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성체성혈대축일, 2013 6 2일 @ 강경성당

만수리 공소 윤종관 신부


기적은 우리의 손을 통하여! 

有錢使鬼神...?



우스갯소리 같으면서도 누구든 대뜸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 있습니다. “먹기 위해 사느냐? 살기 위해 먹느냐?”고 물으면, 그 해답의 실마리를 찾기가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해서, 똑 떨어지는 답을 하지 못하고 말꼬리를 돌려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경제 사정이 좋지 않은 실정의 고달픔을 토로하면서 흔히 먹고 살기 힘들다.”고 말합니다. 우리네 삶을 꾸려나가기(, 경제행위를 해나가기)가 힘겨울 때 먹고 살기 힘들다.”는 표현을 빌려서 말을 합니다. 이 표현은 솔직히 말해서 인간이 살아가는데 먹는다는 것이 그 기본이기 때문에 그러한 우리네 심정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네 속담에 입이 서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서울 구경이 좋다 해도 먹는 것이 우선이라는 뜻입니다. 그와 같은 말로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엔 또 다른 의미로 먹고 살기 힘들다.”는 말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을 먹든 마음 놓고 먹기가 힘든 실정입니다. 제조식품을 사먹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서는 어쩔 수 없이 입에 넣으면서도 찜찜합니다. 불량식품이 유통되었다는 보도를 심심찮게 접하기 때문입니다. 몇 년 전에는 쓰레기로 버려지는 무말랭이를 넣어 제조한 만두가 유통되었다는 보도를 접하고 국민 모두 참담한 심정이었지요. 그땐 쓰레기 만두라는 별 희한한 음식 이름이 회자되기도 했습니다.


저는 사제 생활 중 많은 기간 혼자 밥해 먹고 살았습니다. 그런 시절에 간편하게 식사를 때우기 위해서 가끔 마트에 가서 냉동 만두를 사다가 데워먹곤 했는데, 그 유명한 쓰레기 만두가 히트 치던 그 당시 고발된 그 불량 만두 제조업체의 명단 가운데 제가 사다 먹은 만두의 상표명도 들어있었습니다. 이른바 쓰레기 만두로 저도 가끔 끼니를 때운 거죠. 나중에 그 제조업체의 해명이 있었습니다만, 세월이 많이 지난 지금까지도 문득 만두를 대할 대마다 그 때의 불쾌한 기분이 되살아납니다. “내 뱃속이 쓰레기통이었구나!”하는 생각으로 말입니다.


사실 저는 만두를 좋아합니다. 만두 중에도 꿩 만두라면 소문 따라 찾아가 사먹습니다. 꿩고기를 다져서 속을 넣은 그 꿩 만두! 옛적 군종신부 시절에 전방부대에서 지내다가 모처럼 서울에 외출 가게 되면 저와 잘 알고 지내시던(지금은 이미 고인이 되신) 북한 출신 할머니 댁을 방문하곤 했는데, 그 할머니께서는 겨울이면 당신 고향(평안도)에서 해먹던 식으로 꿩 만두를 준비해 두었다가 저에게 먹여주곤 하셨습니다. 그래서 눈 내리는 겨울날이면 옛적 그 할머니의 꿩 만두가 생각나곤 합니다만, 꿩 만두가 아니더라도 군만두’, ‘찐만두’, ‘떡 만두’, ‘김치만두’, ‘야채만두등등으로 갖가지 만두의 이름만 들으면 저의 입속에는 군침이 돌곤 하는데, 그런 저의 입이 아마 쓰레기 만두에도 익숙해질 수는 없었을까? 이렇게 생각하니 섬뜩해지는군요.


하긴 인간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을 뱃속은 나름대로 소화를 시키는 능력을 함유하고 있어서, 어지간한 음식은 그것이 남았다 해서 버림으로써 그 음식 쓰레기로 말미암은 환경오염이 야기되는 것보다는 사람이 먹어서 소화하는 게 더 좋은 일이기에, 흔히 농담으로 사람의 배속이 가장 좋은 정화조라는 말이 있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쓰레기 만두를 제조하여 판매한 사람들은 사람의 뱃속을 정화조로 여기고 그리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의 뱃속도 그 쓰레기 만두를 얼마 동안 처리한 정화조였나 봅니다.


