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진의 『낯선 시선』'메타젠더로 본 세상'을 읽다 2




제3장 부끄러움에 대하여

144

삼성전자의 '갤럭시 노트7 폭발사건'으로 인한 리콜 비용이 1조 5000억 원에서 2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100만 원을 전후한 '갤럭시노트7'이 출시되자 '노트5'는 22만원대로 떨어졌다. 

(145) 생산과 소비를 무한정 늘리고, 시장 교환 체제를 확대하고, 자연을 얼마나 더 뒤지고 파헤칠 것인가. 스마트폰은 스마트하지 않다. 


146 양심의 의무

양심의 자유는 개인이 추구하는 신념이나 가치관에 대해 외부세력(주로 국가)의 억압이나 강요가 없어야 한다는 대표적인 인권 사상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주로 '사상의 자유'라고 표현하지만 서구에서는 근대 초기 르네상스 때 종교의 자유에 대한 사회운동으로 출발했기에 신앙의 자유의 의미가 강하다. 


(147) ... 지금은 양심의 자유보다 개인들 간의 '양심의 의무'가 절실한 시대다. ...

우리는 양심은커녕 상식도 공유되지 않는 시대를 견뎌내고 있다. '양심없는 삶'을 한마디로 말하면, 사기와 횡령이다. ... 넓은 의미에서 타인을 속여서 이득을 취하는 모든 행동을 의미한다.

... (148) 키보드 만으로 자아실현이 가능한 시대이다. 가장 큰 문제는 SNS의 자아가 ... 아예 동명이인에 가깝다는 사실이다. ... 여기서 사기가 발생한다. 

(149) '일베'는 새로운 미디어가 곧 권력이라는 것, 즉 미디어 자체가 메시지임을 잘 보여준다. 

... 개인의 일상을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하는 것 자체가 어느 정도의 자기도취와 관음증, 노출증을 전제한다. ... 이 모든 것이 팔로어 숫자에 의해 좌우되고 그들의 환심을 얻으려면 일상을 접고 온라인상에서 세력 확보에 사력을 다해야 한다. 실제 삶은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

... 양심의 의무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필요한 윤리다. 


153

기득권 세력은 관계로 살아가고, 나머지 국민은 법대로 살아야 한다. '인간관계'는, 법 위를 활보하는 이들과 법이라는 이름만으로도 겁박이 통하는 이들을 구별하지 못하도록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154

이명박과 안철수는 당대 대한민국 대중의 워너비, '나도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선망의 대상이다. 이들은 부와 명예를 상징하는 스타이며 이를 발판으로 삼아 정치에 입문했다. 

160

윤리적, 사법적, 문화적 차원에서 저항의 개념은 모두 다르다. 이 불일치 때문에 피해자들은 저항하면 할수록 2차, 3차 피해를 겪을 가능성이 크다. 약자들이 저항할 줄 몰라서 저항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대개의 경우, 저항하면 더 큰 피해를 입기 때문이다.

... 저항 과정의 사소한 문제가 가해의 본질보다 더 문제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164

몸은 낯선 행복보다 익숙한 불행을 더 좋아한다. 익숙함은 인간사의 대표적 부정의다. 적응(중독)된 몸은 삶의 방식이자 양식(糧食)이다.  ... 의미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만난 엉뚱한 (물론 때론 폭탄같은) 친구다. ... 몰입할, 헌신할, 절절히 사랑할 대상을 찾는데 실패하면, 사회가 권하는 손쉬운 대상이 공허를 메워준다. 

172

여성은 남성보다 가사노동을 많이 요구받기 때문에 어느 역사에도 '여성 KKK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폭력문화는 남성 실업, 아니 '남는 시간'과 관련성이 크다. [한중일 인터넷 세대가 서로 미워하는 진짜 이유]를 쓴 다카하라 모토아키도 실업으로 인한 불안형 내셔널리즘에 있다고 본다. 시간이 있을 때 어떤 사람은 청소를 하고 남을 돕지만, 어떤 이들은 '애국'을 한다. 

174

고통은 개인의 스트레스 내성(耐性) 능력에 따라 달라진다. 즉 화나는 일이 있어도 화를 안 낼 수 있다는 것이다. .... 한편으로 분노는 정의감이자 힘이기도 하다. 정당하게 분노할 일이 있어도 우아하고 차분하고 세련되게 대응해야 한다는 통념은 가해자의 이중 메시지다. (175)

나르시스트는 다르다. 자기 도취의 특징은 안하무인, ... 자기만 생각하기때문에 스트레스가 덜하다.나르시시즘은 자기방어에서 시작된다. 취약한 자아가 오만이라는 방식으로 수치심을 잊는 것이다. 타인의 존재를 망각하고 홀로 궁궐에 산다. '공주병', '왕자병'의 초기 증세이다. 


