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가수 왁스(Wax)의 ‘부탁해요’ MV

- 시대적 배경이 궁금하다 -


왁스(Wax)의 3집 타이틀곡 '부탁해요'(2002년)의 뮤직비디오를 우연히 보았다. 노래도 좋지만, 영상이 70~80년대 한국 사회의 풍속을 살펴볼 수 있어 눈길이 계속 가는 동영상이었다. 




연막소독차(방구차)는 40~50대의 즐거운 회상거리


그런데 궁금증이 생겼다. 우선 시작하는 영상은 새하얀 연무를 내뿜는 연막 소독차와 그 뒤를 쫓는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동네의 골목골목을 누비고 다니는 소독차는 놀거리가 없던 60년대~70년대 시절 아이들에게 서프라이즈를 안겨주는 이벤트였고, 소독약을 내뿜는 소리에 주저없이 뛰쳐나간 아이들은 아무 생각없이 차량의 꽁무니를 쫓아다녔다. 게다가 연막에서 묻어나오는 석유냄새는 당시 아이들의 코를 취하게 만드는 일종의 환각제이기도 했다. 이제 40대~50대의 나이가 된 그 시절 아이들에게 연막소독차는 즐거운 어린시절의 서랍칸에 고이 모셔놓은 기억으로 남아있기도 하다. 그래서 왁스의 '부탁해요'라는 뮤직비디오는 연막소독차로 영상을 시작하는 것일게다. 


구두닦이 소녀(강혜정)과 음악다방 DJ(김남진)의 러브스토리


이 영상에 구두닦이 소년모습으로 등장하는 여주인공은 강혜정(1982년생)이다. 속은 영낙없이 여자이지만, 겉으로는 씩씩하고 털털한 구두닦이 소년처럼 온 동네를 누비고 다닌다. 이제는 추억의 간식이 된 달고나 뽑기를 사먹기도 하는데, 그 순간 레코드점에 들어가는 근처 [돌체 음악다방] DJ 남자를 보고 한 눈에 반해버린다. 그것이 바로 이 동영상의 시작이며 줄거리다. 1976년생 배우 김남진이 DJ로 등장하는데, 그를 보기 위해 구두닦이 소녀의 발길은 종종 음악다방으로 향한다. 구두약 검정때가 묻은 차림의 잦은 출현은 다방 종업원에게 쫓겨나는 결과로 이어지니까 결국은 여성스럽게 옷을 차려입고 어느날 그 다방에 손님으로 찾아간다. 그것이 그들의 본격적인 인연이 된다. 


너희가 방구차를 아느냐


그런데 이 시대적 배경이 참으로 궁금하다. 일명 '방구차'라고도 불리던 연막 소독차로부터 추리를 해보면, 연막소독차가 등장한 것은 1962년 군용차의 소독작전이 시작이었다. 서울시의 요청을 받고 모기와 유충, 전염병균들을 소탕하기 위해 DDT 연막살포 작전에 나섰던 것이다. 1967년 모기 뇌염으로 여름에 150여명이 사망한 기록도 있다고 하니 그 시절에 가장 무서운 것 중에 하나는 바로 모기였던 것이다. 그리고 연막소독차는 1990년대에 이르러 그 비효율성으로 인해 사라지고 있었다. 그래서 이 뮤직비디오의 시대적 배경은 1990년대 이전으로 봐야 하겠다. 


교복의 완전자율화는 1983년부터


그리고 두번째로 이 영화를 처음 시작할 때 교복을 입은 여학생 두명이 지나간다. 이후로도 하계 교복을 입은 고딩들의 모습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1983년도에 교복자율화와 두발자율화가 시행되어 전국의 중고딩들은 자유로운 복장으로 다닐 수 있었다. 따라서 교복을 입은 학생이 등장하는 뮤직비디오의 시대적 배경은 1982년 이전으로 봐야 할 것이다. 


컬러 텔레비전의 등장은 1980년 12월 1일


남자 주인공인 DJ 김남진은 흑백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1980년 12월 1일 컬러텔레비전 방송이 시작되었기때문에 (물론 그렇다고 흑백이 없어지진 않았지만) 1980년 이전으로 다시 좁힐 수 있다. 


삼양의 유가공업 진출은 1980년이었다


그런데 DJ 룸에서 김남진이 어항의 물고기에게 요구르트를 나눠주는데, 상호가 얼핏 '삼양'이라고 보여진다. 그리고 삼양식품은 1979년 2월 미국의 낙농식품회사 '카네이숀'과 기술제휴계약을 체결하고 강원도 문막에 유가공공장을 설립하고 1980년도부터 유가공업계에 진출한다. 이 때 대관령 우유를 비롯해서 삼양 대관령 요구르트도 나왔을 것으로 본다. 따라서 영화는 1980년 이후로 봐야 한다. 


19금, '별들의 고향'이 개봉한 것은 1974년


여기까지 봤을 때 이 뮤직비디오의 시대적 배경은 1980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주인공 남녀가 인연을 맺고 함께 영화관에 갔는데, 개봉영화가 [별들의 고향]이었다. 이 영화는 1974년 4월 26일 개봉한 청소년 관람불가의 영화였다. 사실 뮤직비디오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1980년보다는 1974년에 가깝게 느껴진다. 게다가 영화의 극장간판벽화의 크기로 보았을 때 개봉관 느낌이지 한참 지난 영화를 다시 틀어주는 재개봉관 같은 느낌은 나지 않는다. 아무튼 곱게 차려입은 강혜정은 그 영화가 뭐 그리 슬픈지 울면서 영화관을 나온다. 그걸 김남진이 귀엽다는 듯이 웃음기 머금은 표정으로 바라본다. 

