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 대축일, 2013 5 19일 11:00

서울대교구 순교자현양회 순례단의 미사

만수리 공소 윤종관 신부


한 마음으로 말이 통해야... 

성령강림을 하부내포 성지순례로 체험합니다.



저는 전에 있던 여러 본당에서 오늘 [성령강림 대축일]을 예비교우 환영의 날로 지내곤 했습니다. 이날은 이러저러하게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모이는 날이기에 그리 하였던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읽는 제1독서인 사도행전 2장에서 볼 수 있듯이,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한 사도들이 모여 있다가 성령을 받고 말을 하기 시작하자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모두 한 가지로 말을 알아듣는 일이 일어난 것처럼(사도 2, 111 참조), 새로 나온 예비교우님들과 모두 한 식구로 서로 한 마음이 되는 자리라면 진정 오늘 성령강림의 축제로 걸맞을 것입니다.


여기 우리 만수리 공소에서는 오늘 그렇게 처음 오시는 예비자들과의 자리는 아닙니다만, 멀리서 오신 순례객 교우님들과 마치 처음 만난 사이가 아닌 듯, 한 마음이 되어 미사를 올릴 수 있으니 이 또한 성령강림의 체험에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처음 만난 사람들끼리이면서도 한 마음이 된다는 것, 이것은 그야말로 성령강림을 체험하는 사건인 것입니다.


성령강림 사건이란 새 인류 출현의 체험입니다. 사람들이 하느님을 거스르고 죄를 지어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말을 하며 뿔뿔이 흩어진 바벨탑 사건(창세 11, 19 참조) 이후의 인류의 불행이 극복되는 이 성령강림 사건으로 다시 하느님의 한 백성으로 재창조되었음을 오늘의 이 축제로 체험하게 됩니다.


이러한 [성령강림 대축일][오순절]이라고 부르는데, 글자 그대로 부활 후 50일째 되는 날(πεντηκοστη․Pentecost : the fiftieth)이기 때문입니다. 부활 축제의 완성을 이루는 날이 오늘입니다. 그래서 오늘을 [위대한 오십일 : the great fiftieth day]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해방을 기념하는 [파스카 축제]를 지내고 하느님과 계약을 맺은 오십일만의 축제를 해방의 완성을 이루는 날(Asseret)’로 지냈는데, 그렇듯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의 진짜 해방을, 즉 새로운 삶을 얻은 부활의 축제로, 이 오십일을 통하여 완성하는 이날 [성령강림의 축제]로 기념하는 것입니다.


사실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것과 성령을 체험하는 것은 동일한 체험입니다. 즉 부활과 성령강림은 한 가지 사건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의 증거 없이 그리스도의 죽으심(묻힘)과 부활승천(일어섬과 들려 올리어짐)을 알 수가 없습니다. 비록 성령강림은 사도행전의 보도대로 오순절, 즉 부활 후 오십일만의 축제입니다만, 그리스도의 부활을 우리 모두의 것으로 함께 입체적인 체험을 하는 것이 곧 성령강림의 축제인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읽는 요한복음서 201923절은, 부활 당일에 한 방에 모여 있던 제자들에게 부활하여 오신 예수님께서 당신의 숨결로 성령을 주셨다고 보도합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숨을 불어넣으시며 성령을 받아라.”(요한 20, 2223) 하신 것은 하느님께서 태초에 사람을 창조하신 바로 그 동작과 같습니다.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창세 2, 7) 하였듯이, 죄악으로 스러진 우리 인간에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당신의 숨결로 성령을 넣어주심으로 죄의 바닥에서 일어나게 하여 주십니다(요한 20, 2223 참조).


그와 같이 성령, 즉 하느님의 숨을 받아 새로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 세례입니다. 그러한 새 삶으로의 전환이 곧 진정 부활신비입니다. 그 부활신비를 우리는 세례로써 우리 자신의 것으로 체현하였는데, 그 사실을 매 주일 미사 때마다 신앙고백으로 새롭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세례로 전환된 새 삶을 오늘 우리는 성령강림으로 실생활의 장에 펼치게 됩니다. 그러한 체험의 장이 곧 성령께서 내려오시는 축제의 자리입니다.


이렇듯 성령강림의 축제가 드러내는 최대의 상징은 다 같이 한 곳에 모이는 것(일치)’입니다(사도 2, 1 참조). 다 같이 한 곳에 모이는 거기에 성령께서 모두를 하나로 묶어주는(일치의) 기적을 이루어주십니다. 그것은 여러 곳에서 온 사람들로 하여금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사도들이 연설을 할 수 있게 된 기적(사도 2, 14 참조)이며, 또한 동시에 각국에서 온 사람들이 사도들의 말을 자기네 말로 다 알아듣게 된 기적인 것입니다(사도 2, 511 참조). 이 기적이 오늘 성령강림 사건의 핵심입니다. 바벨 탑 사건(창세 11, 19 참조) 이후 서로가 통할 수 없는 말들을 하면서 뿔뿔이 흩어져간 인간들로 하여금 이제는 서로 불같이 뜨거운 마음으로 말이 통하도록 변하게 하시는 분이 성령이십니다.


