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4주일, 성소주일: 착한 목자주일.
2013년 4월 21일 10시 만수리 공소 윤종관 신부
나의 '착한 목자 콤플렉스'
매년 성소주일은 저 같은 사제가 반성하는 날입니다.
오늘 부활 제4주일을 일컬어서 ‘착한목자주일’이라 합니다. 그 까닭은, 매해 이 부활 제4주일에는 요한복음서 10장을 봉독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요한복음서 10장은 예수님께서 ‘착한목자’를 주제로 당신 자신이 어떠한 분이신가 밝히시고(요한 10, 1∼18의 내용), 그 때문에 유다인들로부터 오해와 박해를 받으시고 결국 죽으실 운명의 빌미를 잡히시게 되는 내용(요한 10, 19∼39의 내용)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 ‘착한목자’를 주제로 하여 우리는 오늘 그 착한목자의 부르심을 알아듣기로 다짐하면서 오늘을 또한 ‘성소주일’이라 합니다. 그 목자의 부르심에 대한 응답 형태에 따라 ‘사제성소’니 ‘수도자성소’니 또는 신자들의 ‘일반성소’니 하는 이야기들을 오늘 교회는 펼칩니다.
이러한 성소주일에 특별히 ‘착한목자’를 주제로 하는 사제성소에 대한 계몽을 많이 하게 되는데 저는 오늘 그래서 마음이 무겁습니다. 저의 이 무거운 심정을 ‘착한목자콤플렉스’라고나 할까요…!
저의 ‘착한목자콤플렉스’라는 것은 저 자신이 교우님들로부터 ‘착한신부’라는 말을 들어본 일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저를 아는 교우 분들은 대개 저를 ‘무서운 신부’라고 평가합니다. 저는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참 기분이 나쁩니다.
여기까지의 저의 이 이야기는 제가 수년 전의 성소주일에 교우들 앞에서 했던 강론의 서두입니다. 헌데 오늘 이 성소주일 즉 착한목자주일의 강론으로 더 새롭게 드릴 말씀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뭐라 강론해야 할지 자신이 없습니다.
제가 안면도 성당에서 살던 10년 전쯤에 교우 한 가족이 안면도에 주말 휴가차 와서 저를 만난 일이 기억납니다. 그 날은 마침 ‘착한목자주일’ 즉 ‘성소주일’이었습니다. 그 교우 가족은 그 전에 대전의 모 성당에서 사귄 분들입니다. 그 가족을 만난 자리에서 옛날의 그 성당에 대한 추억담을 나누었는데, 그 가족이 저를 평하는 말이 ‘무서운 신부님’이라 하였습니다. 옛적에 지내던 일화 가운데 저에 대한 강렬한 추억은 그저 ‘무서운 신부님’이었습니다. 그 가족이 안면도에 왜 하필 착한목자주일(성소주일)에 와서 그 옛날의 추억으로 저에게 그 기분 나쁜 별명을 확인하시는지 좀 원망스럽기도 하였습니다. 교우님들께 그런 고약한 인상을 주고 사는 제가 오늘 ‘착한목자’를 주제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또 다른 추억이 있습니다. 수년 전의 성소주일에 제가 했던 강론은 ‘부드러운 오빠와 고약한 오빠’라는 제목의 내용이었습니다. 그 이야기 가운데 ‘부드러운 오빠’는 어느 주교님께서 한 신부님을 신자 분들께 소개하시면서 그 신부님 별명이 ‘부드러운 오빠’라 하신 것입니다. 그 말씀을 들으면서 저는 저 자신도 그런 별명 좀 얻고 산다면 참 기분 좋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의 옆자리에 앉아 계시던 선배 신부님께 “저도 ‘부드러운 오빠’ 소리를 들을 가능성이 없을까요?” 하고 농담조로 말씀드렸더니, 그 신부님께서 저를 핀잔하여 하시는 말씀이 “야, 이 사람아! 언감생심도 유분수지, 세상이 바뀌어봐라, 자네 같은 사람이 그런 별명 얻게 생겼나? 자넨 평생 그저 ‘고약한 오빠’로 살다 죽을 게야!”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제가 그래도 나이 먹어가면서는 ‘무서운 신부’라는 소리를 면할 때가 오겠지 하면서 나름대로 부드러운 언행을 하려고 애써보기도 하는데, 요 며칠 전에 실망을 하였습니다. 지난 열흘 남짓 저는 해외 성지 순례를 다녀왔습니다. 대전의 모 본당 교우님들께서 바오로 사도의 전교행로를 따라 그리스와 터키 일원을 순례하는 코스에 지도신부로 다녀왔습니다. 그 순례 기간에 저는 지도신부로서보다도 저 자신 하나의 신자로서 많은 감흥으로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여러 반성 가운데 한 가지로 저 자신의 ‘무서운 신부’이라는 별명을 또 확인하고 슬프도록 저 자신의 과거에 대한 반성을 할 수밖에 없었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 순례단원들은 모두 저와 초면인 분들인데, 그 가운데 한 교우님께서 저의 이름을 확인하시면서 저의 과거 대전 모 본당 시절 소문을 말씀하셨습니다. ‘무서운 신부님’이라고 알려진 사제가 바로 저라는 것을 농담조로 순례단원들께 알려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의 그 말씀에 저는 웃으면서 “그럼 지금 그 소문의 무서운 실물을 직접 만났으니 조심하세요.” 라고 응수하였습니다만, 그 순간 저의 마음속에서는 “아! 나의 부끄러운 과거를 몽땅 지울 수는 없을까!”하는 절망 같은 슬픔을 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러한 제가 오늘의 이 ‘착한목자주일’의 강론에 무슨 말씀을 교우님들께 들려드릴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오늘 복음서의 예수님 말씀을 그대로 저 자신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새기면서 읽어봅니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그리하여 그들은 영원토록 멸망하지 않을 것이고, 또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그들을 나에게 주신 내 아버지께서는 누구보다도 위대하시어, 아무도 그들을 내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아 갈 수 없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요한 10, 27∼30)
예수님의 이 말씀을 읽으면서 저는 다음과 같은 반성을 합니다.
