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사도 시대 이후의 그리스도교 


1. 사도시대 이후 그리스도교의 발전  


⑴ 지역적 확장 

1. 사도시대 이후 그리스도교의 발전  ⑴ 지역적 확장 

① 성공적 전파의 원인


선교는 비 그리스도교 세계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노력이며 교회의 주요 임무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존재 이유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명령이다. 선교는 이 명령에 대해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충성스럽게 응답하는 자세이다.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선교를 충실히 수행하여 급속적으로 발전한 요인은 우선 하느님의 은총으로 성령이 교회에 늘 함께 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도들의 열성적 복음 선포에 힘입은 바 크다. 이러한 성공 요인은 교회 자체가 지닌 내적 요인과 교회 밖의 외적 요인으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내적 원인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로, 그리스도교의 결혼과 가정에 대한 윤리이다. 교회는 결혼의 신성함과 가정생활의 숭고함을 강조했다. 두 번째는 그리스도교의 만민평등사상이다. 세 번째는 형제적 사랑, 협동정신, 상부상조 등의 경제조직 등 그리스도인의 생활 자세이다. 네 번째는 박해시대에 신자들이 보여준 영웅적 용기이며, 다섯 번째는 평신도들의 전교 열성이다.


여섯 번째는 호교론자 護敎論者의 출현으로 문서 선교가 성공을 거둔 점이다. 이로써 상류계급과 지식층이 입교하고, 그들에게 예속된 모든 이가 개종함으로써 교세가 확장되었다. 일곱 번째는 그리스도교의 설교나 저술이 히브리인에게 국한해서 사용하던 아람어가 아니라 그리스 로마 문화권의 통용어인 그리스어를 사용한 사실이다.


다음으로 외적 요인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로, 당시 그리스 로마 문화를 지배하던 그리스 철학이 인간 내면에서 추구하는 근본적인 문제 즉 신의 존재, 영혼의 존재와 불사불멸성 不死不滅性, 인생의 목적 등에 확실한 해답을 주지 못한 반면에 그리스도교의 교리는 이러한 문제에 만족할 만한 답을 제시한 점이다. 두 번째로 로마제국의 전통적 다신교에서 영적 만족을 얻지 못하고 종교적 한계를 체험한 이들이 결과적으로 일신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세 번째로 로마제국에 산재해 있던 유다인, 즉 ‘디아스포라’는 가는 곳마다 회당을 세웠는데 이곳이 선교사들의 복음 선포를 위한 발판이 되었다. 네 번째로 로마 제국의 지중해 연안지역 지배와 이에 따른 편리한 교통망이 도움이 되었다. 



1. 사도시대 이후 그리스도교의 발전  ⑴ 지역적 확장 

② 교세


사도시대 이후의 그리스도교는 박해에도 불구하고 로마제국에 크게 확산되었고, 로마제국 밖에서도 여러 지방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기 시작하였다. 로마제국의 동부지역에 위치한 시리아, 이집트-알렉산드리아, 소(小)아시아, 아라비아 지방, 페르시아에서 서부지역의 이탈리아, 북(北)아프리카 골 Gaul 지방, 게르만 지역, 에스파냐 지방과 영국 제도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넓은 지역에 교세가 확장되었다.



⑵ 신앙의 체계화


1. 사도시대 이후 그리스도교의 발전  ⑵ 신앙의 체계화

① 사도교부


사도교부 使徒敎父는 계시시대가 끝나고 전승시대로 넘어가는 사도 이후 시대의 첫 단계에 등장한 저술가 그룹이다. 이 저술가들은 사도들과 면식이 있는 직제자 또는 사도들과 직접 접촉하지 못했지만 사도들의 전통을 이어받은 사목자들이었다.


이에 속하는 교부들은 다음과 같다. 


