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세계교회사 4 교시(끝). 최민호 마르코 신부님의 4교시 강의내용입니다.

2015-1-3 토요일 오전 11시45분~12시30분, 가톨릭대학 진리관 3층 대강당

가톨릭교리신학원 통신신학교육부 1단계 2학년 2015년 1월 동계연수


아래 내용은 필자의 기록과 기억을 재구성한 것이기에 실제 강의와 차이가 있습니다. 또한 강연자 최민호 신부님의 의도와 다르게 읽힐 수도 있읍니다. -필자 주 




세계교회사 4 교시

 

독일학자가 쓴 빨간표지의 세계교회사 책을 소개해드립니다. 독일 학풍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인터넷 책소개) 세계 교회사 l 아우구스트 프란츤 | 래미기우스 보이머 (지은이) | 최석우 (옮긴이) | 분도출판사 | 2004-03-22 | 정 25,000원

교회사의 주요 사건과 신학의 흐름들을 관련된 정치ㆍ사회ㆍ문화사적 배경 속에서 종합적으로 규명한 책. 2000년도까지의 교회역사를 포괄함으로써 교회사의 생생한 "현재진행형"을 보여준다. 방대한 사료와 치밀한 분석으로 가톨릭측에서 표준적인 교회사 교과서로 꼽힌다.


 

<함께 읽는 세계교회사>는 부산교구 전수홍 신부님이 지은 책입니다. 저와 같은 그레고리안 대학을 나오신 분입니다. (함께 읽는 세계교회사 1, 2 . 전수홍 (지은이) | 생활성서사 | 2009-07-17  | 정가 15,000원(1편), 16,000원(2편))


참고. (2009년 8월 16일 평화신문) 

그리스도교는 어떻게 세계 최대 종교가 되었나?  <함께 읽는 세계교회사> 전수홍 신부



 

그리고 프랑스 학풍으로  쓴 책이 있습니다. (세계교회사 여행 1, 2권) 


(인터넷 서점 책소개 인용) 교회의 역사와 수많은 원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책. 프랑스의 장 콩비 신부가 2000년 교회사를 재미있는 이야기 형식으로 집대성한 책으로, 1권은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던 때부터 교회가 유럽을 지배하던 중세까지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역사적 사실만 주로 나열된 교회사 책들과 달리, 당시의 시대 상황을 잘 반영해 주는 원전들이 함께 수록되어 있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디다케》, 《사도 전승》, 에우세비우스의 《교회사》, 《헤르마스의 목자》 등 교회사를 아는 데 반드시 필요하면서도 평소 접하기 힘든 원전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또한 독특한 삽화들도 수록되어 있어 보는 재미를 더한다. 이 책은 교회사에 관심 있는 이들을 위한 필독서로서, 역사적인 사건을 생생하게 접하고, 교회사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세계 교회사 여행 1 : 고대 중세편- 2000년 교회의 역사를 원전과 함께 읽는다 l 세계 교회사 여행 1

장 콩비 (지은이) | 이종혁 | 노성기 (옮긴이) | 가톨릭출판사 | 2012-04-20 | 정가 25,000원


세계 교회사 여행 2 : 근대.현대편- 2000년 교회의 역사를 원전과 함께 읽는다 l 세계 교회사 여행 2

장 콩비 (지은이) | 노성기 | 이종혁 (옮긴이) | 가톨릭출판사 | 2012-10-26 | 정가 29,000원



교회는 예수님께서 주고 가신 것을 보존하려고 하면서 끊임없이 쇄신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교재 46페이지 참조) 고대중세로의 과도기에 서로마제국은, 콘스탄티노플 황제가 천도하면서 서쪽은 허해서 춘추전국시대가 된겁니다. 그러면서 게르만민족 넘어와서 짓밟고 그러다가 제국자체가 멸망합니다. 교회를 보호하던. 제국의 멸망으로 교회는 살아보려고 애를 씁니다. 그 때부터 중간시기다. 그래서 중세의 특징은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세상에서 '중간지대'라고 욕하는 것과 다릅니다. 


