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제4주일, 2013년 12월 22일 10시

만수리 공소 윤종관 신부


낙태시키면 될 것을? 

쪼다같은 요셉


오늘의 복음 성경의 내용(마태 1, 1824)을 읽게 되면 저는 마리아의 약혼자 요셉에 대하여 한심스런 남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분께는 죄송합니다만, 저속한 언어로 표현해서 쪼다 같은 요셉이라는 별칭으로 언젠가 제가 다음과 같이 강론한 일이 있습니다.


한번 생각해봅시다. 아니, 그럴 수가 있습니까? 약혼녀가 다른 씨를 받아 임신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는데(마태 1, 18 참조), 그 일을 세상에 드러낼 생각을 포기하고 남모르게 파혼하기로 마음먹었다니요?(마태 1, 19 참조) 그리고 더욱, 고민 중에 잠자다가 꿈을 꾸고 나서(마태 1, 2023 참조), 잠에서 깨어나더니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다?(마태 1, 24 참조) 그리고 그 여자와 그 아기를 돌보느라고 집 떠나 고생을 해? 세상 남자들의 체면을 손상시킨 요셉이지요! 이러한 쪼다 요셉의 그 등신 같은 처신을 종용하셔서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을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셨으니, 하느님 또한 더욱 비겁하신 분 아니십니까?


이런 이해할 수 없는 과정을 통하여 세상에 구세주로 오시는 분은 그래서 동네 밖 동물들 소굴(마구간)에서 밤중에 세상 사람들 모르게 그 혼전 임신부를 통하여 탄생하셨나보다 하고 말할 수도 있겠지요!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요! 이렇게까지 말하고 보니, 제가 너무 심했나요?


하느님이 하시는 일이란


그렇습니다. 세상에서 통하지 않는 일이 하느님 하시는 일이기도 합니다. 하느님 하시는 그 일을 받아들이는 것이 곧 믿음이라는 것이랍니다그런데 사실 우리네 인간들이 살아가는 일들 또한 납득 할 수 없는 과정들을 통하여 이뤄지는 것을 우리는 수없이 체험합니다자신의 인생을 좌우할 기로에서 결단을 내릴 수 있는 믿음, 그것을 우리에게 요청하시면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하실 일을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한 하느님을 철저히 믿은 사람이 그 쪼다 같은 요셉이었습니다. 그를 일컬어 의인이라 하는 까닭은 오로지 하느님을 믿을 뿐인 그 태도를 일컫는 것입니다. 그러한 요셉처럼 믿음을 지니지 못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는 세상의 평판은 그래서 그를 사나이답지 못한 쪼다라 일컬을 것입니다.


하느님만을 믿는 그 요셉을 그렇게 쪼다 같은 사나이로 보는 눈을 가지고 볼 때 그와는 대조적으로 세상에서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하느님을 우습게 보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렇습니다.


트럭에 깔려 죽은 4살 아이의 실화


제가 오래 전에 봉직하던 본당에서 기막힌 사연을 체험한 일이 있습니다. 슈퍼마켓을 하는 젊은 부부가 있었습니다. 그 부부에게는 4살 먹은 아들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집에 물건을 납품해주는 사람이 와서 봉고차에 싣고 온 물건을 들여다 놓고 계산을 하고는 급히 자동차를 돌려나가려고 후진하다가 그 집 문 앞에서 놀고 있던 그 4살 박이 아이를 보지 못하여 깔아버렸습니다. 그 아기는 현장에서 죽었습니다. 참으로 참혹한 일이었습니다. 성당에서 그 아기의 장례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과상자 두 배 정도 크기 밖에 되지 않는 그 아기의 관을 앞에 두고 장례미사를 봉헌하면서 너무 너무 기가 막혀 저는 그 부모 앞에서 강론할 수가 없었고 참석한 신자들께서도 그 부모처럼 넋을 잃은 모습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후 한 달 후쯤부터인가, 그 부부는 성당에 나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가끔 그 집 앞을 지나면서 일부러 들어가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기도 하고 괜스레 비누 한 개를 사기도 하고 통조림을 사기도 하고 어떤 때는 소주나 맥주 같은 것을 외상으로 사오기도 했습니다. 호주머니에 돈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외상으로 사는 이유는 외상값 갚을 핑계로 다시 그 집에 가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별다른 말을 할 수도 없고 해서 그 부부의 표정만 슬금슬금 살피다가 성당에서 며칟날 무슨 행사가 있으니 한번 와보라고 겸연쩍게 말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그 부부는 그러한 저의 말에 대하여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기를 거의 1년가량 하다가 저는 어느 날 그 가게 방 문설주 위에 붙어있는 커다란 부적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열려있는 그 집 안방을 들여다보았는데 벽에 걸려 있어야 할 십자가와 탁자 위에 모셔져 있던 성모상이 없어진 것이었습니다. 저는 무슨 못 볼 것을 본 기분으로 성당에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그 옆집 교우를 불러서 그 집 사정을 자세히 물어보고 알게 된 사실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그 집 부부는 아들 하나를 낳고서는 부부가 차례로 불임수술을 받았는데, 그 하나 밖에 없던 그 아이가 죽게 되어 그 불임을 복원하려고 병원에 여러 달 다니다가 얼마 전부터는 절에 빌러 다닌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도 계속해서 그 집에 가서 아이스크림이나 라면 혹은 소주 맥주 같은 것을 사곤 했습니다. 별다른 얘기 없이 말입니다. 그러다가 발령을 받아 멀리 다른 본당으로 떠나게 된 저는 그 부부가 성당으로 돌아오지 않는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그 본당을 떠났습니다. 제가 거길 떠나 십 수 년이 지나고 나서 그 부부 사는 그 본당 지역이 1시간 거리의 가까운 곳으로 다시 발령 받아 살게 되어 그 부부의 사정이 궁금해져 알아본즉, 이제는 절에도 다니지 않고 아이가 또 생기지도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 부부가 처음부터 하느님을 믿지나 말았더라면, 차라리 마음 괴로움이 덜 하지 않았을가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그 부부의 집에 자주 드나들었던 것이 괜스레 서로 마음만 불편하게 한 꼴이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이제 와서 미안한 마음이 들더군요. 그 부부에겐 아마 하느님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더 편한지도 모를 일입니다.