뻔뻔스러움은 이명박 정권 시절에 절정을 이루었고, 한국 사회이 지배적인 관계 원리로 자리잡은 듯하다.  (176) '일베'도 뻔뻔함을 자기 비하와 약자 혐오 놀이로 '승화'시킨 현상일지 모른다. 

사회구조는 인성을 창조한다. 르네상스적 인간, 근대적 인간, 자본주의형 인간이라는 말이 있는 이유이다. 정부는 사회 구성원의 공존을 위한 인프라를 민영화 논리로 파괴하고, 기업은 승자 독식의 모범을 보여준다. 생존은 오롯이 개인에게 떠넘겨졌다. 돈과 성공이 최고 가치고 미모, 행복, 마음의 평화까지 갖춰야 하는 사회다. ... 뻔뻔하거나 우울하거나 도피하거나 (2013.6.7)

178

(이명박 임기 일주일 남기고 "행복했다.") 그의 당선은 그의 재산 형성 과정에서 보여준 '능력'을 보고, '우리도 당신처럼 잘살게 해 달라'는 서민들의 욕망에 기인한 바 크다. '우리'는 그와 함께 모두가 부자 되는 세상을 공모했다. 

(179) 이런 상황이었기에 '녹색 성장'이나 '공정한 사회'는 뜬금없는 말이었다. 서사의 하이라이트는 정권 막판에 나온 '역사상 가장 깨끗한 완벽한 정권', '국격이 최고조에 이른 시기', '나는 행복합니다.' 같은 말이었다. ...

권력자의 행복감은 자기 도취를 넘는 '가해자'의 두꺼운 얼굴이다. 후안(厚顔)이 지나치면 본래 얼굴(정체)을 알 수 없다. 생각을 파악할 수 없는 권력자, 두려운 법이다. 

(180) 빈발하는 자살은 살인적인 경쟁, 승자 독식, 약자에 대한 모욕이 부른 사회적 타살에 가깝다. 

185

현재 한국 사회에서 스마트폰은 통신 기기가 아니라 신분증, 시민권(membership) 증명서다. 휴대전화 번호가 없으면 어느 세계에도 접속이 불가능하다. 

(189) 휴대전화는 '저렴한 가격'으로 평등권을 부여했다. 우리는 민간 기업에 불필요하고 엉뚱한 '주민등록 비용'을 자발적으로 지불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 민영화. 문제는 그 역할이 책임이 아니라 돈벌이라는 점이다. 



제 4장 고통에 대하여

194

한국인들이 인간관계의 고통과 불쾌한 기분을 해소하기 위해 쓰는 비용은 만만치 않다. 세계 최고의 1인당 주류 소비량, 국민총생산 대비 최대 규모의 성 산업, 쇼핑 중독. 

(195) 외로움과 혼자임은 무관하다. 문제는 자기 충족적인 건강한 외로움이 아니라 불안하고 고립된 느낌이다.  ... 대한민국의 자살과 우울은 상상 이상이다. 

202

한국 사회는 문제가 생기면 은폐(그것도 대충), 책임자의 거짓말, 손바닥으로 하늘 가림, 여론이 조용해질 때까지 방관, 소 잃고 외양간 안 고치기, 피해자 고립을 대책으로 삼는 나라다. 진상 규명을 하지 않음으로써 피해자를 고사시키고 문제를 떠넘긴다. (203) ... 

희생양을 생산하는 방식은 타인과 완전한 단절을 추구하면서 교집합을 제거하는 것이다.  ...

타인의 기쁨은 시기와 스트레스를 부르고, 고통을 겪는 사람들에게는 짜증이 난다. 슬픔은 소비의 적이다. ... 바로 '당신의 문제'라는 인식을 공유 ...

206

(세월호 참사 후 수학여행 금지 등) 안전 강조 담론은 국가 안보 이데올로기처럼 사회 구성원을 통제하는 효과가 있다. 안전 불감증이라면 누가 불감증인가. 학생 승객들이? ... 우리가 "내 탓이오"를 강요당할 때 정권은 가해 구조에서 모습을 감춘다. 

209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경찰에 신고하는 것이 우선인데, 왜 다들 대책위원회를 만드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210) 내가 가장 충격을 받은 새로운 언어는 여야갸 혹은 정부.여당이 유가족과 새월호특별법을 '협상한다'는 말이었다. ...

