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도 중앙대학교 정시모집 광고이미지. 2008년 두산이 인수하며 중앙대는 빠르게 변신했다. 

위의 광고 문구처럼 중앙대학교는 현재 '대학이 상상하지 못했던' 위기에 처해있다.


지난 2005년 한 조사에 따르면, 서울대 교수 중 절반(50.5%)가 미국 대학 박사 출신이라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당시 서울대의 박사학위를 소지한 교수 1635명(재직 1711명) 중 864명이 미국대학 박사 출신이라는 보도인데, 특히 사회과학 82%, 자연과학 78%, 공학 76% 등 사회과학과 이공계 분야는 미국대학 박사 출신이 압도적인 숫자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공계 특화대학들인 KAIST, 포스텍, 광주과기원 등 역시 미국 박사 출신 교수의 숫자가 압도적이라고 합니다. 


2014-4-15 발간, 창비, 13,800원


사실 10년이 지난 오늘날 이러한 모습이 크게 변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김대식 교수는 지난 해 4월 15일 기자회견을 통해 "신임교수를 뽑을 때 미국 박사에게 우선권을 주는 행태를 이제 그만둬야 한다"는 언급에 이어서 "파라오의 피라미드를 쌓는 노예가 돌맹이 하나 얹었다고 피라미드를 노예가 만들었다고 할 수 있나"라는 도발적인 발언을 했습니다. 여기서 파라오는 미국학문을, 노예는 한국학자를 비유한 말입니다. 이런 말은 김대식과 그의 동생 김두식(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이 함께 써낸 책 <공부논쟁 - 괴짜물리학자와 삐딱한 법학자 형제의> (2014-4-15 발간, 창비, 13,800원) 라는 책을 소개하면서 비롯된 말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미국의 대학들이 매우 자율적이고 객관적인 학문의 전당이라는 전통을 갖고 있는가에 대해 물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지요. 미국의 대학에서 펼쳐지는 기업주의형 경영의 모습은 2차 대전 당시 미국 정부로부터 얻은 큰 이익의 경험을 새롭게 투영한 것입니다. 1940~50년대 미국 대학들은 정부와 아주 밀착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가 점차적으로 대학은 정부의 '간섭'을 비난하는 쪽으로 변신합니다. 그 까닭은 정부(특히 군대)의 역할을 기업이 대신해주면서 생겨난 현상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대학들이 주장하는 '연구중심 대학'의 모습은 2차 대전을 계기로 탄생한 것입니다. 이른바 리서치 대학의 탄생이지요. 당시 미국의 많은 대학들이 정부의 군사팽창주의적 정책에 동조하면서, 각종 최첨단 신 무기의 개발에 열중했습니다. 그들이 개발하는 살상 무기들이 어떻게 선량한 양민을 대량 학살하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었던 것입니다.


대학의 경영자들은 '연구'를 부각시키면서 정부의 연구개발비를 받아먹는 데 골몰했고, 따라서 그것이 인류사회에 봉사하게 되는 연구인지, 아니면 인류사회를 파괴하는 연구인지에는 관심이 없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2차대전 당시, 칼텍은 고체연료개발, 시카고대학은 플루토늄 제조에 대한 참여, MIT는 원자탄의 개발 참여와 레이다 장비 연구에 큰 기여를 했다고 합니다. 사실상 인류를 말살하는 무기의 제조가 대학으로부터 비롯되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대학은 군대의 친구였고, 군수산업의 파트너였고, 군관학협력을 통해 외부와의 협력이 대학에 얼마나 큰 이익을 가져다주는 지를 몸으로 체험한 것입니다. 영혼을 팔면서까지 값비싼 고가품을 치장하는 대학으로 타락해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사실상 국가의 막대한 지원으로 덕을 본 미국대학과 미국사회는 대학의 본질적 정체성을 고민하기 보다는 2차대전 이후 급부상한 미국이라는 나라의 번영으로 팽창하는 미래에 더 큰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많은 고등학생들은 로마로 수학여행을 떠난다고 합니다. 로마는 곧 미국이라는 인식이 있는 것입니다. '팍스 로마나',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로 대변되는 로마의 번영과 영광을 자신들의 현재와 일치시키는 것입니다. 


