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29(), 대전교구 전민동 성당에서는 저녁 미사 이후에 전례 분과가 주관하는 전례 특강』행사가 개최된 바 있었다. 성당 1층 토마스 홀에서 열린 특강의 강연자는 대전교구 논산 내동 성당의 김재철 주임신부였는데, 그는 우리가 사용하는 미사 통상문(ordo mess)의 라틴어 번역 과정과, 미사 통상문을 해설해 주었다. 특히 그는 전례에 참가하는 복사, 독서자, 성가대는 하느님께 선택받은 봉사자로 미사 전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라고 강조했다.  다음 글은 특강을 정리한 것이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마셔라.

이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는

내 피의 잔이니

죄를 사하여 주려고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흘릴 피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우리는 모두 한 교회의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지체로, 매주일, 그리고 매일 모여 끊임없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며 이를 행합니다



우리는 어릴 적에 학교를 보통 4~8km를 걸어다녔지요. 학교에서 돌아오다 보면, 또 놀다보면 마차가 지나가고 그걸 태워달라고 해서 타는 즐거움도 있었습니다. 그런 것이 저희들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그걸 모르죠지금 우리는 자동차를 타고 다니고, 심지어 비행기를 타고 해외에 나가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런 건 과거에는 상상도 못하던 일이었지요. 최근 50~60년 사이의 변화는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와 맞물려서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50~60년간의 변화는 지난 2천년간 바뀌지 않았던 여러 요소들을 확 바꾸었지요.

 

교황 요한 23세 시절인 1962년에 개막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벌써 50년 전이지요. 그리고 이후로 바오로 6세 시절인 1965년에 폐막을 합니다. 과연 바뀔 것인가 생각했지만, 그 전과 후는 불과 3년의 회기를 기점으로 엄청난 변화를 이룹니다. 원래 로만 가톨릭(Roman Catholic)은 보수적이고, 공의회는 사도들의 후계자들인 주교들과 교부(전문가)들의 모임입니다.

 

처음에 다룬 것은 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입니다. 핵심이 전례인 것이지요. 그런데 과연 이를 바꿀 수 있겠는가?’가 핵심입니다. 처음에는 교회는 바꾸면 안된다가 주류였습니다. 여러분 1970년도까지 미사가 한국말이 아니고 라틴어로 했다는 걸 아십니까? 지난 2천년간 전 세계에서 미사는 라틴어로 했습니다. 그래서 각 나라의 언어로 미사를 하면 어떨까? 하는 의견에 대해서 전세계에서 모인 2200명 남짓의 주교와 교부들은 거의 모두 말도 안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어떻게 모국어로 미사를 드리나하는 입장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라틴어는 하느님의 언어라고 생각한 거지요. 그래서 처음에는 5명만이 찬성하고 나머지 2,146명이 반대를 했습니다. 그렇게 회기가 진행되면서 불과 1년 반만에 그러니까 1963년에 다시 투표를 했는데, 그게 뒤집혔어요. 2,147명이 찬성하고 불과 4명만이 반대를 한 겁니다.

 

그것은 교회를 확 바꾸는 사건이었고, 이 세상의 모든 걸 바꾸었고, 모든 이들의 생각을 바꾸는 사건으로 등장한 것입니다그런데 사실상 교회가 각 나라의 모국어를 허락한 것은 아닙니다. 단지 교회는 모국어 사용을 허락할 수 있다라고 한 겁니다. ‘교회는 각 민족들의 언어로 전례하는 것을 허락할 수 있다라는 것이지, ‘그렇게 해라라고 한 건 아닌 겁니다. 그러니까 전통적인 미사는 라틴어로 하는 것이지만 사실상 전 세계에서는 현재 각 나라의 언어로 전례를 합니다. 오직 바티칸에서만 라틴어로 하고요. 제가 90년대 초반 해외에 나가보아도 라틴어로 하는 미사는 볼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통과는 되었지만, 모국어 사용이 허락된 것은 1969년의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1971년을 기점으로 바뀝니다. 그리고 400년간 묵힌 문제였던 제사문제도 풀리게 되고요. 이제 모든 나라는 본격적으로 각 나라의 말로 미사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사실 영국, 프랑스, 스페인, 독일 등은 문제될 게 없었습니다. 말만 조금만 바꾸면 되는 거였고, 신학의 언어(용어)들은 라틴어에서 흘러나온 것이니 언어감각은 그대로 살아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좀 힘든 상황이었죠. 일단 번역을 시작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1969년부터 부랴부랴 번역을 시작했습니다. 처음 <미사 통상문>이 번역되고, 1969년에 빨리 해야 하니까 급하게 보여서 1년여간 번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1971년에 와서야 비로소 본격적으로 우리말로 미사를 보게 된 것입니다. 1970년도 까지는 라틴어 미사를 보았습니다.

