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책 『인권』을 읽고 정리한 노트필기를 기반으로 나름대로 정리한 내용입니다.
스토아 학파의 3대 회장 크리시포스(B.C. 279~206)는 스토아 사상을 체계화한 인물로 꼽는다면, 크리시포스로부터 170여년 이후에 등장한 고대 로마의 법률가이자 정치인 키케로(BC 106~BC 43) 역시 크리시포스처럼 그다지 독창적인 인물이라기보다는 스토아 학파의 자연법 사상을 체계화한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어찌보면 키케로는 로마 최후의 공화주의자였다. 그는 『법률론』 에서 자신의 정치적 신념이 요약된 말을 다음과 같이 남겼다고 한다.
potestas in populo, auctoritas in senatu
권력은 인민에게 있고 권위는 원로원에 있어야 한다
키케로는 기원전 60년, 제1차 삼두정치 협약의 3인방 카이사르, 폼페이우스 그리고 크라수스 등에게 따돌림을 당했다. 그가 공화국 체제를 고수했기 때문이었다. 3인방의 합작으로 기원전 58년 호민관이 된 클로디우스는 정적(政敵) 키케로를 로마에서 추방(기원전 58년 3월부터 57년 8월까지 1년 6개월)했고 그의 재산을 몰수하고 집을 불태워버리기도 했다. 그리고 우여곡절의 세월을 거쳐 기원전 44년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키케로는 공화정을 되살리고자 하는 작은 희망을 잠시 품고 브루투스 편에 조언을 제공했지만, 이는 안토니우스에게 원한을 사게 했다. 결국 기원전 43년 12월 7일 로마밖으로 피신하던 중에 안토니우스의 사주를 받은 부하에게 죽임을 당했다. 키케로는 머리와 두 손이 잘려 죽었는데, 안토니우스는 키케로의 머리와 두 손을 로마 광장에 내다 걸었다고 한다.
고대 시민권의 개념
고대의 시민권이란 남부 유럽에 해당하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를 중심으로 형성된 시민권을 말한다. 그런데 이러한 시티즌십(Citizenship, 시민권)은 도시 국가 그리스의 폐쇄적인 성격에서 로마로 옮겨오면서 자연법 사상과 만민법의 적용을 통해 큰 변화를 맞이했다.
30∼180 | 가이우스,《법학제요》저술
아리스토텔레스의 시민관에 재산과 실생활 항목을 부가
로마의 저명한 법학자 가이우스(Gaius: 130-180)는 시민의 지위를 구체화했는데, 161년 작품으로 추정되는 『법학제요(法學提要)』는 그동안 아무런 원칙 없이 필요에 따라 쌓여 가기만 하던 각 분야의 그 당시 로마법 체계를 질서있게 짜 맞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책은 저명한 법률가들의 논문, 12표법, 각 황제들의 칙령, 각 집정관의 조칙, 그리고 당시 주요 법인 파피우스 포파에우스 법까지 포함해서 그 논지와 세부사항을 잘 정리하고 설명했다는 특징이 있다.
키케로는 로마의 공화정이 제정으로 변질되어 가는 것을 막지는 못했지만, 그가 남긴 사상과 작품은 중세 교부철학에 큰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후대의 공화주의자에게도 큰 사상적 영향을 끼쳤다. 그의 사상은 근대적 인권 사상의 바탕이 되었으며, 그가 전파한 자연법 사상은 만인에게 적용되는 보편적인 법이라는 개념으로 근대적 인간과 근대적 인권의 토대가 되었다. 다시 말해서 법 앞에 평등한 인간으로서의 근대적 인간, 모든 인간이 지닌 보편적 인권이라는 근대적 인권 개념의 토대가 된 것이다. 키케로는 그의 저서 『공화국에 관하여』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실제로 존재하는 단 하나의 법은 올바른 이성이라는 법이다. 이 법은 자연과 일치하며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고 불변하며 영원하다. 이 법은 그 명령을 통해서 인간이 자신의 의무를 수행할 것을 요구하며, 그 금기를 통해서 그릇된 행위를 규제한다. … 모든 시대에 모든 인민을 구속하는 하나의 법이 존재할 것이다.
현대 영국의 정치학자 피어슨(Christopher Pierson)은 그의 책 『The Modern State(근대국가의 이해)』(1996년 초판, 1998년 한글판 - 현재 한글판은 절판)에서 이렇게 말했다.
