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학교 총학생회(민족고대 제47대 총학생회 고대공감대)가 지난 9월 22일 자신들의 페이스북을 통해 중앙일보 대학순위 평가 반대운동을 펼치고 있어서 주목됩니다. 이들은 최근 고려대학이 8개 학과에서 최상위 등급을 받았지만, 그 소식을 기뻐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마음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정말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의 고민과 결정이 이 시대의 대학이 처한 문제를 정조준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들의 선언문에는 그 문제의 본질이 적혀있어서 소개합니다.


중앙일보 대학순위평가에 대한 고대 총학생회의 진단

1. 대학의 본질을 훼손하고 있다.

2. 대학의 질을 양적으로 계산한다.

3. 대학을 서열화한다.

4. 중앙일보는 대학순위평가로 대학을 함부로 재단한다.

5. 대학의 다양성을 없앤다.

6. 대학을 기업화하고 있다. 


그들은 이러한 대학평가가 진정한 대학의 본질과 진정한 대학의 발전을 훼손하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 마음조차도 받지 않으려 합니다."


여기서 (중앙일보 대학평가에 담긴) 그 마음이란 다음과 같이 정리됩니다.

1. 대학을 서열화할 수 있다는 마음

2. 대학을 기업화해도 무방하다는 마음

3. 모든 대학을 천편일률적 기준으로 평가해도 된다는 마음

4. 대학을 양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마음

5. 대학의 본질을 헤치는 마음.





한편 서울대와 연세대의 총학생회에서도 동참을 논의중이라고 합니다. 이른바 SKY의 반란이 시작된 것입니다. 'SKY'는 대학서열화의 정점에 있는 단어입니다. 이들은 공동 기자회견과 세미나 개최 방안도 논의한다고 합니다. 10월 초에는 중앙일보 사옥 앞에서 3개 대학 공동기자회견도 계획중이라고 합니다. 그동안 언론사의 대학평가에 대해서는 대학차원에서 반발이나 유감을 표명한 적은 있지만, 학생단체가 이렇게 공식적인 반대움직임을 일으킨 것은 최초의 일이라고 합니다.


다만 이런 시각도 가능합니다. 지난해 2013년도 중앙일보 대학평가에서 성균관대가 고려대(4위), 서울대(공동5위), 연세대(공동5위)를 제치고 종합 3위를 했습니다. 포스텍과 KAIST가 나란히 1, 2위를 했는데, 바로 그 때 새로운 용어가 탄생했고 바로 KAPS(KAIST, Postech, SKKU)입니다. 그러면서 말 만들기 좋아하는 일부 언론에서는 스카이(SKY) 서열에 맞서는 캡스(KAPS) 그룹이 형성되었다고 호들갑을 떨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중앙일보 대학평가에서 서울대학은 1등을 한 적이 별로 없습니다. 지난 2012년까지 5년간 KAIST가 종합 1위를 했고, 2013년에 Postech이 1위를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늘 변하는 게 별로 없이 그 아래로 SKY가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그러나 이공계 대학인 KAIST와 Postech은 종합대학과 다른 특성을 지닌 대학이었기때문에 큰 이슈가 되지 않았지만, 2012년 종합 5위였던 성균관대학이 종합 3위가 되었던 2013년에 그것이 이슈화되기에 이르른 것입니다. 그러니 중앙일보의 대학평가를 통해서 SKY 대학이 달라질 게 별로 없다는 의견이 가능합니다. 오히려 대학평가는 SKY에게 마이너스 게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찌되었든 국내 고교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대학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난해 서울대는 비록 종합 5위를 했어도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던 것입니다. 이런 식입니다.


“대학평가에서 서울대가 성대에 뒤졌다고 자녀들을 성대에 보낼 학부모는 없을 것”


이러한 시각이 가능하지만, 고려대 총학생회의 대학평가 거부 움직임은 매우 바람직한 운동입니다. 대학평가는 학생들의 주장대로 대학의 서열화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만들고, 기계적으로 순위에 집착하게 만듭니다. 학교가 대학평가를 위해 소모해야 하는 에너지가 지나치게 많을 뿐만 아니라, 대학경영자는 그 순위의 상승을 대단한 업적으로 포장하여 자랑하는 게 현실입니다. 


