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룩서를 읽으면 완전히 바짝 엎드려서 썼다는 느낌입니다. 그리고 이 성경말씀은 바룩이 바빌론에서 쓴 고백과 간청, 그러니까 참회의 기도문입니다. 인상깊은 몇 구절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1 이 책에 기록된 말씀은 바룩이 바빌론에서 쓴 것이다.

3,1 전능하신 주님, 이스라엘의 하느님! 고통 받는 목숨과 지친 영혼이 당신을 향하여 부르짖습니다. ... 4, 1 슬기는 하느님의 명령과 길이 남을 율법을 기록한 책이다. 슬기를 붙드는 이는 살고 그것을 버리는 자는 죽는다.... 

4,28 너희 마음이 하느님을 떠나 방황하였으나 이제는 돌아서서 열 배로 열심히 그분을 찾아야 한다. 29 그러면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신 그분께서 너희를 구원하시고 너희에게 영원한 기쁨을 안겨 주시리라.”

6,5 너희는 군중이 앞뒤에서 그것들에게 경배하는 것을 볼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주님, 경배드릴 분은 당신뿐이십니다.’ 하고 마음속으로 말하여라. 6 내 천사가 너희와 함께 있으면서 너희 목숨을 돌볼 것이다


바룩서는 유배에 대한 신학적 반성


바룩서는 히브리 성경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개신교(구약 39권)에는 없습니다. (천주교의 구약은 46권) 이것은 그리스어로 번역을 할 때에, 70인역에서 정경에 편입된 것입니다. 바룩서는 유배에 대한 신학적 반성을 기록한 책입니다. 이 책의 저자는 예레미야의 서기이며 비서인 바룩으로 알려져 있고, 굉장히 절망적인 박해의 상태에서 기록하고 용기를 복돋우기 위해 후대에 쓰여진 책입니다. 그리고 바룩은 유배 중의 예언자라는 점에서 유배 이전의 예언자인 예레미야와 구분됩니다. 


1장의 14절까지는 역사적 서문


바룩서의 구조를 보면, 바룩서는 전체 6장의 짧은 소예언서입니다. 여기서 1장 1절부터 14절까지는 <역사적 서문>입니다. 이 서문에서 이 글이 예루살렘 파괴 때 쓰여졌다는 것을 드러내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유배 중에, 예루살렘 파괴 때 쓰여진 것을 바빌론에서 들려준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야킨, 끌려간 임금과 바빌론에 있던 다른 유다인들에게 이 바룩서 얘기를 들려준 것입니다. 유배중에 들려주니, 이 효과가 굉장히 컸습니다. 그래서 유배중 사람들이 모금을 해서 대사제들에게도 보내주고 하면서 바룩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빼앗긴 기물들, 약탈당한 기물들을 다시 많이 돌려받게 됩니다. 그래서 다시 이 기물들을 유다 땅으로 보내는데 바룩서가 큰 역할을 한 것입니다.


바룩서의 말씀들이 사람들 마음을 많이 움직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서 예배가 계속된다는 것을 보여주며 희망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1장 15절부터 3장 8절까지는 중간 제목이 잡혀있는데 <참회 기도>입니다. 그리고 <참회기도>는 <고백>(1,15~22. 2,1~10), <기도>(2,11~35. 3,1~8)의 두 소제목으로 나뉘어있습니다. 이 <참회기도>는 바빌론에서 유배생활하는 사람들의 예식입니다. 참회예식입니다.  이 두번째 부분은 유배 이후에 유행하던 참회기도를 말해줍니다. 유배라는 참극을 죄와 벌이라는 인과응보에 맞추어 생각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유배는 한편으로 피정의 시간이었습니다. 참회는 곧 피정입니다. 죄를 고백하는 동시에 하느님의 정의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죄를 지었을 때 이런 고통은 마땅하다는 것, 그것을 하느님의 정의로 표현한 것입니다.


참회기도에 앞서 고백하라


우리는 우리의 죄가 마땅하다고 생각한다면 참회가 나오게 됩니다. "내가 참 잘 살았는데, 나한데 왜?", "내가 왜 이런 벌을?"이라고 생각한다면 참회도 피정도 불가능합니다. 중요한 것은 죄받음이 마땅하다는 참회하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유배 때는 '내 탓이오!, 내 탓이오!'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회 기도>의 첫번째 부분은 <고백>(1,15~2,10)이 되는 것이고, 두번째 부분 <기도>(2,11~3,8)를 통해 간청과 청원을 하는 것입니다. 내 죄를 고백한 다음에 하느님께 간청하는 것이지요. 이런 구조로 두번째 단락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유배자들은 죄를 지었지만, 고백을 통해 참회할 것이라고 예언도 하고, 주님은 조상들에게 약속했던 것처럼 그들을 다시 조국으로 돌려보낼 것이란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과 영원한 관계를 맺을 것이라고 간청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대단한 희망입니다. 고통 중에서 하느님 자비를 간청하고 하느님 자비가 분명히 이뤄질 것이라는 것을 느끼고, 하느님을 바라만보고 있어도 고통은 엄청나게 줄어들 것입니다. 