로마의 클레멘스 Clemens Romanus (재위 900~100)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 Ignatius (35~107)

스미르나 Smyrna의 폴리카르포 Polycarpus (60~155)

히에라폴리스의 파피아스 Papias, 헤르마스 Hermas 등


사도교부들의 저서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첫 번째는 표현방식에서 저자들은 서간체를 사용함으로써 자신들이 사도들과 지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두 번째는, 내용에서 저자들은 신학적 정의와 사변적 교리보다는 사목적 관심과 실천적 윤리를 강조했다. 이러한 사도 교부 시대의 저서가 가진 가치는 초기 교회의 사상, 신앙생활, 관습 등 교회 모습의 정보를 제공하는 데 있다. 또한 로마 주교의 수위권과 절대 전제군주적 주교직을 강조한 점, 성령 감도 感導의 정의와 성경의 정경 canon 규정 외에도 신앙의 지침서와 전례서로 사용되는 등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1. 사도시대 이후 그리스도교의 발전  ⑵ 신앙의 체계화 

② 호교교부


2세기 중엽에 들어서면서 그리스도인은 로마제국 안에서 그리스 로마인과 유다인 다음 가는 제 3의 국민으로 등장하였다. 그리스도교의 발전은 비그리스도교 세계의 공격, 즉 지식층의 논리적 논박 論駁, 황제들의 박해, 일반 대중의 의혹과 모함 등을 초래하였다. 


그리스도교는 이런 상황에 대응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는 방어적 자세로서 교회에 대한 오해와 비난에 대한 해명의 방법과 그리스도교의 합리성을 주창하는 호교론 저술의 적극적 모습으로 나타났다. 소극적 측면은 로마제국의 그리스도교인 박해가 법치국가에 있어 불법행위임을 밝히고자 하였다. 또한 지식인층의 모함과 허위성에 대해서는 그리스도교가 참다운 교회의 모습이며, 구약에 뿌리를 둔 전통적 종교임을 주장하였다. 적극적인 측면에서는 초기 교회의 변증론자들은 이교의 다신교와 유다교를 상대로 그들의 부당성과 비윤리성을 지적하면서 신랄하게 공박하거나, 그들의 종교를 전면적으로 거부하고 배척하는 모습을 전개하였다. 이에 속하는 교부는 과두라투스 Quadratus, 아리스티데스 Aristides, 유스티노 Justinus (100~165), 아리스토 Aristo, 타시아누스 Tatianus 등이 있다.


이들 호교 교부의 등장은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몇 가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첫째, 그들은 문학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여 교회의 실상을 비그리스도교 세상에 알렸고, 그들의 작품은 그리스도교 문학의 효시가 되었다. 두 번째로, 사도교부들과 비교할 때, 호교교부들은 신론 神論, 말씀의 그리스도론 Logos-christology, 삼위일체에서 상당한 발전을 보였고, 이 시기에 성경의 정경이 설정되기 시작하였다. 세 번째로 2세기 교회의 내적 생활 특히 전례 생활, 교회와 국가의 관계, 신생 교회의 선교 활동에 대한 광범위한 정보를 제공해 주었다. 네 번째로, 교회를 옹호하는 그들의 노력이 만족할 만한 성공을 거두지는 못하였지만, 문서선교의 목적은 성취되어 그리스도교 확산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1. 사도시대 이후 그리스도교의 발전  ⑵ 신앙의 체계화 

③ 신학학파의 형성


2~3세기 그리스도교는 유대교와 이교도의 박해로 인한 외적인 위험뿐만 아니라 영지주의, 몬타니즘, 마리치온 이단 등에 의한 위협에 처하게 된다. 당시의 교부들은 이단 논박을 통해 정통 교리를 수호하고 체계적으로 제시함으로써 앞으로의 신학 발전에 중요한 기초를 놓았다. 

‘전통의 사람’이라고 불리는 리옹의 이레네오, 동방 교회 신학의 발전에 기틀을 마련한 오리게네스, 서방 교회 신학의 기초를 놓은 카르타고의 테르툴리아누스와 로마의 히폴리투스 등과 같은 신학자들을 중심으로 각 지역 교회 안에 고유한 신학 학풍이 형성되어 일종의 학파가 생겨나게 된다.


제3장 사도 시대 이후의 그리스도교 1. 그리스도교의 발전(끝)



세계교회사(가톨릭교리신학원, 이영춘, 2003 초판)

1장. 역사학의 일반적 개념

2장. 사도시대의 그리스도교

3장. 사도시대 이후의 그리스도교

4장. 로마제국시대의 그리스도교

5장. 고대에서 중세로의 과도기

6장. 중세 전기의 그리스도교

7장. 중세 후기의 그리스도교

8장. 중세에서 종교개혁으로의 과도기

9장. 종교개혁시대

10장. 종교개혁 이후의 가톨릭교회

11장. 현대 가톨릭교회



Posted by 편집장 슈렉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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