시민권은 "고대 그리스, 로마 공화국과 제국,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도시, 국민국가, 그리고 세계도시"라는 시대적 맥락에 따라 5개의 역사형태로 구분된다.
여기서 앞의 세 가지인 (1) 고대 그리스, (2) 로마 공화국/제국, (3)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도시는 전(前) 근대적이고 특수주의적인 고전적 시민권에 해당된다. 즉 그 권리는 외국인과 구분되는 지위이며 , '권리'라는 개념이 근대와 비교하여 구체적으로 발달한 게 아니었다.
그래서 고대 시민권이란 시민의 권리(Citizen's right)라기 보다는, 시민의 자유이며 자격(Civitas, Citizenship)에 해당되며. 풀어 말하면 재산의 소유, 정치 참여, 재판을 받을 권리 등을 말한다. 그러나 고대의 시민권 사상은 14세기부터 16세기에 이르는 르네상스 시대에 새로운 영감으로 다가왔으며, 이러한 발전을 통해 근대적 시민권과 인권의 중요한 역사적 전범이며 경험적 토대가 되었다.
시민(Citizen)은 고대 그리스어로 Polites, 라틴어로 Civis이다. 이 말을 풀어 말하면 Polites는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예: 아테네), 즉 폴리스(Polis)의 구성원 또는 로마의 레스 푸블리카(res publica, 공화국)의 구성원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시민이란 개념은 인간공동체의 한 형태를 표현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정치학』제3편 1~5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시민은 "관직을 맡아 법을 집행하거나 정치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자"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서 시민이란 공직 수행에 필요한 능력을 보유한 사람이다. 따라서 조직생활 경험이 있어야 하며, 고대의 가장 대표적 조직에 해당되는 군대 경험을 갖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배할 능력과 지배받을 능력은 오로지 남성들에게만 해당되었고, 여성이나 노예는 당연하게 배제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는 보편주의적 시민권과는 거리가 아주 멀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알렉산더 대왕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1
그리스인을 친구나 친척으로서 대우하고 외부인을 동물이나 식물로서 취급하여, 전자를 지도자의 입장에서 후자를 주인의 입장에서 통치할 것
아리스토텔레스의 국가론에서의 권리는 오로지 시민에게만 주어진 특권이었다. 민중의 대다수는 시민권이 없으며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자유는 존재하지 않았다. 게다가 노예제도를 당연하게 여겨져 그들에게는 자유도 없고 권리도 없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본질적으로 정치적 동물이다."라고 말했다. 이를 우리나라 중고교 사회교과서에서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고 소개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인간(시민)의 삶이란 공적인 일에 참여하여 자신의 삶을 결정하는 것을 말한다. 국가는 곧 시민이며 시민은 사법적 기능과 정치적 업무에 참여함으로써 정의되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탁월한 인간이란 고독한 은둔자여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아래처럼 말이다.
자신의 삶을 형성하는 결정에 참여할 능력이 없거나 참여하기를 거부한 개인은 시민이나 인간으로 대우받을 자격이 없다.
그런데 로마 시대에 와서 시민의 지위는 변화를 맞이하였다. 스토아 학파의 사상과 그로 인해 영향을 받은 키케로는 자연법 사상을 만민법에 적용하였고, 자연법 사상은 만민법의 토대가 되었다. 즉 로마의 법이 지중해 세계의 법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자연법이 지닌 보편타당한 원리가 필요했으며,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룩한 철학적 자연법을 법적 자연법으로 구성할 필요가 있었다.
키케로(BC 106~ AD 43), 가이우스(130-180), 울피아누스(170?~228?)
현존하는 고대 자연법에 대한 설명 중 키케로(BC 106~ AD 43)의 사상을 살펴봐야 하는 이유는 키케로에 이르러서 (그의 저서 [국가론]과 [법률]을 통해) 자연법 사상이 확실한 형태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키케로는 인간이 순응해야 하는 자연의 법칙이 있으며 그 법칙이야말로 인간의 목적을 향해 똑바로 세워진 올바른 이성이라고 말했다. 인간은 정의를 지향하며, 자연의 법칙을 따를 때 그 정의가 행해진다고 보았다.
다음 타자, 가이우스(130-180)는 [시민법]과 [만민법]을 구분했다. 시민법이란 집단이나 사회에 대한 법규와 관습을 말하고, 만민법은 말 그대로 만민, 즉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법으로 분류한 것이다. 따라서 만민법은 보편적 행동의 규칙을 따라서 서로 다른 풍습과 문화가 상호작용하도록 기초가 되는 것을 의미했다. 이런 맥락에서 만민법은 자연법과 동일한 것이 된다.