참으로 착한목자이신 예수님께서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하신 이 말씀을 나 자신도 할 수 있겠는가? 교우들께서 나를 일컬어 “무서운 신부”라 하는데 그 교우들이 나의 목소리를 듣고 나를 따라올 것인가?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고 하셨는데, 나는 주님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교우들을 그만큼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는가?
이러한 반성을 하면서 제가 중점적으로 노력할 것은 내가 무슨 말을 하든지 간에 교우님들이 저의 말을 믿고 따를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법도에 따르는 강제력에 의해서가 아닐 것입니다. 참으로 저 자신의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저의 진심을 교우님들이 알아볼 수 있게 해야 할 것입니다. 저의 삶의 모습이 정의롭지 못할 경우에는 교우님들께서 저의 말을 거짓으로 여겨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교우님들을 진정 사랑하지 않고 나 자신만을 위해서 사는 모습일 때에는 저의 삶이 아무리 올바른 것으로 보일지라도 저를 두려운 존재로만 볼 것입니다. 하지만 진정 사랑에서 우러나온 언행으로 대한다면 설사 나의 행동에서 다소 틀린 것이 눈에 띈다 하더라도 교우님들과 나 사이가 금이 가지 않으리라 생각 됩니다. 말하자면, 교우님들에게서 발견되는 부족한 점이 저 자신에게서도 발견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히브리서에는 예수님을 평하여 다음과 같이 묘사한 구절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는 대사제가 아니라, 모든 면에서 우리와 똑같이 유혹을 받으신, 그러나 죄는 짓지 않으신 대사제가 계십니다.”(히브 4, 15)
이렇게 히브리서에 천명된 바와 같은 예수님의 모습을 닮음으로써, 신자들의 부족함 속에 나 자신의 몸도 담아 넣는 태도로 저 스스로 변화되어야겠다는 뒤늦은 깨달음을 오늘 지녀봅니다. 이러한 생각에 이르러 저는 법도를 먼저 주장함으로써 얻은 “고약한 오빠”라는 별명을 조금이라도 면해 갈 수 있지 않겠나 하는 희망을 지녀봅니다. 그리고 “몸의 지체 가운데에서 약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오히려 더 요긴합니다.”(1코린 12, 22)고 말씀하신 바오로 사도처럼 신자 분들 가운데 발견되는 부족함을 더욱 주님께서 저에게 맡겨주신 가장 소중한 것으로 여겨야겠습니다.
그러면서 지난주일(부활 제3주일)의 복음서(요한 21, 15∼19 참조)에서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 씩이나 거듭 확인 질문하시고는 “내 양들을 돌보아라.”고 명령하신 바를 기억하면서, 주님을 진정 사랑하는 그 대답으로 교우님들을 대해야겠다고 또한 결심해봅니다.
반성과 더불어 저 자신의 결심을 다지기 위해서, 신임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취임 미사 강론 제목을 저 자신을 향하여 읽어봅니다. “부드러운 마음을 지니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이러한 교황님의 강론에 대해서 우리 교구장 유 라자로 주교님께서 지난 성 목요일 성유 축성 미사에 다음과 같이 덧붙여 강론하셨습니다.
“세상은 강하고,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부드러움이, 약함이, 사랑이 이깁니다. 복음의 논리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승리하고, 끝까지 사랑하는 사람이 승리합니다. 복음의 부드러움만이 이길 수 있습니다. 십자가 없이 뭔가를 짓고, 십자가 없이 예수님을 고백한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아닌 세속적인 존재일 뿐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겸손, 부드러움, 단순함, 어려운 이들에 대한 사랑이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복음적인 부드러움은 오늘의 교회를 쇄신하고 현재의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입니다.”
교황님과 주교님의 강론 말씀을 인용하여 저는 저 자신을 향하여 다음과 같은 짤막한 오늘의 강론을 합니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고 하신 예수님 따라 제가 저 자신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는 단 한 줄의 강론입니다.
“나의 목소리를 예수님의 목소리로 교우들이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출처: 가톨릭성지 하부내포 공식 Daum 카페
http://cafe.daum.net/southnaepo/Dvt8/24
부여외산면 만수리공소 담당 하부내포 성지 윤종관 가브리엘 주임 신부
1947년 6월 충남 부여 출생. 1960년 소신학교인 서울 성신중학교에 입학, 가톨릭대 신학부를 거쳐 1974년 12월 사제가 되었다. 이탈리아 로마 우르바노 대학원 석사와 베를린 자유대학 박사과정 유학을 마치고 1985년 귀국해 해미 본당 초대 주임으로 6년간 성지를 조성했고, 2001년 안면도 본당이 설립되자 대전 도마동 본당 주임과 대전 서구지구장직을 2년 만에 끝내고 자청해 갔다. 열악한 환경의 안면도 사목 6년을 마친 윤종관은 2007년에 버려지고 잊혀진 하부내포 성지 전담 사제로 부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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