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책 『인권』을 읽고 정리한 노트필기를 기반으로 나름대로 정리한 내용입니다.
현실 역사에서 인권은 시민권의 형태로 실현되었다. 사실 인권과 시민권은 같이 탄생한 용어라고 볼 수 있다. 1789년 프랑스 국회는 <헌법서문>으로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을 채택하면서, 인권과 시민권은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때 시민권이란 다음과 같이 정의내릴 수 있다.
모든 시민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 서로에게 또는 공동체와 정부에 요구할 수 있는 서비스와 지위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 제1조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한 권리를 가지고 태어났다. 사회적 차별은 공공의 이익을 근거로 해서만 있을 수 있다. (Men are born and remain free and equal in rights. Social distinctions may be founded only upon the general good.)
계몽주의(啓蒙主義, the Enlightenment)는 18세기 프랑스에서 시작된 사회 변혁의 흐름이다. 그래서 어원은 프랑스어 뤼미에르(Lumières)이다. 계몽주의는 18세기 후반 프랑스를 기점으로 유럽 전역에 유행한 문화적, 철학적, 문학적, 지적 흐름이다. '인권'에 대한 담론이 흘러넘치던 시절이라고 볼 수 있다. 계몽주의자들은 17세기의 합리주의를 먹고 자랐으며, 로크(1632~1704)의 정치철학과 자연법, 뉴턴(1643~1727)의 과학(기계론적 우주관)을 기반으로 했다. 계몽주의자들 중에는 위대한 철학자들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계몽주의자들은 평론가이며 사상의 배급자들이었다. 그들은 일반인들이 접할 수 없었던 저작들을 읽고 그 내용이 대중에게 전달되어 대중이 깨우치도록(뤼미에르) 풀어 설명했다.
당시 진보적 엘리트를 자처한 계몽주의자들은 종교적, 정치적 박해에 맞서 투쟁했고, 그들이 펴낸 다양한 책들은 미국 독립전쟁과 프랑스 혁명을 비롯한 18세기 말의 정치적 대격변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결국 인권의 역사는 계몽주의의 시대로부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근대 인권 사상의 발전에 가장 대표적인 서양의 인물을 꼽으면 홉스, 로크, 루소 3인방을 들 수 있다.
토머스 홉스(Thomas Hobbes, 1588~1679)
잉글랜드 왕국의 정치철학자이자 최초의 민주적 사회계약론자이다. 서구 근대정치철학의 토대를 마련한 책 『리바이어던』(1651) 외에도 『철학 원론』. 『자연법과 국가의 원리』등의 저자이다. 홉스는 자연 상태의 인간사회를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전쟁 상태(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곧 대단히 불안한 상태로 보았다. 그래서 그로부터 자연권 확보를 위하여 사회계약에 의해서 리바이어던과 같은 강력한 국가권력이 발생하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인간에게는 권리가 있지만 또한 공격적 충동도 함께 갖고 있기에 자연권을 주권자에게 위임하고 그 주권자(국가권력)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게 홉스의 주장이었다. 비록 권력을 단 한 사람의 주권자에게 몰아주자는 게 홉스의 입장이지만, 그것은 국가에 대한 개인의 의무를 지키기 위한 게 아니라, 개인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방편이었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견해와 결정적으로 다르다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홉스의 사상에 의해 심어진 씨앗이 근대 자유주의와 인권사상으로 꽃피울 수 있었다.
존 로크(John Locke, 1632~1704)
홉스보다 44세 어린 잉글랜드 왕국의 철학자, 정치사상가인 로크는 홉스를 잇는 사회계약론의 명실상부한 후계자이다. 그는 영국의 첫 경험론 철학자이자 의회민주주의의 옹호자이며, 근대 계몽주의를 확립했다. 저서로는 『인간 오성론(人間悟性論)』, 『통치론(統治論)』, 『교육론(敎育論)』 등이 있다. 로크는 인간을 자연 상태에서 이성을 가진 자립적 존재로 보았다. 여기서 자연상태란 인간이 모두 평등하며 자연권의 보장을 받는 상태이며 인간은 자신의 이성을 통하여 그러한 자연법칙을 알 수 있는 존재이다. 로크 역시 홉스와 같은 입장에서 정부에 대한 통치 위임에 동의했다. 정부는 자연법을 집행하고 법에 따라 개인들의 자연권을 보호하고 공공선을 증진해야 하며, 국가에 대한 개인의 의무는 국가가 개인의 권리를 얼마나 보호하는지 여부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홉스가 왕에 의해 권력이 집중된 절대주의적인 정부를 주장했다면, 로크는 그보다는 권력이 제한된, 법에 따라 통치하는 정부를 주장했다. 또한 권리의 영역을 확장하면서 생명권과 자유권에 재산권을 추가했다.
