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관복음과 사도행전 제2강의
예언자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제목: 허규 베네딕토 신부님 강의 2교시
일시: 2015/8/22 토 오전 9:55~10:40
장소: 가톨릭교리신학원 지하강당(서울 혜화동)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마태 5,7-8)
율법을 완성하러 오신 예수님
(10:00 시작) 「마태오 복음」은 예수님 모습을 어떻게 이야기 하냐면, 이 세상에 율법을 완성하러 오신 것처럼 묘사됩니다. 그래서 이 세상이 사라질 때까지 율법의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는 겁니다. 되죠. 예를 들면 구약성경에서부터 있어온 율법이란 것에는 하느님의 뜻이 담겨져있고, 그 율법을 지키는 것 역시 중요한 일이라는 게「마태오 복음」에서 전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강조하는 가장 큰 이유는 「마태오 복음」을 읽는 사람들이 구약성경을 기반으로 구약성경의 내용을 알고 그렇게 살아가는 유다인들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율법이 중요하다는 걸 강조하는 겁니다.
율법의 핵심은 하느님과 이웃 사랑
물론 바오로 사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신약성경에서 율법이 필요없다고 하거나 나쁘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단지 조심하라고 하는 것은 단지 문자 그대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겨 있는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예수님의 가르침인 겁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계명은 딱 한가지입니다. 무엇입니까? 바로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겁니다. 그 가르침이 예수님이 만들어낸 것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온 힘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하는 말은 「신명기」에 나옵니다. 그리고 '너의 이웃을 잘 돌보아라.'는 말은 「레위기」에 등장합니다. 물론 문맥상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 표현들은 모두 구약에, 율법서에 담겨있는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걸 가져다가 다시 한번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강조한 것이지 율법이 필요없다고 말씀하신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십계명을 지킨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계명이라고 하는 것은 그 말마디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아는 것도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서 3계명, 「주일을 지켜라」에 담긴 뜻은 무엇일까요? 미사를 가라는 건가요? 물론 미사를 가는 것도 중요합니다. 주일은 뭐죠? 엿새동안 일했으면 하루는 쉬어야 한다는 뜻이죠. 그래야만 또 다시 일을 할 수가 있고, 또 그 힘으로 살아갈 수가 있죠. 예를 들어서 주일에 잘 쉬었어요. 집에서 먹고 자고 뒹글뒹글하고, 그리고 주일에 미사를 가지 않았어요. 그러면 어떻게 되죠? 「주일을 지켜라」라는 계명을 잘 지킨 것일까요? 그런데 그 반대로 새벽에 주일미사를 갔어요. 그리고 집에서 하루 종일 싸웠어요. 배우자와 싸우고 애들이랑 싸우고 집을 나가고 그랬다면 주일을 지킨 건가요? 우리가 쉬는 것과 함께 하느님에게 감사하는 것이 「주일을 지켜라」라고 하는 말마디에 담긴 뜻이라는 겁니다. 미사를 갔다 오는 것이 형식적으로 중요하겠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말의 의미를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십계명】이 모두 그렇습니다. 십계명이 아닌 다른 무엇을 해야 한다는 것 역시 그런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런 의미들을 좀 더 찾을 수 있다면, 좀 더 풍성하게 그런 것들을 지켜나갈 수 있을 겁니다.
기원 후 80년경 쓰여진 마태오 복음
그래서 예수님은 「마태오 복음」안에서 율법을 가져다주고, 완성하는 분으로 이야기됩니다. 그래서 그런 것이 「마태오 복음」이 가진 특징이고, 이것은 구약성경에 익숙하고 유다교를 아는 이들을 위한 것인데, 이 복음서가 쓰여진 시기는 아마도 기원후 80년경으로 추정합니다. 숫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것보다는 마태오복음이 이런 것이란 걸 아는게 더 중요합니다. 「마태오 복음」은 담화나 설교를 아주 특징적으로 묶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치 모세처럼, 율법을 가르쳐주는 사람처럼「마태오 복음」에서는 표현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그러므로 하늘 나라의 제자가 된 모든 율법 학자는 자기 곳간에서 새것도 꺼내고 옛것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 (마태 13,52)
「마태오 복음」13장 52절에 표현되어 있는 것처럼, '자기 곳간에서 새것도 꺼내고 옛것도 꺼내주는' 그래서 새것과 옛것을 모두 가르쳐주고 해설해주는 율법학자처럼 그렇게 드러내고 있는 겁니다. 예수님이 지닌 여러 모습 중에서 특별히 「마태오 복음」이 강조하고 있는 모습은 율법학자와 같은 모습입니다. 사름들에게 가르쳐주고,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뜻을 가르쳐주는 사람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이죠.
