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진의 『낯선 시선』'메타젠더로 본 세상'을 읽다



이 책은 2017년 3월 10일 초판이 발행되었다. 정희진 선생님의 글은 또렷하다. 남성에게 많은 깨우침을 준다. 그의 신간『낯선 시선』(메타젠더로 본 세상)은 그동안 써온 칼럼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잘 읽힌다. 간간히 정리를 해본다. 


제1장 상식에 대하여


21쪽 (금수저의 운명)에서 영화 여교사에 대한 평을 통해 세상을 읽는다. 금수저의 무지와 운명은 계급고착사회에서 또 다른 비극의 출발점이다. 금수저 역시 행복할 수 없다. 물론 흙수저는 늘 좌절과 위태로운 목숨의 경계 사이에서 흔들린다. 그러나 자본주의란 구조에서 해결이란 없다. 그래서 정희진은 말한다. 상황과 전선을 하는 것, 상대를 아는 자와 모르는 자(알려고도 하지 않는자) 중에 누구에게 승산이 있는가?


그리고 그는 제임스 본드(007) 영화와 맷 데이먼의 '본 시리즈'를 비교한다. 007 이 국민국가의 정체성을 강조하고 있는 반면, 본 시리즈는 후기 국민국가 시대의 텍스트라는 것이다. 사실 007은 1648년 등장한 베스트팔렌 조약 체제 이후의 근대국가적 이념을 보여주는 영국산 순수오락물이다. 1648년을 기점으로 국가가 등장하고 국가라는 개념 속에서 국민, 주권, 영토가 강조되었다. 또한 국가의 탄생은 국어를 탄생시켰다. 국민으로 '등록'시키는 것도 주된 일이었다. 그런데 맷 데이먼은 그런 국가주의 이념으로 조성된 국가의 이익을 증오하고 자신의 양심을 찾으려고 고군분투한다. 본은 2편에서 굳이 추운 겨울 러시아를 찾아가서 자신이 죽인 정치인 부부의 어린 딸에게 사과를 한다. 그런데 사실상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사과'는 희귀한 일이 되어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 다음으로 정희진은 국사에 대해서도 말한다. 국사는 군대의 산물이란 것이다. 사실 모든 역사란 승자의 역사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정교과서는 다양성을 말살하는 행위라고 말한다. 하나의 내용을 이해하려면 다양성은 필수적이고, 사실상 단일성이란 다양성과의 관계 속에서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모든 인식의 시작은 다름이다. 그런데 유일한 국정교과서 체제가 작동된다면, 그 교과서에 담긴 내용과 대조하여 점검할 다른 지식을 없애는 것이다. 


그러나 지식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배우는 사람의 머릿 속에서 일어나는 경합의 과정이다. 그것은 갈등의 과정이다. 지식은 갈등을 통해 생산된다. 바로 지식자본이 가진 독특한 특징인 것이다. 

44

이명박 정권이 국토를 망가뜨리고 쓴 돈이 국가 발전을 '잘못 인식'한 결과라면, 지금 정권이 작전권을 포기하고 쓰려는 돈은 '자기 인식을 포기'한 행위이다. 

47

가정 폭력 상담을 하다보면,  남성은 열 대를 때려야 폭력 남편으로 인식되는데, 여성의 정당방위는 단 한 대도 폭력으로 간주된다. 

49

(잉여시대) 일본 에도(江戶) 시대, 1690년에 직업의 종류는 530종, 1920년 일본 국세(國勢) 조사에 신고된 직종은 약 19만종. 그로부터 85년 후인 2005년 .... 놀랍게도 3만 종으로 6분의 1 미만으로 줄어들었다. ... 현실은 반대다. 자본주의가 발달할수록 인간의 삶은 획일화된다. ... 개성은 소비를 위한 것이다. 이 때문에 사회는 개성은 존중하지만 인권은 억압한다. 

(50)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를 비판한 사람으로 오해받지만, 사실 그는 자본주의를 철저히 분석하고 이해하고자 한 사상가였다. ...

(50~51)

자본주의 초기, 노동자 양성과 훈육을 담당했던 학교와 군대의 기능은 무기력해진 지 오래다. 99퍼센트의 학생들은 자신이 들러리라는 것을 안다. ... 지금은 99.9:0.1 의 사회다. 0.1퍼센터의 사람들은 공간적으로 분리되어 가시권에서 사라졌다. 투쟁의 대상이 보이지 않자 우리는 힐링이니 자기계발이니 하며 자신과 싸우고 있다. 

53 '전쟁불감증'

(2013년 4월 13일의 글인데도 놀랍게도 지금 이 순간과 딱 맞아떨어진다.)

