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국대학교와 기안대학교의 공통점
- 선배들에게 극존칭 사용 -
단국대학교 죽전캠퍼스 전경
웹툰 작가 '기안84'란 분의 웹툰 <복학왕>이란 것이 있습니다. 이 작가님은 영화로도 소개된 웹툰 <패션왕>으로 유명하신 분입니다. <패션왕>의 후속작 격에 해당하는 <복학왕>은 현재 네이버에서 수요일 웹툰으로 매주 연재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만화 속 주인공 우기명은 한 지방에 소재한 기안대학교에 다니며 근방에서 자취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현실 속의 대학은 아니지만, 뭔가 서러운 대학생활의 어지러운 단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특히 2014년 7월 29일자로 게재된 <제7화 위대한 선배>편은 군대보다 더 군대같은 대학 선후배의 군기질서를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제 7화에 나온 대사 몇 마디를 소개합니다.
넌 왜 인사 안하냐?
죄송함... ㄷ
뭐라는거 이 ㅆㅂ놈이. 삐적 꼬라가지고, 야!
너 뿔태 쓰고 다니지ㅣ 마라. 다음에도 또 쓰고오면 뒤진다.
선배 페북에 “좋아요” 누른 새끼!
죄송합니다.
선배가 니 친구냐? 선배가 좋아? 카악 퉤!
기본적인 예.의.범.절이 없어
11학번 아래로 학과실로 5시까지 집합해줬으면 좋겠다.
이 대학의 현실은 암담합니다. 패션학부에 다니는 주인공 우기명은 2013학번으로 복학생입니다. 미래는 깝깝하지만, 달리 선택할 방법이 없어서 지방의 기안대학교를 다닙니다. 스스로도 자신이 '쓰레기 대학에 다니고 있다'고 인정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 끝의 듣도 보도 못한 쓰레기 대학... ... 그그곳에 입학하는 순간... 돈과 시간, 미래마저도 집어삼켜 버린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기안대학교는 실제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일정한 부분은 현실의 대학과 비슷합니다.
그런데 최근 단국대학교에서 가상의 기안대학교와 비슷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2015년 3월 11일(수) 오후 15시 25분에 한겨레신문 인터넷에 게재된 기사의 제목은 <[단독] “택시 타지 마, 화장도 안돼” 공포의 대학캠퍼스>입니다. 단국대 학사과정의 선배들이 신입생에게 군대에서 벌어졌다면 군 인권침해 사례로 신고할법한 비상식적인 ‘행동 규정’을 강요하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한겨레 기사에는 카톡 이미지가 등장하는 데 그 내용은 선배가 후배에게 보내는 행동규정의 내용들입니다. 이런 겁니다.
진한 색조화장 금지
모자를 쓰지 않는다
선배들에게 극존칭을 사용한다
선배들과 이야기할 때는 다나까체를 사용한다
담배는 선배가 허락할 때만 피울 수 있다. 혼자 피우다가 선배가 오면 뒤로 숨기고 피워도 되는지 물어봐야 한다
안전을 위해 오토바이나 택시를 이용하지 않는다.
개인 차량도 학회장 허락이 있을 때만 이용한다.
알겠나?
(후배) 네, 알겠습니다.
한겨레 기사에서는 이런 행동 규정이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부터 전달되면서 신입생들은 공포를 느끼고 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선배를 만나면 군대에서 관등성명을 대듯이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단국대학교 OOO학과 OOO전공 15학번 OOO입니다!”라고 인사한다고 합니다.
기사 말미에는 관련 인터뷰들이 짧게 언급되어 있습니다. 단국대의 해당 학부 학생회장은 인터뷰 말미에서 “개인에 따라 (행동규정에 대해) 느끼는 정도가 다르다고 생각한다”는 언급을 전하고 있고, 해당학부 학과장 교수는 “그런 문화가 사라진 지 6~7년이 지났는데, 금시초문이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학교의 교직원은 ‘금시초문’이지만, 단국대 신입생들은 공포를 느끼고 있습니다. 학부모라면 단국대에 자녀를 보낸 것을 엄청 후회할 일입니다. 인권이 존중되기는 커녕, 무조건 까라면 까고, 시키는 대로만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고 입대하는 군대생활에 견줄만한 두려움을 신입생들이 느끼고 있다고 기사는 전하고 있습니다. 군 인권센터에서는 예비 입영자를 위한 <군 인권학교>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군대 가기 전에 걱정 많으시죠?
막상 들리는 것은 소문 밖에 없고 ... 입영을 앞둔 예비 입영자, 가족, 애인, 친구들이 군대에서 필요한 인권 관련 사항을 배울 수 있는 '예비입영자를 위한 인권학교'를 정기적으로 개최합니다.