 

여기에 그걸 기억하는 사람이 혹시 있습니까? 라틴어가 무슨 말인지 모르지만, 익숙한 거지요.

예컨대, Dominus vobiscum(도미누스 보비스꿈, 주께서 여러분과 함께(The Lord be with you.). 미사나 성무(聖務)일과의 인사말로서, 응답은 et cum spiritu tuo(또한 그대의 영혼과 함께))

 

아마도 모국어 미사를 서양에서는 바로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린 1971년에 처음으로 고유의 미사통상문을 갖게 됩니다. 1971년에 그것이 이뤄지고 20년이 지난 1990년경에 다시 번역하자는 움직임이 생깁니다. 그리고 1994년부터 95년까지 작업을 하고 1996년에 책을 만들었고, 1997년에 최종 번역하여 지금의 익숙한 미사를 보게 된 것은 15년 쯤에 불과한 것입니다.

 

번역에 문제가 많다는 인식으로 번역을 시작하면서 교회는 전문가를 구성하지만 그게 쉽지는 않았습니다. 각 교구의 대표들과 실력가들을 통해서 시안이 많이 나왔고 그걸 종합하였고, 전례위원회(번역위원회)를 결성하고 전국의 교구들이 참여하는데, 여력이 없는 안동교구, 원주교구, 제주교구 등은 빠지고 대전교구에서는 제가 대표로 최종 번역에 함께 참여했지요.

 

그런데 사실 1971년에 급하게 번역했다고 하지만, 우리는 감탄했습니다. “번역 잘 됐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지요. 그럼에도 핵심적 문제들은 거론하게 됩니다. 그 중에서 여러분 사도신경 중에 고성소(古聖所)란 말 아십니까? ‘고성소란 말이 있습니다. 1971년 번역에서 등장한 겁니다. 사실 번역이 쉽지 않은 것들이 있지요. 저도 그게 참 어렵다는 걸 느낍니다. 1993~94년에 30여명이 결성이 되었는데, 거기에는 주교님이 3, 국문학자가 5명 정도 있었습니다. 서강대, 연대, 고대, 성균관대 등의 국문학자였고, 5명 중에서 2명은 비신자였어요. 정확한 말을 묻기 위해 초대한 것입니다.

 

고성소(古聖所)는 만들어진 말입니다. 옛 고, 거룩할 성, 장소 소인데 이해갑니까? 옛날의 거룩한 장소라는 뜻이지요. 그걸 20년간 쓰면서도 이게 무슨 말인가? 합니다. 1995년에 이것을 번역하면서 석학이신 정 몬시뇰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예수님께서 분명 십자가에서 돌아가셨고, 죽은자들이 있는 곳으로 가셨는데, 죽은 자들이 있는 곳이니, ‘저승하면 충분하지 않나?”, “죽은 자들이 있는 곳은 저승이 아닌가?” 그래서 아무 소리도 못하고 저승으로 결정된 것이지요. 저 또한 미사 번역에 참여하면서 통상문의 번역이 참 어려웠습니다.

 

30명이 34일을 밤새워 열띤 토론을 벌였습니다. 번역 말을 찾는데, 첫날 10시에 시작해서 그날 밤까지 미사통상문의 첫장을 못 넘겼습니다. 그래서 결론은 (1971년의) 번역이 잘되었다는 것입니다.