(211) 유가족은 아무런 의무가 없다. 타협과 협상은 힘의 균형을 합리적으로 조절하는 바람직한 정치지만, 지금 정국에서 '협상'은 피해자가 무슨 요구를 하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정부와 여당은 앞장서서 피해자를 위로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법을 제정하면 된다. 

215

'잊지 말자'는 배제의 언설이다. 시간이 갈수록 망각은 필연이라는 생각, 그로 인한 죄의식. ... '잊지 말자'는 잊을 수 있는 사람과 절대로 그럴 수 없는 사람의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

타인의 고통에 대한 기억은 시혜가 아니다. 

217

(정몽준 아들 '미개' 발언) 무고한 타인의 죽음에 대한 상스러운 언사도 문제지만 공적 영역에서 슬픔을 표현하는 것을 '미개하다'고 보는 행태는 '선진 문명국'에서도 드문 일이다. 

캐럴 길리건, 낸시 폴브레 같은 서구 의학자들은 보살핌, 돌봄과 같은 가치가 공적 영역의 규범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218) 지금 공적 영역에서 통용되는 주요 규범은 경쟁과 승부다. ... 이를 위해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요구되는 정신상태는 자신감, 활달함 같은 가벼운 흥분 상태인 경조증이다. 예전 상어형 리더십의 중요한 자질 중 하나는 타인(부하)의 고통에 무감한 것이었다. 타인의 고통에 민감한 리더는 생산력을 독려하기 힘들다. '불도저'는 여기서 나왔다. 사람의 상태가 어떻든 그냥 무시하고 밀고 나가라는 것이다. 


인생은 세월호의 바다처럼 인재든 천재든 고해(苦海)다. ... 미개하다는 발상은 인간 본성에 반하는 것은 물론 당대 자본주의가 추구한느 기준에서도 시대착오적이다. 감수성은 창의력의 기본이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감각 마비, 심리학에서는 사이코패스로 정의한다. 

상철르 느끼지 못하는 사람 중에는 흉터를 보고 놀라는 이가 있고 놀리는 사람이 있다. 후자는 심각한 문제다. '상처가 없다'와 '느끼지 못한다'는 다르다.  ... 미개(未開)는 마음도 머리도 닫혀 있어서 인지능력이 없다는 뜻이다. 미개함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통곡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비웃는 상태다.

224

마음이라는 신체부위는 없다. 우울증은 마음이 아니라 몸이 아픈 병이다. 우울증은 기분 인식, 판단을 담당하는 뇌의 일부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아서 아픈 병이다. 질병이 신체 내부의 하나의 원인에서 비롯된다고 가정한다면, 우울증의 열쇠는 세로토닌이라는 화학 물질이 쥐고 있다. 그래서 세로토닌은 '행복 호르몬'이라고도 불린다. 


제 5장 남성에 대하여

260

할리우드산 블록버스터 SF 영화는 대부분 상상력과 과학의 문제를 다루기 보다 미국 중심의 국제정치학을 담고 있다. 은유도 아니다. 대놓고 말한다. 

265

(신경숙 비판에 대한 독자의 비판 메일) "같은 여자로서 신경숙의 성공에 대해 함께 기뻐하지는 못할 망정 남자보다 더 심한 비판을 할 수 있느냐. 여성의 시기심이 더 강하다는 사실에 절망한다."

나와 신경숙 씨는 여성이 아니다. 나는 그때 여성으로서 여성을 비판한 것이 아니라 '독자'로서 '작가'에 대해 말한 것이다. 

(266) 남성들의 투쟁은 ... 더 격렬하지만 ... '노사 갈등'이거나 '국제정치'지, ... 같은 성별 간의 질투로 비하되지 않는다. 

273 성적 자기결정권

성적 자기결정권은 시민권 운동에 이은 1970년대 미국의 성 해방 투쟁에서 등장했다. 

... 성적 자기 결정권은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당연한 권리가 아니다. 이 때문에 다른 인권개념처럼 약자의 권리일 때만 의미있는, 상황에 따른 권리다. 간통죄, 성매매 모두 성적 자기 결정권과 무관하다. 성매매방지법이 시행된 2004년에도 논란은 대단했다. 여성의 몸을 구매하는 것을 인권(행복추구권)이라고 주장한 남성들, 생존권 차원에서 합법화를 요구한 일부 여성들, 성 산업의 심각성과 여성에 대한 폭력 현실을 지적한 여성들이 있었다. 