이 당시, 수도원 중심으로 문화부흥이 시작됩니다. 그러나 르네상스 때 비판은 그 전 종교적 지도자 힘이 셌다는 거죠. 전 유럽이 가톨릭을 통해서 하나가 된 시기입니다.  중요한 중세의 흐름만 말씀드리면, 이제 박해시대 끝나고 교회가 세상 밖으로 나오고, 서로마제국의 멸망 후, 서쪽 지방은 알프스 이북쪽 왕조들이 로마제국을 꿈 꿉니다. 무력통일을 하면서 정신이 약하죠. 지금 미국은 강하지만 자신을 로마역사로 보고 있기때문에 학생들이 로마로 수학여행을 옵니다. 중고생들이 말이죠.


그러면서 Give and Take를 합니다. 황제는 땅을 주고 교황은 지팡이를 줍니다. 땅을 인정하면서 양립합니다. 이탈리아 여행하면 주교좌 성당하고 세속적 지배했던 왕궁이 붙어있습니다. 세속과 영이 공존하며 Give and Take한 것입니다. 거기서도 끊임없는 쇄신은 성직매매와 니콜라오직(니콜라주의, 엄격한 성직체제, 성직계급제도)은 교회의 가장 큰 죄악이 되죠. 


세속적인 사람이 됩니다. 천주교 공무원이 되고, 그걸 개혁하면서, 자기 사생아까지 생깁니다. 가톨릭교회의 독신주의는 트리엔트 공의회, 1570년대 이후입니다. 그게 교회법이니 교황님이 풀 수 있습니다. 자기 자녀를 조카로 속이고 물려줍니다. 


세상의 권한이 주어지니 그게 수도원까지 주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그 때마다 끊임없이 바닥을 치면서 위대한 성인들을 보내줍니다. 수도원도 개혁하죠. 더 엄격하게. 지금 많은 수도원들은 근대에 나온 것입니다. 수도원은 서방에서 베네딕토 수도원을 시작으로 개혁이 시작됩니다. 교회 안에서는 공의회를 통해 쇄신시키려고 합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이 나오던 시절은 교황 힘이 아주 강했습니다. 그 때 환시가 허물어진 교회를 지어라. 그래서 성당 건물을 새로 지어요? 그게 아니죠. 


1천년의 중세에서 개혁을 시도하면서, 성직매매를 고치려고 합니다. 세상의 많은 공격을 받은 것이기도 합니다. 중세의 가장 큰 특징은 교황님이 영적 지도자이며 세속적 지도자라는 사실입니다. 동서 로마에 콘스탄티노플 수도가 되면서, 그 전까지 탄소측정 되기 전까지 교황님 문서 조작합니다. 800년도 정식 문서 나타납니다. 이탈리아는 도시국가인데, 교황령, 교황님 땅에서는 세속적 권한, 그래서 교황이란 단어가 나옵니다. 처음 다섯개 주교좌가 있지만, 동서방으로 나눠지고, 분열이 시작되면서, 우리는 프랑크왕국과 세속적 결탁을 잘했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로마교회 대표주교가 그 전통을 베드로사도 수위권으로 진리의 보존자로 교황님을 모시는겁니다. 


교황님들은 세속적 황제역할을 많이 합니다. 영신적 자기복음을 선포하기보다는 공무원 행세를 하면서 주교나 수도원장도 그런 일을 따라합니다. 1300년도의 절정 권력 (교재 잘못된 부분이 있다고 하면서) 폄하하는 것이 바로 '아비뇽 유수'입니다. 그런데 '유수'가 아니고 아비뇽 '이전'입니다.


(참고) 위키피디아... 아비뇽 유수(幽囚)는 기독교 역사상 13세기에 로마 교황청 자리가 로마에서 아비뇽으로 옮겨 1309년부터 1377년까지 머무른 시기를 말한다. 고대 유대인의 바빌론 유수에 빗대어 쓰인 표현이다.


아비뇽 교황청 모습

아비뇽 교황청 사진이 잘 소개된 블로그 http://younghwan12.tistory.com/3177


그러면서 다시 그 시대 1300년대 후반에 로마 귀족의 힘이 세고, 설득을 못한 거에요. 역사적 사실은 로마에 있지 못하고, 나폴리 주변 떠돌이 생활하다가,  역사적으로 처음 사퇴하는 거죠. 교황님 스스로 밖에 사퇴를 못하죠. 그 시대 추기경을 저마다 밀어주는 귀족들 싸움으로 3개월이 지나도 못 뽑다가 팽팽하니 늙은 수도원의 신부를 교황으로 모십니다. 보니파시오 8세 교황이 개혁을 시도하자 감금하고 사퇴를 종용하게 됩니다. 