예수님께서 이 말씀들을 마치시자 군중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그분께서 자기들의 율법 학자들과는 달리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마태 7,28-29)
마태오가 강조한 예수님의 모습은 '율법학자'
그 다음에 볼 수 있는 것은 7장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들을 마치시자,'에서 나오는 말씀은 5장부터 시작된 산상설교의 말씀들입니다. 군중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랍니다. 다른 율법학자들과 달리 권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죠. 이렇게 표현된 군중들의 반응, 사람들이 생각한 예수님의 모습이 바로 마태오가 전해주고 싶은 예수님의 모습인 것입니다. 「마태오 복음」은 마치 율법학자처럼, 새것과 옛것을 해석해주는 분으로 우리에게 예수님을 소개시켜 주고 있습니다. 다른 여러가지 모습 중에서 율법학자같은 모습을 마태오는 강조하는 것입니다. 특히 다음의 다섯가지는 특별히 예수님의 '가르침'을 모아놓은 곳이니다.
예수님 말씀을 모아놓은 다섯 군데
① 5장에서 7장까지는 산상설교 부분이고, ② 10장은 파견설교라고 이름붙일 수 있는 부분이죠. 예수님이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어떻게 해야하는 지 알려주는 부분입니다. 또 ③ 마태오 13장은 비유만 모아놓았습니다. 그리고 ④ 18장은 제자들을 향해 공동체가 무엇인지 설명하고, ⑤ 23-25장은 우리가 잘 알듯이, 예수님이 나중에 다시 오실 때 일어날 일들. 재림과 심핀에 대힌 내용을 따로 모이놓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가지 내용 중에서 「마태오 복음」은 예수님의 말씀을 모아놓은 이러한 형태로 구분할 수 있겠습니다.
마태오 복음이 전해주는 몇 가지 특징
「마태오 복음」이 전해주는 몇가지 특징을 살펴봅니다. 「마태오 복음」은 족보로 시작된다고 말했습니다. 족보로 시작하는 「마태오 복음」은 새로운 역사의 시작인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질문을 한가지 던지겠습니다. 예수님의 족보를 담고 있는 족보는 2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당연히 「마태오 복음」이고, 다른 하나는 「루카 복음」입니다. 그런데 제가 다른 곳에서도 이와 비슷한 강의를 하는 데 질문을 받았습니다. "신부님, 「루카 복음」에는 아무리 찾아도 족보가 없는데요?" "그럴리가 없는데요? 있어야만 하는데요?"라고 했어요. 「마태오 복음」이 나오는 그 자리에 없는 건 맞습니다. 「루카 복음」에는 3장에 있습니다.
마태오와 루카가 전하는 족보가 서로 다른 까닭
그런데 「마태오 복음」에 나오는 족보와 「루카 복음」에 나오는 예수님 족보는 서로 다릅니다. 이것은 복음을 낭독할 때 들어서는 파악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마태오가 전하는 족보의 의도와 루카의 의도가 다르기때문입니다. 「마태오 복음」은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다윗의 이들인 예수그리스도의 족보의 시작이잖아요. 그래서 여기서 제일 처음 시작되는 사람은 아브라함입니다. 그래서 「마태오 복음」이 전하는 족보의 시작은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되는 족보입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은 누구인가요? 믿음의 조상이죠. 아브라함은 유다인에게 처음 하느님을 알려준 사람입니다. 그리고 처음 계약을 맺은 인물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하느님의 약속이 전해진다고 생각한 것이 이스라엘 사람, 유다인들입니다. 그래서 저들의 생각에는 아브라함의 혈통이어야만, 아브라함의 육체적 자손이어야만 그 약속을 받는다고 보았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마태오에서 전해주는 아브라함의 족보는 유다인과 관련이 되어 있습니다.