주님의 주권에 대한 신뢰


특히 <참회기도>의 2번째 부분인 <기도>의 후반부(3,1~8)는 유배자들의 참회와 부르짖음입니다. 그래서 3장 5절을 보면, '저희 조상들의 불의한 행실을 기억하지 마시고, 이제는 당신의 권능과 이름을 기억해 주소서.'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느님의 권능을 인정하는 장면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내 삶 안에서 하느님을 내 첫째 자리에 둔다는 것은 하느님의 권능을 인정한다는 말입니다. 그냥 미사에 나오고 신앙생활을 하다가 어떤 엄청난 역경을 맞이했을 때, 하느님을 내 첫째 자리에 둔다는 것은 이 모든 상황 안에서 하느님이 날 인도하고 나에게 다시 구원의 은총을 주실 것이라고 믿을 때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것은 대단한 하느님의 권능에 대한 신뢰입니다. 주님의 주권에 대한 신뢰입니다. 


성경 안에서 많이 이야기되는 이야기인 이것은 성경 말씀이 내 안에서 하느님을 첫째 자리에 두도록 인도해주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간혹 닥쳐오지 않은 미래의 불행을 걱정하는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과의 계약을 성실하게 지키고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게 중요합니다. 오지 않는 미래를 걱정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입니다.


지혜에 관한 명상


이제 3장 9절부터 4장 4절까지는 어려움을 당하기 이전에 지혜를 찾으라는 말씀입니다. 중간 제목은 <지혜에 관한 명상>이고 이 중간 제목 하에서 <권고>(3,9~14), <가까이 갈 수 없는 지혜>(3,15~31), <하느님만이 슬기를 아시고 그것을 이스라엘에게 주신다>(3,32~38. 4,1), <권고>(4,2~4)의 4가지 부분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유배의 재난을 피하기 위해서 지혜를 찾아야 한다는 이 말씀은 어려움을 당하기 전에 지혜를 찾아야 한다는 뜻인 겁니다. 노인이 되어 치매를 걸리는 경우를 사례로 말할 수 있겠습니다. 20~30대에 폭음을 하면, 그것이 60대의 치매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뇌세포를 죽이는 술과 담배를 조심해야 합니다. 술과 담배를 많이 하신 분들이 60대를 넘어서 치매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알면 끊어야 하는 것이란 거죠. 그리고 남성보다 여성의 치매발병 확률이 높은 것은 단순하지 않는 것때문이기도 합니다. 단순한 삶이 중요하죠. 남성들은 두 세가지 일을 동시에 못합니다. 중요한 것은 쓴 소리에 하느님의 말씀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쓴소리에 귀를 잘 기울이는 연습을 해야 할 것입니다. 쓴 소리는 지혜로 입장하는 초대장이기때문에 그러한 초대에 민감해져야 합니다. 그렇게 보여지는 구절이 바로 3장 12절부터 14절의 말씀입니다.


3, 12  네가 지혜의 샘을 저버린 탓이다.  13 네가 하느님의 길을 걸었더라면 너는 영원히 평화롭게 살았으리라.  14 예지가 어디에 있고 힘이 어디에 있으며 지식이 어디에 있는지를 배워라. 그러면 장수와 생명이 어디에 있고 눈을 밝혀 주는 빛과 평화가 어디에 있는지를 함께 깨달으리라.


위의 구절은 지혜를 찾는 데 성공하지 못한 경우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지혜는 복잡한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길을' 함께 걷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혜를 찾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듣기 거북하고 실천하기 거북해도 나에게 쓴소리라도 잘 들을 때 그 안에 하느님 말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슬픔을 벗고 아름다움을 입으라. 


다음으로 4장 5절부터 5장 9절까지는 <예루살렘을 위한 권고와 위로>라는 중간제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소제목들로는 <유배자들에게 보내는 권고>(4,5~29), <예루살렘에 대한 위로>(5,30~37. 5,1~9 끝)


이것은 유배자들에게 선포된 희망의 심판이며, 이에 주님을 신뢰하라는 호소가 따라옵니다. 이스라엘의 불성실함에 대항하여 성실하신 하느님이 일어나십니다. 하느님은 변함없이 또 다시 성실하게 다가오십니다. 끊임없이 우리를 기다리는 하느님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다시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습니다. 여기에서 핵심 구절은 5장 1절입니다.


5,1 예루살렘아, 슬픔과 재앙의 옷을 벗어 버리고 하느님에게서 오는 영광의 아름다움을 영원히 입어라.


슬픔을 벗고 아름다움을 입으라. 용기를 내어 잘 참고 인내하며 견뎌낼 때 그 때 하느님께 청원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통의 상황에서는 하느님께 매달릴 수 밖에 없습니다. 매달릴 때에는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면서 매달려야 합니다. 그렇게 한걸음 다시 하느님께 다가갈 수 있습니다. 5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희망을 안겨줍니다. 엄청난 어려움에 빠진 이들에게 하느님의 자비를 믿고 견뎌낼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힘든 상황에서 바룩서를 읽는 게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성서백주간 45회차 중 바룩서(1~5장)

* 바룩서 6장(예레미야의 편지)는 별도 Note



Posted by 편집장 슈렉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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