대학은 용역연구의 현장이 되었지만, 그 결과로 미국은 20세기 최대의 패권국가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패권의 버팀목은 군대와 정부의 막대한 연구비로 탄생한 대학용역연구의 결과물들인 셈입니다. 대학은 군대와 연방기구들을 위한 용역 연구의 중심지였던 겁니다. 그러다가 대학은 군관학 협력의 경험을 본격적으로 확장하기 시작합니다. 특히 냉전시대를 맞이하여 대학은 1960년대 석유화학산업을 비롯한 여러 기업들과 밀착관계를 형성합니다. 반도체, 자동차 생명공학 등의 새로운 산업영역에서도 기업이 요구하는 연구결과가 필요하던 시절이 도래하고 있었습니다. 기업의 협력이 정부와 마찰로 이어지는 경우에는 그것을 정부의 간섭으로 규정하고 기업의 주도적인 움직임에 발걸음을 맞추던 대학들은 산업체와의 연계에 대한 논리적 정당성을 세우는데 주력하기도 합니다. '군학협력'의 시대가 지고 '산학협력'의 시대가 온 겁니다. 


사실 이러한 변화가 이뤄지는 터전은 우리가 명문대학이라고 일컫는 하버드대학, 스탠포드 대학, MIT 등입니다. 대학에 대한 기업의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연구자금의 지원은 대학 운영의 동아줄인 동시에 대학의 교육과 연구형태를 변화시키는 촉매제였습니다. 기업이 투자하는 장기 연구과제의 연구비는 교수와 대학원생의 인건비와 연구장비의 구입 등 연구환경의 모든 부분을 이어주는 생명줄이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러한 20세기의 변화는 대학에만 적용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전 사회가 산업발전을 통한 국가단위의 발전을 추구하고 있었기때문에 가장 핵심적인 연구를 수행하는 젊은 집단인 대학원생을 학위 자격증으로 묶어둔 대학의 연구소야말로 산업체 연구개발 성과의 핵심 장소가 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이 추구하는 본질적인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다양한 형태로 분출되던 1970년대에는 대학의 전통적 의미가 완벽하게 훼손되지는 않았던 시절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성찰과 비판의 공간으로서의 대학의 본연의 정체성이 유지되는 가운데, 체제유지의 메카니즘을 담은 연구(군사 무기 개발)의 개념이 2차대전을 정점으로 미국의 대학 연구에 정점을 이루었고, 그 뒤로 산학협력이란 개념이 등장하면서 대학은 점점 더 생산된 지식을 판매하는 백화점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렇게 산학협력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시점이 바로 1979년입니다. 자본주의의 무한경쟁 체제를 본격적으로 움직이게 만든 장본인은 영국의 대처수상과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이었고, 대처리즘과 레이거노믹스의 분위기 속에서 대학의 기술이전을 촉진시키려고 탄생한 미국의 베이-돌 법안(1980, Bayh-Dole Act)이나, 1984년 처음 선보인 대학평가 사업(The US News & World Report) 등은 대학을 경쟁의 포로로 억류시키는 데 성공적인 장치들이었습니다. 그런 까닭으로 세상이 무한경쟁의 체제에 빨려들어가면서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지속가능한 미래를 담보하고 있어야 하는 대학에서도 '생산'과 '경쟁'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종착역으로 달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생산'과 '경쟁'에는 종착역이 있고, 그 종말이 있습니다. 인류의 버스가 터미널에 당도하면, 우리는 승객들이 버스에서 내리듯이 우리도 버려질 수 있습니다. 생산은 제품의 판매와 소비를 통해 존재는 사라지고 쓰레기가 남게 되고, 경쟁은 1등 만을 남기고 나머지 대부분은 도태되어 없어지게 됩니다. 신자유주의는 무한경쟁과 최고효율의 최저가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기때문에, 인간의 얼굴을 가진 대학의 모습은 점점 더 사라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대학들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을까요? 한 마디로 살아남기 위해서 발버둥을 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각오가 없이는 대학의 경영자도 대학을 다니는 학생이나 교수도 하루하루를 편하게 살 수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생존에 대한 처절한 인식은 곧장 취업율, 정부와 기업연구비 확보, 대학 자원의 매출액(기술이전수입액) 등으로 치환되어 세상에 널리 알리는 기괴한 방식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위의 대학 입학생 모집광고에서처럼 아예 솔직하게 모든 것을 다 까놓고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구조조정에서 지켜드리겠다는 웅지세무대학교의 당당한 포부는 사실 대놓고 얘기를 못할지언정 슬쩍슬쩍 대부분의 대학들이 말하고 싶은 것일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기업주의적 대학경영으로 세상의 관심을 모으고 있던 중앙대학교에 '사태'에 해당되는 위기가 닥쳐오고 있습니다. 두산이 대학을 인수하면서 취업에 가장 큰 관심을 갖는 수험생들에게 인기가 상승했던 최근 잘나가는 대학이었습니다. '생산'과 '경쟁'의 깃발을 펄럭이며 대학의 '시장가치'를 기업구조조정 방식으로 추진해가던 대학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대학이 현재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중앙대학교와 관련해서는 필자도 최근 관련 기사를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대학은 세일즈하기 편한 상품을 생산하길 원했다"