또한 스카이(SKY)에 대응하여 캡스(KAPS)가 등장했다는 것도 서열의 변화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진정한 변화는 서열의 의미가 무색해지는 순간을 의미해야 하기에 그렇습니다. 다만, 캡스(KAPS)란 표현이 등장했던 지난해 가을, 이에 대한 '찬반논란' 생기고, 다양한 담론이 형성된 것은 언론매체의 영향이 가장 클 것이지만, 그런 이슈가 세상의 주목을 받은 데에는 SKY보다 성균관대학이 우위순위를 점한 것에 대한 반발심의 작동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미 중앙일보 대학평가에서 1~2위는 KAIST와 Postech이 이십년동안 대체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으며, 그 뒤로 SKY가 자리를 차지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K와 P는 이공계 특수대학이기 때문에 쟁점에서 제외되는 측면이 있는 것이니다. 따라서 지난해부터 성균관대의 약진에 대한 반발심리가 존재한다는 측면도 있다는 점을 생각할 필요는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학벌서열은 평생 단 한번의 '진검승부'로 펼쳐치는 잔혹한 전쟁입니다. 대학 졸업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입학하는 순간 학력이라는 상징자본이 평생을 붙어다닙니다. 필자의 군 사병시절 동료는 F대학교 지방캠퍼스에 다녔습니다. 그 시절 지방캠퍼스의 같은 어문계열 학과는 서울캠퍼스의 국어국문학과, 영어영문학과, 불어불문학과, 독어독문학과 등의 이름과 달라야 했기때문에, 단순하게 영어학과, 불어학과, 독어학과로 설치되었습니다. 군대 동료가 훈련소에 있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같은 학교 출신의 젊은 위관급 장교가 반색하는 얼굴로 다가오더니 물었습니다. "너, F 대학 출신이라면서?" "네. F대학 OO어학과에 다닙니다." 그러나 돌아온 장교 대답은 반색에서 어색함으로 표정을 바꾸면서, "어어, 그래... 그렇구나."하더니 그냥 가버리더라는 겁니다. 


군 동료에게 이 일은 평생의 상처가 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서울대를 가겠다는 결심으로 입시공부에 매달렸지만 결실을 맺지는 못했습니다. 이처럼 대학에 따라 지방캠퍼스를 무시하는 일은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인(In) 서울 대학의 지방캠퍼스에 다니는 재학생들도 그런 무시를 (속은 쓰리지만) 일상스럽게 받아들이는 경우고 많은 것으로 압니다. 이를테면 조려대(고려대 조치원캠퍼스, 현 세종캠퍼스), 원세대(연세대 원주캠퍼스) 등이 그런 사례입니다. 


이처럼 우리나라 대학은 고착된 학벌서열 시스템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것을 표현한 '대학서열가'란 것도 존재하니 말입니다. 이런 식입니다.


서연고 서성한 중경외시 건동홍 국숭세단 광명상가 한서삼


이렇게 '서연고' 다음의 2그룹 ‘서성한’(서강대,성균관대, 한양대)에 존재하는 성균관대가 1그룹인 ‘서연고’를 앞섰다는 것에 대해서 지난 2013년 중앙일보 대학평가 이후 일정한 담론이 형성된 바 있습니다. 이하로 ‘중경외시’는 중앙대, 경희대, 외대, 시립대이고, ‘건동홍’은 건국대, 동국대, 홍익대, ‘국숭세단’은 국민대, 숭실대, 세종대, 단국대, ‘광명상가’는 광운대, 명지대, 상명대, 가톨릭대, ‘한서삼’은 한성대, 서경대, 삼육대를 의미합니다. 


‘서연고가 서성한하니 중경외시가 건동홍이라. 국숭세단이 광명상가하니 한서삼이라네’란 식의 한시풍으로도 읽히는 이 서열은 2006년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인 디시인사이드의 수능갤러리(일명 디씨 수갤)와 네이버 카페 수만휘(수능 만점지를 휘날리자)가 최초의 출처로 짐작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상징하는 것은 대부분의 대학생들을 루저(패배자)로 만든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에서 대학 입시는 ‘학벌과 밥줄을 건 한판 승부’(강준만의 2009년 1월 발간 『입시전쟁잔혹사』의 부제)로 대한민국 국민의 등급이 매겨지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평생의 운명과 신분이 방향 지어지는 계급전쟁인 것입니다.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강준만 교수(아이러니하게도 성대 출신)는 위에 언급한 책(313쪽)에서 동아일보 2008년 11월 7일자 A28면 기사를 인용하면서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2008년 11월 KAIST 서남표 총장은 “KAIST를 세계 최고의 대학으로 만들기 위해 학부정원을 700명에서 1,000명으로 늘리고 교수를 450명에서 1,000명으로 증원하려 했는데, 교과부가 허가를 안해준다”며 “정부는 지방대의 반발을 우려해 난색을 표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답답한 노릇이다. 교과부는 수만 명의 정원을 가진 SKY 대학의 기득권은 존중해 주면서 왜 KAIST의 정당한 요청에 지방대 핑계를 댄단 말인가?


서남표 KAIST 총장의 팽창 정책이 강준만에게 긍정적으로 비친 이유는 그것이 우리나라 대학의 ‘서울대 일극구조’를 깰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즉 ‘서울대’라는 정상에 오른 자만이 성공한 사람이고 나머지는 모두 패자가 될 수 밖에 없는 일극구조를 다극구조로 바꾸자는 제안인 것입니다. 서열의 유동성을 통해 엘리트의 출신대학 구성을 다양화하자는 주장이며 그것이 바로 그가 진단하는 대학입시 문제의 핵심입니다. 