로크의 인식론과 정치철학은 이후의 계몽주의 사상 및 자유주의 이론에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그의 정신에 관한 이론은 "자아 정체성"에 관한 근대적 개념의 기원으로 종종 인용되며, 볼테르(1694~1778), 데이비드 흄(1711~1776)과 루소(1712~1778) 그리고 칸트(1724~1804)와 같은 이후의 철학자들의 연구에 현저한 영향을 주었다.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1778)
루소는 18세기적인 사회 윤리를 가장 독창적으로 탐구한 인물이다. 그도 그럴 것이 1588년생 홉스나, 1632년생 로크와 달리 그는 18세기인 1712년에 태어난 인물이다. 그의 사상은 "자연은 인간을 선량, 자유, 행복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사회가 인간을 사악, 노예, 불행으로 몰아넣었다"라는 명제로 요약된다. 그가 쓴 모든 저작도 이 원리에 기초하여 개인과 사회를 회복하는 방법을 나타낸 것이다. 루소는 사람들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에 대하여 자연적으로 권리를 가진다고 보았다. 정치적 권리와 재산에 대한 권리 모두 시민적 권리이며, 공동체에 의해서 보호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로크는 재산권자의 이익을 주장하지만, 루소는 모든 인간을 재산을 소유하고 법을 만드는 데 참여하는 시민으로 본다. 루소의 영향은 철학·정치·교육·문학 전반에 걸쳐 깊이와 넓이에 있어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 그의 문학적 지위는 프랑스 낭만주의 문학자 볼테르와 함께 19세기의 대표적 작가로서, 계몽 사상가 중의 한 사람이다.
계몽주의자들의 사상을 통해서 인권은 도덕적, 당위적, 추상적인 개념에서 제도적, 법적, 현실적으로 보장되는 시민권으로 탈바꿈되었다. 즉 인권사상의 보편적 개념이 현실적으로 적용된 것은 근대 국가에서 시민권이 형성되고 발전되는 과정을 통해 이뤄진 것이다. 그러나 유럽의 근대국가에서 인권(시민권)의 실현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우선 인권이란 자국 시민에게만 보장되는 것이었으며, 자국시민이라고 해도 빈민층이나 여성에게는 해당되는 권리가 아니었다.
예를 들어 로크나 루소가 모두 정치적 권리와 재산권을 시민적 권리라고 말하고는 있지만, 로크는 그것이 재산을 가진 사람들의 권리를 말하고 있다면, 루소는 노예, 여성, 어린아이를 제외한 남성으로 제한하고 있다는 점이다.
근대 이전의 인권과 시민권
- 고대 자연법 사상과 시민권의 형성
자연법(Natural Law) 사상이란 근대적 인권과 시민권의 철학이자 사상이며, 원칙과 관념을 이루는 토대이다. 자연법이란 말 그대로 자연의 이치이므로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세상의 이치가 된다. 고대의 자연법이란 자연 또는 신이 정해진 인간사회의 질서이다. 반면 근대에 와서 자연법이란 인간의 이성을 통해서 인식됨으로써 존재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자연법 사상을 "모든 인간이 자유로우며 동일한 지위와 권리를 가지는 것이 자연스럽고 정당하다."는 선언으로 이해한다면, 여기서 '모든 인간'이란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모든 인간'과는 차이가 있다는 점을 함께 이해해야 한다. 사실상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고전적 시민권이란 도시국가의 성원이며, 군대에 복무한 남성을 말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와 성경에 존재하는 근친상간은 소포클레스의 희곡 [안티고네]에도 등장한다. 오이디푸스는 무책임한 아버지 라이오스에게 버려진 뒤, 성장하여 아버지인 줄 모르고 아버지를 죽이고, 자신을 낳은 엄마랑 결혼했는데, 거기서 2남 1녀를 둔다. 안티고네 역시 엄마인 동시에 할머니이기도 한 이오카스테 왕비의 남동생, 그러니까 외상촌 크레온의 아들 하이몬 즉 사촌오빠와 사랑에 빠지고, 어이없이 둘 다 자살을 한다.
『안티고네』는 고대 그리스의 소포클레스가 B.C. 441에 만든 비극 작품으로, 자연법 사상을 문학형태로 거의 완벽하게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주인공 안티고네는 어부지리로 테바이의 왕위에 오른 삼촌 크레온과 갈등을 겪는다. 다음은 위키백과의 내용이다.
오이디푸스가 스스로 눈을 찔러 실명한 채로 떠돌아 다니고, 두 오빠 폴리네이케스와 에테오클레스가 왕권을 놓고 다투다 모두 죽는다. 그리하여 안티고네의 삼촌인 크레온이 왕이 된다.
크레온은 애국자인 에테오클레스만 성대히 장례를 치러주고 반역자 폴리네이케스의 시체는 들에 그냥 버려두어 야생동물들에게 먹히게 하라는 포고를 내린다. 안티고네는 혈육의 정에 이끌려 크레온의 명령을 어기고 들에 버려진 폴리네이케스의 시체를 몰래 묻어준다. 이 사실을 안 크레온은 안티고네를 소굴에 가둔다. 안티고네를 연모하던 크레온 왕의 아들 하이몬도 안테고네를 따라 죽기로 결심하는데 크레온은 아들이 죽게 된 것에 놀라서 안티고네가 갇혀 있는 소굴로 달려간다. 하이몬은 아버지를 보자 격분하여 칼로 찌르려고 하고 크레온은 도망친다. 하이몬은 자살하고 이 사실을 안 크레온왕의 아내 에우리디케도 침대에서 자살한다.
최초로 서양의 기록에 나타난 자연법사상은 소포클레스(기원전496∼406)의 비극의 주인공 안티고네가 양심에 따라 왕의 명령에 반항하였다가 죽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오이디푸스에 대해서는 다음의 위키백과를 참조할 수 있다.
2020년 4월 26일 바람이 시원한 일요일 오후
키워드: 고대 자연법 사상, 오이디푸스, 안티고네, 시민권의 형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