루카는 예수님으로부터 거슬로 올라간다
그러나 루카는 시작을 예수님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 거슬러 올라가는 데 그 족보의 끝에는 '아담'이 있습니다. 그 아담은 누구입니까? 첫 인간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하는 족보와 아담으로부터 시작하는 족보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되는 족보는 이스라엘 사람과 관련된 것이지만, 아담으로부터 시작된 족보는 그것보다 전망이 훨씬 더 큽니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 창조물인 모든 사람들에게 하느님 약속이 전해진다고 루카가 본 것입니다. 그러나 마태는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마태오의 독자와 루카의 독자는 확연하게 구분이 됩니다. 왜 족보에서 보면 예수님께서 새로운 역사의 시작을 하는 인물일까요? 우선 「마태오 복음」에 나오는 족보를 보면, ① 아브라함으로부터 다윗까지, ② 다윗에서 여호야킨까지 그리고 ③ 여호야킨에서 예수그리스도까지 나누어 전해줍니다.
새롭고 완전한 시대를 열어가는 예수님
그런데 복음서에서 이야기하기를 ① 아브라함으로부터 다윗까지가 14대, ② 다윗에서 여호야킨까지가 14대, 그리고 ③ 여호야킨에서 예수까지도 14대입니다. 그것은 마치 14명의 이름을 세 번씩 전해주는 형태입니다. 이것을 조금 더 구분하면 【7×6】이 됩니다. 즉, 【14×3】은 【7×6】의 형태로 바꾸어 설명이 됩니다. 그러면 「마태오 복음」이 전해주는 족보는 다윗에 이르러서 다시 다윗부터 셈을 합니다. 그리고 여호야킨에 이르러 다시 여호야킨부터 셈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7×6】의 형태가 되는 겁니다. 그러면 복음서는 그게 족보의 끝입니다. 【14×3】으로 끝이 납니다. 그런데 만약에【14×4】의 족보를 시작한다면 누구로부터 시작할까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래서 실제로 그렇게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마태오 복음」이 족보 다음에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7×7】의 세대를 새로 시작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7은 상당히 중요합니다. 그래서 일곱번째 세대를 시작하는 인물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은 '완전한 세대를 시작하는 인물'이란 의미도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마치「마태오 복음」이 전해주는 족보는 새로운 시대를 완전한 시대를 열어가는 예수님을 전해준다는 겁니다.
"주님께서 예언자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마태오 복음」에서 전하는 예수님은 새롭고 완전힌 시대를 시작하는 인물로 전해지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마태오 복음」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구약성경의 내용을 실제로 성취하고 이루어가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특별히 「마태오 복음」의 1장과 2장의 탄생부분을 보면, "주님께서 예언자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라는 표현들을 많이 사용합니다.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1,22) 그들이 헤로데에게 말하였다. “유다 베들레헴입니다. 사실 예언자가 이렇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2,5) 헤로데가 죽을 때까지 거기에 있었다.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내가 내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었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2,15) 그리하여 예레미야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2,17) 나자렛이라고 하는 고을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이로써 예언자들을 통하여 “그는 나자렛 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2,23)
마치 예수님의 탄생을 이미 구약성경에서 예언자들이 모두 예언해 놓은 것처럼, 바로 그 예언자들이 이야기한 사람이 '이 사람이다'라고 우리에게 강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왕으로 오신 예수님
또 다른「마태오 복음」 특징은 왕으로 이 세상에 오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사람들, 유다인들에게 왕이란 말은 각별한 것입니다. 그들은 지금도 메시아를, 구세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들이 예전이나 지금이나 생각하는 것은 다윗처럼 실제로 히느님이 보낸 훌륭힌 왕이 와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편안하게 다스릴 것이란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말을 '왕'이란 단어로 나타낸 것입니다. 그래서 그 '메시아'란 말을 번역한 말이 '그리스도'이고, 우리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유다인들은 지금도 실제적으로 왕으로 오는 구세주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태오는 그렇게 유다인들에게 구약부터 기다려온 왕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동방박사의 경배에 담긴 뜻
