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노원구에 소재한 서울여자대학교 총학생회는 지난 5월 20일(수)부터 3일간 열리는 학생 축체(서랑제: 서울여대 사랑 대동제)를 열기에 앞서, 학교 미관을 해치고 축제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학내 청소노동자 노동조합이 내건 현수막과 천 조각들을 밤새 철거했다가 교내외에서 뭇매를 맞고 있습니다.
그런데 축제를 앞둔 대학 총학생회의 철거행위에 대해서 <청소노조>는 성명을 내고 그동안 서울여대 학생들의 지지와 응원이 계속되어 왔기 때문에 당연히 불편을 겪어왔을 학생들을 고맙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히면서, 학생회의 행동은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배우는 학생들이기에 실수조차 배움의 기회로 삼으면 될 것이라며 오히려 서울여대 학생공동체를 배려하는 성명을 내기도 했습니다.
그 와중에 서울여대 졸업생들은 이같은 '후배'들의 행동에 대해 적극 사과하라고 촉구하고 나섰습니다. 졸업생 143명은 5월 21일 <서울여대 바롬교육, 배운대로 삽시다>라는 성명서를 낸 것입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성명] 서울여대 바롬교육, 배운대로 삽시다.
서울여대 졸업생 143인 성명서
1. 어제(5/20) 서울여대 총학생회는 보다 더 나은 축제환경 조성을 위해 청소노동자들이 설치한 현수막을 밤사이 철거했다. 이에 서울여대 졸업생은 총학생회의 무책임하고 경솔한 처사를 강력하게 비판하며 나아가 이 문제의 근본적 책임이 있는 전혜정 총장과 학교 당국이 청소노동자 문제에 적극 나서기를 촉구하는 바이다.
2. 이 사건은 자신들이 겪는 불편함을 내세우며 청소노동자들의 피 토하는 심정을 단순히 천조각으로 여긴 총학생회의 무심하고 안일한 태도가 일차적 원인이며 청소노동자들의 파업을 단순히 '몇 백 원'이라는 돈의 가치로만 재단하고 계약조건을 내새워 이들의 소리를 허공에 외치는 메아리로 만드는 전혜정 총장과 학교 당국에게 근본적 원인이 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그 무엇보다 사람 되는 교육을 중시하며 지향한다는 학교가 구조적인 문제의 책임을 힘없는 개인에게 전가하는 모습은 실망을 넘어 안타깝고 졸업생으로 가졌던 긍지와 자부심에 적지 않은 상처를 입은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특정한 누구만'의 잘못이 아닌 원계약자인 학교는 엄밀히 책임 있는 주체이기 때문에 청소노동자들의 근로개선에 대해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
3. 이번 일은 청소노동자들의 고통을 타인의 문제로 터부시한 총학생회와 청소노동자들에게만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전혜정 총장 및 학교 당국의 잘못이 크다. 이에 우리 졸업생은 총학생회의 김은 성찰과 청소노동자들을 향한 진심어린 사과를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학교는 청소노동자의 처우 개선에 적극적으로 임하여 책임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줄 것을 촉구한다. 끝.
하나. 서울여대는 청소노동자를 학교 구성원으로 인정하십시오.
둘. 전혜정 총장은 정상출근으로 복귀하여 협상에 적극적으로 임해주십시오.
셋. 서울여대 총학생회는 공식 사과와 더불어 대표기구로서 책임있는 역할에 나서주십시오.
바롬 교육대로 '우리'는 '나'보다 강합니다.
서울여대 졸업생 143명 일동
95학번 OOO .... 96학번 OOO .... 97학번 OOO .... 98학번 OOO 00학번 OOO
...... ...... ......
09학번 OOO ... 10학번 OOO ... 11학번 OOO ... 대학원 졸업생 OOO ...
사실 1960년에 설립한 서울여대에서 그동안 배출한 수많은 졸업생 중, 고작 143인이 발표한 성명서가 얼마나 큰 영향력을 행사했을까 싶겠지만, 그것은 한번의 반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서울여대 학생신문사인 <서울여대학보>가 대학 당국과 총학생회를 비판하는 이 성명서를 학보 1면에 게재하려다 벽에 부딪혔고, 학생기자들은 1면을 백지 상태가 발행해버린 게 큰 화제가 된 것입니다. 오히려 학보 1면에 실렸다면 이만큼의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서울여대 학보 제606호(2015년 5월 27일(수)자, 봄학기 종강호) 1면은 텅 비었습니다. 그리고 2면에는 관련기사가 게재되어있다. 아래 이미지와 같다.
