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의 대표 인터넷 언론「가톨릭뉴스 지금여기」가 후원하고「우리신학연구소」가 발간하는 격월간 <가톨릭 평론>의 창간 기념식이 2015년 12월 12일(토) 오후 3시, 서울 명동 전진상 교육관에서 열렸다. 기념식은 먼저 고려대 명예교수이며 원로사학자 조광 교수의 특강과 한상봉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의 주필의 강의로 시작되었으며, 이어서 음악치료사의 간단한 몸풀기 노래로 숨을 돌린 후, 4시 50분 경이 되어서 본격적인 창간기념식 행사가 진행되었다. 그렇게 창간기념식 행사는 오후 6시경 끝을 맺었다.
2015년 12월 12일(토) 오후 3시 10분경 특강이 시작되는 모습 @ 서울 명동 전진상교육관 강당
「가톨릭 평론」의 창간 기념 특강
조광 교수의 역사란 무엇인가 - 국정화의 문제
2015.12.12(토) 오후 3시10분경~3시 50분
서울 명동 전진상 교육관 강당(1층)
역사란 무엇인가
국정화 문제에 대해서 제가 역사학자로 한 두번 언급하다보니 이 자리까지 나와서도 그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에서 불행한 현상이지만 극복해야 할 문제라고 봅니다. 그럼 먼저 아주 간략하게 역사란 무엇인가 몬저 생각해보자
역사는 의미를 캐는 작업이다
(객관적인 사실을 찾아내서) 사건을 나열하는 것은 부지런한 사람들이 하면 됩니다. 그러나 의미를 캐는 작업은 교육을 통해서 하는 것이죠. 어떻게 보면, 사건을 캐는 것은 노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것은 신성한 노동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연구와는 구별됩니다. 역사는 사건의 의미를 찾을 때 성립이 되는 것이죠. 그래서 이 점을 다시 설명드리면, 인식된 과거, 즉 ① 과거에 대한 해석과 ② 과거에 일어난 사건 두 가지가 중요한 줄기를 이룹니다. 이 둘 중 하나를 제외한다면 역사라고 부리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이 역사를 이렇게 정의를 함에 있어서 "왜 역사 교육이 중요한 것인가"라고 묻게 됩니다. 역사 교육은 역사관을 올바르게 갖게 하려고 가르치는 학문이라고들 말하지요.
역사관은 다른 말로 세계관이고 인생관이다
역사관의 다른 말은 세계관이고, 또 인생관입니다. 올바른 역사관 가진다는 것은 올바른 세계관과 인생관을 가진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현재의 세상에 대한 올바른 인식능력과 올바르게 미래로 나아갈 능력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관을 올바로 기른다는 건 올바른 교육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 됩니다. 올바른 교육을 해야 한다는 건 올바른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요. 그래서 가르쳐야 할 올바른 역사라는 것은 올바른 해석이 결합될 때 가능할 것입니다.
올바르다는 기준은 누가 정하는가?
그러면 올바르다는 기준은 누가 정하는 것입니까? 이것은 인간이 공통적으로 느끼고 가지는 가치관들이 있다고 본다는 것이에요. 이를테면 사랑, 정의, 평화와 같은 가치들입니다. 이런 것들은 인간이라면 어떤 부류의 사람이라도 거부할 수 없는 가치가 됩니다. '샬롬'이란 인사나 '안녕'이란 말은 다른 말들이 아닙니다. 근동지방의 아시아와 우리나라와의 거리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고, 그 서로 다른 표현의 말들은 수천년 묵은 인사말들인데, '살룜, 평화, 안녕'을 인사로 삼는다는 것은 그것이 보편적인 가치를 갖고 있다는 말이 됩니다. 따라서 역사 교육은 보편적 가치를 구체적 사건을 통해서 가르치는 작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2015년 12월 12일(토) 오후 3시 10분경 특강이 시작되는 모습 @ 서울 명동 전진상교육관 강당
현대사회에서 교훈적 역사관이 가능할까?
