구약에 예언되고 이스라엘에게 약속된 메시아이심을 드러낸다. 아브라함과 다윗은 그들의 후손에게서 메시아가 태어나리라는 약속을 받았다(창세 12,2 이하; 2사무 7,12). 예수님은 다윗의 고향인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시고, 마태 2,6에서는 그 베들레헴을 향해 "너에게서 통치자가 나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보살피리라."라고 했던 미카의 예언을 인용한다.



⑵ 동방박사들의 방문, 예수님의 유년기(2,1-23)


이스라엘은 약속된 메시아를 받아들였나?


그런데 마태오복음서에서 예수님을 통하여 구약의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강조하는 것의 이면에는 이스라엘이 그 약속된 메시아를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사실이 자리하고 있다. 즉 마태오 복음은 신약성경에서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거부했다는 것과 이에 따른 결과에 대해 가장 비판적인 말을 하고 책들 중 하나이다. 이러한 사실은 마태오복음 2장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예루살렘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거부했고, 이방인들인 동방박사들이 그분을 경배했던 것이다.


예수가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라면


앞서 1장에서는 예수가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 이스라엘에게 약속된 임마누엘이심을 언급했다. 천사는 요셉에게 예수님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라고 말했다(마태 1,21). 그 분은 이스라엘에게 오신 메시아였다. 이런 의미에서 마태 10,6에서 예수님은 열두 제자에게 "이스라엘 집안의 길잃은 양들에게 가라."고 말씀하시고, 15,24에서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라고 밝히신다. 그렇지만 동방박사들이 "유다인의 임금"을 찾는 것을 보고는 자신의 왕위가 위험하다고 느낀 헤로데뿐만 아니라 '온 예루살렘이" 동요했고(2,3) "백성의 수석사제들과 율법 학자들"도 술렁거렸다(2,4). 그들은 메시아가 태어날 곳이 베들레헴임을 알았지만(미카 5,1-2 참조) 동방박사들과 함께 예수님을 경배하러 가지는 않는다. 헤로데는 그분을 경배하겠다고 거짓말을 하면서 예수님을 죽여 없애려고까지 한다(마태 2,13-18).


동방박사들과 묘한 대조를 이루는 이스라엘


'동방박사들'은 이러한 이스라엘과 대조를 이룬다. 루카 복음에서 예수님 탄생의 소식이 먼저 목자들에게 알려진다는 것이 가난한 이들에 대한 루카 복음의 관심을 보여준다면, 마태오 복음에서 가장 먼저 예수님을 경배한 것이 동방박사들이라는 사실은 이 복음이 이방인들을 향해, 모든 사람들을 향해 열려있음을 다시 한번 드러낸다. 


동방박사 3명. 젊은이, 중년, 노년, 혹은 황인종, 백인종, 흑인종


세 명의 동방박사에 대한 여러가지 전승들, 예컨데 그들이 한 사람은 젊은이, 한 사람은 중년, 한 사람은 노인이었다는 전승이나 아니면 한 사람은 백인종, 한 사람은 황인종, 한 사람은 흑인종이었다는 전승은,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마태오 복음 2장의 의미를 잘 표현해준다. 동방박사들의 경배는 예수님의 탄생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이 세상 모든 이들의 구원을 위한 것임을 말해주는 것이기때문이다. 2장의 마지막에서 예수님께거 갈릴래아 지방의 나자렛에 정착하게 되시는 것도 같은 의미를 갖는다. 그분은 유다인들의 중심지인 예루살렘이 아닌 "이민족들의 갈릴래아"(마태 4,15)에서 자라실 것이다.


이같은 줄거리를 담은 마태오 1-2장의 역할은, 예수님의 유년기에 일어난 일들을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옛 전통들을 바탕으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하신 분께서 이 땅위에서 겪으신 그 운명의 의미를 표현해 내는데에 잇다."(<주석성경>).  예수님은 당신 백성이 약속된 메시아를 알아뵙지 못하고 배척했기에 죽임을 당하셨고, 복음은 이제 이방인들을 향해 간다. 당신 백성에게 "임마누엘,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이름으로 오셨던 그분(1,23) 복음의 마지막에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고 말씀하신다. (28,19-20)


메시아이신 예수님의 삶 안에서, 그리고 교회의 삶 안에서 겪은 모든 것이, 마태오 복음 전체에 담긴 모든 것이 이렇게 하여 복음의 첫 두장에 농축되어 있다. 



4-2. 공생활의 시작(3-4장)


세례자 요한과의 대화가 기록된 마태오


마태오복음서의 3장과 4장 줄거리는 마르코복음 1장을 따른다. 여기서는 마태오 복음의 특징적인 부분 한 가지만을 짚어두려고 한다. 마르코복음의 첫장면에서부터 세례자 요한이 등장하고, 마태오복음과 루카 복음에서도 예수님의 세례로 공생활이 시작된다. 그런데 다른 복음들이 세례에 대해서 짧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과 비교한다면 마태오 복음서에서는 세례 전에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의 대화가 들어있는 것이 특징이다. "제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선생님께서 저에게 오시다니요?" (3,14). 예수님의 세례는 실제로 여러가지 의문을 불러 일으킨다. 역사적으로 말해서 예수님 시대에 세례자 요한을 따르는 이들도 많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는 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에게 의아한 일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공관복음서들에서 모두 어떤 식으로든 예수님의 세례를 전한다는 것은 실제로 그분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러면 이 세례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왜 세례자 요한에게 갔을까?


죄가 없으신 분이 왜 세례를 받으셔야 했으며, 왜 당신보다 더 작은 인물인 요한에게 가셔야 했을까? 예수님께서는 한마디로 대답하신다. "우리는 이렇게 해서 마땅히 모든 의로움을 이루어야 합니다."(3,15). 이 짧은 말씀은 여러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여기에서 '의로움'이라는 것이 인간을 구원코자 하시는 하느님의 계획, 그 분의 듯을 가리키고 따라서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심으로써 "앞으로 복음서 전체를 통하여 그 뜻이 드러나게 될 하느님의 계획에 순종" (<주석성경>)하신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죄인들 가운데에서, 그들과 함께 계시다는 것, 하느님은 이로써 그들을 구원하신다.


요셉의 꿈에 나타나 예수님의 탄생을 알려 준 천사는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라고 말하고(1,21), 마태오는 이로써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는 예언이 이루어졌다고 설명했었다.(1,23).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는 것, 그것이 구원이다. 죄로 인간과 하느님의 관계가 가로막혀 있을 때, 예수님은 인간을 죄로부터 구원하심으로써 "임마누엘", 곧 우리와 함께 계신 하느님이 되신다. 




가톨릭교리신학원 통신신학교육부 제2단계 1학년(3학년) 봄학기

가톨릭신학연구실 편찬교재 [신약1(공관복음.사도행전)]

제3장 마태오 복음서 ③ [마태 1-4장] 하늘나라의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