 

미사라는 말을 쓰는 것도 71년에 번역된 것인데, 고대 라틴어에서 뚜렷한 근거는 남아있지 않습니다. ‘이떼 미사 에스뜨, 이것은 미사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학자들이 말이 많습니다. 단순히 파견보내는 거란 의견, 미션이지요. 그런 말도 있고 그런 전통이 라틴 말에 있기는 하지만 뭔가 다른 느낌이 있거든요. 미사가 다 끝난 후에 단 한마디, ‘이것이 미사입니다.’

 

서양(영어권)에서는 미사란 말을 잘 안씁니다. 그들 말에서는 감사 제례라는 표현을 씁니다. 저도 안식년하면서 미국과 아일랜드를 가보았는데, 그곳에 가서 주보를 보면, ‘미사 전례라는 말이 아니라 감사제례란 뜻의 말을 그대로 사용합니다. 그러면 우리도 감사제례라고 하면 어떨까 생각해보았지만 그것이 미사의 영험한 신적 행위를 축소시키는 것 같았던 겁니다.

 

그리고 미사 통상문에서 통상이란 끊임없이 드리는 것이란 뜻입니다. ‘미사를 그냥 쓰면서 죽을때까지 통상적으로 한다는 건데, 그게 1971년의 최초 번역이 잘되었다는 걸 의미합니다.

 

우리는 34일간을 세 번에 걸쳐서 만났습니다. 발제하고 발표하고 모두 동의하면 그 한 단어를 받아들이고, ‘미사 통상문도 첫날을 넘기면서 느꼈던 것은 우리도 완벽하게 번역은 못하고 우리 시대에서 최선을 다할 따름이란 생각으로 차선이라도 찾자는 마음이었습니다. 번역작업이 그렇게 어려운 거지요.

 

구원의 신비에 대한 기도에서도 거룩한 미사를 합당하게 거행하기 위하여인데, 이게 나중에 바뀐 거지요. ‘구원의 신비를 합당하게 거행하기 위하여로 바뀌었고, ‘고성소저승으로 바뀌었고요. 또 한가지 대안이 없는 거였는데,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라고 하면 또한 사제와 함께라고 하지요. 그런데 이게 그 어디에도 없는 겁니다. 영어권에서는 ‘Also be with you.’라고 하지요. 우리도 또한 너희와 함께혹은 또한 당신과 함께라고 할 수도 있는 건데, 우리 말에 당신이라고 하면 시비가 붙지요. 그리고 란 표현도 좀 그렇고요. 영어 ‘you’는 자연스러운 호칭으로 할아버지와 아이 사이에서도 쓰이겠지만, 우리는 사제가 너와도 함께하는 게 이상한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못찾았습니다. 그러면서 그냥 쓰던 말 그대로 쓰자.

 

전민동 성당에서는 한국인 정서에 알맞게 훌륭한 전례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 논산의 내동 성당도 잘합니다. 제가 안식년에 남미 아마존의 오지로 선교를 간 적이 있습니다. 한국인이 한 명도 없는 곳에서 선교사들과 함께 5개월을 지낸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제가 느낀 것은 전 세계가 이제 미사 잘하고 있구나 하는 거였죠. 우리도 두 번의 큰 과정을 거치면서 한국인 정서에 맞는 미사를 참 잘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입니다.

 

아마존에서 하는 거 보면, 북가지고 즐겁게 잘 합니다. 애들이 입장할 때는 전통춤을 춰가며 미사를 합니다. 그런데 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에 따라서, 미사를 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먹어라.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줄

내 몸이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마셔라.

이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는

내 피의 잔이니

죄를 사하여 주려고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흘릴 피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이 결정적인 부분, 이 말이 나올 때, 전 세계는 모두 숙연해집니다. 다른 때는 민족적인 방식으로 북도 치고 하지만, 이 기념제례에서는 모두가 숙연해지면서 미사를 잘 드리고 있는거지요.

 

우리도 여기에서 참 힘들었습니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먹어라.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줄

내 몸이다.