역사는 흔히 교훈을 준다고 말합니다. 과거에는 '교훈적 역사'라는 개념이 있었어요. 권력자나 지배자들이 역사는 반복되는 걸로 보고 가르치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전근대적인 역사교육 방식이었고, 그러한 '교훈적 역사'를 통해서 통치를 합리화하려는 지배자들이 배우고 가르치려는 역사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의 역사는 그러한 것과 분명하게 구별이 됩니다. 올바른 사람을 만들려고 제시하는 가르침이 역사학이며, 역사교과서인 것입니다. 따라서 이 교과서를 발행하는 데에 있어서 여러가지 형식이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현대사회에서 정사(正史)는 없다
국정화라는 형식은 오직 하나의 역사관을 일반 피교육자에게 제시해주려는 말입니다. 과거에는 '정사'(正史)라는 개념이 있었어요. 바를 정(正)자를 쓰는 것인데요. 그것은 정부나 지배자들이 훌륭하다고 선정한 관제 논리를 제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정사(正史)는 없습니다. 그런 것이 있다면 그것 또한 보편적인 가치에 입각한 역사 해석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는 전 근대시대에나 있을 법한 그러한 정사는 없습니다.
국정화는 전 근대적인 주장에 불과
역사 개념과 관련한 정사(正史) 개념은 오늘날과 맞지 않고, 과거의 정사(正史)와의 인식선상에서 국정화 주장은 전근대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근대 교육이 성립된 이후에 즉, 19세기 중엽 무렵부터 들어오기 시작한 것인데, 초기 일부 국가에서 국정교과서를 만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국민국가의 형성에서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국민국가에는 한 역사공동체, 한 민족공동체로 규정하는 것이 필요했기에 19세기 몇몇 나라들에서 국정교과서를 만든 사례를 역사학은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 20세기 초부터 폐기된 국정화 개념
그러다가 '국정'이란 개념이 현대성과 맞지 읺는다는 점을 이미 20세기 초부터 많은 나라들이 깨닫고, 여기서 검정과 인정제도, 즉 검인정제도로의 변화가 생긴 것이에요. 검정(檢定)은 교과서 편찬의 기준을 담당 정부부처에서 제시하는 것입니다. 적어도 시민교육, 국민교육을 위해서는 이런저런 내용이 들어가야 하고, 사실에 대해 충실하라는 등 제한과 조건을 달아서 검정기준을 만들어놓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 교과서의 집필자들이 검정 기준을 참조해서 서술을 하고 다시 그걸 검정 절차를 거치는 겁니다. 그 때 검정의 주체는 국가가 됩니다. 이 정도면 교육기관에서 쓸만하다고 인정해주는 게 검정 역시교과서가 될 것입니다.
20세기 대부분의 나라가 검인정에서 자유발행제로 변화
검정 교과서는 20세기 이후 대부분 나라에서 채택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인정(認定)이란 역사교과서로 사용할 만한 특별 기준을 제시하지 않아도, 이미 나와있는 책들 중에서 이것 저것 등등이 교과서로 쓸 수 있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대부분 국가는 검정 인정 합쳐서 검인정이 아니라, 지유발행제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저자, 즉 연구자들이 역사교과서를 자유롭게 서술하고, 교사나 학부모, 교육행정가들이 여러 책 중에 교과서로 채택할만한 걸 채택해서 그걸 교과서로 만드는 것이 바로 자유발행제이죠.
제국주의적 역사교육
그런데 20세기에도 검정 이전에 국정을 시행한 몇 몇 사례가 있기는 합니다. 우선 나치의 교과서가 그 사례 중 한가지입니다. 나치는 교과서를 통해서 아리안 족의 신화를 강조하려고 했던 것이고요. 일본제국주의의 대동아 전쟁기의 일본 교과서도 실질적으로 국정화 교과서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국정화 교과서가 아직까지도 쓰여지고 있는 나라들은 방글라데시 등등의 몇 몇 나라의 경우를 빼고는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그 까닭은 그들 나라의 역사학을 연구하는 연구층위가 매우 낮기 때문입니다. 그 연구 수준의 정도에서는 검정이나 인정을 할 수 있는 여력이 없는 사정에 최소한도의 교육을 하기 위해서 국정화를 채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나라들마저도 실상은 국정교과서의 문제점을 느끼고 있는 실정입니다.