그런데 KAIST는 이미 최정상의 대학으로 특별법으로 설립되고 교육부의 통제 밖에서 과학고 2학년을 ‘과학영재선발위원회’의 절차를 통해 미리 선발해왔습니다. 가을경에 최종합격자를 발표하는 특권적 지위를 유지하던 것은 오늘날 수시모집의 모델이 되기도 했는데, 수시전형의 등장과 과학고 조기졸업제도가 생겨난 10여년전부터 특권적 지위를 상실해 가고 있습니다.


강준만은 엘리트 다극화를 위해 KAIST 총장의 정원 확대를 찬성하는 듯한 입장을 보였지만, 이미 KAIST는 기존의 이공계 엘리트가 거치는 필수코스라는 사실은 모르는 것 같습니다. 전통적인 이공계 학벌은 기본적으로 서울대 학사를 졸업하고, KAIST 석사를 마친 뒤 미국대학에서 박사를 받는 것을 10여년 전까지는 정통으로 꼽았습니다. 

 

다만, 강 교수가 주장하는 엘리트의 출신대학 다극화는 현실의 프레임을 반영한 실용적인 제안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캡스’란 용어의 등장으로 언론에서는 호들갑을 떨고, 일부 학생들은 이 신조어를 인터넷 상에서 열심히 퍼나르고 있는 현실의 배경에는 사실 대학의 상업화와 재벌기업의 대학 재단 흡수에 맥이 닿아 있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언론 프레시안의 2013년 10월 10일자 기사 ‘성균관대가 대학평가 1위?… 진정한 대학교육이란?’(김하영기자)에서 ‘최근 대학 사회를 술렁이게 한 사건이 있다’고 전제하면서 성균관대가 서연고를 제치고 종합대학 중 1위를 차지하고 중앙대도 10위에서 8위로 상승한 배경을 ‘재벌기업들이 투자하는 대학들의 순위가 높아지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특히 최근 대학의 시장 경쟁이 강화되면서 재벌대학들이 각종 평가에서 유리’하다는 것입니다. 

 

당시의 교수신문은 2013년 11월 11일자 ‘언론사들, 이윤 추구 위해 대학을 상품화했다’(윤상민 기자)라는 보도를 통해서, 고부응 중앙대교수(영어영문)의 학술대회 발표를 인용보도했는데, 그것은 “중앙일보 대학평가가 대학을 몰락시키고 있다. 대학 운영진이 순위 상승을 위해 평가지표에 맞춰 교수와 학생, 대학시설을 관리할 때 대학의 사명인 새로운 지식 추구와 지적 성장은 대학의 수행과제에서 관심거리가 되지 않는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고부응 교수는 2013년 11월 7일부터 3일간 숙명여대에서 열린 한국영어영문학회(회장 김기호, 고려대) 국제학술대회 자유세션에서 「대학 순위평가와 대학의 몰락」발표를 통해 이렇게 비판했다.


대학평가는 전체 대학이나 학문 단위의 기본요건을 점검하기 위한 ‘인증평가’와 평가 대상의 우열을 가리기 위한 ‘순위평가’로 구분된다. 정부기관의 인증평가는 교수의 연구자 교육자로서의 자질, 대학교육 이수자인 졸업생에게 기대하는 일정 수준 이상의 지적 능력을 대학 외부가 판단할 근거를 확보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사기업인 언론사가 주체가 돼 시행하는 순위평가는 대학교육 수요자에게는 미래를 위한 투자상품 안내서로, 평가기관에게는 현재 이윤을 확보하게 하는 기업상품으로 작용한다.


언론사의 대학평가는 1983년 미국『US News & World Report』가 시작이라고 합니다. 이후 미국의 여러 언론사들이 미국내 대학 평가 시장에 뛰어들었고, 영국에서도 The Times 등의 언론사가 영국내 대학평가 사업을 펼쳤습니다. 우리나라는 1994년 중앙일보가 미국 언론사를 벤치마킹하면서 대학평가시장에 최초로 진입했고, 조선일보는 뒤늦게 QS와 손을 잡고 아시아 대학평가시장을 개척했습니다. 대학평가의 시장성에 언론매체들이 눈을 뜬 것입니다. 2010년 경향신문, 2013년 동아일보도 대학평가 시장에서 차별화된 평가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학평가는 대학을 서열에 매달리게 만들어서, 신문을 더 팔려는 철저한 비즈니스 전략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미 첨예한 계급전장터인 교육만능주의적 입시전쟁터에 시장만능주의라는 가공할 신무기가 장착된 것으로 봐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따라서 고대 총학생회의 대학평가 거부운동이 전 사회적으로 반향을 일으키길 기대해봅니다. 



Posted by 편집장 슈렉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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