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27일 브라질 주교들과 함께 봉헌하신 미사 강론
복음을 선포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사람
그리스도 안에 변치 않고 머무는 삶이 가장 중요한 실천입니다
우리는 소명을 받았습니다. 1.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고, 2. 복음을 선포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으며, 3. 만남의 문화를 퍼뜨리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1.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
우리는 모두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존재라는 사실을 새롭게 인식하고 이러한 실존에 역점을 두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요한 15,16)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부르심의 원천을 향해 다시 나아가야 합니다. 이 점을 기억하지 않으면, 자기 여정의 출발점과의 연결고리를 잃습니다. 부르심의 원천과 멀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으며, 예수님과 함께 머무르고(마르 3,14) 그분과 하나되라고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오래도록 변치 않고 머무는 삶을 사는 것은 우리가 추구하고 실천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항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머무는 삶’은 우리가 수행하는 사도적 활동의 효과는 물론이고 섬김 활동의 풍성한 결과도 보장해 줍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예수님의 말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너희의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있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15,16).
예수님은 강조하셨습니다.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15,4). 우리는 ‘예수님께 충실한 것’ 또는 ‘예수님 안에 머무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성체 성사 안에서, 기도생활 안에서, 찬미하는 삶에서 날마다 예수님을 만나면서 그 분에 대해 묵상하고 그 분을 경배하면서 끌어안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이 언제나 우리 가운데 현존하심을 알아보고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안에 함께 하시는 그 분을 끌어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머무는 것’은 혼자 떨어져 있는 것과 정반대의 상황입니다.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이며, 그러기 위해 밖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마더 데레사(1910~1997)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가난한 사람을 통해 그리스도를 섬기는 기회를 가져다준 소명에 대해 큰 자부심을 느껴야 합니다. 우리는 브라질의 빈민 지역으로, 우루과이의 빈민촌으로, 아르헨티나의 빈민가로 가서 그리스도를 찾고 그분께 봉사해야 합니다. 우리는 제대를 향해 나아가는 사제처럼 기쁜 마음으로 그곳의 가난한 이들을 찾아가야 합니다.”
2. 복음을 선포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사람
예수님은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라.’(마태 28,1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초대 말씀에 사람들은 두려운 마음을 품을 수도 있습니다. 선교사가 된다는 것은 고향과 가족과 친구를 남겨두고 반드시 떠나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선교사가 되라고 요구하십니다. 특히 우리는 젊은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줄 알아야 합니다. 씨를 뿌리고 가꾸는 것은 힘들고 고단한 일입니다. 무척 힘겨운 일입니다. 그러나 추수 때의 기쁨은 모든 것을 이겨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젊은이들을 길러내는 데 힘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바오로의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나의 자녀여러분,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모습을 갖추실 때까지 나는 다시 산고를 겪고 있습니다”(갈라 4,19).
지금 아직도 많은 사람이 복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문을 닫아걸고 본당 안에, 공동체 안에, 본당의 교리나 성경교실 안에서, 교구의 신학원 안에 갇혀있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파견한 사람답게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문을 열고 환대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문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변두리에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에서부터, 교회에 나오지 않는 사람에서부터 사목활동을 시작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 바로 주님의 초대장을 받은 귀빈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찾으러 거리로 나가야 합니다.
3. 우리가 소명을 받았다는 것은 첫째,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이고, 둘째는 복음선포를 위해 부르심을 받았다는 뜻이며, 마지막 세 번째는 만남의 문화를 퍼뜨리도록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날 인간사회의 공통적인 현상은 ‘경제만능주의’입니다. 경제적 가치가 없으면 가차없이 버리는 ‘폐기의 문화’가 형성된 것입니다. 이런 문화 속에서는 노인을 위한 문화도, 원치 않는 자녀에 대한 자리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거리에서 가난한 사람과 함께 머물 시간도 없습니다. 인간관계가 효율성과 실용성이라는 두 가지 현대적 ‘원리’에 의해 좌우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마카베오기 상권의 첫 페이지에 나오는 이야기를 떠올릴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많은 유다인이 시대적 흐름에 따라 이방문화에 순응하고 싶어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도 좋지만 고집할 필요없이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많은 유다인이 주장하면서 신앙을 버렸습니다. 시대 흐름에 편승하여 이방문화에 빠져 들었습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우리는 친교와 만남의 문화를 위해 봉사해야 할 사명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절대 교만을 품지 않고, ‘우리가 전해받은 진리’를 앞세우면서 이 사명을 실천해야 합니다. 우리는 저마다 진리 차제이신 그리스도께서 찾아주고 만나주고 변화시켜 주신 사람으로서 확신을 가지고 겸손과 기쁨으로 이 사명을 실천해야 합니다. 우리는 부르심을 받은 사람으로서 복음을 선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루카 24,4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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