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생명윤리의 원리와 기초


자율성 - 악행금지 - 선행 - 정의



⑴ 자율성 


② 신학적 기초와 비판


Sandro Botticelli 050

성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354~430)는 4세기 알제리와 이탈리아에서 활동한 교부이다.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Hipponensis)라고도 불린다. 영어로 어거스틴(Augustine)이다. 그는 서양 철학사의 중요한 인물이다. 특히 그리스도교 발전에 끼친 영향은 구원에 대한 교리를 정리한 사도 성 바오로에 버금간다. 그는 신앙과 지식의 관계에서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이라는 입장을 취했다. 



4세기 히포의 주교 아우구스티노는 그리스도교 신앙에 내포된 인간의 본질을 직접적이고 공공연하게 다룬 위대한 신학자였다. 그에 따르면, 인간을 당신 모상대로 만드신 하느님이 삼위일체적 존재라는 차원에서 관점을 발전시켰다. 그는 천상 계획을 위해 배당된 역할에 따라 성삼위(聖三位) 위격(位格)의 성격을 부여하고, 각각 위격이 갖는 본질을 인간이 어떻게 반영하는지 설명하는 것으로 주장을 시작한다. 


성부 하느님


성부 하느님은 존재하는 만물의 근원이고 존재 자체의 원천이다. 성부 하느님은 궁극적이며 실질적 존재이며, 다른 근원의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존재하는 분이다. 인간은 세상에 존재하는 만물처럼, 의존적으로 이 거룩한 존재에 참여함으로써 하느님의 존재양식을 닮아간다. 따라서 창조된 모든 것은 비존재(非存在)가 아니라 단순히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하느님 영광을 반영한다. 또한 생명체는 존재할 뿐만 아니라 삶을 함께 나누며 그로써 생명 자체이신 하느님의 본성을 보다 더 드러낼 수 있다는 점에서 하느님을 좀 더 많이 닮아 있다. 즉 인간은 존재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살아 존재한다는 사실로써 하느님을 닮아 있는 것이다.


성자 그리스도


성자 그리스도는 로고스이다. 로고스는 하느님 말씀으로 번역되는데, 하느님 지혜나 지식 혹은 이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인간은 존재하며 살아있고,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인간은 자기를 깨닫고 반추하는 독특한 존재이다. 그렇게 자신과 세상에 있는 다른 존재들을 생각하고, 자신의 창조주가 누구인지를 인식하는 능력까지 소유하고 있다. 인간은 알고, 실재를 반추하고, 실재를 바탕으로 추론하며, 그에 대한 이성을 가질 수 있는 능력으로 세상에 육화된 하느님의 지식인 그리스도를 그려낸다. 그렇게 인간인 우리는 존재하고 있으며 또 살아서 존재한다는 사실로써 뿐만 아니라 살아있다는 것을 알고, 살아있음의 의미에 대해서도 판단할 수 있는 존재라는 점에서 하느님을 닮은 존재이다.


성령의 발현


마지막으로 모든 존재의 원천이신 하느님과 그분의 지혜와 말씀인 그리스도로부터 성령이 발현된다. 아우구스티노는 성령을 성부와 성자의 영원한 결합에서 비로된 사랑으로 특징짓는다. 인간은 존재하고 살고, 자기 존재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으며, 그 안에서 사랑하고 기뻐한다. 또한 하느님의 다른 피조물들을 사랑할 수 있으며, 하느님이 그들 안에 드러남으로써 창조주이고 구원자이며 삶을 지속시켜 주시는 그분을 알고 사랑할 수 있다. 


사랑한다는 것은 기뻐한다는 의미이며, 나아가 열망하고 추구하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사랑하는 것에 이끌리는 마음이야말로 모든 인간 행동의 원천이다. 그 행동을 선택하게 만드는 추진력 역시 사랑이다. 따라서 존재할 수 있는 능력과 존재한다는 사실을 사려깊게 알고, 사랑하고 추구하는 바를 선택하고, 그런 행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능력으로 우리는 삼위일체를 이루는 세 분 위격을 묵상하게 된다. 이것이 하느님의 모상을 지니는 방법이다. 


이성과 사랑의 합치는 인간의 자유다


그리스도교 사상에서 강력하게 강조하는 것은 인간의 선택에서 이성과 사랑의 합치이다. 모든 사람을 존중해야 하는 그리스도인의 의무는 각 사람 안에 계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존중하고 인정해야 하는 의무에 기초한다. 여기서 하느님과의 관계는 우리 자유에 기초한다. 그것이 하느님의 강요는 아니다. 성경에서 하느님과의 관계는 하나의 공동규범이지만, 그것은 인간 존재의 목적으로서 일종의 개인적 자유이며 특권이다. 이것이 바로 바오로가 잘못이 있을 때조차 양심을 보호하고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이유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이 말하는 자율성과는 구분되는 자유와 양심의 고결성, 그리고 엄청난 진지함과 밀접히 연관된 자율성 주장의 이유를 갖게 된다. 


