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종말론 제1강의
'하느님'과 '주 하느님'의 차이는 무엇인가
서한석 사도요한 신부님 강의 1교시
일시: 2015/8/22 토 오후 1:30~2:15
장소: 가톨릭교리신학원 지하강당(서울 혜화동)
프로딸러지와 에스카딸러지
시원종말론은 무엇일까요? 여기서 '시원(始原)'이란 말 그대로 처음을 다루는 것이고, 종말(終末)은 마지막에 대해서 다루는 것이죠. 영어로 시원론은 protology, 종말론은 eschatology라고 합니다. 프로딸러지, 에스카딸러지라고 하는 거죠.
시원종말론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
시원(始原)은 무엇일까요? 처음이 뭘까요? 뭘 창조한 걸까요? 무엇이 창조입니까? 그래서 시원(始原)에는 당연히 창조론이냐, 진화론이냐, 아니면 짬뽕이냐 이렇게 처음을 다루는 시원론(始原論)이라고 합니다. 반면에 우리가 "세상 말세요!" 하죠. 종말론은 말 그대로 세상 말세야 종말이야! 라고 할 때, 우리가 죽은 후에 그리고 하느님께서 어떻게 세상을 이끌고 완성해가시는지를, 사실 종말론이란 예전에 중세신학이나 중세철학의 경우에, 우리가 죽고난 이후의 뜬구름 잡는 이야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누가 그걸 알 수 있을까요? 사후 세계를 알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죽는 사람은 말이 없죠. 우리들 중에 죽은 사람과 내통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죽은 사람 연락처를 따온 사람이 없죠.
신앙은 늘 현 시대와 연결을 지어야
그래서 그런 신학으로 치부한 측면도 있지만, 오늘날 신앙은 늘 우리 현시대와 연결을 짓습니다. 그래서 , 성인들의 통공은 왜 필요한가, 죽은이들을 위한 기도는 왜 필요한가 하는 것들이 바로 종말론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다 종말론적 영역에 포함됩니다. 하느님의 구원사업이나 구원계시로 연결되는 신학적 방향성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전통적으로 가톨릭에서 종말론에 대해서 제시하는 교리가 있습니다.
(오늘 연수회는) 짧은 4시간(45분씩 4교시) 동안 시원론과 종말론을 짧게 다루는 것입니다. 사실상 한가지로도 한학기 강의이지만, 여기서는 두 시간씩 두개를 다루게 됩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제시하고 알려드리는 몇가지만을 간단간단하게 전달을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시원론 - 창세기 1~2장과 잠언 8장
먼저 【시원론】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교재는 조규만 주교님이 쓰신 것이죠. 조교만 주교님은 우리 학교(가톨릭대 신학대)에서 가르치는 분들의 스승님이십니다. 아무튼 시원론부터 2시간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시원론을 말할 때 성서부터 출발합니다. 그래서 대표적으로 창세기 1장, 그리고 2장까지를 말합니다. 창세기 1장과 2장, 그리고 잠언 8장이나 신약 등 여러가지가 많고, 예수님이 창조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특별히 「요한복음」서언을 봐야 합니다. 1장 1절부터 1장 18절까지 입니다. 그렇게 보면 성서에 대해서 알 수가 있습니다.
창조론과 진화론
이 세상에는 창조론과 진화론이란 게 있어요.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는 창조론이 있고. 우리나라의 그리스도교 인구는 개신교를 포함해서 약 33% 정도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교인이라면 인간의 기원에 대해서 【창조론】을 믿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교인 중에 【진화론】을 당연히 믿지 말아야 하는 것일까요? 만일 어떤 책에 '진화론'이란 글자만 나와도 그리스도교인은 불필요없는 이야기로 여기고 그냥 그런 책을 버려버릴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그리스도교인 입장에서도【진화론】을 함께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제가 독단적으로 드리는 말씀은 아닙니다.