(274) 10여 년 전 여성부나 현재 여성가족부를 포함한 성매매 반대 입장의 주요 내용은 ...

"성을 사고 파는 것은 범죄입니다."

나는 이 문구에 늘 당황한다. 성매매가 범죄인 것은 성을 매매해서가 아니다. 성매매는 성별, 성차별 제도 없이는 작동하지 않는다. 그래서 결정권이 아니라 여성 인권 문제다. 성(몸) 매매가 왜 불법인가? 누구나 노동과 임금을 교환해서 먹고 산다. ... 성매매는 매매가 아니라 성별이 문제다. 

... 구매자와 판매자가 압도적으로 남녀로 나뉜 직업이 성매매 말고 또 있는가. ...

성매매 제도는 여성 전반을 성적 낙인 속에 가둘 수 있는 여성 혐오의 시작이다. 왜 이 직종은 자영업이 힘든가. 왜 인신매매가 흔한가. 왜 기술이나 지식, 근무 연수가 아니라 나이가 소득을 좌우하는가. 성매매는 자기 결정권과 무관하다. 남녀의 성에 대한 이중 잣대에서 출발하는, 인권의 보편성에 대한 가장 오래된 질문이다. 

277

말의 정당성은 문구 자체보다 누가 말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당사자가 아닌 사람은 대개 구조적으로 '가해자'의 입장에 있으며 타인의 현실을 모른다. ...

(예전에 비해) '나아졌다'는 판단은 어느 시대에 근거한 것일까? 

280 취객과 성매매 

많은 한국 남성에게 술은 일상의 동반자이다. ...관대하다. 술은 모든 상황의 알리바이다. ... 모든 상황이 참작(參酌)되고 감안된다. 정상 참작(情狀 參酌). 이 단어 자체에 술을 붓는다는 '작(酌)'이 포함되어 있으니, 술은 인간 행위를 판단하는 필수적 고려 요소인 듯하다. ...

(281) 술과 성매매는 2가지 직접적 관련이 있다. ... 노래방, 호프집, 업무상 출장, 골프장, 이발소, 목욕탁, 아예 성구매를 목적으로 하는 관광 ... 움직일 때마다 여성의 '위안'이 필요한 것일까.

(282) 술은 물건이고 여성은 사람인데 언제나 동격으로 취급된다. 남성에게 술과 여자가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 성매매가 가능하려면 여성의 인격은 물화(物化)되어야 한다. 여성의 몸은 남성 세계에서 '윤활유', '범퍼' 역할을 위해 판매되고, 대여되고, 유통된다. 남성들 사이의 갈등을 여성의 몸을 통해 해소하는 것이다. 여성은 이용대상일 뿐이므로 성매매는 여성과 무관한 남성의 문제다. 

세상은 남성들끼리 싸우고 화해하고 연대하고 복수하는 그들만의 세상이다. 

284 권리를 배려한다?

노약자 석 '인권은 배려입니다.  ... (국가인권) 위원회에 ... 수정을 요구했다. ... 반응은 ... "배려가 뭐가 나쁘냐?" ... 인권은 배려가 아니라 갈등하고 경합하는 가치다. ...

노약자석의 경우 장애인, 임산부, 노인에게 우선권이 있는 것은 배려가 아니라 그들의 권리다. 

(285) 배려나 관용은 '잘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베푸는 선의가 아니다. 배려는 동등한 적대자와 자기 자신에게만 국한되는 윤리다. 


서울 마포구청 도시경관과의 불법 행위와 '구민 혐오' 

마포구에 사는 성적 소수자 모임인 '마포레인보우주민연대'는 구청에 현수막 게시를 신청했으나 거절당했다. ... 김소연 무소속 대선후보는 ... 연대 차원에서 "지지와 성원에 노동자 계급 정당 건설로 함께 하겠습니다."라는 낙선 사례와 함께 "LGBT, 우리가 여기 살고 있다." "이곳을 지나는 열명 중 한 명은 성 소수자입니다."라고 적힌 이 단체의 현수막을 동반 게시했다. 

그러나 구청 측은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어 현수막을 철거했다. "청소년들이 유해 내용을 접할 수 있다." "과장 문구는 불법이다. 직설적 표현에 유해성이 있다." "문구가 혐오스럽다."라는 것이다. 해당 부서의 주장은 선동에 가깝다. 이는 담당 공무원의 개인적 편견을 공무로 집행한 사적인 행위다. 대통령 선거관련 현수막 게시는 선거법에 보장되어 있다. 철거가 불법임은 물론 현수막 내용을 '일개 구청'이 검열한 초유의 사태다. 

