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19일 새 주교 선임을 위한 회의에서 하신 말씀
목자로 산다는 것
넓은 아량으로 환대하고 함께 걸으며 머물러야
“여러분 가운데에 있는 하느님의 양 떼를 잘 치십시오. 그들을 돌보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자진해서 하십시오. 부정한 이익을 탐내서 하지 말고 열성으로 하십시오”(1베드 5,2).
주교 여러분. 우리는 자신을 위해 스스로 목자가 된 것이 아닙니다. 착한 목자이신 그리스도처럼 우리에게 맡겨진 양 떼를 위해 생명을 바쳐 봉사하도록 주님에게서 목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요한 10,11)
양들을 보살피는 세가지 방법
양들을 날마다 늘 보살펴야 하는 것(교회헌장 27항)은 무슨 뜻일까요? 세가지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습니다. 1. 넓은 아량으로 환대하기, 2. 양 떼와 함께 걸어가기. 3. 양 떼와 함께 머물기입니다.
먼저 여러분은 남녀노소 모든 사람을 환대할 줄 아는 넓은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자문해야 합니다. ‘나는 나를 찾아오는 이들을 위해 현관문을 열어놓고 있는가? 아니면 닫아걸고 있는가?’ ... 선의와 사랑으로 모든 이에게 문을 열어놓는다면, 여러분의 집을 찾는 사람이 거기서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할 뿐 아니라 교회가 언제나 모든 자녀를 환대하고 사랑하는 좋은 어머니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양떼와 함께 걸어가기
넓은 아량으로 환대하는 것과 함께 걸어가는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모든 사람과 함께 걸어가기 위해 모든 이를 환대하는 것입니다. 주교는 자신에게 맡겨진 양 떼와 함께 그리고 그 양 떼 안에서 걸어가야 합니다. 더나아가 아버지처럼 기쁨과 희망, 고통과 슬픔을 그들과 나누면서 함께 걸어야 합니다. 함께 걷는 것은 사랑을 요구합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354~430)의 말씀처럼 “사랑의 섬김”은 우리의 것입니다.
특히 주교의 첫 번째 이웃은 교구 사제입니다. 여러분이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데 그 첫째 이웃이 사제입니다. 사제는 주교에게 반드시 필요한 협력자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사제에게 조언과 도움을 아끼지 말아야 하고 아버지, 형제, 그리고 친구처럼 그들을 돌봐야 합니다.
주교 여러분의 일차적 임무 가운데 하나는 사제들을 영적으로 돌보는 일입니다. 인간적인 도움을 주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특히 직무수행이나 일상생활에서 직면할 수 있는 어렵고 중요한 순간에 필요한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주교가 사제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결코 잃어버리는 시간이 아닙니다. 그들이 시간을 내달라고 할 때 기꺼이 응해주는 것, 사제의 전화에 일일이 응답하는 것은 여러분이 마땅히 해야 하는 값진 일입니다.
무시당하는 온갖 삶의 변두리로 내려가라
때로는 주교들이 너무 바쁘다는 이유를 들기 때문에 사제들의 주교를 만나기 어렵다는 푸념을 자주 하게 됩니다. 그러나 사제가 주교를 찾으면 주교는 바로 그날로 또는 적어도 다음날 전화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주교가 아무런 응답이 없다면 사제는 생각하기를 “주교님에게 나는 별로 중요한 사람이 아니야. 그분은 아버지가 아니라 직장 상사일 뿐이야!”라고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주교가 교구 안에서 백성(교구민)과 함께 머무는 것은 부차적인 게 아니라 필수적인 것입니다. 교구 안에서 교우들과 함께 하는 삶! 이것이 백성이 바라는 것입니다. 백성은 주교가 자신들과 함께 걷고 자신들 가까이 머무는 것을 보고 싶어합니다. 이것은 백성이 살아숨쉬고 움직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니 교우들 한가운데로 내려가십시오! 교구의 변두리로, 특히 아픔과 고독이 넘치고 인간의 존엄성마저도 무시당하는 온갖 ‘삶의 변두리’로 내려가십시오.
양의 냄새가 되는 목자가 되라
사목자로서 함께하며 머무는 것은 하느님의 백성과 함께 걸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느님의 백성 앞에서 그들이 나아가야 할 길을 가리키면서 걸어가는 것, 백성의 일치를 공고히 하기 위해 그 한가운데서 걸어가는 것, 아무도 뒤처지지 않게 하기 위해 그리고 하느님의 백성이 가진 후각을 뒤좇아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해 맨 뒤에서 걸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여러분은 ‘양의 냄새’가 나는 목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백성 가운데 머물고 양의 냄새가 나는 목자가 되어야 합니다.
