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공동체란 무엇인가 (1)



김다울 클레멘스 신부님. 대전교구 시장사목 전담
대전사회교리 6주차 @ 하기동성당. 2015.4.8(수) 8시 

2015년 4월 8일 저녁 8시08분 @ 하기동성당. 김다울 신부님이 강의를 시작하고 있다.


책을 왜 읽는가?

저는 오늘 여러분과 정치공동체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그런데 먼저 들어가기에 앞서서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여러분 책을 왜 읽습니까? 목적과 이유가 있으시잖아요? 욕구를 채우고 지식을 얻기 위해서 책을 읽는다는 분도 계신데, 책을 읽는 목적은 생각하기 위해서입니다. 사실 지식을 얻는 것은 인터넷 검색으로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 생각하는 법을 배우고, 생각의 외연을 확장시키고, 생각을 깊게하고 정교하게 할 수 있는 겁니다. 

사과 맛이 어떠냐고 물어본다면

이렇게 예를 들 수 있습니다. "사과가 좋아? 맛있어?"라고 누군가 물었을 때, 그저 "응! 맛있어!"라고 하는 것 보다는, "사과는 깨물때 아삭하고, 입안을 청량감있게 해주는 과일이야!"라고 표현한다면, 그건 느낌이나 생각을 더욱 정교하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책을 왜 읽는가?"라는 질문은 바로 이것을 위해 드린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치하면 떠오르는 건 무엇일까요? 

'정치'가 뭡니까?

'드러운 놈들?', "정치가 뭡니까?" 라고 물으면 대부분 정치에 대해서 모르지는 않을 겁니다. "정치 있잖어, 거시기잖아!". 그러나 그런 생각이 정교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자녀들이 아빠한테 물어보죠. "아빠! 정치가 뭐야?"하면 "그건 드러운 거야, 거시기야!"라고 대답하긴 곤란하죠. 그래서 정치에 대해 설명한다는 건, 내 안에 정치가 무엇인지 있다는 것이고, 즉 파악하고 있는 것, 손아귀로 쥐고 있는 겁니다. 그것이 있다면 우린 주체적으로 뭔가 할 수가 있어요. 오늘 나눌 것은 이러한 것입니다. 정치에 대한 생각을 정교하게 하고, 아울러 교회는 정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누고자 하는 겁니다.

정치에 대한 지식은 어디서나 얻을 수 있다

여기서 제 강의는 이주 구체적인 사항에 대한 비판은 없습니다. 일단 2시간이 너무 짧고, 정치에 대해 기본적인 확고함을 갖기에도 부족한 시간입니다. 다만 오늘 강의는 정치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 생각할 기회를 함께 나누며 그렇게 생각을 정교하게 다듬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는 겁니다. 정치라는 것은 책에 다 나옵니다. 간추린 사회교리의 정치공동체 편을 보셔도 다 나오고, 인터넷에서도 정치에 대한 강의가 많습니다. 지식은 어디에서나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생각을 나누고, 특별히 제 얘기를 통해서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정치하면 떠오르는 것은 무엇입니까? 더러운 것? (웃음 소리가 여기저기 터져나오자) 우린 왜 웃을까요? 정말 우리 생각이 떠오르는 게 사실상 더러운 게 맞습니다. 그리고 싸움, 거짓말, 국회, 국회의원, 생활, 권력남용, 대체적으로 맞는 얘기입니다. 정치부패? 대통령? 국회의원? 싸움? 거짓말? 제가 적어놓은 이런 말들은 강의를 다니면서 들은 얘기들을 정리한 겁니다. 이게 바로 인타깝게도 우리 사회 안에서 정치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입니다. 

국제투명성기구가 2007년도에 부패인식지수를 조사했습니다. OECD 국가 안에서도 엄청 떨어집니다. 평균 7.18인데, 우린 5.1점입니다. 그렇게 보면, 우리가 OECD 국가에 들어갔다는 그 사실 말고는 별로 내세울 게 없습니다. OECD 국가에서 우린 자살율 1위인데 출산율을 꼴지입니다. 그리고 노동시간 은 1위입니다. 일본도 제치고 다 제쳤습니다. OECD 국가들을 다 제친 그런 게 우리나라 현실입니다. 2007년 말 우리나라 국민을 대상으로 부패인식 조사를 했는데, 87.6퍼센트의 국민이 심각하다고 응답했고, 전문가 그룹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76.5퍼센트가 심각하다고 응답했습니다. 