 

전에는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줄 내 몸이다.’가 아니고, ‘너희를 위하여 바칠 내 몸이다였습니다. 2차 바티칸 공의회 전까지는 예수님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를 어떻게 보는가가 중요했고요. 라틴어에 대한 고집은 1560년대로 올라갑니다. 450여년전이지요. 당시 미사경본이 한번 정리되는데, 이때 언어가 문제된 적이 있습니다. 미사를 드리는 사제들마저도 그 라틴어를 몰랐던 겁니다. 그냥 읽는거지요. 무슨 뜻인지 모르고 교회는 거의 중세 거쳐오면서 각 나라로 퍼져나가면서 독일, 이태리의 방언지역들, 이 때 교회는 미사는 그리스도께서 아버지께 바치는 하나의 제사라고 본 겁니다. 인간은 다 필요가 없던 거지요. 사제는 그리스도의 대리로 외아들이 아버지에게 바치는 제사를 지낸 것입니다.


이 개념이 사실은 번역되는 것에 따라서 이것이 확 바뀌게 되는 것이고, 우리나라도 개념이 바뀔 수 있었고, 우리는 교부들의 해석을 가지고 전례하면 영어권 보면, 각 나라마다 영어 미사는 말한다고 합니다. say라는 말 쓰고요. 이태리어 제가 공부한 곳인데, 거기는 듣는다우리는 서양신부님들이 미사 드린다로 번역한 게 아니고, ‘미사 본다로 정착이 됩니다.


그런데 이 바칠내어줄이 말 번역에 엄청난 진통을 겪었습니다. ‘바치는 것은 아들이 아버지께, 사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로 또한 아버지에게 미사를 바치는 것이다. 그런데 번역이 내어준다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는 것이지. 개념이 확 다르죠. 이것은 우리를 위해서 주체가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내어주는 것이지요. 그것이 바로 이 빵입니다. 내 몸이고, 사람들을 위해 너희를 위해 내어줄 내 몸이다. 이런 다른 개념이에요. ‘내어줄’, ‘바칠이게 신학적으로 전체적으로 아버지에게 아들이 바치는 것이냐? 과거에는 그렇게 해석했는데,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는 것이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이렇게 해서 바칠내어줄로 상당히 시끄러웠습니다. 이제는 이것이야말로 내어준 것이다를 받아들이게 된 겁니다. 또 결론적으로 기념제인데, 축성을 하며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마셔라. 이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는 내 피의 잔이다.’라고 했는데, 아주 이 말은 너무 소중한 말이죠. 예수님께서 피를 단순한 포도주가 아니고, ‘나의 피다그러면서 새롭고에요.

 

소위 구약이 있고, 또 신약 그렇게 성경이 두가지로 크게 나뉩니다. 구약은 옛날의 계약, 약속이죠. 옛날에 이스라엘 백성과 한 약속입니다. 여기서 결정적으로 이뤄진 게 바로 신약이죠. 이는 미사 때에 하느님께서 이제는 내가 새로운 계약, 소위 신약이 새로운 약속이 시작되는 것이지요. 그것은 바로 이 빵을 주고 이 피를 마심으로써 새롭고 영원한 계약

 

구약에서 주어진 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루어준 것은 이거였죠. 파스카 축제가 이뤄지는데,


 (탈출기 121절부터 14절까지 파스카축제)


1 주님께서 이집트 땅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다.

2 “너희는 이달을 첫째 달로 삼아, 한 해를 시작하는 달로 하여라.

3 이스라엘의 온 공동체에게 이렇게 일러라. ‘이달 초열흘날 너희는 가정마다 작은 가축을 한 마리씩, 집집마다 작은 가축을 한 마리씩 마련하여라.

4 만일 집에 식구가 적어 짐승 한 마리가 너무 많거든, 사람 수에 따라 자기 집에서 가장 가까운 이웃과 함께 짐승을 마련하여라. 저마다 먹는 양에 따라 짐승을 골라라.

5 이 짐승은 일 년 된 흠 없는 수컷으로 양이나 염소 가운데에서 마련하여라.

6 너희는 그것을 이달 열나흗날까지 두었다가, 이스라엘의 온 공동체가 모여 저녁 어스름에 잡아라.

7 그리고 그 피는 받아서, 짐승을 먹을 집의 두 문설주와 상인방에 발라라.

8 그날 밤에 그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 불에 구워, 누룩 없는 빵과 쓴나물을 곁들여 먹어야 한다.