요한의대학노트 2015/03/09 10:05


중앙대 위기의 향방에는 '기업적 관점'에서 대학을 운영하려던 두산의 이미지에도 손해를 줄 것이고, 대학은 대학대로 상처를 받게 될 것입니다. 필자는 앞선 글에서 이런 글을 실었습니다.


사실상, 중앙대학교는 2008년도 대기업 두산이 인수한 이후에 빠르게 변화해갔다. 변화의 핵심은 '기업화' 과정이다. '기업화'는 시장이 원하는 것을 산출한다는 뜻 ... 반대로 당장의 시장이 원치 않는 것은 아예 판매는 물론 제조도 안하겠다는 속셈이 깔려 있다. 무엇보다도 대학을 바라보는 기본적인 가치관이나 시선이 '시장, 제조, 생산, 판매' 등의 단어로 귀착되는 것이기때문에 오늘날 중앙대학교의 변신은 좋게 말하면 '산학협력선도형 대학'으로 '선진화'되는 것이고, 달리 보면 '대학의 교육적 가치가 시장에 잠식'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현재 중앙대학교는 전임 총장의 의혹에서 비롯된 검찰 수사의 핵심 무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정치와 기업과 대학이 한 몸처럼 작동되었을 때 어떤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아주 잘 보여주고 있는 모범(?) 사례입니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을 지냈던 전 중앙대 총장 박범훈(67)이 다양한 의혹의 무대 중앙에 섰습니다. 박 전 수석은 2011~2012년 청와대 재직 당시 모교인 중앙대의 서울 본교캠퍼스와 안성캠퍼스를 통합하고 적십자간호대를 인수합병하려는 과정에서 교육부에 외압을 행사하고 특혜를 주도록 한 혐의를 받고 있는 것인데요. 이어서 그는 중앙대 총장시설 교비를 일본 부동산 펀드에 투자해 60억원 대의 손해를 입혔던 것에 대해서도 검찰이 수사에 나섰다고 합니다. 어떤 측면에서는 박범훈을 실마리로 전임 정권의 비리를 추적하는 모양새로 보여질 수도 있기 때문에, 그럴 때 흔히 등장하는 '나는 깃털'에 불과하다는 표현으로 비유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상상해봅니다.


그러나 대학이 기업화되어가는 과정에서 학문의 진실과 자유로운 미래가 저당잡히고, 토론의 내용은 탈색되어 정치적으로 무미건조한 내용으로 변질되며, 논쟁은 어이없는 수준의 선전과 홍보의 수단으로 탈바꿈되는 것이 우려되는 것이라고 보았는데, 심지어 '중앙대 사태'로 표현되는 정치적인 특혜 의혹의 무대에까지 오르게 되는 오늘날 대학의 현실은 분명 대학의 미래가 시대의 미래를 전망하는 보루에서 퇴장하고 있는 것으로 봐야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더 이상 대학은 인간의 미래를 인간이게 만드는 존재의 희망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됩니다.


경향신문 2015년 4월 8일자 칼럼 <'중앙대 사태'를 보면서>는 중앙대 명예교수 이상돈이 쓴 글입니다. 이상돈은 이 글에서 1983년 조교수로 부임하여 30년간 교수로 재직했던 애정어린 삶의 터전에 대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서울캠퍼스와 안성캠퍼스에 얽힌 사연이라든지, 두산이 중앙대를 인수하면서 생겨난 일에 대해서도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있습니다. 글에 표현된 입장에 대해서는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내용은 가치가 높은 글입니다. 


[이상돈 칼럼] '중앙대 사태'를 보면서 ... 경향신문 2015.4.8(수)





Posted by 편집장 슈렉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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