이렇게 쓰레기 만두이야기를 하고보니 저 자신을 포함한 우리 한국 국민들의 몸이 쓰레기통 취급을 당한 기분이네요. 쓰레기를 먹고 사는 우리들! 아마도 부대찌개라는 음식의 근원이 옛적 굶주리던 전쟁시절에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음식 쓰레기를 끓여 꿀꿀이 죽이라면서 먹던 것에서 나왔다 합니다. 그 허기를 면하기 위한 처절하고 슬픈 부대찌개의 원조 꿀꿀이 죽의 역사를 우리 한국인들의 기성세대는 기억하고 있듯이, 거기에 더하여 쓰레기 만두를 씁쓸한 우리 역사로 기억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 자화상에 대한 비애감을 떨쳐낼 수 없고 부끄럽기 그지없는 노릇입니다.


이런 비애감을 떨치고 싶은 심정이 들어, 우스갯소리 같은 말이기도 하며 사실상 철학적 질문이기도 한 먹기 위해 사느냐? 살기 위해 먹느냐?” 하는 질문을 이 시대의 우리 모두에게 던져봅니다.


이 질문에 대하여 떳떳한 대답을 할 수 없는 것이 더욱 비애스럽습니다. 해서, 자조적으로 우리네 속담을 떠올려봅니다. ‘삼척염식영감(三尺髥食令監)’이라는 六言俗談입니다. 이 육언속담은 조선조 영조대의 선비 이덕무가 [청장관전서]라는 저서 중에 속담 100 수를 수집하여 한문으로 번역해 놓은 [열상방언](迾上方言)에 소개되어 있을 만큼 오래된 우리 속담인데, 그것은 쉬운 오늘의 우리말로 수염이 석자라도 먹어야 양반이다.”라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선비 이덕무는 마시고 먹는 것은 중요하고, 영감이란 존경하여 부르는 것이다. 비록 구레나룻이 석자인들 다만 먹은 연후라야 존중이 가하다.(重飮食也 令監尊稱也 髥雖三尺 惟食然後可尊重)”라고 해설을 붙이고 있습니다.


품위와 명분을 목숨같이 여기던 선비가 이렇게 문자를 써서 먹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한 해설을 듣고 보니, 배고프면 체면이고 뭐고 가릴 것 없이 쓰레기라도 먹어야 대접받을 수 있단 말인가 하는 비애감이 더해집니다. 허긴 따지고 보면 먹고 사는 것이 인생살이의 전부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처지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앞서 말씀드렸듯이 우리 삶이 고달픈 현실을 한탄하여 먹고 살기 힘들다.”고 하는 것은 사실 먹거리 찾기가 어렵다기보다는 돈벌이가 힘들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조선조 순조대의 조재삼은 그의 저서 [송남잡지](松南雜識)에 점잖은 선비답게 한자로 有錢使鬼神이라는 말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 뜻은 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릴 수 있다.”는 우리네 속담입니다. 이러한 속담은 오늘날 금전만능주의를 표현하는 有錢無罪 無錢有罪라는 신종 속담으로 이어지고 있는데, 사실상 예부터 회자되던 법도 돈 쪽으로 기운다.”고 하며 비뚤어진 우리의 현실을 냉소적으로 개탄하는 속담의 문자화인 것입니다.


그렇듯이 돈이라면 무엇이든지 가리지 않는 인간의 더러운 탐욕에서 빚어지는 현실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차별로 다중을 살상하는 행위라 할 불량식품의 제조판매가 횡행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야말로 불량양심의 천국이 되어버린 우리나라에서는 이렇듯 안심하고 먹을 것이 없게 된 것입니다. 그러한 불량식품을 제조판매 하는 사람들은 사실상 자기 자신이나 자기 가족의 식탁에는 그 불량식품을 올리지 않을 것입니다. 자기 자신은 죽기 싫지만 돈벌이를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이 병에 걸려 죽든지 말든지 개의치 않겠다는 심보이지요. 버려야 할 단무지 꼬리를 가공하여 만두소를 만드는 그 사람들은 그야말로 자기 자신 속에 쓰레기 같이 썩은 양심을 지닌 불량인간이라 할 것입니다. 그런 불량인간의 심보는 쓰레기 만두이전에 이미 쓰레기 심보인것입니다.