(* 참고로 그들이 처음 만난 곳의 담벼락에는 1969년 개봉한 미국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의 포스터도 붙어있다.)


담배계의 절대제왕 '솔'의 등장은 1980년이었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화면에 담배 '솔'이 등장한다. 담배 '솔'은 1980년 450원에 출시되었고, 1982년부터 1986년까지 단일브랜드로 시장점유율 60%를 점유하던 국민담배였다. 당시 연간 20억갑이 팔렸다고 한다. 그리고 25년이 지난 2005년 5월 재고가 바닥나면서 모든 공급이 중단되었다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담배 솔의 운명이 순식간에 바뀌었다는 점이다. 1994년 저가 담배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정부는 솔담배의 가격을 최저가 200원으로 내렸던 것이다. 반면에 1994년 다른 담배의 가격은 500원에서 800원으로 올렸다. 그런데 최저가 담배가 된 '솔'은 암시장에서는 1천원에 거래되었다고 한다. 


구두닦이임을 들켜 도망쳐버린 여주인공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이런 궁금증에 글을 남긴다. 우연히 구두닦이 소녀임을 들켜버린 강혜정은 도망쳐버리고, 세월이 지나서 오랜만에 음악다방에 가보지만 DJ는 바뀌어 있었다. 용기를 내어 DJ 룸 근처에 접근해가 보니 그 안에 김남진이 그린 그녀 스케치가 한가득 붙어 있었다. 


후반부 영상은 헷갈린다


최 후반부 영상은 아무리 보아도 이해할 수가 없다. 마루에 앉아 뜨개질을 하는 강혜정 옆에는 갓난아이가 누워있는데 과연 누구의 아이일까? 더 이상 만나지는 않는 사이이므로 다른 남자와 결혼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도 있겠다. 또 이상한 것은 흑백텔레비전은 켜져 있는데 오디오는 나오지 않고, 옆에 자리한 라디오에서 DJ의 음성이 흘러나온다는 점이다. 묵음으로 TV를 켜놓고, 뜨개질을 하면서, 옆에서는 아이가 누워자고, 귀는 라디오에 가있는 것이다. 거기서 그 남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마침 우연히 틀어서 듣게 되었던 것인지 늘 그 프로그램을 듣는 것인지도 불분명하다. 분명한 것은 라디오 DJ가 그녀와의 인연을 담담하게 내레이션으로 풀어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비록 한번도 사랑한다 말하지 못했지만, 사랑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지금 눈 앞에 있는 모습보다 훨씬 더 초라한 모습의 그녀일지라도, 사랑할 수 있었습니다."


이 멘트가 끝나갈 즈음에 한때 구두닦이 소녀였던 여인은 그것이 자신의 이야기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는지 뜨개질을 멈추고 라디오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따스하고 은은한 조명 아래에서 아이는 훌륭하게 잠자코 누워있는 연기를 훌륭하게 해내는 사이에, DJ는 다음 멘트를 풀어낸다.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해 준 그녀. 그녀가 좋아했던 노래로 이 시간을 시작해보겠습니다."


라디오 DJ는 한때 그녀가 좋아했던 그 돌체음악다방의 DJ였을까? 이렇게 라디오 음악방송이 시작하며 왁스(WAX)의 '부탁해요'가 흘러나오고 여주인공 강혜정의 눈가에서는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모습으로 뮤직비디오는 막을 내린다. 


아무튼 결론적으로 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1980년이어야 한다. 물론 그게 중요하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영상을 보면서 궁금해져서 한번 적어본 것일 뿐.  (끝)



왁스(Wax). 본명 조혜리(1976년생) 가요계에서 '윤을 반짝 낸다'는 의미로 '왁스'란 예명으로 2000년 말 솔로활동을 시작했다. 그 전에는 1998년 'Dog' 밴드 리드보컬로 활동했다. 솔로2집 타이틀곡 <화장을 고치고>(2001)는 각종 음악프로그램 1위를 차지하며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위에 소개된 <부탁해요>는 솔로3집으로 2002년 나온 앨범 타이틀곡이다. 



부탁해요


그 사람을 부탁해요 나보다 더 사랑해줘요

보기에는 소심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은 괜찮은 남자예요

눈치없이 데이트 할 때 친구들과 나올꺼예요

사랑보다 남자들 우정이 소중하다고 믿는 바보니까요

술을 많이 마셔 속이 좋지않아요

하도 예민해서 밤잠을 설치죠

밤에 전화할 때 먼저 말없이 끊더라도

화내지 말고 그냥 넘어가줘요


드라마를 좋아하고 스포츠도 좋아해요

야한 여자 너무 싫어하고 담배피는 여자 싫어하지요

절대 그 사람을 구속하지 말아요

그럴수록 그는 멀어질꺼예요

사랑한단 말도 너무 자주 표현하지 말아요

금방 싫증낼 수 있으니

혹시 이런 내가 웃기지 않나요

그렇게 잘 알면서 왜 헤어졌는지

그 사람을 사랑할 때 이해할 수 없었던 일들이

헤어져보니 이제 알 것 같아요

그 사람 외롭게 하지 말아요



Posted by 편집장 슈렉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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