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우연하게 읽은 책이다. 재미있었지만, 대필 작가이거나 최소한 출판사의 윤문을 거쳤을 것 같은 좋은 문장들이 눈에 띄었다. 상당히 훈련된 문장력이 느껴져서, 차라리 '조훈현이 말하고 OOO이 쓰다'라고 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물론 조훈현이 직접 썼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의 일대기가 드라마틱하게 등장하는 에세이라서 책은 흥미롭게 읽혔다. 그리고 바둑인 조훈현이 매우 존경할 만한 인물임을 리얼리티적으로 느꼈다.


그래서 대한민국 바둑의 위상을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은 주인공이니 그의 바둑인생은 세상의 인정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보았다. 그런데 그가 2016년 3월에 4.13 총선의 비례대표가 되어 새누리당에 입당하는 걸 보면서 의아스러운 감이 있었다. 바둑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 정계에 입문한다는 게 당시 언론에서 소개한 그의 포부였다.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 원유철은 "한국 바둑의 전설이자 황제인 조훈현 국수가 오늘 입당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의 책 제목을 빌려 단순한 도식으로 설명하면 고수의 생각이 찾아낸 답은 새누리당 입당이었다. 


「생각은 반드시 답은 찾는다」라는 부제와 『조훈현, 고수의 생각법』이란 제목으로 2015년 6월 15일 책을 출판하고 9개월 동안 생각해서 내린 답이 새누리당 입당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답을 찾은 이유는 '바둑계의 위상을 높이는 것'이라는 그의 생각이 매우 숭고한 것이었을지라도, 필자는 지난 해 3월 그의 새누리당 입당 소식을 들으면서 묘한 배반감을 느꼈다. 그의 책을 읽으며 온 몸과 마음으로 전해졌던 감동과 존경어린 심정이 모래성처럼 무너져내리는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조훈현의 광팬이 아니었던 관계로 그저 그런 생각을 품은 채 세월을 흘려보냈는데, 최근 딴지일보에 흥미로운 글이 하나 올라왔고, 그 중 조훈현에 대한 평가가 포함되어 있었다. 정말 바둑계의 실정을 바탕으로 내려진 평가였기에 내가 표현하기 어렵지만 표현하고 싶었던 그런 평가를 읽게 된 것이다. 그 글의 제목은「바둑계도 박근혜 게이트만큼 시끄럽습니다.」 이고 그 중 조훈현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다.  2017년 1월 11일자 글이다.




 조훈현 9단 국회 입성

 

조훈현 9단이 새누리당에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다. 국회 기우회 회장인 원유철 의원과의 인연으로 바둑계 최초 금배지를 달게 되었다고. 조 9단은 '여가 문화 및 두뇌 스포츠의 발전과 진흥'을 위해 국회에 입성했다고 하는데, 요새 하는 짓을 보면 목불인견이다. 바둑인이라는 게 부끄러울 정도로.


지금까지 바둑계에서는 조훈현 9단을 '조 국수'라고 불렀다. 바둑에서 국수(國手)란 실력뿐 아니라 품행과 인성까지 두루 갖춘, 바둑계 발전에 이바지하고 후학들에게 모범이 될 만한 사람에게만 붙이는 칭호다. 예컨대, 윤기현 국수가 바둑으로 사기 치고 은퇴한 이후, 그를 국수라 부르는 사람은 없다. 새까맣게 어린 후배들조차 면전에서 말은 못 하지만 뒤에서는 국수 호칭을 빼고, 단도 빼고 윤기현이라고 부른다(윤기현은 평생 바둑을 후원한 이붕 김영성 선생의 바둑판을 사기쳐서 바둑의 명예를 훼손시켰다. 당시 한국기원 한상열 사무총장은 직접 나서 기자회견을 하며 사기꾼을 두둔하는 꼴불견을 연출하였다. 그는 제명이 아닌 은퇴를 함으로써 퇴직금 또한 모두 수령해갔다). 조 9단 역시 멀지 않은 미래에 그렇게 될 것만 같다.


최근 조훈현 의원은 국정교과서를 찬성하고, 탄핵을 주저하는 등 팬들 자괴감을 심어주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후배기사 중에는 벌써부터 그를 '바둑 백 냥 사람 한 푼'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바둑이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화려한 감각과 빠른 행마로 초반과 중반에 강한 조 9단 바둑이 그의 인생에 그대로 재현되는 것 같다. 조 9단이 이창호 국수에게 밀려난 이유도 끝내기에서 당한 것 아닌가. 끝내기가 약한 바둑처럼 인생 마지막에 계속 완착을 두는 것 같아 마음이 씁쓸하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으나 이미 늦은 것 같다.

 

역사는 조 9단을 이렇게 기록할 것이다.


어린 시절 일본 유학, 귀국 후 한국 바둑 제패, 바둑 약소국이던 한국을 최강국으로 성장. 세계 최대 바둑올림픽 잉창치배에서 우승, 한국 바둑의 전설 이창호를 육성. 그리고 바둑의 성공을 발판 삼아 국회에 입성하였으나, 박근혜 정부의 국정교과서 찬성 및 탄핵 주저로 그간의 명예를 실추. 바둑계 후배들 역시 그를 국수라 부르지 않는다. 바둑 100냥 사람 1푼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쓸쓸하게 은퇴했다.


이런 조 9단이 추진하는 바둑진흥법이 통과되겠는가. 개인적으로 바둑을 좋아하는 팬이지만 바둑진흥법이 과연 바둑팬들에게 꼭 필요한지는 모르겠다. 대한바둑협회를 배제하고 한국기원이 주체가 되는 그림인데 330명의 프로기사보다 500만의 아마추어 바둑팬을 신경 쓰는 게 진정한 바둑진흥법이 아닌가? 그리고 씨름진흥법이 있어서 씨름이 활성화되었는가?



이 내용은 글 하나의 8가지 꼭지 중 하나이다. 바둑계 2016년을 결산하는 글이기때문에 8가지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다음 링크를 따라가면 읽을 수 있다.


http://www.ddanzi.com/ddanziNews/155718963




Posted by 편집장 슈렉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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