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2주일(2014.12.7) 오전 10시30분 교중미사

가톨릭성당 강론

 

제1독서 너희는 주님의 길을 닦아라.  이사야서 40,1-5. 9-11

제2독서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베드로 2 3,8-14

복음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마르코복음 1,1-8

 

오소서 성령님 (교중. 새로 나게 하소서)

대림 한 주간을 여러분은 특별히 대림시기 의미를 잘 생각하며 잘 지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오늘은 대림 제2주일입니다. 2주일은 인권주일이고, 3주는 자선주일입니다. 대림의 시기는 속죄의 시기이며 속죄하는 마음으로 대림시기를 지내도록 가르치고, 속죄의 방법으로 기도와 자선과 희생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가르침임니다. 

특히 대림시기는 기도하는 시기입니다. 평소 때보다 더 주님 오심을 기다리고, 오늘 세례자 요한 말씀처럼, 주님의 오심을 마련하기 위해 기도하는 시간입니다. 또 대림시기는 희생의 시간입니다. 기도는 시간을 내어 하는 것이라면, 희생은 우리 몸을 움직이는 것입니다. 오늘 인권주일 맞이하고, 사회교리 주간 지내면서 이번 한 주는 희생 실천하는 주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희생은 나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죠. 타인을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세번째로 자선을 강조하는 데, 다음 주가 자선주일입니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이 세가지를 참회의 시기에 신자들이 실천하는구체적 사항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대림의 시기는 참회의 시기, 인권과 자선 그리고 희생이 강조될 때

오늘 인권주일 강론, 사회교리 주간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은 데, 대전교구 홈페이지에 인권주일과 사회교리에 관한 동영상과 글들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꼭 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 특별히 주교님께서 사회교리 주간 담화문 발표하셨습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를 보여주시는 방신부님) 박동호 신부님은 쪼개서 보여주셨죠? 이건 가까운데서 보여주는 책입니다. 

박동호 안드레아 신부 초청 2014.12.2(화)

여기 보면 인간 존엄성 등에 관해 말해주는 사회교리가 등장합니다. 제1장이 인간 존엄성이고, 제 2장에는 인류공동체 얘기가 나옵니다. 이 인간존엄성은 하느님께서 받은 것이라고 나옵니다. 하느님께서 내려주신 유일한 피조물인 인간은 인간의 존엄성이 하느님께로부터 직접 주어진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인류공동체란 부분에서는 특별히 공동선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집단이든 개인이든 자신을 충만히 완성하고 용이하게 추구하도록 만드는 조건들의 총화이다. 그래서 교회는 공동선의 완성을 위해 노력해야 하고, 공권력 역시 개인의 존엄성과 공동선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라고 교리서에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권수호는 교회와 신앙의 의무입니다 라고 같이 생각해보시라고 말씀드립니다. 인권과 현실. 우리는 이 시대를 위해서 이 시대 안에 하느님 나라 건설하기 위해 불리움 받은 사람들. 2천년 전의 사람들이 아닙니다. 복음화를 위해, 바로 이 자리를 복음화하기 위해 불리운 사람들인 것이죠. 

(2014년 12월 2일 대림특강으로 초청된) 박동호 신부님 말씀처럼 신앙은 세상을 위해 파견된 것, 하느님께서 예수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셨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세상 안으로 파견보내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시대 소금과 빛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사회교리 주간 담화문에서도 주교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대전교구주교님 담화문 낭독. 아래 글)


제33회 인권주일

제4회 사회교리 주간 담화문

인권수호는 교회와 신앙의 의무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 모두에게 하느님의 평화와 축복이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시는 아기 예수님을 ‘깨어 일어나’ 맞이하기 위한 내적, 외적 준비를 하는 대림 시기입니다. 대림의 의미에 따라 한국 교회는 ‘대림 2주일’을 인권주일로 정하고, 그 주간을 ‘사회교리 주간’으로 정하였습니다. 신앙의 빛으로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며 준비하는 마음으로 신앙과 교회의 가르침에 비추어 오늘 우리 사회 인권의 현실을 돌아봅시다.

1. 교회, 인권 그리고 우리의 현실

인권의 원천은 ‘창조’와 ‘강생’의 신비입니다. 인간을 사랑하시어 당신의 모상대로 우리를 만드시고 죄로 얼룩진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친히 강생하신 사랑이 인권을 말하는 출발점입니다. 이에 따라, 교회는 하느님께 부여받은 인간의 존엄한 권리를 구체적으로 선포합니다.

교회는 “생명이 잉태된 후부터 모체 안에서 발육할 수 있는 권리와 밀접하게 연결되는 생명에 대한 권리, 일치된 가정에서 그리고 인격의 발전에 적합한 장소에서 살 권리, 진리 추구와 인식을 통하여 자신의 지성과 자유를 발전시킬 권리, 그 외에 지상의 물질 재화를 올바르게 취득하여 자신과 식구들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노동할 권리.”(『백주년』 47항)가 있다고 가르칩니다.

평범한 권리로 보이는 위의 구절 앞에 비춰진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하루 평균 960명의 생명이 세상의 빛도 보지 못하고 낙태로 죽어갑니다. 부모의 학대와 무관심 속에 고통을 받으며 죽어간 칠곡과 울산의 어린이를 기억합니다. 뿐만 아니라 가정 폭력, 각종 언어, 감정, 물리적, 경제적 폭력 등 우리의 현실은 참담하고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각자 삶의 자리에서 되돌아봅시다. 부모의 권위로 혹은 남편의 권위로 자녀들과 배우자의 정당한 권리를 억누르지 않았는지, 직장 내에서 나보다 낮은 자리에 있는 동료들을 비인격적으로 대하거나 임금, 처우 등에 피해를 입히지 않았는지, 소비자의 권위로 서비스 종사자들의 인격에 상처를 주지 않았는지, ‘성직자’라는 이름으로 ‘수도자’라는 이름으로, ‘영향력 있는 평신도’라는 이름으로 누군가를 무시하지 않았는지 되돌아봅시다. 나아가 그 어떤 대상을 나의 이익과 성공을 위한 수단으로 대하지 않았는지 살펴봅시다.

