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역사학의 일반 개념
1. 역사의 정의 ⑴ 어원적 정의
역사歷史를 뜻하는 라틴어는 Historia, 영어는 History라고 한다. 그 유래는 그리스어 히스토리아 ἱστορία (Historia)에 있다. 이를 풀어서 말하면, 연구, 탐구, 조사 등을 의미한다. 즉, 인간이 남겨놓은 행위가 시간과 함께 소멸 消滅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저자 著者가 조사한 내용을 말한다. 또한 역사는 연구의 결과를 말하기도 한다. 포괄적으로 말하면 역사는 '지식'이며 '학문'이 된다. 폴리비오스(Polybios, BC 203~120 추정)가 저술한 『역사』(Historia)에서의 정의는 ‘과거에 대한 지식’이라는 되어 있다.
헬레니즘 시대의 폴리비오스는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이다. 헤로도토스, 투키디데스와 함께 고대 희랍의 3대 역사가로 손꼽힌다. 다만 그리스 고전기(BC 510~323)의 헤로도토스(BC 480~420 추정), 투키디데스(BC 465~400 추정)에 비하면 270여년 쯤 후대의 인물이다. 그래서 폴리비오스가 활동하던 당시의 그리스는 헬레니즘(BC 323~146) 시대와 로마의 정복(BC 168년)과 마케도니아의 멸망(BC 146)에 따라 로마의 지배(BC 146~AD 330, 로마제국 시대의 그리스)를 받던 두 시대에 걸쳐 있다. 그러니까 전쟁으로 얼룩진 시대적 전환기 속에서 살던 인물이었다. 그는 전쟁 중 포로가 되어 로마로 끌려갔지만, 학자로서의 대접을 받으면서 로마 귀족들과 친분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 시절에 망해가는 조국 그리스와 달리 번영해가는 로마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책을 서술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그의 명저 『역사』(Historia)는 BC 220부터 146년까지 75년간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문명의 전환기를 살았던 폴리비오스는 자신에게 명성을 안겨준 40권짜리 『역사』(Historia)를 통해서 로마가 서양문명의 주인으로 등장하는 과정을 기술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래서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가 살던 그리스 고전기와 달리, 폴리비오스가 살던 시대의 그리스어권 세계는 완전 딴판이었다. 아테네가 문명의 중심이 아니었던 것이다. 헬레니즘 문명의 가장 중요한 도시는 알렉산드리아와 안티오케이아(안티오키아)였다. 각각 이집트와 시리아의 도읍이었다. 그 시대는 알렉산드로스 왕이 지중해문명의 패권을 잡은 뒤의 시대였던 것이다. 기원전 336년, 만 20살의 나이로 마케도니아의 왕이 된 알렉산드로스 왕(영어명 알렉산더, 아랍명 이스칸다르)이 33세(BC 323년)로 단명할 때까지 13년간의 정복전쟁으로 유럽 지중해문명의 양상은 전혀 새로운 형태로 바뀌었다. 역사적으로 알렉산드로스 왕이 죽은 기원전 323년을 헬레니즘 문명의 시대로 정의내리고 있다. 바로 폴리비오스가 살던 전반기 시절이었다. 기원전 203년에 태어난 폴리비오스가 만 57세까지 살던 시대였으며, 그 이후의 후반부 26년간은 그가 죽던 83세까지로 로마제국의 지배기로 구분된다.
여기서 폴리비오스의 역사관을 좀 더 언급해보면 다음과 같다.
... 정치활동을 위한 가장 건전한 교육과 훈련은 역사 연구이며, 운명의 변천을 용감히 견뎌내는 방법을 배우는 가장 확실하고 유일한 방법은 다른 사람들의 재난을 돌이켜보는 것 ...
1. 역사의 정의 중 (1) 어원적 정의 (끝)
1. 역사의 정의 ⑵ 내용적 정의
오늘날 ‘역사’의 내용적 정의는 무엇일까? 과연 “역사란 무엇인가?” 오늘날 답변도 '과거에 대한 지식'인 것일까? 거기에 '인간'을 더해서 “역사란 인간의 과거에 대한 지식”이라고 말하면 될 것인가? 우선 서양의 근대 역사학의 아버지인 랑케(1795~1886)는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중요시했다.
