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봉의 새 책 '행동하는 사랑', 가톨릭 평신도의 필독서
"사목은 사라지고 관리만 남은 교회는 가톨릭 교회의 재앙과 같습니다."
한상봉의 책 '행동하는 사랑'
가톨릭계의 유력한 인터넷 언론매체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의 주필겸 상임이사인 한상봉이 최근 한권의 에세이집을 펴냈다. 제목은 [행동하는 사랑]. 책의 부제는 작가의 간절한 염원이 담겨있다. '가난한 이들을 선택하는 가난한 교회가 되기 위하여'
우리 시대의 가톨릭교회는 부유한 교회, 세속화된 교회, 중산층 교회로 탈바꿈하고 있다. 200년전 가난하고 힘없는 백성들의 피와 땀으로 세운 교회의 모습이 이제는 완전히 사라져버린 것은 아닐까를 걱정하는 것이 바로 이 책에 담긴 이야기들이다.
사실 상업화된 교회는 한국사회만의 모습은 아니다. 그것은 전 지구적으로 보여지는 이 시대의 슬픈 자화상이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보여지는 가톨릭 교회의 모습은 더욱 슬프다는 것이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이다. 프란치스코 교종이 지난해 여름 우리나라를 다녀갔지만, 그것이 우리 교회를 바꾸기에는 역부족은 아닐까 걱정하는 모습도 책에는 담겨 있다.
"사목은 사라지고 관리만 남은 교회는 가톨릭 교회의 재앙과 같습니다."
책의 서문에 담긴 한상봉 주필의 말이다. 그리고 이 책을 관통하는 한 사람이 있는데 그가 곧 도로시 데이이다. 20세기 초반부터, 피터 모린과 함께 가톨릭노동운동을 시작한 도로시 데이(1897~1980)는 특히 평신도 신앙인에게 현대적 영감을 불러일으킨 인물이다. 그리고 그들의 생각을 펴보인 곳이 바로 <가톨릭노동>(Catholic Worker)이란 신문이다.
(* 한상봉의 책이나 조세종이 번역한 '피터 모린'에 대한 책에서는 'Catholic Worker'란 표현을 '가톨릭일꾼'으로 번역했지만, 필자는 '가톨릭노동'이란 표현이 더 어울린다는 주관적 입장이 있어서 '가톨릭 노동'이라고 달리 표현한다.)
1952년 4월 이 신문에 "도움이 필요한 이들의 비참함과 가난한 이들의 신음은 그리스도의 고통을 만드는 세계 고통의 한 부분"이라고 도로시 데이는 쓰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들이라면 그 분이 왜 이 땅에 인간으로 오셨는지 묻고 싶어한다. 왜 예수님은 인간으로 이 세상에 오셨을까? 그 질문에 대한 정답을 아는 사람은 매우 적다. 그 정답을 실천하는 사람은 더 드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에게 주고 간 약속과 요청이 무엇인지를 깨달아야 한다. 이 책의 제목에서 그 정답을 엿볼 수 있다. 바로 '행동하는 사랑'이다.
신앙의 영적 성숙의 길 위에 펼쳐진 예수님의 말씀을 소중하게 주워담기 위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으로 추천할만하다. 예수님의 말씀을 내가 어떻게 살아나가야 하는지 평생의 고민이 이 책에 녹아있다. 작가 한상봉은 한 때 사제의 길을 고민했지만, 서강대 역사학과를 거쳐 같은대학의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그리고 가톨릭 언론인으로 우리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오피니언 리더로 길을 가고 있다. 작은 차를 타고 소탈한 차림으로 가난한 신문사를 운영중에 있기때문에 그의 일상에는 늘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다. 2014년 12월 야심차게 창간한 가톨릭 월간잡지 <뜻밖의 소식>은 구독자가 늘지 않으면서 올 해 11월호 발행을 끝으로 휴간에 들어갔다. 몇년 전에 미국의 3대 전국지 중 하나였던 CSM(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지도 폐간을 했을만큼 종이로 된 글을 안 읽는 세상이 되었지만, 그래도 가톨릭 신자수가 무려 550만 정도 되는 한국사회에서 2,500원에 불과한 월간지 한 개의 발행을 유지하는 데 이렇게 어려운 줄을 가톨릭 사회와 언론에 정통한 한상봉마저도 몰랐던 것일까?
