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27일 일반알현 때 하신 말씀
자기 자신 밖으로 나가기
베드로는 쌓아온 확신을 위협받자 예수님을 책망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건 무엇일까요? 십자가와 부활을 향해 갈바리아 언덕을 오르신 예수님의 길을 따라간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예수님은 지상에게 당신 사명을 수행하시며 이스라엘의 여러 길을 걸으셨습니다. 하느님 약속에 깊은 믿음을 둔 백성 가운데서 열둘을 뽑아 제자로 삼고, 단순한 그들을 사도라고 부르시어 당신 곁에 머물고 당신의 길에 동참하고 당신 사명을 이어가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높은 사람, 낮은 사람, 부유한 청년, 가난한 과부, 힘있는 사람, 힘없는 사람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차별없이 그들 모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를 가져다주었고, 치유하고 위로하고 이해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희망을 선물하셨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사랑을 베푸시는 하느님의 현존을 모두가 느끼게 해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보통 사람처럼 아주 일반적이고 평범한 삶을 사셨습니다. 목자없는 양 떼같은 군중을 보고 측은함을 느끼셨고, 오빠 라자로의 죽음 때문에 슬퍼하는 마르타와 마리아를 보고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세리를 제자로 삼고, 곁에 두었던 친구의 배신을 체험하셨습니다. 하느님은 예수님을 통해 당신이 우리와 함께 하고 우리 가운데 계시다는 확신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길,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마태 8,20). 예수님에게는 집이 없었습니다. 군중과 우리 자신이 그 분의 집이기 때문입니다. 그 분 사명은 모두에게 하느님 나라의 대문을 열어주고 하느님 사랑을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성주간 동안 예수님을 통해 완전히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을, 곧 하느님과 인류의 사이에 맺어진 모든 관계와 그 역사를 관통하는 사랑의 정점을 체험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당신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그곳에서 당신의 모든 지상 여정을 마무리하며 아무 것도 남기지 않고 당신 생명까지 모두 내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만찬에서 친구들과 함께 빵을 나누어 들고 ‘우리들을 위한’ 잔을 나누어 마시셨습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은 우리에게 당신을 내어주셨습니다.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기 위해, 우리 가운데 사시기 위해 당신의 몸과 피를 우리 손에 내맡기셨습니다. 올리브 동산에서도, 빌라도에게 신문을 받으실 때에도 저항하지 않고 당신을 내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사야가 예고한 주님의 종, 곧 죽기까지 자신을 낮추고 고난받은 주님의 종이십니다(이사 53,12).
예수님은 수동적으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숙명을 따르듯 당신을 희생제물로 내어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이 보여주신 사랑은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잔혹한 죽음 앞에서 당신이 인간적 고뇌에 빠졌음을 숨기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께 당신 자신을 온전히 내맡기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에 부응하기 위해, 그리고 그분 뜻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우리를 위한 당신 사랑을 드러내기 위해 기꺼이 당신 자신을 죽음에 넘겨주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갈라 2,20)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길이 곧 나의 길이고 너의 길이며 우리의 길임을 알아차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입니다. 삶의 가장 외진 변두리를 향해 가기 위해 우리 자신 밖으로 나가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와 가장 멀리 떨어진 사람과 사람들이 잊고 사는 이들, 그리고 이해와 위로와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향해 우리가 먼저 다가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자비롭고 사랑이 가득한 예수님의 생생한 현존을 느끼고 체험하게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성주간의 의미를 삶으로 실현한다는 것은 늘 하느님의 논리, 십자가의 논리 속으로 더욱 깊이 들어감을 의미합니다. 십자가의 논리는 무엇보다도 고통과 죽음의 논리가 아니라 사랑의 논리이며 생명을 가져오는 자기증여의 논리입니다. 십자가의 논리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복음의 논리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르고 그분과 동행하며 그분과 함께 머무르는 것은 반드시 ‘밖으로 나가는 것’을 요구하는 삶입니다.
자기 자신 밖으로 나가는 것, 진부하고 습관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진 신앙생활을 탈피하고 나가는 것, 하느님의 창조적 활동마저도 외면하게 만드는 자기 만의 틀에 머물고 싶은 유혹을 떨쳐버리고 나가는 것을 요구합니다.
하느님은 우리 가운데 오시기 위해 당신 자신 밖으로 나오셨습니다. 구원과 희망을 선물하는 당신의 자비를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 우리 가운데 당신 거처를 정하셨습니다. 하느님은 예수님을 통해 당신 자신 밖으로 나오신 것이고, 예수님은 우리 모두를 위해 당신 자신 밖으로 나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님처럼, 그리고 하느님처럼, 우리 자신 밖으로 나가야 함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베드로 사도와 비숫한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모시기 위해서 ‘밖으로 나갈’ 용기를 내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당신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예고하며 모두를 위한 사랑으로 당신 자신을 내어줄 것을 말씀하시자 마자, 베드로 사도는 그 분을 한쪽으로 모시고 가서 책망했습니다. 그것이 베드로 사도의 계획과 어긋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쌓아온 확신과 메시아에 대한 이상을 위협받았다고 느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신 다음 베드로를 향해 복음서에서 가장 심하다고 할 수 있는 말씀으로 꾸짖으십니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마르 8,33).
그러나 하느님은 언제나 자비로운 마음으로 생각하십니다. 하느님은 강도를 만나 곤경에 처한 이를 보고는 불쌍한 마음이 들어 지나칠 수 없었던 사마리아 사람처럼 생각하십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그를 구해주었습니다. 쓰러져 있는 이가 히브리 사람인지, 이방인인지, 사마리아 사람인지, 부자인지 가난한 사람인지 따지지 않았습니다. 아무 것도 묻지 않았습니다. 쓰러진 사람을 도와주었을 뿐입니다. 하느님도 그러하십니다. 하느님은 양 떼를 보호하고 구하기 위해 당신 자신의 생명까지 내어주는 착한 목자와 같은 분이십니다.
성주간은 주님이 우리 마음의 문, 삶의 문, 본당의 문, 활동의 문, 공동체의 문을 열어주기 위해 은총을 베푸시는 시기입니다. 또한 우리가 다른 사람을 만나러 ‘밖으로 나가고’, 가까운 사람에게 우리 믿음의 빛과 기쁨을 가져다주는 데 필요한 은총을 베푸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언제든지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사랑과 너그러움으로, 존중과 인내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렇게 우리가 손과 발과 마음을 내놓으면, 하느님은 우리를 이끌어주시고 우리의 모든 활동이 풍요로운 결실을 맺게 해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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