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 밖의 소식 2월호를 읽고

<뜻 밖의 소식>은 지난해 12월 창간한 새로운 월간지입니다편집장은 천주교의 인터넷 언론매체인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의 주필 겸 상임이사인 한상봉 님이 맡고 있습니다. 그리고 천주교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인 박동호 신부님을 비롯한 여러분이 편집위원으로 계십니다. 20079월 온라인에서 시작된 <가톨릭 뉴스 지금여기>가 이제 오프라인으로 얼굴을 드러낸 것이라고 볼 수 있지요.

 

<가톨릭뉴스 지금 여기> 홈페이지 http://www.catholicnews.co.kr/


<뜻 밖의 소식>은 영어로 Unexpected News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지금 여기에서 벌어지는 세상의 소식들이 매우 뜻 밖의 소식들로 읽힌다는 느낌이 ‘Unexpected’란 단어에서 느껴집니다. 기대하지도 않고, 관심을 갖거나 애정없이 외면하던 세상의 일들을 세상에 알리려는 고군분투하는 정신이 담겨있다고 느껴집니다.

 

2월호 속표지에 게재된 편집장(한상봉) 편지(Editor’s Letter)sm 이런 표현을 담고 있습니다. (헨리 나웬) 사목자의 상처는 타인의 상처와 고통을 환대하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파본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고통을 연대하고 타인을 위해 자신의 마음에 빈 자리를 내어준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참살당하신 예수님이야 말로 그러한 상처를 끌어안은 절망과 패배의 길을 먼저 걸어사시면서 우리를 초대하고 계신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인이라면 그 길을 따라가야 한다는 것이지요.

 

책의 첫 번째 글은 강영옥 서강대 기초교육원 강사님이 쓰신 고통은 사회적이다란 글입니다. 지난 해 416일은 우리에게 위험한 기억이라고 강조합니다. 예수님을 죽음으로 몰아간 원인이 인간의 죄와 불의한 사회구조였으며, 세월호 사건 또한 그러한 사실을 만천하에 드러낸 우리의 십자가 사건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개인의 고통은 개인적이지 않고 사회적이며 역사적이란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글은 <바닥에서, 고통의 뿌리를 넘어서>란 글입니다. 시인 송경동 선생님의 글입니다. 기륭전자, 쌍용자동차, 콜트콜텍 등에서 벌어진 해고노동자들의 춥고 외로운 길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2008년부터 2014년까지 한국 대표 재벌자본들의 사내유보금은 800조에 가깝께 늘었지만 한국 서민들은 그 6년 사이에 350조의 가계부채더미에 빠져버렸다는 얘기와 현대판 노예에 다름없는 960만 비정규직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글은 <그치지 않는 뜨거운 눈물, 고통 속에서>란 글인데 편집부의 작품입니다. 고정희 선생님의 시집 <지리산의 봄>에 소개된 서문을 인용하면서 고통과 슬픔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교의 신앙은 고통받는 노예들에게 희망을 주었고, 이스라엘의 하느님은 이집트 노예들의 하느님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십자가라는 것이죠. 반역자와 노예들에게 허락된 죽음이 곧 십자가의 형벌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세 개의 꼭지와 편집장의 편지를 하나로 묶어서 <뜻 밖의 소식> 20152월호는 고통이라는 테마에 대한 기획기사로 묶어놓았습니다.

 

이 밖에도 이 월간지에는 읽을거리가 참 많습니다. 표지들을 포함해서 불과 36쪽의 짧은 분량이지만, 뭐 하나 빠트릴 게 없이 정성스러우면서 예리하게 시대를 조망하고 있습니다. 이 월간지의 목적은 분명합니다.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정으로 아름다운 세상은 가난한 이들과 맺는 연대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것은 고통과의 연대이고, 비참에 대한 공감이며, 빛으로 향해가는 뚜렷한 참여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 책에서 발견한 인터뷰 대상자는 이장섭 이시도르 형제님입니다. 2년 반 동안 개신교 기도원에서 수도생활처럼 살았지만 산 속이 아니라 세상에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을 찾으신 분입니다. 30년간 개신교로 살다가 가톨릭으로 개종한 지 20년이 되었다고 인터뷰 글은 소개합니다. 이 분은 성령운동, 공동체 운동, 정의평화 운동 등을 조금씩 하셨다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그래서 이 사회의 힘있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요청을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게 사회교리를 공부하는 목적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글 외에도 읽을 거리가 많습니다.