주교가 사목자로서 백성과 함께 하며 머물면, 그 지역의 문화와 관습과 전통을 알게 될 뿐 아니라 주교 자신의 성덕도 더욱 깊어집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여러분의 양 떼 한가운데 잠겨야 합니다. 그렇게 양떼 한 가운데에 있으면서 양 떼를 향한 섬김의 자세는 겸손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또한 사목자로서의 본질을 고수하고 자신을 절제하는 것도 양 떼를 섬기는 데 필요한 요소입니다.
섬김의 자세는 군주같은 마음이 아니다
우리 사목자들은 교회와 혼인한 사람이기에 교회보다 더 아름답고 부유한 것을 갈망하는 야심가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런 야심을 품는 것 자체가 추문입니다. 그래서 사목자들은 ‘군주와 같은 마음’으로 행동해서는 안됩니다.
이렇게 가정해봅시다. “저는 혼인한 사람이고 아내와 함게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 아내보다 더 아름다운 저 여인에게 계속 눈길을 주고 있습니다. 신부님, 이것은 죄가 되나요?”
복음서는 이런 행위를 간음죄라고 규정합니다. ‘영적인 간음’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훨씬 더 아름답고 중요하고 부유한 어떤 것을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출세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출세주의는 암입니다. 우리는 말로만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증거로 우리 백성이 이끄는 스승이고 교육자여야 합니다. 신앙 선포는 가르치는 것에 부합하는 삶을 요구합니다. 선교 사명과 삶은 서로 분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이렇게 자문해야 합니다.
“내 삶은 내가 가르치는 것에 부합하는가?”
환대하기와 함께 걸어가기에 이어지는 세 번째 요소는 양 떼와 함께 머물기입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부동성(不動性)입니다. 이것은 정확하게 두가지 양상을 지닙니다. 첫째는 착한 목자의 임무에 충실하기 위해 ‘교구’에 ‘머무는 것’이고, 둘째는 자신의 교구에 대해서는 어떤 변화나 발전을 위한 노력도 하지 않은 채 다른 교구에 머무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신의 교구에 머물지 않는 목자는 자신의 양 떼를 제대로 알아볼 수도 없고, 양 데 앞에서, 한가운데서, 뒤에서 걸을 수도 없으며, 성사 집행과 삶의 증거와 가르침으로 양 떼를 돌볼 수도 없습니다.
상주는 신학적인 근거에 따른 요구이다!
이런 맥락에서 목자에게 상주(常住, 항상 살고 있음)의 의무를 부과한 트렌토 공의회의 결정은 오늘날에도 유효합니다. 현대는 인터넷 시대입니다. 쉽게 이동하고 여행도 자유로운 시대입니다. 하지만 상주의 의무를 요구하는 오래된 법률은 유행을 타는 것이 아닙니다. 상주는 “훌륭한 사목적 통치를 위하여 타당하고도 필요한” 것입니다. 물론 다른 지역 교회나 보편 교회를 위해 자신의 교구를 떠나야 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습관적으로 반복돼서는 안되며, 교구를 떠나야 할 때도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동안이어야 합니다.
상주는 실용적인 요소만 포함된 것이 아니라 신학적인 근거에서 요구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신랑으로서 그 공동체와 내적으로 깊은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백성과 함께 머물고 또 머물러서 ‘공항주교’라는 추문을 들어서는 안 됩니다! (공항주교. 자기 교구를 떠나 다른 곳으로 가기 위해 공항에 자주 나타나는 주교)
주교의 유머감각은 주님께 청해야 하는 은총
여러분은 애정과 자비로, 아버지의 강직함과 어머니의 부드러움을 겸비한 태도로, 그리고 겸손하면서도 사려깊은 마음으로 하느님의 백성과 함께 걸으면서 백성을 환대하는 목자여야 합니다! 또한 자신의 한계를 볼 줄 알아야 하고, 유머를 구사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특히 유머는 우리 주교들이 주님께 청해야 하는 은총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 저에게 유머감각을 주십시오.”하고 청해야 합니다. 유머를 나눌 때는 먼저 우리 자신에 대한 것을 말하고 그 다음으로 다른 사람이나 다른 것에 대해 재치있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러분의 양 떼와 함께 머무르십시오!
트렌토 공의회
프로테스탄트의 새로운 신학이론으로 인한 혼란 속에서 가톨릭교회의 정통 교리를 정리하기 위해 이탈리아 북부 트렌토에서 1545~1563에 열렸던 공의회로 여러 개혁 교령이 반포되었다. 이 교령들은 교회 자체 개혁의 발판을 마련하여 제 2차 바티칸공의회가 열리기까지 400년간 교회생활의 든든한 바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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