별로 필요 없는 하느님?


그렇습니다. 하느님? 별로 필요 없는 하느님인 것 같습니다. 나 편한 대로 살아야 하는데, 그런 나에게 예기치 않은 불행이 닥쳐도 나의 딱한 처지를 해결해 주지 않는 하느님을 믿을 필요가 있겠습니까? 세상의 방식대로 살다보면 하느님께 대한 신앙이란 불편하기만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 인간의 현실적 삶이 중차대하고, 또한 인간이 당하는 불행이 너무나 엄청난데, 하느님과의 관계를 설정한다는 것은 더욱 우리 인간을 짓눌리게 하는 것이 아니냐 하는 반문을 제기할 수도 있겠지요. 여기서 철학자 하이데거(M. Heidegger)와 같이 유한적 존재(ens finitum)로서의 우리 실존적 상황에서 나의 처지가 나 자신에게 절대적이지 않은가 하는 점을 직시한다면, 뭐 무한적 존재(ens infinitum)라는 신을 내새워서 나를 더욱 비참하게 할 수는 없지 않느냐 하고 항변할 수 있지요. 그런 상황은 우리 주변에서 가끔 까닭 모를 불행을 당한 사람들을 보게 될 때, 혹은 나 자신이 무슨 잘못도 없이 어떤 참혹한 일을 당하게 되었을 때, 하느님이라는 존재는 나에게 어떤 상대자란 말인가 하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요.


여기서 하느님이라는 절대자가 차지하는 자리에 한없이 연약한 인간의 현존재를 갖다 놓은 것이 아니냐 하는 저 유명한 철학자 하이데거의 거창한 실존철학의 명제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하느님을 믿어봐야 나의 불행은 해결되지 않더라 하는 항변의 독백을 뱉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우리 자신이 평상적으로도 무의식 가운데 늘 우리 불행의 상황을 절대적인 것처럼 설정하고 거기서 스스로 뛰쳐나와야 인간 성취를 한다는 식으로 살지 않는가? 그것이 곧 유한적 존재 상황을 절대화하는 우리 인간의 실제 불행이 아닌지! 아마 그 점에 대한 깨달음은 유태인이면서 카르멜 수도자가 되었다가 나치에 의해 체포되어 아우슈비츠 가스실에서 사라진 성녀 십자가의 데레사 베네딕타(1997諡聖 St. Teresia Benedicta a Cruce)’에게서 찾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카르멜 수녀는 무신론자였던 하이데거의 동문 후배로서 인간실존을 더듬는 사상적 고민 가운데 유태교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하는 구도의 과정을 통하여 어두운 인간 상황을 하느님께로 향한 여정으로 깨달아 갔던 여류 철학자 에디트 슈타인(Edith Stein)이었습니다. 어느 날 살아졌는지 알려지지도 않은 그 카르멜 수녀 에디트 슈타인은 진정 무한적 존재이신 분을 향하여 인간 실존의 어두운 터널을 건너갔다 할 신앙인이었습니다.


그 에디트 슈타인! 그녀가 가스실에서 어느 날인지도 모르는 순간에 사라진 그 어두운 실존의 상황을 상상하면서 저는 마치 어머니의 뱃속에 있다가 아무런 자기 탓도 없이 아무렇게나 제거되어가는 낙태아를 연상하게 됩니다. 치열하게 추구하던 인간실존을 하느님 안에서 찾아가던 위대한 사상가 에디트 슈타인! 그녀가 가스실에서 사라져간 모습은 곧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한 생명을 감싸던 모태로부터 아무 것도 아닌 양 제거되는 낙태아의 그 흡사한 실존인 것입니다.


