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대학교의 패륜교수와 파면교수 


교수일동 여러분! 당신도 이들을 폐륜 교수라고 부르는 데 동의합니까?


수원대의 '교수 대 교수' 갈등이 연일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그 갈등의 본질이 그들의 자발적 의사와 무관한 것일 가능성이 높긴 합니다만. 본질은 '학교당국 대 교수'일 수도 있지요. 아무튼 2015년 3월에도 수원대학교의 모습은 지난 해와 비교해서 바뀐 게 없습니다. 이른바 교수협의회를 중심으로 한 해직교수님들은 학교 정문 앞에서 1인 시위 등을 이어나가고 있으며, 학교를 사랑한다는 교수일동은 '탐욕에 눈먼 패륜 교수는 물러나라'고 주장합니다.


수원대학교 교수협의회 다음카페(cafe.daum.net/suwonprofessor) 3월 4일자 게시글에 보면, 이런 질문이 나옵니다. "수원대 모든 교수님들 한분 한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은 배재흠교수, 이상훈교수, 이원영교수, 이재익교수, 장경욱교수, 손병돈교수를 '패륜교수'라고 부르는데 동의하셨나요? 


3월 5일자 카페의 게시글에 따르면 작년 가을에 시작한 서명 운동에 현재까지 3,000명의 학생이 동참했다고 합니다. 구성원이 6,000명이라고 하니 어느새 절반의 학생들이 해직교수님들의 뜻에 지지를 보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교수협의회에서는 '패륜교수'란 표현을 문제삼아서 이인수 총장을 고발하겠다고 하니까, 현수막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패륜'은 '가치'를 표현하는 단어고, '해직'이란 '사실'을 지칭하는 단어이므로, '패륜'과 '파면'에는 논리학적 차이가 존재합니다.


빨간 장미를 보고, 장미는 빨갛다고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장미는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가치관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패륜'도 그래서 가치관의 문제입니다. 그것을 객관적 표현과 주관적 표현이란 말로 바꿔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패륜'이란 표현은 상대의 감정을 모욕하는 가치관을 담고 있기 때문에 '모욕죄'의 성립이 가능합니다. 만일 그런 이유로 수원대 학교당국 측에서 현수막을 바꿔치기 했다면 현실의 법적 원리가 작동한 것인만큼 그마나 한 줄의 가능성으로 해직교수님들의 시위를 지탱해주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2015년 3월 3일자 현재 수원대학교 정문 앞 현수막 (출처: 수원대 교수협의회 다음카페)

2015년 3월 4일자 현재 수원대학교 정문 앞 현수막 (출처: 수원대 교수협의회 다음카페)



수원대의 문제는 무엇일까요? 위의 현수막에 그 정답의 일부가 있습니다. 사욕에 눈먼 사람들 때문입니다. 끊임없는 의혹 때문이기도 합니다. 골병드는 것은 정작 이 땅의 미래입니다. 사욕과 의혹이 가득한 캠퍼스에서 비싼 등록금 내고 커나갈 학생들의 미래가 담보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학생들이 미래를 담보로 얻는 것은 무엇일까요? 미래가 담보로 잡혀 있다는 것은 내가 걸어가야 할 희망과 긍정의 미래를 현재의 기성세대가 끌어다 이미 부른 배를 더 배불리우는 데 사용했기 때문에, 담보를 제외하고 남게 된 절망과 부정의 미래를 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수원대학교 교수협의회가 학자적 양심으로, 어린 학생들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으로, 그리고 인간에 대한 뜨겁고 진정한 관심으로 나섰을 수 있겠으나, 그것이 세상의 분노와 공정한 여론을 불러일으키기엔 역부족으로 보입니다. 수원대학교 교수협의회 다음카페에는 현재 수원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문제가 '대학 지배층의 막장경영'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다음 글을 참조하면 됩니다.


수원대 문제의 본질 http://cafe.daum.net/suwonprofessor/Lbng/1011



그러나 수원대의 문제는 이런 표현으로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요. 2015년 2월 3일자 '상지대 지금⑤ 엉터리 사학은 정권에게도 부담이다'란 글 중 일부를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전국 각지의 사립대는 오너 일족이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겨울공화국'이나 '동토의 왕국'으로 전락하거나 악성 분규의 현장으로 변모할 수 있다. (→ 기사보러 가기)


상지대의 경우는 학교민주화를 요구하는 정대화 교수님을 파면하면서 그 절차가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주말 새벽에 연구실 문을 부수고 폭행했다고 합니다.  (→ 관련기사 보러 가기


그러나 수원대학교의 작금에 벌어지는 일들이 그다지 큰 뉴스거리가 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그게 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전국의 몇몇 대학들에서 그런 일들이 현재진행형으로 벌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서 한 작은 공동체에서 벌어지는 탐욕과 의혹의 사건들을 세상 사람들이 주목하기에 이 세상은 더 규모가 큰 사건들로 점철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여전히 끝나지 않은 싸움이 대한민국의 방방곡곡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세월호 사건이 그렇고, 밀양, 강정, 용산 참사, 그리고 굴뚝에 올라간 노동자에 이르기까지 이 세상에서 목소리 없는 자들(Voiceless)의 절규가 소리없이 메아리치고 있습니다. 바꾸어야 할 사회구조가 곳곳에서 신음하고 있는 까닭입니다. 그래서 수원대학교 교수협의회의 다음 카페는 매우 중요합니다. 미국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한 한국인 학자는 'SNS가 없다면 한국의 소식들을 어떻게 들을 수 있을까. 주류 언론의 흑색선전들을 분별해낼 수나 있었을까?'라고 한 말을 오늘 읽은 글에서 보았습니다. 


아마도 수원대 교협의 카페도 세상의 무관심을 이겨내는 작은 계란일 수 있습니다. 어디선가 실타래를 풀어내지 않는다면 우리나라의 미래는 최근 수년간 벌어진 끔직하고 비참한 일들이 훨씬 더 자주, 훨씬 더 많이, 그리고 엄청나게 더 비극적인 방식으로 발생하고 일어나며 되풀이되는 '비극주의 공화국'으로 바뀌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제 필자가 게시한 글에서 다시 옮겨서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다음에 마르틴 뇌밀러라는 독일 신학자가 "왜 우리가 이 인류 역사안에서 600만이라는 사람들을 홀로코스트, 즉 집단학살 했는지 과연 왜 그랬을까"를 반성하며 독일 국민들에게 촉하는 글을 썼습니다.


나치는 우선 공산당을 숙청했다. 

나는 공산당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유대인을 숙청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노동조합원을 숙청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가톨릭 교도를 숙청했다. 

나는 개신교도였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나에게 왔다. 

그 순간에 이르자, 나를 위해 나서줄 사람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수원대 관련 [요한의 대학노트]에 쓴 글들 


  1. 2014/11/10 수원대 해직교수, 학교 정문에서 총장퇴진 서명운동
  2. 2014/10/23 수원대학교는 과연 검소하고 정의롭고 창의적인가?


Posted by 편집장 슈렉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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