인간이란 존재는 선물이고 신뢰이다


그런데 그리스도교적 신념으로 본다면, '인간의 삶을 다스리시는 하느님의 권능'에 위반되는 자율성의 해석을 반대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성경적 전통은 혼자서 혹은 단지 자신을 위해서 인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은 함께 서로를 위해 존재한다. 궁극적으로 하느님을 위해서, 하느님과 친교를 맺고자 부르시는 소명을 위해 존재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의 삶은 하나의 소유물이 아니라 선물이고 신뢰이다. 인간과 가장 가깝고 분리할 수 없이 연결된 존재의 자리이며 조건인 육체가 그 인간의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그것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전권(全權)이 내게 있는 것은 아니다. 육체는 돈을 주고 산 것이 아니며, 다른 것으로 대치할 수도 없으며, 무엇인가를 더 보탤 수도 없다. 


너는 네 자신 것이 아니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받아들인 신앙인으로 우리는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것이 아님을 모릅니까? 하느님께서 값을 치르고 여러분을 속량해 주셨습니다."(1코린 6,19~20)라고 했던 바오로의 발언을 함께 고백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몸과 정신을 모두 우리를 구원해주신 하느님의 것임을 인정해야 한다. 이것은 "여러분의 몸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로마 12,1)라고 충고한 바오로 이해의 기초이기도 하다.


창조와 부르심과 구원의 도덕적 맥락


생명윤리 혹은 의료윤리적 측면에서 보았을 때, 환자와 가족의 결정은 창조와 부르심, 구원과 도덕적 맥락에서 이뤄져야 한다. 모든 결정은 인간의 삶이라는 선물을 책임있게 관리하는 믿을 만한 청지기일 뿐이지 주인은 아니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느님이 부르시고 사랑하는 자들로서의 책임이 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동반자로 여기고 삶을 유지하는 데에 있어서 해야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알려주시는 하느님을 구세주이자 주님으로 모실 의무가 있는 것이다.


생명의 주인은 하느님이며 우린 채무자일 뿐


의학 윤리 속에서 전통적 규범이 성립되고 의미를 갖는 것은 이런 맥락이다. 그리고 이것은 통상치료(윤리적 의무사항)와 예외치료(선택사항)를 구분하는 이론적 근거가 된다. 가톨릭 교회의 윤리사상은 이런 의무를 환자에게 지고 있는 빚으로 여길 뿐 아니라 환자 역시 창조주이자 생명의 주인인 하느님의 채무자로 간주한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자살을 반대하는 전통적인 그리스도교의 입장이 드러난다. 두가지 견해가 모두 인간 삶이 인간 처분에 맡겨진 것이 아니라는 믿음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


고통이 궁극적인 악은 아니다


고통은 악이다. 그러나 궁극적 악은 아니다. 그러므로 고통을 막는다는 이유로 모든 방법이 다 허락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이해가 환자의 고통을 덜거나 없애줄 목적으로 환자를 죽게 해서는 안된다는 오랜 믿음의 기초를 제공한다. 간단히 정리해서, <자율성>이 의미하는 것은 그리고 <자율성> 안에서 인정될 수 있는 것에 신학적이 구속력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신학적 구속력은 인간 자율성은 실재하지만 새로이 창조된 자유는 아니라는 사실에 기초한다. 그것은 하느님이 지탱해주시고 반대하지 않는 자유이다. 즉 자기 존재의 근원도 아니고 궁극적인 목적도 아니며 타고난 한계성에 의해 제한되는 피조물의 자유이다. 




가톨릭교리신학원 통신신학교육부 2단계 1학년 가을학기(8~9월) 교재 [실천윤리신학] [03]


이 교재의 저자 이동익 신부님 1983년 사제품을 받고 로마 라테란 대학교 알퐁소 대학원에서 윤리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영국 켄트의 성 안셀모 연구소에서 1년간 영성지도 및 상담과정을 수료하고 1991년부터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윤리신학을 강의하고 있으며, 2006년부터 가톨릭대학교 성의교정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1999년부터 교황청 생명학술원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가톨릭중앙의료원장을 역임했다. 



Posted by 편집장 슈렉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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