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태 신부님의 그리스도교철학 2교시

 

김진태 신부(가톨릭교리신학원장)의 그리스도교 철학

시험은 지적 평가이지 영성 평가가 아니다


여러분 교재 165쪽에 있는 <현대의 사제양성 51항, 52항> 다 읽어봤죠? (읽어봤을 리가 있나!) 어떤 분은 부록까지 읽냐고 하실 수 있어요. 철학도 어려운데 말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부록으로 넣은 이유는 이런 것입니다.


현대의 사제양성 전자책 보기 (한국천주교주교회의) (51항은 134페이지)


부록으로 넣은 이유는아무리 철학이 중요하다고 해봐야 제일 큰 권위를 부여하는 분의 이름을 빌어서 철학이 중요하다는 걸 말씀드리기 위해 부록으로 넣은 것입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이 오늘날 사제양성이 너무나 어렵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같이 고민하기 위해 전세계 주교님 가운데 사제양성과 관련된 주교들은 모두 다 바티칸으로 와라.  그리고 회의해서, 그 바탕으로 문헌을 공포합니다.


그래서 1992년인가 나온 문헌입니다. 이 글은 가톨릭 교회가 교육 시킬 때, 사제교육은 기준이 되는 교육입니다.  평신도도 사제양성 어떻게 시키는 지 봐서 그 모범으로 우리의 과정을 짜는 겁니다.  교리신학원 등의 과정도 신학원 과목에 준해서 짜인 것입니다.  여기에 보면, 사제들 교육할 때 영성교육, 인간교육, 그리고 지적인 교육 즉 공부는 어떻게 시켜야 하는지, 다 공부하고 사제된 뒤 후속적 교육은 어떠해야 하는지 전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이 문헌입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사도적 권고 - 현대의 사제양성 -


지적인 교육 신앙을 이해하기 

51. 지적인 교육도 그 나름의 고유한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적 교육은 인간 교육 및 영성 교육과 깊이 연관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그와 같은 교육들이 잘 이루어지는데 필요한 교육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지적 교육에서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지성을 요구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지성을 갖춤으로써 하느님의 정신이라고 하는 빛에 참여하게" 되며 하느님을 알고 하느님만을 따를 수 있도록 해주는 지혜를 얻으려고 노력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제직 지원자들에게 지적인 교육을 시키는 것이 매우 정당하다는 것은 서품자들이 수행하는 직무의 본질을 보면 분명하게 알 수 있으며, 또한 바야흐로 제3천년대를 향해 나아가려고 하는 이때에 주님께서는 교회가 "새로운 복음화 를 전개하도록" 부르고 계시다는 것을 보아도 오늘날 이러한 지적 교육이 얼마나 시급하게 요구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시노드의 교부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 "만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언제라도 신앙을 옹호하고 우리가 간직하고 있는 희망에 대해서, 설명해 줄 수 있는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면 (1베드3,15 조) 그럴수록 더욱더 사제직 지원자들과 사제들은 사목 교육과 사목 활동에서 지적 교육이 차지하는 가치에 대해서 늘 깊이인식하고 있어야만 합니다. (51항 이하 생략)


52. 지적 교육을 하는 데 있어서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는 철학을 공부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철학 공부를 함으로써 인간과 인간의 자유에 대하여 또한 인간과 세상의 관계 및 인간과 하느님의 관계에 대하여 좀더 깊이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이러한 올바른 철학 교육이 매우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는 이유는 신앙에 비추어 신학에서 가르치고 있는 구원의 신비들과 철학적인 대논제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오늘날에는 마치 주관주의가 진리를 가늠하는 잣대이자 기준인 것처럼 강조하는 문화적인 상황이 극심하게 만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건전한 철학만이 사제직 지원자들로 하여금 인간의 정신과 진리 사이에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완전하게 드러나게 된 진리 사이에 존재하는 근본적인 관계를 더욱더 깊이 생각하면서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습니다 인간은 오직 진리를 바탕으로 해서 자신을 예수님과 교회에 온전히 바치고 철학은 그러한 "진리를 더욱 확실하게 밝혀" 주는 역할을 합니다. (이하 생략)


(이하 생략)



이 문헌 <현대의 사제양성>의 제 51항과 제 52항을 보면, 지적인 교육 맥락에서 교황님께서는 철학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씀하시죠. 51항에서 지적 교육, 즉 공부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말씀하시고,  52항에서는 공부에서 철학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53항에서부터 신학이기 때문에, 이 책에 넣지 않고, 51항과 52항을 여기 교재에 실은 것입니다.