그리고 그것을 단적으로 표현한 사례가 바로 동빙박사의 이야기입니다. 동방에서 찾아온 박사 세명이 아기 예수님을 찾아가서 무릎을 꿇어서 경배를 합니다. 그리고 뭔가를 줍니다. 선물으로 황금, 몰약, 유약이란 걸 주죠. 그렇게 무릎을 꿇어 경배하는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국가 원수를 만날 때나 하는 일이죠. 그러니까 왕을 만났을 때 하는 행동을 동방박사들이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마태오 복음」은 구약성경에서 계속 예언되었던 인물이 바로 아기 예수님인데, 동방박사의 모습을 보면 이 아기 예수가 바로 너희가 기다리던 왕이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모세의 모습을 우리에게 함께 전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다윗 왕의 후손'으로 부르는 까닭
그 다음에 「마태오 복음」에서 우리가 다음으로 볼 특징은 예수님을 어떻게 부르는 지입니다. 먼저 '다윗의 아들'이란 표현은 유다인들에게 상당히 중요한 표현입니다. 유다인들의 생각에는 구세주는 다윗 왕의 후손 중에서 실제로 다윗 왕과 같은 사람이 나온다는 구약성경의 생각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임마누엘'이란 표현도 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임마누엘'은 히브리어인데, 지금도 성지순례가면 쓰여있는 히브리말이죠. 흥미로운 것은 발음 중 우리말과 똑같은 말이 바로 '아빠'입니다. 그러면 히브리어로 '엄마'는 뭘까요? 히브리어로 아빠는 '아빠'이고 엄마는 '임마'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표현이 거의 똑같습니다. 아빠, 임마. 비슷합니다. 어쨌거나 '임마누엘'이란 표현은 구약성경에서 많이 사용하던 표현입니다. 그렇게 「마태오 복음」은 그런 표현들을 써서 우리에게 예수님에 대해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서는 예수님이 율법힉자처럼 사람들을 가르치는 분이라는 언급은 앞서서 했습니다.
마태오는 '실천'을 강조했다
그리고 「마태오 복음」이 강조하는 것은 실천입니다. 유난히 '실천'을 강조하는 복음서입니다. 듣고 이해만 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실천하라는 걸 잘 나타내는 게, 「마태오 복음」인데요. 특히 7장에서 보면 '주님 주님 부른다고 되는 게 아니라, 너희가 실천을 해야만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마태 7,21)
하늘 나라에 들어가려면
그리고「마태오 복음」 5장 17절부터 20절과 25장 40절의 내용은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과 율법(마태 5,17-20)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 나라에서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마태 25,40)
산상설교 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가르치십니다. 이 중에 있는 가장 별볼일 없는 자에게 사랑을 실천하는 게 중요하다는 겁니다. 그 내용이 「마태오 복음」끝부분에 다시 한번 등장합니다. 바로 25장의 내용인데요. 보통 우리가 장례미사 때 많이 듣는 내용입니다. '네가 나 아플 때 찾아오고, 헐벗었을 때 입을 것을 주고 목말랐을 때 물을 주었고...' 그런 내용입니다. 그래서【공관복음】라고, 첫 부분에 등장하는 산상설교의 내용을 뒤에서 다시 한번 그대로 소개하면서, 그 만큼 율법을 실천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부분입니다.
마르코 복음 입문
마르코복음의 상징은 사자
가톨릭교리신학원 통신신학교육부 2단계 1학년(3학년)의 하계연수 오전 2교시 장면. 2015년 8월 22일(토) 서울 혜화동 가톨릭교리신학원 지하강당. 오전 10시34분 촬영. 강의를 맡은 신부님은 쉽고 분명하게 강의하셨기에 오전시간은 매우 유익했다.
이제 「마르코 복음」을 볼 차례입니다. 「마르코 복음」은 일반적으로 사자를 상징으로 씁니다. 왜 사자일까요? 아까 「마태오 복음」가 사람이라고 했죠. 그 까닭은 인간의 육적인 족보를 나타내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마르코 복음」은 사자입니다. 복음서의 처음을 보면, 세례자 요한이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것으로 '사자'에 비유합니다. 실제로 사자는 밀림이 아닌 광야에서 사는 동물이고, 울부짖는 소리를 비교하기 위해서 「마르코 복음」은 '사자'라는 동물로 이야기합니다.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 이사야 예언자의 글에 "보라, 내가 네 앞에 내 사자를 보내니 그가 너의 길을 닦아 놓으리라."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기록된 대로, 세례자 요한이 광야에 나타나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다. (마르코 1,1-4)
마르코는 베드로의 통역자
「마르코 복음」하면 제일 유명한 곳은 베네치아에 있는 성 마르코 광장이란 곳입니다. 거기에 마르코 성당에 가본 사자가 네 마리가 있습니다.「마르코 복음」의 저자는 전통적으로 마르코입니다. 그러면 마르코는 누구일까요? 파피아스 주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르코는 베드로의 통역자였다. 그는 주님의 말씀과 행적을, 비록 순서대로는 아니지만, 기억나는대로 정확하게 기록하였다. 베드로는 필요에 따라 주님의 가르침을 전달했으나 주님의 말씀들을 종합하지 않았다. 그렇게 마르코는 기억나는 대로 기록하면서 오류를 범하지 않았다. 그는 실로 자신이 들었던 것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자신이 기록한 것 가운데에 조금도 거짓이 없고자 하는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파피아스 주교가 기록을 남겼습니다.