한국의 부패인식지수(CPI) 변화추이(1995~2010) ... 출처. 한국투명성기구 홈페이지


국회가 가장 썩었다

그러니까 국제투명성기구가 조사한 것이나 우리나라 여론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2008년도 조사에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부정부패가 심한 집단들의 순서를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우리 국민들이 생각하는 여기가 가장 썩었어라고 생각하는 1등은 국회입니다. 2번은 어디인가요? 사실 도찐개찐인데요. 2등은 청와대입니다. 3등은 중앙정부부처입니다. 즉 행정부입니다. 4등은 검찰입니다. 5등은 대기업입니다. 사실 언론도 있을 건데, 결과는 이렇습니다. 아주 좁혀서 얘기하면, 정치와 직접 밀접된 기관이 4개입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우리나라 정치가 많이 부패했다고 느끼는 겁니다. 2013년 3월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우리나라는 투명하고 믿을만한 나라인가라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는 대답이 압도적입니다. 그래서 깨끗한 국회와 투명한 행정부가 절실히 필요하고, 문턱낮은 사법부, 상생의 노사관계가 필요하다는 응답이 이어졌습니다.


가장 부패한 집단,  정당과 국회, 종교 , 공무원, 사법부, 경찰 순

G20 국가 중 가장 부패한 국가  ... 한국 국민 90%가 정부정책 불신뢰 ... 선데이저널 2013-7-21


이명박 정부 부정부패일지, 뜨거운 화제

부패인식지수 45위로 추락… “박근혜 공동 책임론 피할 수 없어”   ... 미디어오늘 2012-12-16



그래서 큰 틀에서 본다면, 우리나라 국민들이 생각하는 우리나라 정치는 어떤 분의 말씀처럼, "더러운 것이다."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정치는 그런 것일까요? 2013년 조사한 게 또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투명하고 믿을만한 나라인가?"를 물어보았습니다. 그 질문에 대해서 70%에 가까운 68.6%가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믿을 수 없는 부분이 아까처럼 국회이고, 여기서는 언론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사법부, 재계, 행정부, 노동계도 4% 들어가 있습니다. 그래서 믿고 따를 수 있는 국가시스템을 위한 과제로 [깨끗한 국회](50.8%), [투명한 행정부](18.7%), [공정한 시장경제](17.1%), [문턱낮은 사법부](7.1%), [상생의 노사관계](6.4%) ... 그러니까 국회와 행정부에 대한 요구가 70% 가량입니다. 이처럼 큰 틀에서 보면 우리나라 국민들이 바라보는 정치는 더러운 것이라고 느끼고 있다는 것입니다. 과연 정치는 그런 것일까요?  

교회는 정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러면 교회가 말하는 정치는무엇일까요? 

"정치적 부패는 국가의 올바른 통치를 위협하며, 통치자와 피통치자의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또한 공공 기관들에 대한 불신을 증대시키고, 차츰 정치와 정치인들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을 야기한다. 부패는 대의 기관들의 역할을 근본적으로 왜곡한다. 왜냐하면 대의 기관들은 의뢰인들의 청탁과 국가 공무원들 사이에 정치적 거래가 이루어지는 무대가 되 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정치적 선택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들의 편협한 목표에 부합하는 정치적 선택이 이루어지게 되고, 이는 모든 국민의 공동선 달성에 걸림돌이 된다." (「사회적 관심」 44항

존엄성은 인권을 통해서 표현된다

교회는 이처럼 정치적 부패와 비리가 결국 불신을 야기하고, 정치적 타락과 정치에 멀어지며 정치를 왜곡시키기 때문에, 정치적 비리와 부패가 있어서는 안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얘기하는 정치의 두가지 키워드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인간입니다.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존엄성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표현되는가? 교회는 오늘날 이시대 인간의 존엄성은 인권을 통해 표현된다고 봅니다. "나는 존엄해!" 내가 존엄하다는 걸 이 사회에서 어떻게 알 수 있지요? 내 인권이 존중받을 때 비로소 인간의 존엄성인 인간이 드러난다고 봅니다. 여기서 한마디만 기억하면 됩니다. 