지적 교육도 나름의 특성이 있다


이걸 보면, 잠시 보겠습니다지적 교육도 나름 고유 특성 갖습니다. 지적 교육도 인간교육 및 영성교육과 깊이 연관되었고,  인간에 대한 교육,  영성에 대한 교육과 직접 연관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얘기는 영성교육, 인간교육 이미 앞에서 얘기했다는 것이죠. 뿐만 아니라 그러한 교육이 잘 이루어지도록 필요한 교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험은 지식평가이지 영성 평가가 아니다


인간의 지성을 요구합니다. 지적 교육에서는. 우리가 머리로 공부합니다. 그런데 지적 교육 하는데 지성으로 공부한다는 거 다 알죠. 그러나 많은 경우 모르는 척하죠. 지적 교육 받고 나면, 그 지적 교육 평가하는 게 시험이죠.  그러니까 시험지는 지적 평가지, 인간 교육 평가나 영성 교육 평가가 아닌 겁니다. 그런데 시험 하고 나서 한번 답안지 보면,  ‘존경하는 신부님’이라고 써 있어요. 지적 교육에서는 존경할 게 없는데, 그리고 우리 어머니가 어젯밤에 갑자기 배탈.이 나서 응급실에 가고, 병간호 하느라고 밤샘'이라고 쓰는 경우도 있어요. 와서 시험은 봐야 하고 제일 끝에 붙이는 말 선처를 빕니다.’


선처를 빕니다와 효성 평가


그래서 그걸 보는 순간 저는 야 다른 형제들은 부모가 아프다고 해도 그냥 아픈가보다 그러는데, 역시 우리 교리신학원 학생이니까 정말 훌륭하다.  그래서 '100점' 이렇게 썼죠.  쓰고 나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교황님의 말씀이 떠올랐죠. 지적 교육은 지성을 원하는 것. 효성을 평가하면 안되죠. 제가 준 것은 효성 100점이죠. 그래서 100 썼다가 앞의 10을 지웠죠


해당 당사자가 저 만나면 얼굴 피하고 달아나죠. 저는 그 분 존경하죠. 0점이라도 말입니다. 효성이 100점이라도 여기에는 0이라고 써야합니다. 지적 교육에서는 지성을 구한다. 이걸 뒤죽박죽해놓으면 대학에서 학생들이 양주 갖다주죠지적 교육에서는 지성을 평가한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는 것 같지만, 꼭 그렇지 않으니 교황님께서는 이렇게 씁니다. 인간이 지성을 갖고 있다는 것은 공부는 잘 하는데 실 생활에서 판단을 못하는 경우도 있고, 공부만 잘하는 이기주의자도 있지만그럼에도 우리가 하는 공부는 넓은 의미의 그러한 지성을 갖추는 것이고, 지성을 가진다는 것은 다른 동물과 인간을 구별해주는 능력이고, 바로 이것은 하느님으로부터 받았다고 하니하느님의 빛이 우리의 지성에 참여한다고 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빛이 우리 지성에 참여한다


지성을 사용해서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존재의 증명을 하려는 노력, 하느님의 진리까지 알 수 있는 게 우리의 지성인 것입니다그래서 그것이 작동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제 양성에서 지적 교육이 그래서 중요한 것입니다. 교황님이 제 꿈에 나타나셨습니다. 강의할 때 빼먹지 말고 사제직 지원자들과 이렇게 통신으로 신학을 공부하는 사라들에게지적 교육 매우 중요하다는 것은 그들 직무가 무엇인지 알면 매우 중요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현대의 사제양성 제51항에서) 시노드의 주교들(아까 말한 회의) 거기 모인 주교들을 교부들이 이렇게 말하고 있다라고 써 있습니다.