이후 페니키아 출신의 로마 법학자 울피아누스(170?~228?)는 시민법, 만민법 그리고 자연법의 세종류로 구분했다.즉 만민법과 자연법을 구분한 것이다. 이때 만민법이란 인류공통의 온갖 민족의 법이 되고, 자연법이란 인간에게 적용되는 이성과 윤리가 아니라 동물적 본능에 따른 생활법칙이라고 보았다.
로마의 저명한 법학자 가이우스(130-180)는 [시민법]과 [만민법]을 구분했다. 시민법이란 집단이나 사회에 대한 법규와 관습을 말하고, 만민법은 말 그대로 만민, 즉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법으로 분류한 것이다. 따라서 만민법은 보편적 행동의 규칙을 따라서 서로 다른 풍습과 문화가 상호작용하도록 기초가 되는 것을 의미했다. 이런 맥락에서 만민법은 자연법과 동일한 것이 된다.
키케로(BC 106~ AD 43), 가이우스(130-180), 울피아누스(170?~228?)
특히 가이우스의 가장 큰 공적은 시민의 지위를 구체화한 것이었다. 그의 161년 작으로 추정되는 『법학제요(法學提要)』는 그동안 아무 원칙 없이 축적된 각 분야의 로마법 체계를 질서있게 짜 맞췄다. 이 책은 저명한 법률가들의 논문, 12표법, 각 황제들의 칙령, 각 집정관의 조칙, 그리고 당시 주요 법인 파피우스 포파에우스 법까지 포함해서 그 논지와 세부사항을 잘 정리하고 설명했다는 특징이 있다.
가이우스는 정치적 동물인 인간, 즉 시민의 지위를 법 속에서 더욱 구체화시켰다. 아리스토텔레스 시절 이상적 존재이던 인간에게 현실적 존재성을 부여했고, 정치적이고 공적인 존재에 대비하여 경제적이고 사적인 존재성을 부여했다. 결국 가이우스에게 이 세상이란 사람과 행위 더하기 재산이 된 것이다.
경제(economy)의 어원은 그리스어 'οἰκονομία'
'경제'라는 말의 어원은 "세상을 다스려 백성을 고난에서 구한다"라는 의미의 경세제민(經世濟民)을 줄인 말이다. 반면, 경제를 뜻하는 그리스어 오이코노미의 뜻은 '집안 관리나 계획'이다. 집이나 가정을 의미하는 'oikos'와 규칙이나 법을 의미하는 'nomos'를 합친 것이다. 그래서 오이코노미(경제)가 가족이나 집안의 일을 계획하는 일이라면 그것은 집에서 벌어지는 개인의 가정사인 셈이다. 즉 여자와 노예들의 공간인 집에서 벌어지는 일이며, 먹고사는 데 필요한 경제문제는 비정치적인 영역이므로, 비정치적인 동물인 여자와 노예가 하면 될 일이었다. 그래서 오이코노미(경제)는 그 어원으로부터 정치적 운명공동체와는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시민이란 공적인 일을 매개로 참여를 통하여 상호작용하는 공동운명체의 일원이었다면, 가이우스에게는 경제적인 영향도 함께 고려해야 일이며, 아무리 하찮아보여도, 경제적이고 사적인 문제 역시 법적인 고려의 대상이 되었다.
정리해서 말하면, 가이우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민관에 재산과 행위를 추가했다. 즉 시민의 개념을 확대하여, 시민의 자격과 지위가 있는 자라면 이에 따른 권리가 있으며, 이를 통해 다양한 형태의 자유로 구체화될 가능성이 탄생한 것이다. 기본적으로는 (1) 공직참여권, (2) 입법활동권, (3) 재판에 따른 피처벌권 등이고, 가이우스에 이르러 확대된 것이 (4) 법정 재산소유권, (5) 폭력으로부터 보호요청 및 기대권 등이다.
2020년 4월 26일(일) 밤 11시 51분, 안방 서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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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322)는 40대 초반이던 343년 마케도니아의 왕 필리포스 2세의 부탁으로 알렉산드로스(일명, 알렉산더 대왕, 기원전 356~323) 왕자를 3년 정도 가르쳤다. 알렉산드로스의 나이 13세부터 16세에 이르기까지였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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