역주행하는 역사교육
최근 유엔 인권위원회에서는 베트남 교과서가 국정이란 것에 문제를 제기한 바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기본적 권리에 어긋나니 검인정 체제로라도 바꾸라는 것인데요. 그래서 베트남의 경우에도 사회주의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2018년도부터는 검정체제로 전환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2017년도부터 검인정에서 국정으로 거꾸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역사적 사례로 보았을 대에 왜 국정 교과서가 현대 사회에서 실행이 안되는지에 대해서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그것이 인간의 사유를 단순화시키고 단일화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나라의 대부분이 학부모들은 입시에 목을 매고 있습니다. 그래서 국사 교과목을 입시에도 적용시키려고 하는데 그래서 어떤 정통적인 사람을 만들려고 하는 게 국정화를 시도하는 이유이기도 한 것이에요. 우리는 이미 유신 시절에 국정화를 경험했어요. 전두환 독재정권 시절에도 경험한 것이었습니다. 그시절에 전두환을 민족을 구출하는 영웅으로 묘사하는 교과서도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식의 경험을 갖고 있다가 그걸 벗어난 게 불과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검인정' 특히 '검정체제'로 넘어간 게 얼마 되지 않았던 겁니다.
우리나라는 자유로운 민주국가이다
우리나라의 검정체제는 국가가 관여한 강도가 국정보다 매우 낮지만, 우리나라 검인정은 매우 세밀한 부분까지 적어도 장절항목까지 나누면 장절까지 제시하고, 항목에서도 키워드를 제시하면서 국가의 의도가 반영되게끔 한 검인정체제였습니다. 우리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향한다고 자유로운 민주국가란 말이 헌법에도 나오는데, 자유로운 민주국가를 지향한다면, 당연히 자유발행제로 교과서도 넘어가야 하는 겁니다. 특히 가치관과 관련된 역사교과서는 국정화가 되어서는 안된다란 걸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독일 역사학계의 '당파성' 논쟁
전 세계적으로 보았을 때, 자유발행제가 역사교과서의 대세를 이루고 있는데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오히려 국정화가 계속 문제가 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국정화는 편향성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국정화는 특정한 해석만을 강요해서 피해야 한다는 점도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오늘날 역사학에서는 '당파성'이란 애기를 하곤 합니다. 그것이 조선시대의 '사색당쟁' 운운과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당파성'에 대한 이야기는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독일 역사학계에서 많은 논의가 되었던 것입니다.
보편적인 가치가 올바름의 기준이다
역사를 해석하는 데 과연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해석이 가능할까? 아니면 당파성이 작용하는 것은 아닐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당파성이 작용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 말을 독일어 그대로 옮기면 '당파성'이라고 합니다만, 우리 식대로 말씀드리자면 '특별한 경향성을 가진 것'으로 번역할 수도 있어요. 그것은 이를테면, 해석 자체에 경향성을 가질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 경향성을 가지는 올바른 경향성과 방향이 주어져야 하는 것인데, 올바름의 기준은 보편적이라고 이미 언급한 바 있습니다. 평화, 행복, 만주주의. 인간의 존엄성 이러한 가치를 우리는 보편적으로 존중해야 할 것입니다.
이명박 때 기준으로 만들고 박근혜 때 통과된 검인정 교과서
그래서 현재 일어나는 국정화를 이런 것 에 비추어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지금 국정화를 주장하는 이들이 말하는 것은 "현재의 교과서는 좌편향 교과서이고 시뻘겋게 물이 들어있기 때문에 이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현행 검인정 교과서가 국정화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논리가 가능한 것인데, 사실 현행 검인정 교과서는 이명박 정부 시절 검정기준과 집필 기준이 제시된 것이고, 박근혜 정부 때 통과가 된 교과서입니다. 그런 것을 좌편향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바로 국정화를 주장하는 그들의 책임입니다. 그러나 물론 그 교과서를 아무리 들여다 봐도 그것은 좌편향이 아닙니다.