"만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언제라도 신앙을 옹호하고 우리가 간직하고 있는 희망에 대해서, 설명해 줄 수 있는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면 (1베드3,15 조) 그럴수록 더욱더 사제직 지원자들과 사제들은 사목 교육과 사목 활동에서 지적 교육이 차지하는 가치에 대해서 늘 깊이인식하고 있어야만 합니다.


항상 설명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믿고 있는 것을 옹호해야 하고, 우리가 지금 이 시간에 여기에 우리가 와 있는 것은 우리가 그들과 다른 어떤 희망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죠. 우리가 어떤 희망을 가지고 있는지 설명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죠?  우리한테 묻는 이가 있다면 항상 설명해줄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하고 말했죠. 이것은 성경에, 베드로 1서에 나온 말입니다.


바로 시노드의 교부들은 성경의 이 말을 인용하며,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그래야 하면, 더더구나 사제들은 더 해야 하죠. 신학원 신학공부하는 사람들도 결국 우리 신학 옹호 능력 주어져야죠.  어떤 신앙이야 설명할 준비 갖춰야죠.  설명한다. 옹호한다.  이건 총칼로 옹호하나요?  아니죠. 내가 믿는 것은 이런거야 설명해야 겠죠. 초대 교회 많은 순교자들. 하나도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라도 사도들이 아무것도 배운 게 없는데 왜 그렇게 지혜가 많이 나오나?  이렇게 기록이 있습니다.  내가 믿고 옹호하는 것이죠.


'알려고' 하는 것은 항상 지성의 작용


또 우린 어떤 희망이 있나요? 천국에서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이 있습니다. 이 세상이 다가 아닙니다.  그래서그리스도교 신자들이 갖춰야 한다는 것입니다그래서 설명을 한다면 더더욱 사제직 지원자들과 사제들은, 통신으로 공부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공부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그 가치를 깊이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우리는 형제 자매의 구원을 위해서 하느님의 신비를 알려고 노력해야 합니다알려고안다는 것은 항상 지성의 작용입니다.


다원주의적 사회의 등장


특히 오늘날 상황에서 더욱 중요합니다. 종교에 무관심한 세상입니다. 세상을 이성으로 바라보면서 도 객관적 진리를 믿지 않으려 한다는 것. 새로운 기술의 발전으로 새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주 높은 수준의지적 교육을 실시해야 합니다교회 공동체 안에서 조차도 다원주의적 현상이 눈에 띄게 나오고 있습니다오늘날 다원주의적 사회가 되었습니다.


종교 관용에 대해서


관용은 나도 진리고 너도 진리라고 하면 굳이 관용까지 필요없죠관용은 내가 진리라고 생각하는 걸 열심히 믿듯이, 저 사람 마음을 인정하는 것이죠나도 저도 똑같은 진리라고 생각하는 게 아닙니다. 종교 간의 관용이라는 것은 서로 대화를 한다는 것이고, 대화를 하려면 서로 다른 입장에 있음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추구하는 신학적 논제는 철학적 명제와 연결되었을 뿐만 아니라신학에서 배운 것과 철학에서 배운 것이 연결되어 있기도 합니다. 철학은 엄밀한 구분이 필요할 때 '개념'을 만들죠.  그 개념으로 어떤 사태에 대해 설명해나가죠. 신학도 설명하려고 보니, 구별하는 개념이 필요하죠.  신학을 혼자 못 만들죠.  보편적 자연적 이성인은 못알아들죠보편적 개념에 대해 이미 설명해 놓은 이들이 철학자들이니, 철학적 명제로 신학적 숙제를 풀려는 노력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초대 교회에서 교리, 교의가 만들어졌죠?  그것을 철학적 용어를 갖다 쓰죠행위들, 행위 중심의 실체를 기체라고도 하는 데, 그 본성이 정신적 특징을 가진 개별적 실체라면 이것을 인격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정신적 하나의 기체가 정신적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재 94페이지 설명중(14-1-11 10:33 A.M.)


예수 그리스도는 본성이 신적, 인간적 본성이 있구나. 이렇게도 말할 수 있고철학의 용어를 사용해서 신학의 설명을 해갑니다. 즉 대 논제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철학을 공부해야 한다연결때문 외에도주관주의가 진리가늠 잣대로 강조하는 문화적 상황이 극심히 만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라고 교황님이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세상의 중심은 나?