『역사란 무엇인가』의 저자 E.H. 카아(Edward H. Carr· 1892~1982)는 랑케로 독자적 연구영역으로 독립시켰던 역사학을 철학, 정치학, 사회학 등의 학문와 교류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이다.'라고 말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가톨릭 교리신학원의 책 '세계교회사'(비매품)의 제 1장 ‘역사학의 일반적 개념’은 김성태의 『세계교회사 Ⅰ』(성바오로, 1986) 15~86쪽을 인용한 문헌이다. 그리고 김성태의 『역사 안의 교회- 교회사 논문선집』(분도출판사, 1985), 11~25쪽도 참고하라고 되어 있다. 아무튼, 교재가 정리한 역사의 내용적 정의는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① 첫째로, 역사지식은 연구, 탐구, 조사를 통해 얻어진 결과라는 사실을 의미하기 위해 사용됐다. 그리고 이 지식은 논리상 정당하고 확실한 근거가 있는 참된 지식, 다시 말해서 진리를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② 둘째로, 역사지식의 대상은 과거이다. 이 때, 과거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역사지식의 대상에서 현재와 미래를 제외시켰다. 현재는 역사지식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엄밀하게 현재는 순간순간 연속적으로 과거로 편입되어 묻히지만 역사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지만, 아직 혼돈상태로 원인과 결과가 혼재하고 거미줄처럼 얽인 상태에서는 충분히 심사숙고할 수 없고, 객관적으로 판단을 내리기에 적합지 않다. 진정한 의미의 지식이란 합리적으로 정돈된 종합적 파악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③ 셋째로, 역사는 과거에 대한 지식이다. 그러나 이는 모든 과거에 대한 지식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는 다만 인간의 과거를 취급한다. 또한 여기서 말하는 인간의 과거는 ‘인간적 과거’이다. 인간적이란 단어는 인간을 동식물과 구별하여 인간만이 소유한 특성, 즉 사물의 이치를 따져 깊이 생각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음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는 것이다. 이러한 능력을 통해 인간은 스스로 인간화를 추구하며 이러한 노력은 문화와 문명이라는 표현으로 집약되었다. 따라서 과거의 문화문명만이 역사의 대상이 될 수 있으며, 역사를 ‘과거의 문화에 대한 지식’이라고 정의하게 된다.
1. 역사의 정의 중 (2) 내용적 정의 (끝)
2. 역사학의 전제개념
역사란 역사진리 歷史眞理를 발견하는 데 의미가 있다. 그런데 역사진리는 다른 학문과 비교하면 그 대상 자체가 상대적이고 종속적이며 잠정적 특징이 있다. 가변성이 매우 크다는 뜻이다. 오늘은 진리일 수 있지만 내일은 그렇지 않다는 말이기도 하다. 허위가 될 수 있는 역사진리는 다만 현재 진리로 존재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오늘까지의 역사진리가 비록 내일 수정되더라도 현재의 역사가가 최선을 다하여 역사의 가능성 안에서 역사를 서술하였다면, 그것은 지금의 역사진리가 되고 그에 합당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 이를 바탕으로 역사는 역사사실을 결정하게 되는데, 이는 두가지의 전제, 즉 과거의 사실이어야 함과 동시에 문서나 비문 등의 흔적으로 남아있는 것만을 통하여 결정된다.
3. 교회사의 의미 ⑴ 교회사와 일반 역사
교회사는 하나의 역사학으로서 연구방법의 기본적 원리와 작업은 일반 역사학과 동일하다. 교회, 구체적으로 그리스도교는 ‘역사종교’로서 추상관념이 아니라 구체적 사실이다. 그런데 교회사의 연구대상인 교회는 신앙의 신비체 神秘體이므로 마지막 연구단계에서는 오직 신앙에 의해서만 파악될 수 있다. 따라서 교회사는 ‘신앙의 학문’이며 신학의 일부로서 과학적이 아닌 사고방식, 즉 신학적인 특수 연구방법과 종교적 마음가짐을 전제한다. 교회사는 교회에 대한 신학적 개념을 채용할 뿐 아니라 교회에 대한 역사적이고 신학적인 문제들을 제기하고,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신학적 답변을 추구하는 학문이다.