30~40년전 역사학과는 매우 다른 오늘날
그런데 왜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 그 교과서를 좌편향이라고 하는 것일까요? 어찌 보면, 그걸 주장하는 이들의 연령층이 비교적 높습니다. 게다가 그렇게 공부를 부지런히 한 사람들이 아닌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역사학의 발전은 대단합니다. 그것이 30년전, 40년전의 역사학과는 매우 다릅니다. 그런데 30~40년 전 배운 역사만을 진실이라고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새롭게 연구되고 새롭게 의미가 부여된 것들을 용납할 수 없다고 하면서 좌편향이라고 치부해버리는 것이죠.
일국의 국무총리 입에서 나온 말, 99.9%가 빨갱이
오늘날 역사학계의 수준을 반영하면서 되도록이면 연구성과를 충실히 수용해서 집필하려는 역사교과서가 일부 공부 안하는 사람들 눈에 죄편향 교과서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주장하는 검인정 교과서의 죄편향의 강도는 도대체 어느정도라고 하는 것일까요? 우리나라 국무총리는 99.9%가 좌편향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나머지 0.1%는 뉴라이트 계통의 교학사 교과서만 올바르다는 삭으로 몰아부쳐 나가는 것입니다. 일국의 국무총리, 재상으로 차마 할 수 없는 말을 한 것입니다. 그것으로 정치생명이 끝나는 거나 마찬가지 말을 한 것입니다. 그렇게 정치생명 끝난 거라고 말해도 잘 버티고 있습니다.
[국정교과서 고시 강행] 황교안 “고교 99.9% 편향 교과서”…거짓말만 늘어놓은 총리
경향신문 2015-11-3자
이러한 좌편향의 정도라고 말하는 이가 비단 국무총리 뿐만은 아닙니다. 김무성 같은 사람은 전체 역사연구자들의 90%가 붉은 물이 들었다고 말하고 있어요. 박근혜 대통령은 80%라고 말했어요.
김무성 "역사학자 90% 좌파"...김세균 "어불성설" 신문고 2015-10-18
朴대통령 “집필진 80% 좌편향” 文 “유엔도 반대한다” 세게일보 2015-10-22
황교안의 시각에서는김무성과 박근혜도 좌빨?
(그들의 발언을 정리하면) 맨 오른쪽에 황교안 국무총리가 99.9%라고 말하고, 조금 왼쪽으로 있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90%라고 하니까, 황교안이 김무성을 불러서 "넌 10% 좌빨이야!"라고 하는 셈이고, 김무성은 또 박근혜를 불러서 "넌 10% 좌빨이야!"라고 하는 셈이 됩니다. 이렇게 되면 올바른 판단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것은 민주주의적 사고방식이 아닙니다. 그렇게 모든 역사교과서를 좌편향이라고 물리치라고 하고, 한 종류의 국정화 교과서의 주장을 펼치고 있으며, 거기에 일부 사람들이 동의하고 있는 것입니다.
편을 가르는 게 역사교과서인가?
그러나 좌편향 우편향 이런 식으로 편을 가르는 게 역사교과서일까요? 국정화인가 아닌가는 진영의 논리가 아니고, 우리의 2세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 문제이며, 우리나라 미래가 어느 방향으로 취햐야 하는가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진영논리로 접근하면서 야성(野性)이 강해서 국정화 주장을 반대한다고 하거나, 친여적이어서 국정화를 찬성한다는 식의 논리가 아닌 것입니다. 이것은 더 근본적 문제이므로 검토하고 넘어가야 할 문제인 것입니다.
