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지난 9월 25일 본지 '요한의 대학노트'에서 서울 일부 대학들의 중앙일보 대학평가 거부 운동에 대한 기사를 소개한 바 있습니다. 그 내용은 아래 링크를 참조하시면 됩니다. 참고로 이 글은 필자의 블로그에서 가장 많은 조회수를 기록한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요한의 대학노트 2014-9-25

고려대 학생들의 중앙일보 대학평가 거부 "마음도 받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학생들은 실제로 2014년 10월 6일 중앙일보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했습니다. 처음 고려대 학생단체가 이러한 선언을 했을 때, 연세대와 서울대가 참여를 논의한 바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이슈는 그 사이에 대학 학생사회의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던 것으로 보입니다. 


서울대와 연세대 외에 경희대, 국민대, 동국대, 성공회대, 한양대 등도 이 운동에 동참을 했습니다. 이들의 운동이 대학사회에 큰 변화를 불러일으키길 기대합니다. 대학은 이 사회를 투영하는 작은 그릇입니다. 특히 대학에서 일어나는 많은 고민과 그 운동들이 우리 사회의 물줄기를 수차례 바꾸어 왔습니다. 기업의 노예가 될 수도 있는 작금의 대학 현실에서 학생들의 대학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운동이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중앙일보 본사 앞에서 2014년 10월 6일 오후 2시에 진행된 기자회견의 전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한편 이 성명의 발표일자는 10월 6일이 아니라 10월 7일로 되어 있는 것은 중앙일보 대학평가 발표일자와 맞추려는 시도로 보입니다.



중앙일보 대학순위평가, 마음도 받지 않겠습니다. 



- 10. 7 중앙일보의 대학종합평가 발표를 바라보며 -



매년 10월 둘째 주 중앙일보는 전국 대학들을 채점합니다. 그리고 오늘, 21번째 성적표가 각 대학 본부와 전국 가정에 배달되었습니다. 좋은 평가의 전제는 올바른 기준과 방향입니다. 하지만 대학교육의 선진화와 경쟁력 강화를 위한다던 처음의 취지는 이미 변질되었고, 대형화와 국제화라는 미명 아래 진리추구의 상아탑이라는 대학의 본분에 대한 망각만이 남았을 뿐입니다.


평가 기준을 정량화 가능한 것에만 설정하고, 대학들의 서열을 1면에 부등호로 표시하는 등 평가의 선전성을 최대한 끌어올려 대학 본부가 그 파급효과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게 만듭니다. 대학은 순위를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당장의 임시처방에 집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검증되지 않은 외국인 유학생을 마구잡이로 끌어들이고, 지방 학생들이 마음 놓고 공부할 수 있는 기숙사 대신 화려한 대리석 건물을 짓습니다. 대학이 진정으로 갖추어야 하는 교육 커리큘럼의 체계, 학내 자치문화의 활성화, 토론의 환경 조성 정도 등을 비교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학순위평가는 오히려 대학의 본질을 훼손시켰습니다.


우리는 대학순위평가가 드러내는 ‘대학을 서열화 할 수 있다는 마음’, ‘대학을 기업화해도 무방하다는 마음’, ‘모든 대학을 천편일률적인 기준으로 평가하겠다는 마음’, ‘대학을 정량화하여 평가할 수 있다는 마음’을 반대합니다. 대학순위평가가 권하는 모습은 틀렸습니다. 따라서 고려대, 경희대, 국민대, 동국대, 서울대, 성공회대, 연세대, 한양대 총학생회는 대학순위평가의 마음을 받지 않겠습니다.


‘대학 서열화’로 인해 강화된 학벌주의는 개인적 측면에서는 학벌에 대한 개인의 심리적 부담을, 교육적 측면에서는 공교육 부실화와 사교육 부담을 야기합니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학벌주의의 병폐를 한두 가지 이상 댈 수 있을 정도로 대학 서열화와 학벌주의는 대한민국의 만성 질병입니다. 하지만 정론지를 표방하는 중앙일보의 대학평가는 치료보다는 오히려 질병을 권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기사 제목에서부터 ‘순위’, ‘서열’을 강조합니다. 기사 제목뿐만이 아닙니다. 기사 옆에는 표를 이용하여 노골적으로 대학의 순위를 매깁니다. 누리집에는 심지어 기사보다도 친절하게, 예쁘게 만들어진 트로피와 ‘NO.1’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금메달을 두고 있습니다.


