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사에서 출판된 번역본. 번역자는 국내 최고의 불어번역가로 통하는 김화영 고려대 불문과 명예교수이다.



알베르 까뮈는 알제리 출신의 프랑스 실존철학자이다. 1913년에 태어나서 1960년에 죽었다. 요즘 연령으로 치면 일찍 죽었다. 만 47세를 살았지만, 죽기 몇 년전인 1957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그의 대표작은 <이방인>이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사회에는 실존철학이 유행했다. 알베르 까뮈나 사르트르를 비롯하여 그 선배인 독일 실존철학의 창시자 야스퍼스와 하이데거, 그리고 좀 더 올라가서 실존주의의 선구자인 키르케고르 등의 글이 많이 읽히던 시절이었다. 까뮈의 부조리(의 철학, 시지프스의 신화), 장 폴 사르트르(1905~1980)는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이다.", 카를 야스퍼스의(1883~1969)의 한계상황(Grenzsituation), 마르틴 하이데거(1889~1976)의 존재와 시간 (나중에 나치당원이 되기도 한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1813~1855)의 '죽음에 이르는 병', 그리고 아르투르 쇼펜하우어(1788~1860)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알베르 까뮈는 베스트셀러 소설책 <이방인>의 작가였기 때문에 다른 실존철학자들보다 친숙한 편에 속한다. 책 내용이 쉽지는 않다. 


평이한 내용이지만 평범하지 않은 내용이기때문에 그것을 부조리하다고 불리운다. 그래서 장 폴 사르트르는 이런 서평을 남겼다.  "<이방인>은 엄격한 질서를 갖춘 고전 작품으로, 부조리와 관련해서, 그리고 부조리에 맞서 쓰인 책이다." 롤랑 바르트는 이런 글을 평을 남겼다. "카뮈는 신화가 되었다. 그를 인정하느냐 안 하느냐는 이제 별 의미가 없다."


이제 소설 내용을 살펴본다.


뫼르소는 알제리에 사는 평범한 월급쟁이였다. 평범하지만 한가지 평범하면서도 평범할 수 없는 그의 특징은 자신의 감정에 매우 솔직하다는 것이었다. 사회적 관습이 요구하는 의례적 행동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기때문에 이후 그는 재판과정에서 사형을 선고받기에 이르른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는다. 어머니의 장례식에서도 슬픈 표정을 짓지 않았고 무덤덤하게 요양원의 장례식에 참석했을뿐만 아니라, 그 모친 장례식 다음날에는 해수욕장에 가고, 여자친구와 웃으며 밤을 니냈다. 그리고 다음 일요일에는 친구인 레몽과 그의 정부 사이에서 벌어진 분쟁에 휩쓸려가는 가운데 결국 메롱의 친구 마송의 오두막이 있는 알제 교외 해변에서 다툼의 과정을 거친 끝에 아랍인 한명을 살해한다. 그 까닭은 사실 뜨거운 태양 탓이기도 했지만, 뫼르소는 단 첫발에 만족하지 않고, "불행의 문을 두드리는 네번의 짧은 노크"처럼 네번 더 방아쇠를 당겼다. 


재판에 회부되었지만 뫼르소는 지나치게 솔직하고 무미건조할 뿐이었다. 오히려 국선 변호사가 안달이 나있었고, 자신이 주인공으로 등장한 연극을 공연하는 것처럼 나서고 있었다. 예심판사가 들이댄 십자가와 감옥으로 쳐들어온 가톨릭 신부의 신앙에 대한 요구도 뫼르소의 관심이나 감정과는 무관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뫼르소에게 감옥이 고통스러운 것은 '여자, 욕정, 담배, 그리고 잠' 뿐이었다. 그래서 민음사가 번역한 책의 89p에는 "그러한 불편들을 제외하면 나는 그다지 불행하지도 않았다."라고 되어 있다. 


<이방인>에는 이 책의 주제를 암시하는 모순으로 가득찬 삶의 어이없음과 슬픔에 대해서 감옥의 벽에 누런 벽지로 눌러붙은 신문 속에 등장하는 일화로 대신 설명하고 있다. 이 일은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일어난 일인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25년 만에 아내와 어린 아이를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온 사내는 부자가 되어 있었다. 그 사이에 그의 어머니와 누이는 동네 어귀에서 여관업을 하고 있었고, 장난기가 발동한 사내는 부인과 아이를 다른 여관에 남겨두고 혼자 엄마와 누나가 있는 여관에 숙박하면서 자신이 지닌 돈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욕심이 생긴 어머니와 누이는 밤 중에 그를 망치로 때려 죽이고 돈을 훔친 다음 시체를 강물 속에 던져버렸다. 아침이 되자, 사내의 아이가 찾아와서 영문도 모른 채 여행자의 신분을 밝히게 되었다. 어머니는 목을 맸다. 누이는 우물 속에 몸을 던졌다. (민음사 번역 <이방인> 책 90쪽)


하지만 주인공 뫼르소의 감상평은 매우 소박하다. 어떤 일이든 대단한 교훈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사형을 선고받은 자신의 처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뫼르소의 감정에 따른다면 위의 비극적인 이야기는 "있을 법하기도 하고, 있을 법하지 않기도 한 일이다." 그리고 그런 일이 있었다면, 그것은 "여행자의 책임도 있고, 그런 장난을 쳐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사형을 언도받고 난 이후의 감옥을 불쑥 찾아온 가톨릭 신부를 거부하는 뫼르소는 그 신부를 '몽 페레' (아버지, 신부님)라고 부르지 않고, '므시외'(~씨)라고 호칭한다. 기도하려는 사제를 움켜잡고 기도하지 말라고 욕설을 퍼부었다. 뫼르소에게는 아무 확신이 없었던 것이다.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고 서둘러 하느님 앞에서 고해를 해야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런 식으로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삶에 대한 확신도 없고, 죽음에 대한 확신도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소설의 끝문장은 "영웅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으면서 진실을 위해서는 죽음도 마다하지 않는" 뫼르소라는 인물의 최종 발언내용이 쓰여있다. 

모든 것이 완성되도록, 내가 덜 외롭게 느껴지도록, 나에게 남은 소원은 다만, 내가 사형 집행을 받는 날 많은 구경꾼들이 와서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 주었으면 하는 것뿐이었다. 



Posted by 편집장 슈렉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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