1996년, 요한 바오로 2세가 추구한 과학과 신앙의 화해
요한바오로 2세 교황님은 1996년에 이런 발언을 하셨습니다. (교재 17p 참조) 경향신문 1996.10.26자에도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에 대해서도 언급하면서, 중세에는 과학적 지식이나 인간 이성을 너무 어두움으로 보았다고 하면서, 과학과 신앙의 화해를 촉구한 것입니다. 【다윈의 진화론】과【가톨릭교의】는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고 밝힌 것인데, 사실상 인간의 이성도 하느님에게서 받은 것입니다. 그런 인간의 이성을 100% 충분히 활용해서 그런 이성을 가지고 【진화론】을 생각해낸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물론 【진화론】에도 문제는 많을 겁니다. 예를 들어 그 근거자료를 화석이라고 보았을 때, 화석만을 유추해서 생각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이 세상에 1만종의 영장류가 있다고 할 때, 단, 1개의 화석이 남았다면 그것만 가지고 추정하는 것은 오버일 수도 있다는 겁니다.
경향신문 1996년 10월 26일(토)자 1면 보도
진화론이 창조와 반대된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진화론적 측면에서 보았을 때, 인간이 원숭이나 유인원으로부터 진화된 것이라고 하면, 현재 지구상에는 인간과 원숭이 사이에 존재할 법한 중간단계의 개체가 있어야 합니다. 어찌되었든【진화론】에 대한 생각도 인간 이성을 활용한 것이므로, 그것이 창조와 반대된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인간이 점점 더 진화를 한다면, 그 진화에도 목적이 있고. 그 기원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몸 안에 오장육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위장이나 간장 등을 맘대로 통제할 수는 없잖아요. 사실 우린 자신의 몸뚱아리를 컨트롤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니까 늙어가는 것, 살아가는 것, 병드는 것, 죽는 것을 컨트롤할 수는 없다. 그것은 어떤 목적을 향해 가는 것입니다.
진화론이 맞다고 한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진화론】이 다 맞다고 하는 게 아닙니다. 전적으로 인정한 것이라기 보다는 부분적으로 맞는 부분이 있을 것으로 봅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창조론】을 기본적인 입장으로 갖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창세기」에 나오는 것처럼 그렇게 했다는 말과는 다릅니다.「창세기」에 등장하는 창조론은 당시 근동지방에서 유행하던 설화를「창세기」작가가 따온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창세기」작가의 정신은 "모든 세상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셨다."는 것을 그 당시 사람들이 이해하게끔 쓴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날은 이렇게 쓸 수는 없겠죠. 오늘날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셨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진화론】을 내세울 수는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과학적 사고방식을 통해 쓰게된다는 것이죠. 현대인들이 정말 잘 이해할 수 있는, 과학적 바탕으로 통해서 말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래서【진화론】을 이해할 때, 마치 그 옛날에 「창세기」2장은 기원전 900년 전 경, 즉「창세기」는 기원전 3천년경 무렵에 쓰였다고 보면, 그 시절에 통용되고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를 통해서, 결과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하느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말해주려고 이야기를 빌려온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가 분명히 밝힌 것은
정확히 교황님이 하신 말씀(교재 17p)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런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는 것' 즉, "우리는 우리가 있어야 될 존재가 되기 위해서 서로를 필요로 하고 있다. 과학은 종교를 오류와 미신으로부터 정화시킬 수 있고, 종교는 과학을 우상숭배와 거짓 절대주의로부터 정화시킬 수 있다. 양자는 각기 타자를 보다 넓은 세계를 양자가 그 안에서 번영할 수 있는 세계로 이끌어 들인다." 이 말이 그 말입니다. 교황님이 무조건 진화론을 맞다고 본 게 아니라, 진화론에 대해서도 현대 사람들이 워낙 잘 이해를 하니까 그런 방법을 통해서 창조를 잘 설명해주기 위해 끌어들인 겁니다. 여기서 오해하면 안되는 것이 있습니다. 본당에서 교리교육자들이 마치 진회론이 칭조론보다 우세하다고 설명해서는 안됩니다.