여태 3번 있었는데, 왼쪽 스페인, 위로 프랑스, 오른쪽 독일 아래 이탈리아 그 땅으로 가죠. 떠돌이끝에 이전하죠. 역사적으로 스스로 이전한 것입니다. 끌고 가야 유배이고 유수일텐데, 사실적으로 자발적으로 아비뇽 이전입니다. 1408년부터 70년동안 집도 짓고 하면서 프랑스 남부니 프랑스 도움 많이 받습니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1309년부터 1377년까지라는 게 맞는 것으로 보인다. 필자의 기록과 기억이 잘못되었거나, 당시 최민호 신부님의 숫자 발언에 착오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두산백과>


1309∼1377년까지 7대에 걸쳐 로마 교황청을 남프랑스의 론강변의 도시 아비뇽으로 이전한 사건. 고대 유대인이 바빌론에 강제 이주된 고사를 본떠 '교황의 바빌론유수'라고도 한다. 13세기 말부터 세속 권력이 신장하자 프랑스왕 필리프 4세는 교황 보니파티우스 8세와 싸워 아나니 사건(1303)으로 우위를 차지했다. 


그 결과 1305년 선출된 프랑스인 교황 클레멘스 5세는 프랑스왕의 강력한 간섭을 받았으며, 로마로 들어가지 못한 채 프랑스에 체류한다. 교황은 초기에 아비뇽 북동쪽에 있는 카르팡트라스에 정청을 설치하고 아비뇽에 거주했으나, 제4대 클레멘스 6세 때인 1348년 프로방스 백작 겸 시칠리아 여왕으로부터 아비뇽을 사들여 파리 왕궁을 모방한 호화스러운 교황청 궁전을 건조하였다.


제6대인 우르바누스 5세 때 일시 로마로 복귀하였으나 교황청의 주요 기능은 아비뇽에 잔류하였고, 1377년 그레고리우스 11세에 의해 본격적인 로마 복귀가 이루어질 때까지 역대의 프랑스인 교황이 독자적인 프랑스적 교황청 행정을 담당하였다. 


일반적으로 유수 시대는 중세 교황권의 몰락기로 간주하고 있으나 근년 연구에서는 클레멘스 5세에 의한 교회법, 교회재판 제도의 확립, 제2대 요한 22세에 의한 교황청 재정·징세기구의 재정비 등 근세적 성격의 혁신이 있음을 인정하고, 궁전 건축을 비롯한 미술 면에서의 번영과 휴머니즘 학회의 보호·장려 등의 측면을 인정하여 이 시기를 재평가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교회분열기인 1378년 로마에서 우르바누스 6세가 선출되자 프랑스인파(人派)는 이에 불만을 품고 대립되는 교황 클레멘스 7세를 내세워 또다시 아비뇽에 교황청을 열어 1417년까지 존속시켰다.


대립교황의 등장... 이것이 가톨릭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나 아니냐로 보면서 이단이냐 아니냐는 아니죠. 그 때 교황은 대를 이은 것으로 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 교황의 힘이 약해지고, 귀족들 힘이 세지고, 학자들 힘이 세지면서 공의회 우위설도 등장하고요. 이게 르네상스 이후 유력하게 등장합니다. 


중세시대 1300년도부터 새로운 시대로 구분했습니다. 13세기에 많은 학자들이 나오죠. 교회가 직접 가르쳐주고 그런데 인간 스스로 판단한다고 보면서 로마제국 시작 전에 있었던 위대한 문화유산을 찾습니다. 문헌의 발견입니다. 그리스 사상의 책들을 읽기 시작합니다. 인간중심. 인간도 스스로 탐구한다. 왜 그러냐면 중세는 진리의 보존은 시키는 대로 했다는 거지요. 


