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가 1장 9절에 보면, ‘부정이 옷자락에 묻어있어도 제 종말을 생각하지 않더니 ... 위로해 주는 이 아무도 없다.’는 구절이 나옵니다. 우리는 음식을 먹다가 음식물이 옷에 튀기면 얼른 닦습니다. 특히 흰 옷을 입고 있을 때 벌건 국물이 튀기면 난감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생각은 얼룩진 옷을 처리하는 데 온통 신경을 쏟습니다.
애가는 기원전 587년의 이야기입니다. 바빌론의 임금 네부카드네자르가 ① 예루살렘을 함락하고 ② 성전을 파괴한 뒤 ③ 유다의 백성중 일부를 바빌론으로 이주시켰던 시절입니다. 이 애가는 예레미야의 작품이란 주장이 있고, 그 내용에 포함된 익명성과 다양성 때문에 작자미상이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무튼 애가는 예루살렘이 겪는 비탄의 상황을 보여줍니다. ‘눈물, 고뇌, 벌거벗김과 굶주림, 무너진 폐허’ 등이 이 소(小) 예언서에 등장하는 키워드들이고 그것은 유다 백성들의 죄의 결과입니다. 불행에 빠진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불행한 마음은 겸손의 길로 나아가게 만듭니다. 그렇게 겸손한 길은 회개로 안내하고, 그 회개를 통해서 우리는 은총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사람의 의지로 하느님의 은총을 받는 게 아닙니다. 애가 3장 40절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3,40 우리의 길을 성찰하고 반성하여 주님께 돌아가세
인간의 성찰과 반성은 주님을 향한 기본적인 자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필요조건이나 충분한 조건은 아닙니다. 성찰과 반성을 아무리 한다고 해도 주님이 우리에게 은총을 내려주시는 충만한 완결의 상태는 아닌 것입니다. 5장 21절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5,21 주님, 저희를 당신께 되돌리소서, 저희가 돌아오리다. 저희의 날들을 예전처럼 새롭게 하여 주소서.
주님의 은총은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의 마음대로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님의 종에 불과합니다. 명예의 종, 권력의 종, 돈의 종이 아니라 주님의 종인 것이지요. 그러므로 주님에 대한 간청은 성찰과 반성의 토대 위에서 간절히 해야하겠지만, 궁극적으로 주님께서 우리를 되돌리시는 최종적인 선택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예레미야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레미야 15,19 중에서>
네가 돌아오려고만 하면 나도 너를 돌아오게 하여 내 앞에 설 수 있게 하리라. 네가 쓸모없는 말을 삼가고 값진 말을 하면 너는 나의 대변인이 되리라....
이처럼 우리를 주님 앞에 설 수 있게 하는 분은 주님 당신이십니다. 우리의 성찰과 반성이 매우 필요한 자세이지만 결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부정이 옷자락에 묻어있을 때' 얼른 자신을 반성하고, 오로지 주님만을 바라봐야 합니다. 돈과 명예와 권력으로는 종말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서백주간 제45회차 일정 중 <애가>에 대한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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