9그것을 날로 먹거나 물에 삶아 먹어서는 안 된다. 머리와 다리와 내장이 있는 채로 불에 구워 먹어야 한다.

10 아침까지 아무것도 남겨서는 안 된다. 아침까지 남은 것은 불에 태워 버려야 한다.

11 그것을 먹을 때는, 허리에 띠를 매고 발에는 신을 신고 손에는 지팡이를 쥐고, 서둘러 먹어야 한다. 이것이 주님을 위한 파스카 축제다.

12 이날 밤 나는 이집트 땅을 지나면서, 사람에서 짐승에 이르기까지 이집트 땅의 맏아들과 맏배를 모조리 치겠다. 그리고 이집트 신들을 모조리 벌하겠다. 나는 주님이다.

13 너희가 있는 집에 발린 피는 너희를 위한 표지가 될 것이다. 내가 이집트를 칠 때, 그 피를 보고 너희만은 거르고 지나가겠다. 그러면 어떤 재앙도 너희를 멸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14 이날이야말로 너희의 기념일이니, 이날 주님을 위하여 축제를 지내라. 이를 영원한 규칙으로 삼아 대대로 축제일로 지내야 한다.’

 

이것이 주님을 위한 파스카 축제다. 그러니까 먹는 것은 주님을 위해 이뤄지는 것인데, 이날 먹는 게 양과 쓴나물이었죠.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파스카 축제 이날이야 말로 너희의 기념일그러니까 구약이란 것은 사실 파스카 축제인 거다. 노예에서의 해방이고, 파스카는 이스라엘 백성은 재앙에서 벗어나게 되는 게 구약인 것인데, 이게 소위 모세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한 약속이었고, 대대로 1년에 한번, 지금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 기원전 1300년으로 보면 3400년 전 일어난 사건인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끊임없이 파스카 축제를 성대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예수님이 오셨을 때, 파스카 축제는 너무 변질이 되어 있었던 겁니다. 요세푸스라고 하는 역사학자는 예수님 시대 예루살렘에서 이뤄진 파스카 축제 때 양이 225천마리, 소가 수백마리 하여튼 그게 예루살렘 성 안이 크지 않은데, 양이 수십만 마리 들어와 도살된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얼마나 아수라장이었나. 예수님이 바라본 파스카는 아수라장. 양과 소의 울음과 그 배설물. 엄청난 아수라장이라고 볼 수 있던 것인데,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하면서 가장 소중한 기념이라고 하는 걸 합니다. 남기는 거지요. 이제는 빵을 이것은 내가 내어준, 하느님께서 우릴 구원하기 위해 내어준 빵이다. 그리고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마셔라. 이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는 내 피의 잔이니 죄를 사하여 주려고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흘릴 피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이를 행하여라.

 

그런데 여기서 보통 잘 통과되었는데, 마지막 가장 힘든 게 기억이냐 기념이냐. 사실 기억은 제가 주장했는데, 어떻게 보면 제가 써서 발제가 시작되었습니다. 마지막 기념하여 이를 행하여라가 번역이 처음에 기념으로 해서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로 하면 영어로는 메모리인데, 이게 뉘앙스가 기억이 좀 더 이것을 기억하면서, 끊임없이 기억하며 행하는 게 아닌가 제가 주장을 하게 되었는데, 제가 가장 두려워했던 분이 제 스승이고 석학이신 정 몬시뇰 눈치를 보게 되는데요. 그냥 눈 감고 계시더라고요. 다른 분들은 말씀도 안하고 계시고. 그래서 그냥 기억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기념이 더 맞지 않나 싶어요. 제가 이제 15년 미사통상문 사용하며 보니 기념이 더 낫지 않았나. 어쨌든 차선을 찾는 것이니, 다른 분들도 다른 말 안해서 통과가 된 거에요.

 

우리가 계속 미사를 드리는 이유는 이 문장이에요. 한없이 수천년동안. 이보다 더 소중한 말이 어디 있습니까?