2013년도 한국천주교회 통계(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발표)에 따르면 가톨릭 신자수는 544만명이고, 성당의 숫자는 1668개이다. 그리고 신부의 숫자는 4,901명이라고 했다. <뜻밖의 소식>은 4,000부를 밑도는 구독자를 갖고 있었는데, 성직자가 아닌 일반 평신도가 중심이 되어 발행하는 월간지 <뜻밖의 소식>이 재정난을 못이기고 휴간에 들어간 것은 가톨릭 교계의 제도적 장벽에 갇힌 평신도 언론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신도의 고민을 조목조목 논리정연하게 정리하는 손꼽히는 작가 한상봉의 책 <행동하는 사랑>은 베스트셀러가 되길 기대하며 이 글을 남긴다.
행동하는 사랑, 한상봉 (지은이) | 리북 | 2015-09-25 | 정가 14,000원
인터넷서점 알라딘 책소개 발췌
교회개혁과 신앙의 새로운 자각을 호소하는 글들의 모음집. 평신도의 관점에서 교회쇄신을 줄곧 주장해온 가톨릭 언론인인 저자가 교황 방문 1년 후 여전히 남겨진 가톨릭교회의 문제점과 그 대안을 이야기한다. 영적 세속화를 돌파하기 위해 사회교리에 대한 진정한 배움과 실천, 삶이 들어있는 신앙으로의 회심에 대한 주문, 사제들의 갱신에 대한 부탁이 그것이다. 행동하는 교회, 온유한 사랑의 혁명을 위한 한 평신도의 간절한 기도라 할 수 있다.
저자는 교회가 왜 바뀌어야 하는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에 대해 주저 없이 말하면서도 배려와 연민을 아낌없이 보여준다. 교회개혁, 행동하는 신앙, 가난한 교회, 꼭 배워야 할 사회교리 등 다양한 키워드들이 강조되고 있지만, 결국 교회와 신앙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으로 수렴된다. 우리에게 교회는 무엇이고, 당신에게 신앙은 무엇인가?
책을 펴내며
1. 햇발처럼, 교회개혁
가톨릭은 교황의 종교인가
출퇴근 하는 교황, 교구청 떠나는 주교
아직 ‘쏘울’이 없으신가요?
사업가로 내몰리는 사제들
가난한 이를 위한 가난한 교회
봉사하는 교회, 봉사하는 주교
공동체 없이 주교 없다
어머니이신 교회가 나를 박해한다
한국천주교유신론을 기다린다
접동 접동 아우래비 접동
2. 사제들의 거리
주님에 대한 사랑은 벗에 대한 사랑이다
사제에게 기도하시는 하느님
가난한 사제들을 변호함
삶이 없는 신앙은 얼마나 무모한가
해방의 요람, 정의구현사제단
권리와 범죄 사이, 여성사제
3. 실천하는 신앙
복권이 필요한 200주년 사목회의 의안
강우일 주교에게 배우자
행동하는 신앙, 해방하는 신학
선의를 위한 전쟁은 없다
너희가 돈을 믿느냐
성모 마리아와 더불어 어떻게 기도할까
그때 하느님은 어디에 계셨을까
대구대교구, 독재정권 유착의 민낯
4. 슬픔은 영원한 사랑으로
청빈한 밥그릇의 고요함
풍찬노숙 예수
보리당 보리당 보리보리 당당
이렇게 스스로 하늘이 되었다
높고 외롭고 먼 당신
5. 도로시 데이에게 배우자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를 만들기 위한 교회개혁과 신앙의 새로운 자각을 호소하는 글들을 모았다. 평신도의 관점에서 교회쇄신을 줄곧 주장해온 가톨릭 언론인인 저자가 교황 방문 1년 후 여전히 남겨진 가톨릭교회의 문제점과 그 대안을 이야기한다. 영적 세속화를 돌파하기 위해 사회교리에 대한 진정한 배움과 실천, 삶이 들어있는 신앙으로의 회심에 대한 주문, 사제들의 갱신에 대한 부탁이 그것이다. 행동하는 교회, 온유한 사랑의 혁명을 위한 한 평신도의 간절한 기도라 할 수 있다.
[출판사 서평]
사제와 교회는 더 가난해지자
신앙인들은 사회교리를 더 배우자
교황이 한국을 방문한 지 1년이 지났다. 교황이 준 공감과 위안은 이제 옅은 여진으로 남았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교회의 관심”에 대한 교황의 간절한 생각을 알긴 알겠는데, 딱 거기까지다. 교황의 권위로부터 교회개혁을 논증할 수 있는 큰 힘을 갖긴 했는데, 진전은 없다. 교황의 어록을 인용하며 말은 풍성하지만 기껏 구두선이다. 이도 머잖아 시들 것이다. 한국 가톨릭교회 교회개혁 현주소에 대한 소묘다.