보편성을 상실한 그들의 역사관을 강요하려는 목적
그러면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들이 지닌 역사에 대한 지식이 낡고 오래된 것이기 때문에 그후에 새롭게 수용된 역사학의 발전을 공부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한 바가 있는데, 이들에게는 어떤 목적이 있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가 있어요. 왜 이들은 국정화를 단행하려고 하는 것일까요? 아마도 이 국정화를 단행하려는 것은 자신의 보편성을 상실한 역사관을 다른 이들과 후세들에게 강요하려는 목적으로 보여요.
우리나라 경제성공의 주체는 누구였나?
보편성을 상실했다는 것은 99.9%가 틀렸다고 주장하는 국무총리가 있는 한 반박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현재를 이끌어가고 미래를 어떻게 운전해길 것인가의 문제는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여태까지 성공했다는 경제개발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질만 한데, 과연 그 경제개발 주체는 누구일까요? 그 주체가 누구인가에 대해 설정하는 작업이 곧바로 현재를 누가 지배하고 미래를 누가 이끌어가는가와 직결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 대목에서 그들이 국정화를 주장하는 것은 경제개발의 주체를 친일계열의 세력, 군사정권 세력으로 보려는 시도라고 보여지는 것입니다.
국정화와 식민지 근대화설의 상관관계
저는 국정화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 본 것이 40년이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국정화와 관련해서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 제가 아무런 준비가 없이도 인터뷰에 응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제가 40년간 국정화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식민지 근대화설'이란 것에 대해 알고 있을 겁니다. 식민지 시대에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독립을 위한 투쟁입니다. 잃어버린 나라를 어떻게 찾아오는가 하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도 독립 운동에 대해서도 말을 안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다 그들은 중요함의 포인트를 어디에 두고 있는겁니까? 바로 근대화에 두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식민지 근대화설의 위험이며 그들이 노리는 것도 바로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분명하게 기억해야 할 것
독립 운동을 하신 분들은 풍찬 노숙을 하며 자기 목숨을 내걸고 씨웠습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나 또 어떤 분야의 일부 시람들은 호위호식을 하며 돈을 벌고 잘 살면서 이른바 식민지 시대 근대화세력이 되었디고 지부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러한 것은 올바른 역사관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식민지 시대 역사학에 대해서 말할 때, 식민지 시대의 역사학자 중에 대표적인 분이 단재 신채호입니다. 감옥에서 돌아가신 분인데요. 신채호는 우리나라의 역사에 대해 계속 생각을 했고, 계몽주의적 특성 매우 강한 인물인데, 이완용은 젊어서 오늘날 직급으로 참사관급으로 미국대사관 근무도 하고, 돌아와서 친러파가 되었다가 다시 보니까 일본이 센 거 같아서 친일파로 돌아선 다음에 나라를 팔아먹고 후손들을 떵떵거리며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두 사람을 역사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일제시대 우리나라 경제는 발전했나
그러면 과연 일제식민지시대 우리나라 경제발전을 일본인들이 이룩해줬을까요? 이룩한 게 분명이 있기는 할 것입니다만 그것은 여러 통계적 수치의 관점에서 보면, 발전이 나타났다는 것을 볼 수는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나라 철강 생산량이 얼마이고 철도의 길이나 전기사용량은 얼마가 더 늘었다는 등이 참으로 그럴 듯하게 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내면을 보면 진실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내면을 보면 진실은 전혀 다르다
구한말 경성에 전차가 다녔습니다. 서울에서 전차가 다니다가 한일합방으로 강제병합이 되니까, 일제는 전기회사를 자신들의 것으로 만듭니다. 그리고 전차값을 어떻게 정했는가 하면, 조선인들이 주로 사는 북촌 일대에서 원효로, 광화문, 혜화동 가는 건 전체 구간이 5km(혹은 7km)였습니다. 그 구간을 2개의 구간으로 만들어서 10전을 받았습니다. 반면에 일본인들이 주로 사는 구간은 총 구간이 7km인데 그곳은 1개 구간으로 주로 용산 가는 길인데 5전씩을 받았습니다. 조선인이 다니는 구간은 10전인 반면에 일본인은 5전씩을 받았으니까, 그렇게 하면 조선에 거주하는 일본인에게 대단한 이득이 되는 셈이지요.