창세기 1장과 2장은 작가도 다르도 연대도 달라
창세기 1장과 2장에서는 창조에 대한 설화를 우리에게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1장과 2장은 똑같은 창조이야기인데. 작가가 최소 2명입니다. 한 작가가 아니에요. 창세기라는 두꺼운 책을 단 한 사람이 쓴 게 아닙니다. 창세기 전체적으로 누군가 편집을 했던 겁니다. 창세기는 기원전 900년 경 쓰여진 것인데, 이것이 혼자 쓴 게 아니고 몇 사람이 편집되고 한 책으로 편집된 것이니다. 그리고 창세기 1장과 2장은 두명의 저자가 있다고 봅니다. 그 중에서 창세기 1장은 제관계 창조설화라고 합니다. 말글대로, 제사를 지내는 사제집단 중에 저자가 있었을 것이라고 봅니다. 제관계에 몸담고 있었지만 누군지는 모릅니다. 이 분들의 특징은 창세기 1장에 드러납니다. 무엇을 강조했냐면, 제관계는 기원전 587년 바빌론 유배시절 그 이후에 쓰여졌기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나부꼬는 '느부갓네살'의 이탈리어 줄임말
바빌론 유배는 바빌로니아 제국이 이스라엘을 침공해서 잡아다가 유배를 보낸 것이죠. 나부꼬라는 오페라 아시죠? 나부꼬(Nabuco)는 신바빌로니아의 왕 '느부갓네살'의 이탈리아어 줄임말입니다. 이 당시 유배를 그린 것인데, 이스라엘 백성이 고국을 그리워하며 생활하고 노래한 그런 유배를 그린 오페라가 있을 정도로 역사적으로 중요한 때입니다. 그래서 히브리 노예 합창단이 있을 정도인 것이죠. 그 당시에 지어진 것이 제관계입니다. 그래서 제괸계는 일단 슬픕니다. 그리고 무엇을 강조했냐고 보았을 때, 바빌로니아 유배라는 고통을 겪었던 백성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경우로 보면, 일제감정기에 우리나라 선조들이 겪은 설움 같은 걸 겪은 이후 지어졌기때문에, 하느님의 보편적 구원의지, 그리고 온 우주의 보편적 구원의지를 그렸던 겁니다.
하느님 빽을 믿고만 있다가 유배당해서 바뀐 생각
유배 당하기 전에는 고통이 없었죠. 그래서 그 전에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택하셨다는 생각, 내 빽은 하느님이라는 사상이 있어서 그것이 폐쇄적 생각인 것이었찌만, 신바빌로니아 유배 이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유배 전에는 우리 백성만 구원한다는 사상을 갖고 있다가, 바빌론 유배 이후엔 하느님께서는 우리 이스라엘 백성만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을 넘어서 '온 세계와 온 우주의 구원을 지향하시는구나'라고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그걸 나타내는 게 비로 창세기 1장입니다.
창세기 2장은 야훼계
창세기 2장은 야휘스트계라고 합니다. 야훼계입니다. 1장을 보면 하느님을 묘사할 때 '하느님께서는 말씀하셨다.'라고 묘사합니다. 1장부터 2,4a까지 제관계입니다. 거기까지는 '하느님'이라고 등장합니다. 그러나 2장 4절 후반(b)부터 2장 25절까지를 야훼계로 봅니다. 이렇게 두 번째 부분은 똑같은 창조론을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2장 4절 b부터 보면 구분할 수 있습니다. 야휘스트계통의 어떤 저자가 지은 것이죠. 그러니까 저자가 두 명인 거죠. 제관계와 야휘스트계로 구분되죠. 구원이 자기에게만 있는 줄 알았다가 침공을 당하고 깨닫게 된 것이 '구원은 하느님을 잘 따르는 백성에게 주어진다.'는 것이죠. 이것이 제관계이고요. 기원전 587년에 지어진 것입니다. 야훼계는 솔로몬 시대, 즉 기원전 900년경 솔로몬 시대 지어진 것입니다.