3. 교회사의 의미 ⑵ 교회사 연구의 양면성
교회사는 과학적 방법을 통하여 얻어진 과거 교회에 대한 지식이다. 그러나 역사가는 교회와 사회의 다양한 현상들 사이의 본질적인 차이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교회가 신인 神人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신적 神的인 동시에 인적 人的인 실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교회는 인간적 한계성과 인간의 공과 功過를 지니고 행동하는 구성원이 성령의 감도 感導를 받으면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운영하는 조직체이다. 그러므로 교회사는 하느님의 나라가 그리스도의 성령과 보호 아래에서 그 내적인 발전과 외적 성장을 통하여 지상에 실현되는 과정을 밝히는 학문이다.
3. 교회사의 의미 ⑶ 교회사 연구의 필요성과 연구자세
교회사는 교회의 참된 본질과 특성을 이해하는 데 가장 적합한 수단이다. 교회사를 통해 얻은 지식이 교회에 대한 올바른 개념을 제시하는 데 필요불가결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교회사는 과거의 교회상을 제시함으로써 이상적 교회와 현실의 교회가 얼마나 다른 지를 알려주며 또한 호교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하지만 교회사 연구는 객관적 자세로 임해야 하며, 지나친 호교사 입장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그러한 의미에서 교회사가 敎會史家는 역사 안의 객관적 사실들을 미지 未知의 타자 他者와의 만남으로 받아들이며 역사 대상을 존중하고 비판의 절제된 감성들을 공유해야 한다.
4. 교회사 연구의 문제점 ⑴ 역사진리와 종교진리의 모순성
종교진리와 역사진리 사이에서 때때로 일어나는 마찰은 흔히 있을 수 있으며 특히 2가지 혼동에서 발생된다. ① 첫 번째 혼동은 역사진리에 있어서 학문적으로 이룩된 결론, 즉 학문적 역사진리와 아직 완전하게 규명되지 않은 역사 가설 사이에서 발생한다. ② 두 번째 혼동은 종교진리에 있어서 신의 계시인 신앙의 진리와 교회의 불확실한 전통적 견해 사이에서 일어난다. 여기서 역사 가설은 신앙의 진리에 모순될 수 있으며, 학문적 역사진리는 교회 안에서 선의로 전승된 불확실한 견해에 상반될 수 있다. 그러나 학문적 역사진리와 신앙의 진리 사이에는 모순이 있을 수 없다.
4. 교회사 연구의 문제점 ⑵ 교회사와 역사신학
교회사는 순전히 인간의 작업만도 아니고, 신의 역사 役事만도 아닌 공동 작업이다. 따라서 교회사가 敎會史家는 양자를 종합, 단일화하여 신적 측면에서 연구할 수 있다. 이것이 인류의 발전 과정을 신적 관점에서 설명하고 제시하는 역사 신학이다.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는 앞서 이야기했듯이 신적인 요소와 인적인 요소라는 양면성을 지니기에 신적 성격 때문에 어떠한 잘못된 신성하지만, 반대로 인적 요소 때문에 오류와 죄악까지도 존재할 수 있다. 따라서 교회사가 敎會史家가 교회의 역사적 과오를 지적하는 것은 신자로서 잘못을 범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언급해야 하고 또 마땅히 서술해야 하는 것이다.
5. 가톨릭적 의미의 교회사
교회의 역사에 대한 개념은 신학적 임의任意를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역사가들은 교회사에 대해서 여러가지 정의를 제시하고 있다. 특히 개신교와 가톨릭 교회의 교회사 개념에는 다양한 갈래길이 존재하는 데, 그 까닭은 교회론 문제에 대한 차이점에서 유래한다. 가톨릭의 교회 역사서들은 철저히 가톨릭 교회에 제한되어 있다. 그래서 그 교회사 개념은 가톨릭 교회의 발전 과정에 대한 서술로 규정되며, 근거는 가톨릭 신앙의 교회론에 있는 것이다.
세계교회사(가톨릭교리신학원, 이영춘, 2003 초판)
1장. 역사학의 일반적 개념
2장. 사도시대의 그리스도교
3장. 사도시대 이후의 그리스도교
4장. 로마제국시대의 그리스도교
5장. 고대에서 중세로의 과도기
6장. 중세 전기의 그리스도교
7장. 중세 후기의 그리스도교
8장. 중세에서 종교개혁으로의 과도기
9장. 종교개혁시대
10장. 종교개혁 이후의 가톨릭교회
11장. 현대 가톨릭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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