이탈리아 도시 국가들이 자기도 황제 할 수 있다고 믿었어요. 그 시대 교회는 힘이 약해서 이전했죠. 아비뇽으로. 70년 지나고 다시 왔는데, 로마에 들어와보니, 귀족들은 문화예술 하고 있고 들어와서 100년간 르네상스 교황. 그 분들은 쫓겨날 수 없으니 살아간 겁니다. 


출판 인쇄술의 등장


역사는 갑자기 생기는 게 아닙니다. 서방의 가장 큰 역사적 사건이라면, 출판인쇄술이 15세기 1400년도 쯤에 생기죠. 그전에는 수사들이 필사하죠. 사제들 얘기만 들은 거죠. 출판인쇄술로 일반인들도 성경을 읽습니다. 그러고보니, 지금 교회는 많이 변했다고 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전을 짓자. 베드로 성당이 작았는데, 성전을 짓는 이유가 공동체 형성이죠. 그래서 많은 설계사 보냈는데, 고해성사는 원래 평생 한번 보는 겁니다. 그래서 보속이 엄청 강했습니다. 그 중 예루살렘 도보 성지가 있는 데 그 당시 순례를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마르틴 루터, 또는 말틴 루터(Martin Luther 또는 Luder, 1483년 11월 10일~1546년 2월 18일)는

신성 로마 제국의 기독교 신학자이다. (위키피디아의 마르틴 루터 소개 연결)


전대사도 요즘은 공동구매로 싸졌지만, 그 당시 50년에 한번 있는 일이었어요. 그러면서 그 중에 루터는 이런 건 아니다. 성서 읽게 하고 성서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그래서 반발합니다. 교황님이 한 것들을 말이죠. 그리고 결혼은 쫓겨나서 한 겁니다. 원래 성경 말씀. 그동안 세상 일에 너무 관여했다 그러면서 개혁하자는 겁니다. 


그러나 가톨릭 교회는 내부 문제를 쇄신시키자고 트리엔트공의회를 엽니다. 그 때는 목사님들처럼 신부 밑 신부, 주교 밑 주교들이 있는데, 근세에 이뤄진 겁니다. 1492년 신대륙 발견으로 선교의 사명이 부흥합니다. 그런데 미개하다는 시각으로 강제선교. 그 때 시복식 제도가 생깁니다. 지역 문화를 인정하자는 것이고요.  예수회는 교육과 설득으로 신앙인을 양성합니다. 


여기서 교회는 두가지 선교방식을 갖게 됩니다. 문자 갖고 있는가, 글자가 있는가? 글자가 있으면 문화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신을 개조하는 건 어렵습니다. 그래서 설득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문자가 없는 곳이라면 강요해서 리셋시킵니다. 예수회는 아시아 지역. 특히 청나라에서 거기 사서삼경 다 읽고 설득을 통해 선교합니다. 천주실의도 그렇게 씌여집니다. 


그렇게 교회는 많은 방식에 응답을 합니다. 근대주의 등, 그러다가 프랑스 대혁명으로 교회도 바뀝니다. 민중봉기로 교회가 시점 잡는 건 세상 참여하여 세상 속에서 아파하는 이들과 함께 하자. 교육사업 등 하는 많은 횔동수도회가 많이 나옵니다. 안에서만 살면 안되겠다. 세상에 위기에 있을 때마다 그런 변화들을 이뤄내는 것입니다. 


수위권은 교황 만이 베드로사도 전통으로 으뜸이다. 무류권은 오류가 없다는 겁니다. 그 이유는 진리보존때문입니다. 


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만 해도 직무의 중심자는 교회와 성직자였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신앙인의 눈으로 이땅에서부터 천국의 삶을 앞당겨 살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진리를 보존한 교회의 2천년이 우리 자부심이고 신앙의 역사입니다.


12:22분 강의종료

다음은 최민호 마르코 신부님의 세계교회사 4교시 강의내용입니다.

2015-1-3 토요일 오전 11시45분~12시30분, 가톨릭대학 진리관 3층 대강당

가톨릭교리신학원 통신신학교육부 1단계 2학년 2015년 1월 동계연수


위 내용은 필자의 기록과 기억을 재구성한 것이기에 실제 강의와 차이가 있습니다. 

또한 강연자 최민호 신부님의 강연 말씀 의도와 다르게 읽힐 수도 있읍니다. -필자 주 



Posted by 편집장 슈렉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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