야훼계는 솔로몬 시대(기원전 900년 경)
야훼계가 솔로몬 시대니까 훨씬 이전입니다. 그러니까 1장이 더 나중에 쓰여진 것이지만, 편집자가 앞 쪽에 배치한 것입니다. 제관계에 의해 더 후대에 쓰여졌지만, '한 처음에'라는 표현으로 시작하며 서문을 열기 때문이었던 거죠. 그리고 먼저 쓰여졌던 2장은 이스라엘이 강성하던 시절에 쓰여진 겁니다. 강성하고 배부르면서 철학적으로 바뀐 분위기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왜 죄를 지을까?', '죄의 기원은 무엇일까?' 등등의 존재론적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창세기 1장에는 첫째날 뭘 창조하고, 모든 세상을 창조하고 나니 보시기에 좋았다는 것이 골자입니다. 2장에는 뭐가 있습니까? 원죄가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왜 죄를 지었는가?' 이것도 인간의 '죄성'을 전해주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라는 등장인물을 통해서 죄의 뿌리는 하느님을 거스르는 데 있다는 걸 보여줍니다. 나라가 아주 태평성대하니 이런 식으로 쓴 겁니다. 그래서 1장과 2장은 학자들이 보기에 다른 사람들이 쓴 것으로 본 겁니다. 1장을 볼 때는 하느님을 묘사할 때, '하느님께서 말씀하셔다.' 이렇게 당신을 가리킬 때, '하느님'이라고 씁니다. 그런데 2장은 '주 하느님'이라고 쓰여 있어요. 그런데 우리 말로는 잘 구분 잘 안되지만, 원문에서는 '야훼 엘로힘'이라고 써놓았습니다.
'하느님'과 '주 하느님'의 차이는 무엇인가
우리말로는 구분이 어렵지만, 원문 히브리어에선 구분이 보이죠. '야훼 엘로힘'이라고 '야훼'는 '주', '주님'으로 번역한 것이죠. 여기서 '야훼'가 먼저 나오니까 '야휘스트계'라고 정의내린 것이죠. 모세오경의 저자도 다섯 명이 아니라 다섯 부류의 저자가 지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창세기 2장의 주제는 '원죄'
2장의 주제는 '원죄'입니다. 원죄란 무엇입니까? 굉장이 중요합니다. 가톨릭 교리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 '원죄'입니다. 이것은 창조론에서 굉장히 중요한 겁니다. 원죄는 '원래', '근원적인' 죄를 말하겠죠. 영어로는 [Original Sin]이라고 하겠죠. 원죄는 첫번째 죄죠. 누가 저지른 첫번째 죄죠? '아담?'이 지은 죄인가요? 아담만 지은 죄가 아닙니다. '아담과 하와'가 지은 첫번째 죄가 원죄인 겁니다. 유아 세례식 때 우리가 참여를 해보면, 아기에게 '원죄가 사해지는 은총을 받았습니다.'라고 신부님이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유아가 죄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그 어린 아이가 가진 원죄란 게 과연 있나요? 태어나면서부터 불평불만하고 욕을 해서 죄를 지은 것일까요? 그건 아니죠. 이것은 아담과 하와가 지은 죄를 원죄라고 하는데, 왜 아기한테도 왜 '원죄'라는 표현을 쓸까요?
'원죄'는 창조론, 은총론, 그리스도론으로 다 연결된다
원죄가 있다고 하는데, 이게 '원죄'는 창조론, 은총론, 그리스도론으로 다 연결됩니다. 원죄는 정말 무엇일까요? <아담과 하아와 지은 첫번째 죄>와 <아기의 원죄>는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요? 원죄는 로마서 5,12절에 설명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을 통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죄를 통하여 죽음이 들어왔듯이, 또한 이렇게 모두 죄를 지었으므로 모든 사람에게 죽음이 미치게 되었습니다."
시원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원죄'입니다. 그리고 로마서 5장 12절은 바로 사도 바오로가 '원죄'에 대해서 설명한 부분입니다. '한 사람을 통해 죄가 들어왔다.' 바로 '한 사람'은 아담입니다. '한 사람'을 통해서 모든 이가 죽음으로 가게 된 것입니다. (시원종말론 1교시 종료)
가톨릭교리신학원 2단계 1학년(3학년) 하계연수
2015-8-22 토요일 서울 혜화동 교리신학원 지하 강당시원종말론(서한석 사도요한 신부님) 오후 1교시(13:30~14:15)
가톨릭대학교 신학과 조교수 서한석 사도요한 신부님
학력 신학박사 PONTIFICIA UNIVERSITÀ GREGORIANA
전공 교의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