참가문의 02-733-7119 군인권센터 www.mhrk.org(사이버상담실, 익명게시판)
이제는 군 입대가 아니라 <예비 대학신입생을 위한 인권학교>를 개최해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대학에 입학하기 전에 걱정 많으시죠?
대학 신입생도 사람일까요? 처음으로 경험하는 사회생활, 명령과 복종, 낯설고 불편하고 무서울 수 밖에 없습니다. 무조건 까라면 까야 할까요? 시키는 대로만 해야 할까요?
막상 들리는 것은 소문 밖에 없고 ... 입학을 앞둔 예비 대학신입생, 부모, 가족, 애인, 친구들이 대학에서 필요한 인권 관련 사항을 배울 수 있는 '예비 대학신입생을 위한 인권학교'를 정기적으로 개최합니다. 참가문의 02-OOO-OOOO 대학인권센터 www.OOO.OOOO(사이버상담실, 익명게시판)
대학의 공기는 자유로운 게 특징인데, 군대보다 더 숨막히는 대학에서 학생들의 자유로운 학문에 대한 열정은 질식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학생의 질식사가 아니라 결국 대학의 질식사를 뜻하는 것입니다. 단국대는 1947년에 설립하여 70년이 다 되어가는 전통있는 대학입니다. 그런 대학에서 기안대학교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 현재 벌어지고 있습니다.
대학은 희망의 보루라고 필자는 생각합니다. 21세기는 모든 것이 급속하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세계화와 디지털로 대변되는 정보의 폭발 속에서 사회는 변하고 크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대학 역시 덩달아서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학의 참된 가치는 ‘자유’입니다. ‘리버럴한 지식’을 추구하는 곳이 대학입니다. 그래야만 지구촌 한 덩어리로 변해가는 현대사회에서 전 지구적 규모의 과제에 대응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사회의 미래가 어떤 방식으로 흘러갈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대학의 자유로운 공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창의적인 방식만이 인류가 처한 미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단국대학교에서 오늘날 벌어지는 병영문화식 후배 길들이기는 자유로운 인간관계의 파괴를 의미합니다. 그것은 대한민국이 처한 대학위기의 한 모습이고, 교양교육의 붕괴이며 신자유주의적 가치의 개인적 내재화가 대학을 어떻게 황폐화시켜가는지 보여주는 단서일 수도 있습니다.
상명하복의 질서만을 강조하는 기껏해야 한 두 살 많은 선배의 권위주의는 대학이 취업에 필요한 기능만 배우고 사회시스템의 부속품으로 일사불란하게 편입되는 전문직업학교로 변질되어 가고 있음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게다가 상명하복의 위계질서에서 계급이 상승한 신입생은 자신이 받은 차별과 부당한 대우를 그대로 후배들에게 복수하게 될 것입니다. 악순환의 고리가 이어지는 비극이 되는 겁니다. 만일, 단국대학교가 인간의 존엄성과 인격을 존중받는 분위기가 아니라, 욕설과 차별과 편견이 횡행하는 커뮤니티로 변하는 단계에 있다고 가정하면, 학생 구성원이 그 대학에서 겪는 4년간은 소중한 인생의 경험이요, 전인적인 인간으로 성장하는 주춧돌이 아니라, 평생을 두고 인생의 걸림돌로 작동할 것입니다.
2014년 4월 육군 28사단에서 윤 모 일병이 동료 선임병사들에게 잔인하게 구타를 당하고 죽은 일이 있었습니다. 꽃다운 22살의 청년 윤 일병이 또래의 동료 병사들에게 무참하게 폭행당하고 죽었습니다. 이제는 군대에서 겪는 일을 똑같이 대학에서 겪어야 하는 게 오늘날 현실일까요? 그래도 나름 명성과 전통을 간직한 단국대학교가 이 정도인데, 다른 대학들의 사정은 또 어떨까요? 오늘 한겨레 기사를 보고 저는 단국대학교와 기안대학교가 다를 게 없는 것을 아닐까 두려워졌습니다. 단국대학교라는 전통이 오래된 대학에서 그런 미성숙한 인간관계가 당연시 되는 사회라면, 조만간 우리나라 대학교육 시스템은 ‘사망선고’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그런 느낌 때문입니다.
참고기사.
윤일병 사망사건에 부쳐 - 이웃과 사랑의 공동체를 건설한다는 건 비현실적일까?
요한의세상노트 2014/09/04 20:59
'대학 노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철학상담학과는 철학과와 무관한 학과다? (0) | 2015.03.28 |
---|---|
기안대와 다른 모습 보여준 단국대 학생회 (0) | 2015.03.19 |
"대학은 세일즈하기 편한 상품을 생산하길 원했다" (0) | 2015.03.09 |
수원대학교의 패륜 교수와 파면 교수 (0) | 2015.03.06 |
흔들리는 동국대, 스님들의 권력투쟁? (0) | 2015.02.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