주관주의가 무엇입니까? 주관이 진리의 기준이 된다는 것이죠. 이 주관이 아닌 객관적 진리가 있는 게 아니라, ‘내가 진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우리 부모님 세대는 사람이 반드시 지켜야할 것을 확실히 애기했죠오늘날에는 엄마도 불안하죠각자의 주관이 진리의 기준으로 만연되어 있으면서,  예수 그리스도도 객관적 진리가 아니라, 내 구미에 맞는 한도에서 내가 맞추는 게 아니라, 예수님이 나한테 맞춰야 하는, 왜냐면 내가 진리니까. 우리가 사는 걸 가만히 보세요. 보는 게 다 나 중심은 아닌지그러면 내 편리, 유익함 이것만 기준이 되죠. 내 불편과 내가 맞춰야 하는 기준은 점점 사라져 가는 것. 주관주의가 오늘날 시대에 한 흐름이 되어,  철학을 통해 진지는 주관에 좌우되는 게 아니라는 걸 가늠하는 것. 그래서 철학공부가 필요합니다. 건전한 철학만이 그걸 할 수 있죠. 건전하지 못한 철학도 있죠


14-1-11 10:51 A.M. 3교시 교재 167


진리라는 것은 인간으로부터 나오는 게 아니다. 하느님의 빛을 받아서 그 진리를 보게 되는 것 객관적으로 있는 진리쪽으로 우리 시선을 옮긴다는 걸 철학을 배우는 것이고 너무 제한되어 있죠. 제한된 방법이고, 많은 어려움 따르지만, 낯선 것 접하는 것은 교황님 요한 바오로 2세도 철학 전공한 분이죠이 분도 분명히 알죠. 그러나 인간의 이성으로 우리 이성으로 계시를 출발점으로 삼지 않고, 이성으로도 객관적, 보편적 진리, 자기 자신에게 좌우되지 않는, 내가 맞춰야 하는 객관적 진리 있음을 알게 되고, 심지어 객관적 보편적 진리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삶과, 하느님과 인간 삶의 근본 진리에 까지 도달한다는 걸 철학으로 알게 된다는 것...


고백록을 읽어라


아우구스티노가 내가 믿는 것을 하나하나 따져보길 원했기에 그동안 엄청난 논쟁과 땀흘려 공부했다고 증언하듯이, 이 분은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제일 똑똑한 분도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는데, 이렇게 열심히 공부한 것은 님을 사랑했기때문입니다. 고백록 읽어보면 저절로 느껴지죠. 다들 읽어보셔야 할 책 중의 하나입니다


이성이 빠진 신앙. 자기가 믿고 있는 내용을 철저히 생각하는 노력이 빠져있는 신앙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철학을 공부하면서 깨닫게 됩니다. 신앙을 가지고 있다면서 믿고 있는 것을 설명하는 노력이 빠진 것은 사랑이 빠진 것. 사랑이 받쳐주지 않은 신앙은 아무 소용 없듯이, 사랑하면 알고 싶은 것이고, 그렇게 알기 위해서 계속 노력하는 것인데, 그런 노력 빠진 신앙은 아무 소용이 없다고 교황님은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2교시 끝.



2014년 1월 11일 오전 10시 45분 2교시 끝

위 글은 서울 혜화동 소재 가톨릭대학교 진리관 강당에서 열린 <그리스도교 철학> 강의 4교시 중 1교시이다. 강사는 가톨릭교리신학원장이시며, 가톨릭대학 철학과 교수이신 김진태 신부. 이 블로그 내용은 당시 강의를 받아적고 기억을 토대로 재구성한 것이기에 실제 강의와 다를 수 있다. 이 특강은 통신신학교육과정의 1단계 1학년 학생의 1일짜리 동계연수의 오전 수업이며, 이것은 가톨릭 교리신학원 통신신학교육부 학생연수프로그램으로 통신신학교육부는 2년씩 3단계로 각 1~2학년을 6년 동안 마치는 우편교육과정이다. 

Posted by 편집장 슈렉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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