정치의 목적은 공동선이다

두번째는 공동선입니다. 정치의 목적은 공동선이라고 교회는 분명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인간과 공동선 이것이 바로 교회가 정치를 바라보는 두가지 키워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에 대해서 교회는 정치생활의 토대이며 목적이 인간이라고 말합니다. 정치공동체를 말하고 있는데, 인간은 정치공동체에 인간의 본성으로부터 정치공동체적 동물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겁니다. 제 말이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죠. 우리는 보통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고 배웠습니다. 그 말이 원래 그리스 말은 인간은 정치공동체적 동물이다라는 표현입니다. 그게 번역되면서 '사회적 동물'로 번역되었지만, 그리스 말에서 폴리테이아는 폴리스는 사회를 의미하고, 폴리테이아는 정치성을 띠는 사회이므로, 인간은 정치적 사회의 동물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습니다. 교회도 정치공동체는 인간 본성에서 비롯된다고  봅니다. 인간 삶의 본질적이고 필수적 차원의 한 부분이라고 강조합니다.

사전적 의미의 '정치'

국어사전] 통치자나 정치가가 사회 구성원들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거나 통제하고 국가의 정책과 목적을 실현시키는 일
브리태니커] 국가권력을 획득·유지·조정·행사하는 기능·과정 및 제도.
데이빗 이스턴] 가치의 권위적 배분
막스 베버] 국가의 운영 또는 이 운영에 영향을 미치는 활동

그래서 정치에 대한 고전적 정의는 인간의 상호 관계 안에서 발생하는 갈등들을 조정하고 공동선을 추구하는 모든 활동을 말합니다. 

인간에 대해서

“인간을 정치 공동체의 토대와 목적으로 여긴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근본적이며 양도할 수 없는 인권을 보호하고 증진함으로써 인간 존엄을 인정하고 존중하기 위하여 노력한다는 뜻”

인간을 정치공동체의 토대와 목적으로 한다는 것은 바로 인간을 위한다는 것입니다. 왜 정치를 우리가 하는가? 나를 위해서, 너를 위해서, 우리를 위해서 정치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가 나를 위하지도 너를 위하지도 우리를 위하지도 않을 때, 정치의 본질은 왜곡되고 훼손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공동선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공동선도 정치권력의 존재이유입니다. 현대사회에서 공동선의 실현은 인간의 권리와 의무를 보장함으로써 공동선의 실현이 드러나는 겁니다. 그래서 이것은 인간의 존엄성과 같은 것입니다. 공동선은 공동체를 위한 것입니다. 

공동선은 정치 권력의 존재 이유로 “현대에서 공동선의 실현은 인간의 권리와 의무를 보장함으로써 드러난다.”

공동체를 위해 희생하는 게 공동선인가?

공동선은 나만을 위한 것도 너만을 위한 것도 아니고 바로 우리를 위하는 것이죠. 여기서 오해해서 안될 것이 있습니다. 공동체를 위해서 희생하면 공동선인가요? "공동체를 위해서 너는 희생해야 해!"라고 하는 것은 공동선이 아닙니다. 희생은 공동선이 아닙니다. 열명이 있는데, 7명은 짜장면을 먹자고 하고, 나머니 3명은 짬뽕하고 볶음밥을 먹는다고 가정할 때, 누군가가 "야! 짜장면으로 통일해!, 공동체를 위해서!" 이것은 공동선이 아닙니다. 공동선이란 저마다 먹고 싶은 걸 먹는 겁니다. 서로 다른 메뉴로 시켜서 다양성 속에 서로 행복을 느끼고 공동체 전체가 선을 이루는 것이 공동선입니다. 그걸 놓치면 안됩니다. 공동체나 사회, 조직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누군가 희생되는 건 공동선이 아닙니다. 전체를 위해서 혹은 타인을 위해 양보하는 게 공동선은 아닙니다. 이 함정에 빠지면 안됩니다.

다시 묻는 질문, '정치란 무엇인가?' 

교회에서 밀하는 정치에 대해 죽 훑어보았습니다. 지식적인 부분은 <간추린 사회교리> 책을 보면 됩니다. 그러면 정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한번 나누고 싶습니다. 정치학적으로는 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모든 방법들, 수단들을 동원해서 가는 과정. 그리고 획득한 권력을 행사하는 것. 그 모든 행위들을 정치라고 얘기합니다. 그래서 정치의 핵심에는 권력이 있습니다. 교회는 정치권력을부정하는 게 아닙니다. 다만 인간과 공동선라는 두가지 키워드로 말하고자 하는 겁니다. 실제로 고전적 개념을 빌린다면 그리스 철학자, 그리스 민주주의 안에서 발생한 정치적 논의를 빌려 말하면, 정치는 인간의 공동선 실현을 위해 행하는 모든 행위를 정치라고 말합니다. 