쪼다 요셉의 바보같은 믿음 만큼만이라도


그렇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은 그렇듯 아무 것도 아닌 양 제거될 수도 있는 위기의 상황에 내어던져지는 연약한 존재로 세상에 오십니다. 그러한 하느님의 연약한 아들을 쪼다 같은 요셉의 의로운 결단이 지켜주게 됩니다. 역설적이게도 그 바보 같은 의인, 그는 또한 역설적이게도 법률로 보호 받을 아무런 터무니도 없이 딱한 처지에 있던 미혼모의 뱃속에 있던 연약한 그러나 위대한 하느님의 아들을 결정적으로 보호한 쪼다 요셉이었습니다. 그저 아무도 모르게 낙태시키면 될 걸, 바보 같은 요셉은 그 상황을 자기 가슴에 다 묻어두고 그 미혼모를 받아들임으로써 결국 하느님께서 하실 일을 하시게 하여드렸습니다. 그것이 곧 오늘도 우리에게 요구되고 있는 바보 같은 믿음인 것입니다. 우리의 바보 같은 믿음 가운데 주님께서 자리하실 수 있어 인간 구원의 위대한 일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부내포 신앙선조들의 처지도 그랬던 것


그렇습니다. 제가 특별한 관심으로 성역화 하려 노력하고 있는 여기 하부내포 지역에서 찾아볼 수 있는 옛 신앙선조들의 처지가 그런 것이었습니다. 오지 산간에 숨어 신앙을 지키려다 발각되어 무참히 죽임 당하고 어디에 버려졌는지도 알 수 없는 그들입니다. 산으로 둘러싸여 하늘만 빤한 계곡에서 오로지 바라보기만 했던 이 깊은 겨울의 밤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란, 그들의 옛적이나 오늘이나 차가운 별빛 말고는 현실의 앞을 희망처럼 밝혀주는 다른 조명의 불이 없습니다. 절망으로 둘러싸인 듯 깊은 산속의 겨울밤은 그렇습니다. 오늘이 마침 동지(冬至)입니다. 가장 긴 밤의 겨울하늘이 그렇듯 나의 눈으로 바라볼 뿐, 손으로 잡혀지지도 않고 그림자를 드리워주지도 않는 차가운 별빛뿐입니다. 이러한 긴 겨울밤의 별빛은 그러나 캄캄함 속에도 하늘이 있음을 알게 해줍니다. 그 하늘은 해가 뜨게 될 창공(우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동지로 말미암아 가장 멀리 가있는 태양이 가장 긴 밤을 통하여 가까이 오려는 방향전환을 한다는 메시지를 깊은 계곡의 밤하늘에서 별빛들이 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옛 신앙선조들은 여기 산골의 외진 삶을 통하여 영원의 하늘을 터득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때문에 그 쪼다같은 천주학쟁이들로 잡혀 죽어갈 수 있었지요. 그들을 칭송하자면서 이른 바 순교 신앙을 우리 신앙 후예들이 가슴에 새기는 것 역시 쪼다의 짓 아닌가요?


믿음이란 어찌 보면 두꺼운 어둠에 둘러싸여 길고 긴 겨울을 살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국민적 깨달음을 주장하면 종북 딱지에 둘러싸이듯이, 대부분의 영악한 세상 사람들이 외면하는 삶이란 겨울의 삶이고 미련한 짓이지요. 세상에서 영악하게 편리함을 찾아야 하는 게 정상인데도 불구하고 바보처럼 불편하게 사는 게 믿음의 삶인가 봅니다. 그러한 쪼다요셉을 오늘 복음 성경에서 관찰하며 강생(성탄)’이란 무엇인가를 묵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오시는 구세주란 그렇듯 어이없는 믿음의 통로를 거쳐서 오시는 분이십니다. 무시하여 버려도 되는 존재처럼 연약하게 오시는 분, 그렇기에 우리의 연약하지만 바보같이 굳은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순간을 당신의 위대한 시간으로 택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한 하느님은 그렇듯 우리가 무시해도 될 만큼 연약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영악스런 세상을 따르지 않고 바보인 듯 요셉처럼 그분을 믿기만 하는 우리들 속에서라야 당신이 하실 일을 하시는 분이 하느님이십니다. 그러한 우리의 믿음 속에서 이제 역설적이게도 위대한 일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한 역설적 사건으로 주님의 성탄, 강생의 신비는 우리에게서 이루어지려고 다가오고 있습니다.


 

출처: 가톨릭성지 하부내포 공식 Daum 카페

http://cafe.daum.net/southnaepo/Dvt8/63



부여외산면 만수리공소 담당 하부내포 성지 윤종관 가브리엘 주임 신부

19476월 충남 부여 출생. 1960년 소신학교인 서울 성신중학교에 입학, 가톨릭대 신학부를 거쳐 197412월 사제가 되었다. 이탈리아 로마 우르바노 대학원 석사와 베를린 자유대학 박사과정 유학을 마치고 1985년 귀국해 해미 본당 초대 주임으로 6년간 성지를 조성했고, 2001년 안면도 본당이 설립되자 대전 도마동 본당 주임과 대전 서구지구장직을 2년 만에 끝내고 자청해 갔다. 열악한 환경의 안면도 사목 6년을 마친 윤종관은 2007년에 버려지고 잊혀진 하부내포 성지 전담 사제로 부임했다.

Posted by 편집장 슈렉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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