태풍이 지나간 지금 여기, 이제 한국의 교회개혁을 위해 무엇이 필요하고 어떤 일을 해야 할까? 교회쇄신을 줄곧 주창하며 참다운 종교인의 삶을 논해 왔던 가톨릭 언론인 한상봉의 새로운 책이 그 이야기를 자임하고 나섰다. 인터넷신문 ‘가톨릭뉴스 지금 여기’ 주필로, 사회교리 잡지 월간 ‘뜻밖의 소식’ 편집장으로 일하며 썼던 글들을 가려 뽑아 엮은 책 <행동하는 사랑>이다. 핵심 메시지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가 진정한 교회개혁이며, 이를 위해서 우선적으로 ‘사회교리를 가르치고 배우자’로 압축된다. “삶이 들어 있는” 신앙으로의 회심을 향한 호소다.
“교황과 사제들이 교회를 바꾸는 시대는 지나갔다”
교회개혁은 ‘위로부터의 개혁’이 아니라 “주교와 사제들의 지지와 영적 동의를 얻은 평신도 리더십”이 변화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평신도들이 신앙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서 출발하여, 이 신앙 감각을 자극하고 정립하는 지속적인 노력으로 교회는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신앙인들이 신앙과 복음에 대한 새로운 감각을 되찾는 정직한 길은 ‘세상의 일들과 문제’를 바라보는 기준인 가톨릭 사회교리를 제대로 이해하는데 있다는 것이다. 가톨릭일꾼운동의 선구자 도로시 데이(Dorothy Day)의 환대와 평화주의 신앙적 실천을 소상히 소개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주교와 사제들에겐 스스로 먼저 변화라고 요구한다. 주교들에게 보내는 공개편지는 도전적이다. 구중궁궐 주교관에서 나와 “출퇴근하는 주교”를 권하며 특권 대신 낮은 자리로 가서, “주교님들이 먼저 청빈하고 소박한 삶으로 모범”을 보이라고 주문한다. 교회는 탐욕과 성장과 개발주의로 밀어 붙이는 “사업”이 아니라 “사랑”에 몰두해야 하고,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를 만드는데 더 봉사해 달라는 호소는 일격에 가깝다. 먼저 사제들의 갱신을 간곡히 부탁하면서, 뜻있는 사제들과 수도자, 신자들의 ‘연대’만이 교회를 제대로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한다.
“사회교리를 가르치고 배우자”
한국 교회가 영적 세속화로 퇴락하고 성직자들이 권위주의에 빠지는 것은 “복음적 열정의 상실” 때문이라고 단언한다. 사제들이 결국 “대장놀이”나 하고, “카메라, 오디오 앰프와 자동차, 골프 등 취미 생활에 몰두”하는 것은 복음적 열정이 식었기 때문이다. 대안은 무엇인가? 다시 사제들이 “신자 다수의 삶”에 관심을 갖고 “사회복음화”에 나서는 것이다. “이 세상에 포함된 불의와 고통, 슬픔과 연민, 다툼과 평화를 다 함께 끌어”안고, 더 많이 아파하고 더 많이 울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의 돌파구로 “가톨릭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인 사회교리를 가르치는 일이 무엇보다 급선무라고 지적한다. 교회가 “가난하고 슬픈 이들에게 위로가 되고, 희망을 나눌 수” 있기 위해서는 교회 지도자들이 사회적 사안에 대한 복음적 판단의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설령,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는 교회가 싫은 사람이 있다면, “그게 싫어서 교회를 떠나는 사람이 생긴다면, 그들을 기쁘게 전송해 주어야 한다. 다소 교회 수입이 적어지더라도 망설이지 말고 가난한 이들을 위한 복음을 흉음으로 여기는 자들을 교회에서 떠나보내라.”고 권한다. “전례와 신심활동만 강조되고, 사회적 신앙실천은 사라”진 양적으로만 팽창한 한국교회를 다시 깨우는데 사회교리를 중요한 무기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교회가 <간추린 사회교리>에서 언급한 내용만 귀담아 들어도 한국 사회에서 예언직을 수행하는데 모자람이 없다.”는 것이다.