베드로와 바오로가 죽은 후에 남긴 이야기
또한 이레네오 주교 역시 비슷하게 내용을 전해줍니다. "베드로의 제자요, 통역자였던 마르코는 베드로와 바오로가 죽은 후에 베드로의 설교를 기록해서 우리에게 전해 주었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파피아스 주교와 이레네오 주교의 이 얘기를 종합하면, 마르코라는 인물은 베드로와 함께 있던 인물입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왜 통역자가 필요했을까요? 베드로는 이스라엘 사람이고, 갈릴래아에서 고기잡이하던 인물이지요. 그런데 실제로 신약성경 내용이 대부분 연관된 지역은 복음서를 제외하면 갈릴래아 지역이 아니라 그리스와 소아시아 지방입니다.
복음을 제외한 신약의 무대는 그리스와 터키
지금으로 말하면 그리스와 터키 지역입니다. 그곳이 복음서를 제외한 다른 책들과 거의 관련이 있습니다. 바오로 서간을 볼까요? 바로오가 처음 선교를 하면서 간 곳이 바로 터키 지역과 그리스 지역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알고 있는 에페소, 테살로니카, 코린토 이런 곳들이 모두 그리스에 있는 땅들입니다. 그리고 요한묵시록에 일곱교회가 나오잖아요. 그 지역은 모두 터키땅, 당시 소아시아 지역에 있던 겁니다. 그래서 결국 나중에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이후에, 사람들에게 선교를 했던 가장 큰 지역은 그리스와 소아시아입니다.
그리스어가 공용어로 쓰이던 시대
그리스에서 사람들이 무슨 말을 쓰죠? 그리스 말 씁니다. 소아시아 지역에서는 무슨 말을 쓰죠? 그리스말을 씁니다. 당시 그리스와 로마의 세력이 바뀔 때입니다. 세력이 바뀔 때이기에, 그리스는 점점 몰락해가고, 로마라고 하는 제국이 굉장히 강하게 부상을 할 때입니다. 그러면 한동안 그 지역을 통치하던 그리스와 새롭게 그 지역을 통치하던 로마가 있습니다. 그러면 이들은 어떤 말을 씁니까? 그리스어와 로마의 언어였던 라틴어를 쓸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당시 그리스와 소아시아 지역은 그리스어를 쓰고 있었습니다. 세월이 바뀌고 있지만, 아직까지 사람들에게는 그리스어가 더 많이 사용되던 시절이었습니다.
쓰고자 하면 그리스어로 써야 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가 무엇인가를 그들에게 전달하고 싶으면 그리스어를 써야 합니다. 편지를 쓰고 싶어도 그리스 말을 써야 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 사도는 그러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되니까, 마르코라는 통역자를 데리고 다니면서 필요한 경우에 베드로 사도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전달을 했겠죠. 그 마르코가 바로 「마르코 복음서」 의 시작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아마도 마르코가 「마르코 복음」의 저자일거라고 이야기하고, 신약성경에서 그 이름을 찾아보면, 사도행전 사도행전 12,12와 콜로 4,10인데, 여기에서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파피아스 주교나 이레네오 주교가 말하는 마르코였을 거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10:40 2교시 끝)
서울 혜화동 가톨릭교리신학원 지하강당으로 가는 왼쪽 샛길. 2015년 8월 22일(토) 오전 3교시가 시작되기에 앞서서 10시 50분 촬영. 하루종일 좁은 지하강당에서 공부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2015-8-22 토요일 서울 혜화동 교리신학원 지하 강당
공관복음과 사도행전(허규 베네딕토 신부님) 오전 2교시(9:55~10:40)
허규 베데딕토 서울대교구 신부. 1999년 7월 7일 사제 수품, 뮌헨 루드비히 막시밀리안 대학교에서 성서신학 박사학위를 받고,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신약성서 교수로 요한 묵시록과 희랍어 등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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