언론에 의한 대학평가가 오히려 대학의 순서를 고착화시키고 대학 역량 간 작은 차이를 순위로써 큰 차이가 있는 것처럼 홍보하는 부작용이 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 중앙일보입니다. 기성세대에서는 SKY와 나머지 정도로 암암리에 말하던 대학의 우열이, 이제는 신문의 공신력을 등에 업고 명확해진다는 지적에도 귀를 닫습니다. 바뀌어야 합니다. 미친 사교육비, 서울 집중화, 부의 세습화 등 학벌주의의 병폐를 낱낱이 지적하면서도 동시에 대학의 서열을 굳건하게 지키는 파수견이 된 대학순위평가, 이제는 그만두어야 합니다.


대학을 평가하기 위해, 중앙일보는 대학을 통째로 정량화합니다. 대학의 책무성 평가는 자산을 숫자로 평가한다는 회계의 원래 의미를 회복하면서 기업의 성과 평가와 같아집니다.


기업의 성과 평가는 효율을 이끌어낸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입니다. 대학 경영에 있어서는 특히 그렇습니다. 하지만 효율성이 대학의 지상명제가 될 때, 대학은 철저히 파괴됩니다. 생태계 다양성이 종의 발전에 필수이듯이 학문의 다양성은 사회의 건강을 위해 반드시 지켜져야 하고 대학은 이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가 되어야만 합니다. 돈이 되지 않는 인문학이 결핍된 사회가 얼마나 처참한지 우리는 이미 목도하고 있습니다. OECD 자살률 1위, 끊임없는 경쟁 속에 지쳐만 가는 사람들, 삶의 의미와 낭만보다 당장의 돈 한 푼을 쫓아가야 하는 젊음, 가난한 자의 굶주림이 당장의 이익 앞에 눈 가리워지는 사회. 이것이 경쟁과 효율만을 쫓아 산업화를 이루어낸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논문 편수와 피인용 지수가 곧 대학의 경쟁력이 될 때, 이에 큰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는 인문학과 사회과학, 자연과학 분야는 규모가 축소되고 공학과 의학, 경영학만이 남을 것입니다. 이렇게 차츰 대학은 기업식으로 운영될 뿐 아니라 기업을 위한 조직이 되고 삶의 철학은 빈곤해져만 갑니다. 이 사슬을 끊어내기 위해, 우리는 대학순위평가를 거부합니다.


대학의 책무성을 따지는 평가 혹은 기관의 필요성은 인지합니다. 대학은 나태해지기 쉽고, 대학평가는 그에 대한 좋은 방부제가 될 수 있습니다. 다만 현재 시행되는 중앙일보 대학순위평가는 한계점이 자명합니다. 정량화할 수 없는 다양한 가치에 대한 사회 모두의 재조명이 필요합니다. 단순한 취업사관학교로 바라보는 현재의 시각을 넘어서서 대학 본연의 목적에 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효율성과 다양성을 모두 녹여낼 수 있는 현대적인 대학의 상을 모두 함께 고민해볼 때입니다.


대학순위평가 반대운동이 지적하는 바는 단순히 그것만의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지나친 경쟁을 부추기고 모든 것을 줄 세우려하는 사회적 풍토와 물신주의적 사고는 균형점을 찾아야 합니다. 변화의 시작은 대학생의 목소리로 시작되었으나 완성은 사회의 공감과 노력만이 이룰 수 있습니다. 이번 기자회견은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입니다. 그 변화의 중심에서 우리는 대학생으로서 우리의 목소리를 내겠습니다.


하나, ‘줄 세우기’식 언론사 대학평가 반대한다!

하나, 대학발전 가로막는 언론사 대학평가 거부한다!

하나, 대학서열화 완화하고 다양한 대학교육 실현하자!


2014. 10. 7. 화

경희대학교 총학생회, 고려대학교 총학생회, 국민대학교 총학생회

동국대학교 총학생회, 서울대학교 총학생회, 성공회대학교 총학생회, 

연세대학교 총학생회, 한양대학교 총학생회





Posted by 편집장 슈렉요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