백지상태로 발간된 서울여대 학보 606호 1면 이미지
서울여대학보사 기자들의 용기어린 결단이 불의한 세상의 한줌의 소금이 되어 세상의 관심을 끌어당기게 만들었습니다. 이에 앞서서 주간교수는 졸업생 143명이 동문 전체의 대표성이 없다는 이유로 동문의 여론이 아니며, 학보는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이유로 학보게재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해서 서울여대 학보사는 원래 26일자 발행이었지만 주간교수와 학보사 기자간의 원만한 타협이 이뤄지지 않아 27일자로 1면 백지발행을 했다고 하면서 1면 백지 발행에 대한 입장문도 내놓았습니다.
1면 백지 발행에 대한 입장문
606호 학보 1면을 백지로 발행하게 되었습니다. 애초 26일(화) 발행예정이었던 학보 1면에서는 <서울여대 졸업생 143인의 성명서> 전문을 실을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주간교수는 22일(금) 학보 인쇄를 앞두고 성명서를 실을 경우 발행을 허가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놨습니다. 졸업생 143명이 졸업생 전체를 대표하지 못하기 때문에 여론이라고 보기 어렵고 학보사는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이유였습니다.
저희는 이에 수긍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이는 명백한 편집권 침해입니다.
적극적으로 해결에 나서야 하는 학교는 사태를 방관해왔고 총학생회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에 서울여대 학보사는 중립을 떠나 학내 대표 언론기관으로서 자성의 목소리를 낼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보도와 사설을 통해 이 문제 해결을 촉구했으나 논지를 보다 강화하기 위해 성명서를 게재하고자 했습니다. 또한 옳은 말을 하는 데 숫자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졸업생 143인이 졸업생을 대표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성명서 내용이 옳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싣고자 한 것입니다.
무엇보다 편집권은 전적으로 편집국에 있는 것으로 그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권리입니다. 언론의 자유가 온전히 보장될 때야 비로소 올바른 비판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간교수는 이러한 권리를 침해해 학보의 역할을 축소시켰습니다.
따라서 서울여대학보사는 이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편집권 보장을 요구하는 바입니다.
덧붙여 끝까지 1면을 지키지 못한 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2015.5. 27
서울여대학보사 기자 일동
서울여대 학보사의 행동은 민주사회의 언론이 어떤 관점을 지녀야 하는지를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서울여대 학보사 기자분들의 대선배가 될 법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큰 언론인 리영희(1929~2010)는 "진실에 대한 충성심, 이를 표현하기 위한 용기가 바로 기자정신이다."라고 말씀하신 바가 있습니다. 그래서 글을 쓴다는 것은 '우상을 파괴하는 행위'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언제 어디서나 고통을 무릎써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고통과 괴로움이 없다면 인간은 행복해질 수 없고, 사회는 진보를 이룰 수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가치중립이 사실일 수는 있어도 진실은 아닙니다. 진실은 인간의 편이고, 인간이란 동등한 조건을 가진 존엄한 상태를 말합니다.
서울여대 청소노동자분들이 대학축제가 끝나고 난 뒤에 생겼을 엄청난 분량의 쓰레기들을 처리하는 '기능'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축제에도 함께 참여하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여겨졌다면 총학생회 임원들도 그 현수막을 흉하게만 보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한편 백지1면 발행 학보의 2면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습니다.
또한 6면에 보도된 사설에서는 총학생회와 중앙운영위원회의 현수막 철거 사건에 대한 철저한 반성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서울여대의 기자정신이 매우 대단하다고 여겨지는 대목입니다. 백지로 실린 1면이 오히려 이러한 보도와 사설에 대한 장식이 된 것 같습니다. 서울여대 학보사 기자들의 고난을 감수한 이번 일을 통해 우리나라 미래의 희망을 찾고 싶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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