“마음의 무장해제가 일어나야 한다”
이 책은 교회가 왜 바뀌어야 하는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에 대해 주저 없이 말하면서도 배려와 연민을 아낌없이 보여준다. 저자의 복음적 진보의 깊이가 ‘나 홀로 투쟁’과 단체 중심의 운동의 한계를 이미 통과한 탓이다. “복음적 견지에서 광범한 신자대중과 만날 수 있는 운동”을 고민해온 저자의 글들은 당연하게도 지탄과 경멸을 넘어 설득과 청유의 따뜻함을 품었다. 아울러 정서적 공감의 힘으로 영성의 기쁨을 되살리는 여러 편의 글들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키르케고르, 이브 콩가르 추기경, 피터 모린, 도로시 데이, 체 게바라, 강우일 주교가 묵상과 성찰의 계기가 되어 신앙실천의 모범으로 수시로 이야기를 펼친다. 김소월, 고정희, 김수영, 조희선의 시들도 신앙을 다짐하는 거울로 빛을 발한다.
<행동하는 사랑>은 가난한 이들을 위해 행동하는 교회, 온유한 사랑의 혁명을 향한 저자의 담담한 기도 제목이라 할 수 있다. 교회개혁, 행동하는 신앙, 가난한 교회, 꼭 배워야 할 사회교리 등 다양한 키워드들이 책에서 강조되고 있지만, 결국 교회와 신앙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으로 수렴된다. 우리에게 교회는 무엇이고, 당신에게 신앙은 무엇인가? 특별히 가난한 우리에게.
저자 한상봉
서강대 사학과와 신학대학원 신학과를 졸업했다. 천주교사회문제연구소연구원, 가톨릭노동사목전국협의회 간사,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사무국장, 격월간 잡지 <공동선> 편집장을 지냈으며, 전북 무주에서 농사를 짓다가 예술 심리치료사로 일을 했다. 현재 우리신학 연구소 연구위원, 인터넷신문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주필 겸 상임이사, 월간지 <뜻밖의 소식> 편집장을 맡고 있다.
그동안 쓴 책으로 『지상에 몸 푼 말씀』, 『연민』, 『내 돌아갈 그립고 아름다운 별』, 『내가 너희에게 그랬듯이』, 『가족을 위한 축복기도』, 『생활 속에서 드리는 나의 기도』, 『그대 아직 갈망하는가』, 『너에게 가고 싶다』, 『행동하는 교황 파파 프란치스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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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과 사제들이 세상과 교회를 바꾸는 시대는 지나갔다. ‘위로부터의 개혁’은 실패할 공산이 너무도 크다. 대다수 평신도들의 신앙 감각에 대한 이해가 없이, 그 신앙 감각을 자극하지 않고서 교회는 바뀌지 않는다. 이것은 아주 어려운 작업이고, 깊이 숙고하고 본당생활의 바닥에서 올라오는 변화가 동반되어야 한다. 우리 시대의 절박한 요청에 응답하는 것은 마땅히 필요하다. 그러나 그만큼 중요한 것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 복음적 열정이 식은 하느님 백성들을 다시 일깨워 소집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소집의 주체는 주교와 사제들의 지지와 영적 동의를 얻은 평신도 리더십이다. 그 리더십에 대한 관심이 없는 종교운동은 희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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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을 선포하지 않는 교회라면, 아무리 교우들이 늘어나고 재산이 많아져도 다 소용없는 일이라는 게 프란치스코 교종의 생각이다. 교회의 존재 이유는 ‘교회의 성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십자가 첨탑이 늘어나는 만큼 세상이 아름다워지고, 그만큼 세상의 슬픔과 고통은 줄어들어야 한다. 예수, 그분은 우리 눈에서 눈물을 씻어 주시기 위해 사람이 되신 하느님이시다. 그분을 우리가 주님으로 고백하는 한, 우리 교회도 가난하고 슬픈 이들에게 위로가 되고, 희망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싫어서 교회를 떠나는 사람이 생긴다면 그들을 ‘기쁘게’ 전송해 주어야 한다. 다소 교회 수입이 적어지더라도 망설이지 말고 ‘가난한 이들을 위한’ 복음福音을 흉음凶音으로 여기는 자들을 교회에서 떠나보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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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불법 대선 개입 사건과 세월호 참사에 대한 교도권적 판단을 내놓더라도 신자들이 선뜻 동의하지 않는 이유는 사회교리에 대한 몰이해 때문이다. ‘왜 교회가 정치, 사회문제에 간섭하느냐’는 반론이 거세게 교도권을 무력화시키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슬픈 교회의 현실이다. 그동안 교회 지도자들은 사회적 사안에 대한 복음적 판단의 기준을 제시하지 않고, 그저 신자들이 ‘상식과 이해관계에 따라서’ 알아서 판단하고 행동하도록 방치해 온 게 사실이다. 이러한 직무유기가 지금의 교회 분열을 만들었으며, 신자들은 길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교회는 비록 양적으로 팽창했지만 ‘실천하지 않는 신앙’ 때문에 ‘애매한’ 자기들만의 친목단체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