 

하느님께서 빵을 놓고, 이것이 바로 내가 너희에게 내어주는 그리고 이제는 잔을 향해서 피의 잔인데, 새로운 신약이 형성되는 새로운 하느님과의 약속이 이뤄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계속 이걸 기억하고 기념함으로써, 우리들의 잔치에 참석함으로써, 우리에게 주어진 게 뭐에요? 우리에게 영원한 영생이 주어지는 겁니다. 그 다음에 사제는 이것을 하고 나서 뭐라고 하죠? 이걸 하자마자, ‘신앙의 신비여,’ 어떻게 보면 놀라운 거죠. 어떻게 보면 이 기념이 끝나면서, 믿음으로 이렇게 어머어마한 게 주어진다면, 참 신비롭고, 바로 이때 외치는 것이 신앙의 신비여,’ 물론 이게 끝나면서, 기도 들어가고 영성체 따라 들어가고 축제로, 바로 이것이 전례인 겁니다. 번역하면서도 가장 진통을 겪었던 부분이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앞으로 30~40년간은 넘기자 하면서 나름으로는 그 시대에 최선을 다했고, 지금 여러분들은 자연스럽게 미사를 보는 이것이 15년 정도 되었다는 것이죠. 1997년부터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미사통상문이 번역되면서 애매했던 것이 다 정리된 것입니다. 1971년도만 하더라도 직역된 게 많았습니다. 서양에서는 서양신부님들 제단에 들어가면 자연스럽게 입맞춤하지요. 그리고 평화의 인사를 하면서도 서양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입맞춤 잘 하고 있습니다. 그게 우리나라 문화에는 안 맞아요. 번역이 이뤄지면서 93년도, 94년도에 이러한 세세한 부분들이 다 우리 문화에 맞춰지게 되지요. 그래서 큰 절하고, 그 다음에 서로 바라보며 인사하는 거 우리는 서로 인사한다 이렇게 된 겁니다. 그 전에 어떤 미사 전례하며 어떤 부분은 직역된 것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런 부분에서 각 전통에 맞추어 번역 다시 하게 되어, 그로 말미암아 1997년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가톨릭 신문이나 방송에 보면 이런 전례가 많이 나왔는데, 지금은 거의 잘 안나옵니다. 다 잘하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여기까지고요.

 

이제 우리 총 지침이죠. 총 지침에서 보면, 어떻게 보면 사제가 미사드리게 되지만, 평신도들의 역할에 대해서 백성의 임무라고 할까, 상당히 중요한 부분에 대해서 잘 다루고 있습니다.

 

미사 거행에서 신자들은 거룩한 겨레, 하느님의 소유가 되는 백성, 하느님의 사제단을 이루어,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사제의 손으로뿐만 아니라 자신들도 사제와 함께 흠없는 제물을 바치며, 나아가 그들 자신을 제물로 바치는 것을 배운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깊은 신심을 간직하고 같은 전례에 참여하는 형제들을 사랑하여 이 모든 것을 드러내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까지는 신자들의 역할은 없었습니다. 그냥 미사 들어오기만 하면 되었죠. 복사하는 것은 있었고. 지금처럼 마이크 시설이 대단한 것도 아니었고, 그러다보니, 미사 앞에서만 하면 되었고, 그래서 그런가 지금도 서양에 가보면 서양사람들 대답 안합니다. 그런데 2차 바티칸 공의회에 와서는 신자들의 역할에 대해서 같이 참여하면서 제사를 봉헌하는 것이다.

 

또한 신자들은 한분이신 아버님을 하늘에 모시고 있기에 모두가 형제임을 깨달아 온갖 형태의 개인주의와 국가주의를 피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신자들은 함께 하느님 말씀을 듣고, 같이 기도하고, 노래하며 공동으로 제물을 바치고 함께 주님의 식탁에 참여하여 한 몸을 이룬다.

 

그러니까 이런 부분들이 2차 바티칸 공의회에 와서 상당히 중요하게, 우리 신자들도 같이 참여하는 한 공동체로 한 몸을 이루는 것이다. 이런 같은 행동을 하게 하는 것이 전례에서 중요한 요소가 되어서 동시에 같이 하고 개별적 행동 안하고 함께 하는 동작과 자세에서 전례가 더 아름답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끝)



 

 

Posted by 편집장 슈렉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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