세상에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알아들을 만한 말을 하는데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외국어가 아닌 우리 한국어로 말하는데도 부모의 말을 자녀가 알아듣지 못하고, 자녀의 말을 부모가 알아듣지 못하며, 남편과 아내 사이에, 여당과 야당 사이에, 기업인과 노동자 사이에, 그리고 더 나아가 성직자와 평신도 사이에, 남한과 북한 사이에 서로 알아듣지 못하는 말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아마도 그것은 마음을 주지 않는 말들을 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하지만 이제 우리는 한 성령으로 서로가 진정 상대방의 마음과 하나 될 수 있는 자신들의 마음의 말을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부활하여 오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불어넣으셨던(요한20, 22 참조) 그분의 숨은 곧 성령이십니다. 그분은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너희가 용서해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요한 20, 23)


용서란 무엇입니까? 묶인 마음을 푸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원수지간이 사라지고 이제 서로 통하는 마음의 말을 하게 됩니다(사도 2, 4. 8. 11 참조).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말이 통하는 길(言路)이 트이게 된 것입니다. 성령께서 마음이 통하는 길(心路)을 터주셔서 서로의 말이 통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말이 통할 수 있게 된 것, 그것이 곧 소통(疏通)‘이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말의 소통이라기보다는 마음의 소통이 먼저여야 합니다. 그것은 마음 없는 말이 아니라 한 마음’(사도 4, 32 참조)에 실려 있는 말이었기에 모두 알아듣는 상태가 되는 것이지요. 이것은 바벨 탑 사건(창세 11 19 참조)으로 무너진 인류가 새롭게 창조된 오순절 사건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인류의 부활(재창조)로 실제화한 체험입니다.


그것은 즉, 언로(言路)와 심로(心路)가 동시에 꿰뚫리는 체험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도 우리들의 세상에 실현되어야 할 부활과 성령강림의 동일 사건이자, 파스카 즉 해방이 완성되는 오순절(오십일)인 것입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만 주장하여 흩어져 패망하게 된 인류가 이제 한 마음으로 말이 통할 수 있게 된 새 인류로 다시 창조된 인류 부활의 사건, 그것이 곧 오순절 성령강림 신비입니다.


저는 이렇게 한 마음으로 말이 통하는 사이를 오늘도 실제로 우리 가운데 체험합니다. 서울에서 오신 순례 교우님들께서 여기 오셔서 저와 함께 이 지역 하부내포 성지를 새롭게 인식하시게 된 오늘, 우리 모두 한 마음으로 말이 통하는 사이가 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수년에 걸쳐 이곳 하부내포 성지에 관한 홍보를 하면서, 이곳의 해당 교구인 대전교구와 인근 교우 공동체들(본당들)의 몰이해와 외면을 당할 때마다 저는 적지 않은 좌절감을 마음속에서 삭이기가 몹시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멀리 서울에서 모여오신 순교자 현양회의 순례 교우님들의 오늘 순례를 통하여 이곳 하부내포 성지에 관한 새로운 인식의 확장과 성역화의 의의에 대한 공감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을 오늘 성령강림절의 감동적인 은사로 저는 받아드립니다.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한 마음으로 말이 통하는 사이가 되어 옛 신앙선조들이 순교로 고백한 동일한 신앙을 오늘의 우리들 사이에 생생하게 한 마음 한 말로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한 사도들이 오십일 만에 수천 명과 함께 그 체험을 공유하게 되었듯이, 우리는 이 하부내포 지역에서 목숨을 다하여 고백하던 150여 년 전의 신앙을 오늘 이 성령강림절에 동일하게 고백하는 입장이라고 저는 감동적으로 증언하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순례 오신 서울 대교구 순교자 현양회원 여러분, 여러분은 150여 년 전의 신앙선조들과 동일한 신앙인들이십니다. 그 동일한 신앙으로 이 미사 후에 우리의 순례길을 걸어갑시다. 저는 오늘 여러분의 하부내포 성지 순례를 통하여 성령강림의 은사를 체험합니다. 150여 년 전과 한 마음으로 말이 통하는 사이가 되어 순례의 길을 가면서 신앙을 증거하게 된 감동적 체험인 것입니다.

 



출처: 가톨릭성지 하부내포 공식 Daum 카페

http://cafe.daum.net/southnaepo/Dvt8/28



부여외산면 만수리공소 담당 하부내포 성지 윤종관 가브리엘 주임 신부

19476월 충남 부여 출생. 1960년 소신학교인 서울 성신중학교에 입학, 가톨릭대 신학부를 거쳐 197412월 사제가 되었다. 이탈리아 로마 우르바노 대학원 석사와 베를린 자유대학 박사과정 유학을 마치고 1985년 귀국해 해미 본당 초대 주임으로 6년간 성지를 조성했고, 2001년 안면도 본당이 설립되자 대전 도마동 본당 주임과 대전 서구지구장직을 2년 만에 끝내고 자청해 갔다. 열악한 환경의 안면도 사목 6년을 마친 윤종관은 2007년에 버려지고 잊혀진 하부내포 성지 전담 사제로 부임했다.

Posted by 편집장 슈렉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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