지난 한 달 동안 북한과 미국은 한반도 주변을 무대로 삼아 거침없는 전쟁 협박 정치를 했다. ... 

김정은 체제의 리더십 연습과 미국의 무기 실험에, 왜 한국 사람들이 전쟁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는지 새삼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54) 전쟁 불감증은 문제가 아니지만 불감증 담론은 우리 사회를 성찰하는 계기가 되는 중요한 현상이다. ... (55) 전쟁 불감증의 가장 큰 원인은 '먹고사는 게 전쟁'이기 때문이다. ... 어떤 이에겐 '전쟁보다 빚이 더 무섭다.'

... 국민들이 절실하게 느끼는 현안에 대한 집권 세력의 무감각, 이것이 진짜 전쟁, 즉 내부의 전쟁을 만들어 낸다. 

(56) 한국은 고위 공직자의 비리에 둔감한 정도가 아니라 너그러운 사회다. 표절, 병역 비리, 탈세, 부동산 투기, 위장 전입, 학력 위조 따위가 '종합세트'가 아니라 한 두건만 해당되면 '청렴한 편'이라는 여론이 나온다. 


59쪽 (2012년 7월 7일 글이다. 그 의미가 여전히 유효하다)

한-미-일 동맹은 명목상으로는 북한을 겨냥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중국을 견제하고 일본의 군사 대국화 계획에 한국이 '총알받이'로 동원된 형국이다. 

(60) 우리는 상대는커녕 자신조차 모른다. 우리가 강대국을 이용한다는 자신감은 부풀려진 자아, 망상적 자기애, 도취에 가까운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가능하다. ... 이러한 자아관은 강자를 이용하려는 약자의 자세가 아니라 강자에 대한 동일시 욕망, 허세와 착각에서 나온다. 분명한 점은, 강자는 이러한 약자의 자기 분열을 간파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62

가족 이기주의란 사회의 기본 단위를 개인이 아니라 가족으로 상정하여, 계층 상승 욕구를 가족애로 둔갑시키는 간교한 장치이다. 결혼이 변치 않겠다는 사랑의 약속이라면 결혼을 제도화할 필요가 없다. ... (63) 폭력에는 여러 개념이 있지만, ... '감정을 제도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형식의 폭력들로 사회가 굴러간다. 가족주의, 민족주의, 지역주의, 동창회, 해병대, 향우회 .... 이들 조직의 공통점은 한 가지, 선천적이든 개인의 선택이든 한 번의 경험, 소속을 평생 자신의 본질로 정의하고 운명을 좌우한다고 믿게 한다는 점이다. 

... 힘 있는 자의 연대는 연줄로 사회학이지만 사회적 약자의 연대는 네트워킹이다. 그러나 사회는 이를 구별하지 않고 약자의 연대도 '연줄', '지역감정', '계파' 등으로 폄하한다.

66

경찰의 사고방식 ... 그들은 스스로 '민중의 몽둥이'임을 선언하고 경찰에 대한 국민의 의지(依支)와 신뢰를 걷어찼다. 경찰과 군대는 태생적으로 폭력 조직이다. 그러나 이 폭력은 국민이 필요로 하고 국가가 인정한 합법적인 것이다.  국가라는 형태의 공동체에서 경찰과 군인이 존경받아야 하는 이유는, 아무도 하기 싫지만 누군가 해야 하는 '더러운 노동'인 폭력 행위를 국민을 대리해 수행하기 때문이다. (67) 우리나라 경찰은 누구를 보호하고 누구와 전쟁을 하고 있는가. 

75

인권 문제가 되는 사회적 제도들 - 인종, 성별, 민족, 계급, 건강, 약자와 장애인에 대한 차별, 외모주의, 연령주의, 이성애 제도 등 - 은 인간의 몸에 대한 위계적인 해석들이다. ... 몸 때문에 차별받는 사람들에게 몸은 중립지대가 아니다. 몸은 첨예한 정치적 영역이다. 

(77) 여성의 몸은 남성 중심사회가 주장하는 취향의 가장 약한 고리이다. 



제2장 말에 대하여


82

모든 번역은 의역일 수밖에 없다. ... 사실 직역은 가능하지 않다. ...

번역은 문화의 이동이자 새로운 문화의 탄생, 끊임없는 이접(移接)의 과정이다. 그것을 같게 하려는 순간 식민주의적 동화가 일어난다. 같음의 기준이 그 말의 원산지(대개 서구)이기 때문이다.  ...

여성 혐오는 분명한 현상이고 정확한 말이다. 문제는 미소지니가 여성혐오로 번역되면서 본뜻이 왜곡되는 한국의 남성 중심 문화다.  ...