쓰레기 만두이전에도 발암물질이 든 공업용 착색료로 물들이거나 쇳가루를 섞어 넣은 고춧가루를 팔아먹질 않나, 광견병에 걸린 개를 잡아 보신탕을 팔아먹질 않나, 꽃게 속에 납덩어리를 넣질 않나, 수입 참조기에 볼트를 넣질 않나, 공업용 소금으로 만든 젓갈 또는 공업용 본드를 쓴 떡시루라든가 공업용 이산화염소로 생선회를 닦아 먹질 않나, 하여간 쓰레기 심보들 때문에 무얼 사다 먹는다는 것이 겁나는 우리 사회는 쓰레기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겁나는 쓰레기 세상에는 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릴 수 있다.”는 금전만능주의가 팽배하여 돈 앞에서 우리 사람의 생명은 쓰레기만도 못한 것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 자체는 이제 쓰레기 통 같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돈이 인간에게 쓰레기를 먹이는 세상이니 말입니다.


이런 세상과는 달리 주님께서 무엇을 먹으라고 우리에게 주시는가를 오늘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에 새삼 깨달아야겠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먹으라고 내어주시는 것은 그분 자신의 살과 피입니다. 빵과 포도주의 표징 아래 주님께서는 당신의 생명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입니다.


빵과 포도주라는 음식을 표징으로 하여 주님의 생명을 얻는 우리는 또한 이웃과의 먹거리 나눔에서 주님처럼 생명을 나누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불량식품으로 사람들의 생명에 위해를 끼치는 우리의 세상과는 달리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생명을 함께 나누는 입장에서 진정 생명을 존중하고 회복하는 역할을 해야겠다는 다짐으로 성체를 영해야 할 것입니다. 배고픈 군중을 앞에 두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루카 9, 13)하셨음을 기억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므로 농사를 짓는 신자는 되도록이면 농약을 덜 쓰면서 나 자신의 땀을 더 흘려서라도 이웃의 생명을 존중하는 농산물을 생산해야 할 것입니다. 음식물을 제공하는 업종에 종사하는 신자는 고객들의 건강을 도모하기 위해서라면 이익을 덜 챙겨도 마음이 즐거울 수 있어야 합니다. 숙박업을 하는 신자는 수익에 앞서 손님들의 심신에 최선의 안위를 제공할 성실을 기울이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었던”(루가 9, 13) 제자들처럼 미약한 능력밖에 없는 우리의 그 작으나 성실한 노력을 감사히 여기시는 예수님께서 세상에 넘치는 생명의 기적을 이루시리라 믿습니다(루카 9, 1617 참조).


그러한 주님과 함께라면 우리는 가진 것 빈약할지라도(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더라도) 세상 사람들 모두를 먹여줄 수 있는 배포(희망)로써 세상을 끌어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성체성사 자체인 우리 교회가 바로 그러한 우리 자신이어야 합니다. 가난하지만 세상을 몽땅 초대할 수 있는 우리의 마음이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주변에 세상 사람들이 모두 자리를 잡게 해야 합니다. 오늘 빵과 물고기의 기적 현장에서, “제자들이 그렇게 하여 모두 자리를 잡았다.”(루카 9, 15)고 성경은 보도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축복하시고 제자들에게 음식을 건네시고, 따라서 제자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자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고 남은 먹거리가 무진 넘쳤습니다.(루카 9, 1617 참조) 기적은 그렇게 주님의 손에서 우리의 손으로 넘어와서 사람들 사이에 이루어졌습니다.

 



출처: 가톨릭성지 하부내포 공식 Daum 카페

http://cafe.daum.net/southnaepo/Dvt8/30



부여외산면 만수리공소 담당 하부내포 성지 윤종관 가브리엘 주임 신부

19476월 충남 부여 출생. 1960년 소신학교인 서울 성신중학교에 입학, 가톨릭대 신학부를 거쳐 197412월 사제가 되었다. 이탈리아 로마 우르바노 대학원 석사와 베를린 자유대학 박사과정 유학을 마치고 1985년 귀국해 해미 본당 초대 주임으로 6년간 성지를 조성했고, 2001년 안면도 본당이 설립되자 대전 도마동 본당 주임과 대전 서구지구장직을 2년 만에 끝내고 자청해 갔다. 열악한 환경의 안면도 사목 6년을 마친 윤종관은 2007년에 버려지고 잊혀진 하부내포 성지 전담 사제로 부임했다.

Posted by 편집장 슈렉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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