정치는 누가 하는 걸까?

그렇다면 정치는누가 하는 겁니까? 국회의원이 합니까? 모든 사람이 하는 겁니다. 여러분은 현재 정치를 하고 있습니까? 어떻게 하는 것이 정치입니까? 참정권 행사? 그것은 4년에 한번씩 하는 것이죠. 인간을 위해 공동선 실현의 모든 행위가 정치일 때, 우리 삶은 정치로 가득 찹니다. 

사람이 걸어다니는 보도에 어느 맨홀 뚜껑이 열려 있어서, 할머니가 지나가다가 다리 한쪽 빠져서 다치고 입원을 했다고 가정을 합시다. 옆집 할머니입니다. "아휴, 할머니 안 됐네! 조심할 것이지!"라고 하면 정치하는 게 아닙니다. "맨홀 뚜껑이 없어서 위험합니다!", "구청에서 뭐하지?", "다른 옆집 할아버지도 위험하네!" 등등으로 라고 말하는 게 정치입니다. 

할머니를 위한 정치학

가족 안에서 여행을 가자고 했을 때, 제주도를 가고 싶은 아버지의 소원을 들어주고 싶지만, 자녀들은 설악산을 가고 싶다고 한다면, 아이들을 부른 아버지는 애들아 할아버지는 올해 지주도 못가면 또 기회가 없을 수도 있으니, 너희가 양보하는 건 어떠니? 바로 이런 게 정치하는 것입니다. 우리 생활은 정치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정치를 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공동선을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하기 위해서 폭력을 행사하는 게 아니라, 대화와 타협을 통해서 설득하는 작업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정치적 방법론, 우리가 익숙해져야 할 것이 토론입니다. 한국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는 겁니다. 본당 소공동체나 식사 자리에서 보면, "아니! 거 성당에서 정치 얘기하지마!"라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린 학교에서 배워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토론을 그룹으로 나눠서 말하고자 하는 학습이 전혀 되어 있지 않습니다. 논리와 감성적인 모든 걸 동원해서 상대방을 설득하고 또 상대방 주장을 들어주는 것, 그렇게 함께 토론하고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 설득하거나 설득당하는 것. 그 모든 과정이 토론입니다. 그런데 토론하기 싫어하면 정치하기 싫어합니다. 그리고 토론하기 싫어하면 정치는 발전할 수 없습니다. 궁극적으로 토론하기 싫어하면 그 나라의 민주주의 발전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토론이야말로 민주주의의 본질이며 과정이기때문입니다. 그래서 토론은 우리 삶을 위한 것일 수 밖에 없습니다. 민주주의는 그래서 토론과 밀접합니다. 첫째 시간  나눠보았습니다. 어찌되었든 여러분 생각을 정교하게 하십시요. (8:41 1교시 종료)



2015년 4월 8일(수) 하기동성당 저녁 8시 41분. 대전교구 시장사목을 맡으신 김다울 클레멘스 신부님의 대전사회교리학교 제13기 6주차 수업 [정치공동체]의 1교시 종료. 이 강의는 필자의 기록과 발표자료를 토대로 재구성된 것이며 실제 강연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강의자의 의도와 맥락에서 벗어난 부분이 있습니다. 

김다울 클레멘스 신부님(2004.2.3 사제수품. 축일 11.23)



제13차 대전사회교리를 진행중인 하기동 성당은 매주 수요일 열리는 행사를 위해 항상 다른 간식을 준비해서 내놓는다. 그 정성에 대해 이 자리를 빌어 감사를 드립니다. 이번 간식은 만두 2종 세트이다. 성당 주임 박제준 토마 신부님이 직접 신자분들과 함께 빚으셨다는 얘길 들었다. 감사의 말씀을 또 한번 드립니다.



천주교 대전교구 하기동성당 주임: 박제준 토마 신부님    

 사제 서품 :  2000. 2. 21 (축일 : 7. 3 서품성구 : "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 (요한 20, 28 )


Posted by 편집장 슈렉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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