일제 시대 철도 운임의 진실
철도 운임은 또 어땠을까요? 그 철도는 원래 경의선을 예로 들면 압록강 연변에 목재 개발권 그것만 가지고도 막대한 이권인데, 조선선에서 탈춰힌 이권으로 철도를 놓으면서 철도부지는 국가에서 제공하고 철도가술자는 일본에서 막대한 비용을 주고 데려오면서 노동자는 조선인들을 아주 싸게 마구 부려서 만들었던 것이 바로 철도였습니다. 게다가 철도 운영은 이중 가격제였습니다. 화물의 운임은 되도록 낮추었고, 자본주의 생산품의 원료나 소비재로 국제경쟁력에서 이기려면 싸야만 했던 것입니다. 반면에 여객운임은 일본본토와 비교해서 화물 운임과 비교안될 정도로 높았습니다. 왜냐하면 기차를 주로 이용하는 건 조선인들이 이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이 조선에 철도를 놓은 실상입니다.
조선의 행복이나 경제발전이 상관이 있었나
그러면 철도의 길이가 늘어나는 것과 조선의 행복, 경제발전 등은 별로 상관이 없습니다. 능력이 없어서 철도 못 건설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닙니다. 철도를 건설하는 데에 있어서 조선의 민족 자본가들이 철도부설 등을 위해 노력을 해보았지만 그들을 탄압하고 해산시키고 철도부설의 이권을 차지한 것이 바로 일본인들입니다. 일본인들이 전력기술을 발전시켜서 전기를 싸게 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만, 물론 전기불의 혜택을 보았던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근본목적은 대륙침략을 위한 군수품을 만드는 공장을 돌리려고 했던 것입니다.
학교를 많이 세워서 교육을 했다?
학교를 많이 세워서 교육을 했다고요? 구한말에 수많은 학교들이 세워집니다. 그런데 사립학교령이란 게 발표됩니다. 발표할 당시 우리나라에는 민족 교육운동이 애국계몽운동의 일환으로 거세게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사립학교령에 따르자면, 학교의 시설과 교사의 자질을 일본 수준과 똑같이 맞춰야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는 겁니다. 일견 그것이 그럴듯해 보이는데, 그 과정에서 민족계열 학교 2천개 정도가 문들 닫았습니다. 사실상 사립학교를 탄압하려고 사립학교령을 낸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일본의 나체금지법과 국민교육
일본 현지에서는 1880년대 중엽에 의무교육제가 시행이 됩니다. 의무교육제를 시행한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보통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의무 교육령이 발표되고 3년이 있다가 '나체금지법'이란 게 나옵니다. 그러니까 일본에서는 벌거벗고 다닌 사람들이 있을 정도였기에 옷을 입고 다니라고 하는 것이었어요. 그러나 우리나라는 그정도로 야만스럽지는 않았습니다. 일본에서는 나체금지법을 몇년 후에 만들정도로 사회자원을 끌어들여 국민교육을 시켰던 것입니다.
사립학교령은 사립학교 탄압령
그러나 우린 한 세대에 걸쳐서 이룩했던 교육을 사립학교령으로 탄압한 것은 무슨 이유때문이겠습니까? 그런데 무슨 교육을 시켰다는 말일까요? 구한말 이래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다고 봐야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식민지 근대화론의 한 측면입니다.