(83) 미소지니는 대립 구도를 만들어내기 힘든 단어다. 그대로 수용될 수 있다. ...

혐오는 기본적으로 약자에 대한 강자의 감정이다. 이에 반해 약자는, 강자를 선망하고 동일시하고 시기하고 강자에게 분노하는 감정이 크다.


(84) 혐오는 특정 대상을 싫어하는데, 그 이유가 자기자신에게 있다. 자기 문제의 반영이자 합리화다. 혐오는 자신과 타인의 인간성을 훼손한다. 악플이 대표적이다. 이에 반해 분노는 자신을 억압하는 대상에 대한 정당한 판단이며 스스로를 격려하고 존중하는 힘이다. 

86

가난한 여성이나 장애인은 '어른'이 되기 힘들다. ...

'어른'의 존재를 당연시하는 심리는 가부장제 사회에 대한 향수 때문이다. 前근대적인 사고다. ... 

(서구사회) 대통령이 연애를 하든, 재혼을 하든 관심이 덜하다. ... 우리는 여전히 좋은 가부장을 원한다. ... 존경심과 더불어 안정감을 느끼고 의존하는 데 익숙한 듯하다. 

89

영혼이 육체를 벗어난 상태(Out of Body Experience, OBE)... 많은 이들이 수술 중에 육체 이탈을 경험하며 의식 불명 상태에서도 타인의 말을 알아듣는다고 한다. 

93

언어는 사전의 약속이 아니라 사회적 약속이다. 사전은 사회를 반영한다. ... 단어의 의미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94) 술자리에서 분위기를 깨는 사람은 성희롱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에 문제 제기 하는 사람이다. 

(95) '갑'들의 권리는 제도로 보장되어 있어서 가시적으로 폭력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

(99) 정의(正義)는 현실에 대한 분노와 고뇌에서 시작되지만 의리는 '情'에서 출발했다가 길을 잃는 심리구조다. ... 위험한 일이다. 의리는 본래 선별적으로 작동한다. '하나회', 학벌, 지역주의가 그것이다. 퇴행적 현상이지만 역설적으로 (의리의 김보성이 뜨고, 의리가 중요해진 사회) 세월호의 충격이 그만큼 컸다는 반증이다. 직업상 업무 수행을 의리라고 부르는 사회가 정상일까? 

106

좋은 글은 가독성이 뛰어난 글이다. ... 진정 쉬운 글은 내용(콘텐츠)과 주장(정치학)이 있으면서도 문장이 좋아서 읽기 편한 글을 말한다. ... 언어의 세계에 중립은 없다. 

(108) 쉬운 글을 선호하는 사회는 위험하다. 쉬운 글은 내용이 쉬워서가 아니라 이데올리기여서 쉬운 것이다. ... 새로운 사유의 등장을 가로막아 사이비 지식을 양산한다. 

115

모든 분업의 원리가 그러하듯 분업은 역할 분담이 아니라 위계의 시작이다. 이익의 불평등은 말할 것도 없고, 분업은 원시공동체 시절부터 신분제를 위한 물적 기반이었다. 

117

대중 매체, 학교, 기업, 정부, 사회운동, 논술 사교육 시장 모든 곳에서 "새롭게 생각하라, 상상력을 키워라, 혁신하라, 튀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새로운 것에 대한 추구, 이에 대한 사회적 압력과 강박이 오히려 상상력을 마비시킬 지경이다. 

(118) '다르게 생각하라.'는 정말 다르게 생각되어야 한다. 

(119) '주변'과 '중심'은 각자 다른 공간에서 일상을 보내며 '중심'은 안락한 삶의 유지와 영속을 위해 온 힘을 다한다. 그리고 대개 그것은 정상, 합리, 보편, 전통, 상식의 이름으로 정당화된다. 

123

인간과 자연이 맺는 관계 원리가 생명 유지일 때 자연은 공공재이지만, 이윤과 부의 축적이 사회조직 원리일 때 자연은 자원이 된다. 


(128~129) '순수한 우리말'이라는 담론이 야기하는 더 중요한 정치적 문제는, 이 논쟁 구도 자체가 한글이든 한자든 모든 언어는 다른 언어에 비해 배타적인 완결성이 있으며, 내부 균질성을 지닌다는 이데올리기를 전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인식 때문에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객관성, 보편성, 일반성, 전체라는 개념이 만들어진다. 사실 보편성은, 쉽게 말해 강자의 특수성에 불과하다. 

... 표준어는 객관성 신화의 대표 산물 ... 이처럼 '국어'는 중앙 집권적 국가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탄생한 대표적인 폭력의 산물이었다. 










Posted by 편집장 슈렉요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