 

연재기사 <갈릴래아에서 예루살렘까지, 예수이야기>의 세 번째 <‘예수라는 메시아 또는 그리스도>는 대한성공회 박태식 신부님의 글입니다. 연재기사 <고맙다 사회교리>의 세 번째 <원자력 발전소가 위험하다>는 좁은 한반도에 원자력 발전소를 빼곡하게 건설하는 한국정부의 정책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원자력 발전에 필요한 우라늄50년이면 고갈된다고 합니다.

 

<(강신숙 수녀에게 길을 묻다) 신비와 예언, 하느님과 더불어 가난한 이들과 함께 비를 맞는 것>이란 기사는 병든 대한민국의 갈 길을 묻습니다. 우리나라는 겨우 링거로 목숨을 유지하는 사회라고 말씀하십니다. 대한민국이 자살 1위의 국가란 사실이 그 증거이지요. 그래서 더욱 더 예언직은 교회 사명의 핵심이라고 주장합니다. 게다가 교황 프란치스코는 교회의 사명을 전투가 끝난 뒤의 야전병원이고 심각하게 다친 사람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라고 촉구하셨음을 지적합니다. 그런 시대에 자신을 온전히 바칠 수 있는 성인의 등장이 필요하다고 하십니다. ‘도로시 데이란 분이 바로 그러한 분이라고 하시네요. 그래서 교회리더십이 해야할 복음의 직무는 자기를 잃지 않으면서도 어둠 속에 빠진 이들과 함께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같이 비를 맞는 것으로도 표현할 수 있답니다. 또 다른 말로는 연민’(compassion)이고, 연민이야 말로 신적 사랑의 정수라고 강신숙 수녀님은 말씀하시네요.

 

또 하나 흥미로운 기사는 사회적 영성에 대한 글입니다. 책 소개글인데, <사회적 영성, 고립에서 연대로>란 제목의 글은 2014년 김진호 등이 현암사에서 펴낸 책 <사회적 영성>에 대해서 한상봉 편집장님이 제3시대 그리스도연구소 김진호 실장님을 만나서 대담한 내용입니다.

 

여기서 재미난 표현들이 등장합니다. 바로 가나안신도라는 표현입니다. ‘가나안은 거꾸로 하면 안나가입니다. 천주교에서는 냉담혹은 쉬는교우라고 표현하지만, 개신교에는 가나안신도라는 표현이 있다고 합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종교적’(religious)이지 않을 수는 있어도 영적’(spiritual)이라고 주장한다는 것입니다. 교회 밖에서도 얼마든지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만합니다. 천주교에서 냉담자라고 말하는 것보다는 다른 시각입니다. 또 다른 표현으로 가톨릭 성직자는 전례의 전문가이고 개신교 성직자는 말의 전문가라는 표현도 나옵니다. 재미있는 구분입니다. 또한 90년대 말부터 폭발적으로 나타난 현상인 단학선원같은 것도 신종교적 영성운동이고, 2000년대 들어서서 시위에서 단체의 깃발보다 촛불을 들고 등장하는 것도 종교적 현상으로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이 밖에도 <뜻 밖의 소식> 2월호는 몇가지 꼭지의 기사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월간지는 2,500원에 불과합니다. 1년 구독료가 30,000원에 불과하지요. 자세한 사항은 <가톨릭 뉴스 지금여기> 홈페이지에서 아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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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편집장 슈렉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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