국정화의 가장 큰 문제점
이러한 점을 종합적으로 찾아내는 역할을 하는 이들은 경제학자나 교육학자가 아닙니다. 이러한 점들을 종합하는 것은 역사학에서나 가능한 것입니다. 물론 교육학자와 경제학자도 부지런히 노력하면 역사교과서가 잘 만들어질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역사학의 본령은 바로 종합화애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국정화를 하는 데 있어 가장 큰 문제는 식민지 지배세력에 빌붙었던 시람들이 다시 대한민국 체제로 넘어와서 다시 산업화 세력의 주역이 되었다는 것 그리고 오늘날 우리나라는 민족의 힘으로 신업화와 민주화를 이룩한 2차 세계대전 이후 유일한 나라 다들 찬성하는데 이것이 맞는 말인지 생각해봐야한다는 겁니다.
민주화가 먼저인가, 산업화가 먼저인가?
민주화가 가능해서 산업화된 것일까요? 아니면 산업화가 되어서 민주화가 되었던 것일까요? 그것은 한국의 현 사회의 존립할 근거를 마련하려는 것인데, 결론적으로 민주화가 되어야지 산업화가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산업화가 되어야 비로소 민주화가 된다는 것은 전혀 그렇지가 않아요. 우리는 민주화가 되어야지 산업화가 된다는 구체적인 사례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경제개발을 하는 데 있어서 특정한 영웅을 내세우려는 의도도 있어 보입니다.
부실한 국산 손톱깍기를 애용하던 애국심의 기억
저는 어렸을 적에 이런 경험이 있어요. 여기 연세 드신분들은 공유하는 기억일 겁니다. (조광 교수님은 1945년생으로 올해 만 70세) 그 시절에 가위로 손톱을 깎았어요. 그러다가 미제 손톱깍기를 사용했는데 미제는 간단편리했고 복잡하지가 않았습니다. 그러던 것이 1960년대 중엽에 국산 손톱깍기가 나왔습니다. 미제와 비교해서 쇠가 무르지 않아서 손톱이 찢어지곤 했지만, 국산을 애용해야 한다고 학교에서도 많이들 얘기하고 그래서 그걸 사용하고 가위로 마무리한 기억이 있습니다. 그 자체로 저 역시 우리나라 산업화의 한 축을 담당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소비자와 노동자를 빼놓고서 어떻게 산업화를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국정화는 우리 생각을 규정짓고 병들게 해
쿠데타로 나라를 탈취하는 이들도 다 산업화를 명분으로 내세웁니다. 중남미의 쿠데타 세력들도 들고 나올 때의 명분이 다 산업화입니다. 그런데 산업화가 되었습니까? 그들의 주장이 국민의 의견과 맞지 읺으면 안된다는 것이고, 우리 산업화의 주인은 저를 포함하여 우리들 모두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을 쏙 빼고, 자기들만을 주역으로 설정하고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검열하겠다, 국방부에서 검열하겠다 사방에서 그런 식으로 주장하며 나타난 게 자금 국정화 공방의 현실입니다. 이건 용납할 수 없는 것입니다. 국정화는 우리 사고 규정짓고 병들게 만드는 것이기에 반드시 극복되고 올바로 잡아야 되는 내용이라고 봅니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북한 규탄을 많이들 하죠. 그런 독재국가 북한이 국정화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가장 종북 분자들이 국정화를 주장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끝)
2015.12.12(토) 오후 3시50분
2015년 12월 12일(토) 오후 3시 10분부터 50분까지 약 40여분에 걸쳐 진행된 강의 내용을 정리자의 기억과 기록을 바탕으로 재편집된 것이므로 위의 내용은 실제 강의와는 차이가 있다.
조광 (이냐시오) 교수님의 약력
1945년 출생, 1969년 가톨릭대학교 신학과 학사, 1970년 고려대학교 사학과 학사, 1973년 고려대 사학과 석사, 1979년 고려대 사학과 박사, 1985~2010년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 고려대 문과대학 학장, 고려대 박물관장, 한국사연구회 회장,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 위원장, 한국교회사연구소 고문 등
저서 - 조선후기 천주교사 연구(고려대민족문화연구소/2001), 한국근현대 천주교사 연구의 기초(경인문화사/2010), 조선후기 사회의 이해(경인문화사/2010), 한국사학사의 인식과 과제(경인문화사/2010)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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