(286) 통계적으로 어느 사회나 전체 인구의 51%는 여성, 10~15%는 동성애자, 10%는 장애인, 9%는 왼손잡이이다. .. 모든 동네에 이들이, 즉 '우리'가 살고 있다. ... 타인의 생각에 반대할 수 있다. 그러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공중에 대한 공공연한 위협이다. 

... "... 배려합시다."였다면 상황은 달라졌을지 모른다. 우리 사회는 억압받는 당사자의 목소리보다 지위가 높은 명망가가 명분상 그들을 대의(代議)하는 방식을 좋아하고, 대중은 명망가와 자신을 동일시한다. 

'우산을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같이 비를 맞는 것'이 인생이라면, 배려는 우산을 독점하고 선별해서 우산을 나눠주려는 권력의 만행을 도덕으로 포장한 행위다. 정말 배려하고 싶다면, 원래 보장된 남의 권리를 시혜로 둔갑시키지 말고 자기 기득권을 포기해야 한다. 타고난 타인의 권리에 대해 자신이 판관 노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상식, 분별력, 주제 파악이 선행되어야 한다. 


(287) 모든 차이는 임의적, 허구적인 것이다. 차이가 만들어지는 방식은 차치하고라도, 다름의 공존이 허용되지 않는 사회에서 그 누가 생존할 수 있겠는가. 인간은 기준에 따라 모두 소수자다. 단적으로 나이들지 않는 사람은 없다. 

288 외모주의

"당신, 경찰이지?"

"어떻게 알았나?"
"아무 데서나 설치는 무법자가 둘 있지. 경찰과 미녀. 당신은 여자가 아니니까 경찰이겠지."

... "예쁜 여자는 줄을 안 서도 된다."는 얘기는 예전부터 있었다.  ...

현재 한국사회에서 그 어떤 이데올로기가 외모주의를 당해낼 수 있을까? '북한 미녀응원단' ... '얼짱 간첩, 얼짱 강도, 얼짱 테러리스트' ... 미모라면 국가의 적이든 공공의 적이든 문제되지 않는 세상이다. 


(289) '내면의 아름다움' ... 인간의 내면이 어디에 있나? 아름다움과 추함은 결국 몸으로 체현된다. 사람이 몸이기 때문이다. ... 몸과 마음을 분리하는 불가능한 관념일 뿐이다. 

(290) 외모주의는 플라톤 시대부터 시작된 인간의 개념과 관련된 철학의 근본 의제였다. 

... 문제는 외모 지상주의라기보다 인간 몸의 다양성, 즉 현실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294

차별은 자유, 평화, 민주주의, 평등처럼 정의하기 매우 어려운 개념이다. 이는 애매하거나 모호하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이해관계, 권력관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기 십상이며 소통하려고 애쓸수록 말 그대로 멀어지는(疏) 경우가 많다. 

(295) 한국 사회에서 교통 문제는 결국 서울과의 거리, 서울에의 접근성 문제이지 수치상의 거리는 별 의미가 없다.... 세계화가 곧 미국화를 의미하고 국제사회가 미국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과 비슷한 이치일 것이다. 


(299) 차별(unequality)을 불평등이 아니라 '다름'(difference)으로 재개념화하는 것은, 차별의 기준과 내용을 누가 정하는가의 문제이기 때문에 대단히 중요하다. 상대방이 차별한다 해도, 그것을 수용하지 않거나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거나 무관심하게 생각한다면 억압자가 의도한 차별의 효과나 이익을 보기 어렵다. 이렇게 생각할 때, 차별에 대한 다양한 실천도 가능하다. '차별 가해자'에게 같은 대우를 요구하는 투쟁도 필요하지만(하지만 실패하기 쉽다), 상대방의 시선으로부터 스스로 자유로워지는 것도 중요한 저항이다. 


(300) '평등'이 대개는 흡수를 의미한다는 사실 .. '서울'이든 '미국'이든 '남성'이든 우리가 흔히 '중심'이라고 불리는 경계선(border), 그 집단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 집단 내부는 결코 균질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 사람이 다 같은가? 미국 내부의 차별이 얼마나 많은가? '중심'과 같아짐을 의미하는 평등은 바람직하지도 않지만, 그 이전에 불가능한 프로젝트다. 




오랫만에 좋은 책을 후루룩 이틀만에 보았다. 정희진 선생님께 감사하고 싶다. 한번 내 직장에 초청할 계획이다. 2017년 10월 14일 토요일 오후 4시 40분 독서 끝






Posted by 편집장 슈렉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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