2. 대림 시기의 준비

대림시기를 보내며 인간이 되어 오신 하느님의 사랑 앞에서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우리도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듯 서로를 사랑했는지(요한 13,34 참고), 남이 나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만큼 나의 권리에 침해를 받았을 때 남의 권리를 지켜주려 노력했는지(마태 7,12 참고), 나의 힘과 기득권으로 남에게 인격적, 경제적 피해를 주는 것을 성공한 자의 당연한 기쁨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는지 질문해 봅시다.

우리 사회는 물질적 성공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원칙을 무시하는 삶을 지속해왔습니다. 세계가 놀랄 만한 기적적 성공 이면에 윤리적 붕괴가 가져올 피해를 등한시했던 우리는 참담한 결과를 맛보아야 했습니다. 세월호 사건을 한 기업과 당국의 문제만으로 볼 수 없었기에, 원칙을 지키고 신앙과 윤리적 가르침을 따라 사는 것을 주저했던 우리 모두가 “미안하다”며 자기 가슴을 치며 보낸 한 해였습니다.

이 시점에서 교회도 세상의 빛과 소금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음을 자성합니다. 신앙을 선포하고, 사회에 관한 교리를 가르치며, 인권을 보호하고, 영혼을 구하기 위해 윤리적 판단을 내려야 할 교회(『사목헌장』76항 참조)의 임무를 게을리 하였습니다. 성장의 최면에 걸려 약자의 편에서 진정으로 공감하지 못하면서 쉽게 분노했음을 반성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죄가 우리를 향하신 하느님의 사랑을 보여주며, 회심으로 초대합니다. 우리는 한 개인으로서, 하느님 백성으로서 삶과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마음으로 변화되는 회심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은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우리들에게 참으로 정의롭고 인간다운 사회를 이룩하는 데 우리 스스로 얼마나 기여했는지 점검하라는 부르심입니다.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의심과 대립과 경쟁의 사고방식을 확고히 거부하고, 대신에 복음의 가르침을 선택할 용기를 가지기를 요구하시는 부르심에 응답합시다. 창조하시고 강생하신 사랑을 믿고, 우리의 죄를 반성하며 십자가의 용기를 청합시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한국 방문을 마치며 여러분에게 남기는 메시지입니다. 그리스도 십자가의 힘을 믿으십시오. 그 화해시키는 은총을 여러분의 마음에 기쁘게 받아들이고, 그 은총을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십시오.”(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 강론)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 교회의 인권 참여

회심하고 청하는 십자가의 용기는 사회변화를 향한 움직임에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참여해야 할 근거를 보여줍니다. 부당하고 불의한 사회구조들 속에서 견고하게 구체화된 악은 결코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의 기초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복음의 기쁨』 59항 참조)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스스로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는 가운데, 인간 존엄과 공동선의 가치들이 위협받을 때 예언자의 소리를 드높임으로써(『복음의 기쁨』 218항 참조) 하느님의 현존을 보여주는 표징이 될 수 있습니다. 신앙의 선교와 정의의 요청 그리고 실천은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있습니다. 각종 비리인사의 부적절한 처벌 수위, 산업현장 근로자들의 정당한 요구를 과도한 무력사용으로 진압하거나 사회적 약자를 향한 불공정이 그 정도를 강화할 때, 내 자신이 약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무관심하거나, 관계자로서 이러한 부정에 참여한다면 또 다른 죄를 짓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프란치스코 교황님 말씀대로, 문제의 근본을 치료하고 치유하기보다 자비를 명분삼아 이를 대강 싸매고, 드러난 증상만을 다루는 유혹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성령의 힘보다 우리의 지식에 의지하여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유혹도 경계하여야 합니다.

이제 교회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인권 보호를 강화하고 부당한 차별을 철폐하는 사회적 움직임에 동참할 것입니다. 특히 세월호 사건과 관련하여 명확한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희생자와 유가족을 기억하는 미사를 지속적으로 봉헌할 것입니다. 기득권을 강화하고,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정부의 임무를 등한시 한다면 비판의 소리를 높일 것이며, 부정과 비리를 촉진하는 그 어떤 움직임에도 분연히 일어날 것입니다.

“미안하다”며 가슴을 치고 반성한 한 해, 차가운 바닷물에서 기성세대를 믿으며 스러져간 죽음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미래 세대가 인간을 수단으로 취급하고 성장을 제일 가치로 삼는 우리의 다음 희생자가 되지 않도록,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변화된 삶과 증거의 용기 안에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을 꿈꿀 수 있도록 대림 기간, 창조와 강생의 신비 앞에 우리 죄를 돌아보고 깨어 있는 준비를 합시다.

2014년 12월 7일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유 흥 식 주교

(낭독을 다 마치고) 교황님께서는 '우리의 지금 이 시대는 신자유주의시대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신자유주의 시대에서 가장 우선되는 건 돈입니다. 돈이 모든 것 위에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들 지금 이 시간에도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일해야 한다면 어쩌면 신앙보다는 그 경제적 이익을 찾아 갈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가치관입니다. 하느님이우리 삶의 가장 윗자리에 있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 구조가 그렇습니다. 우리의 인구 30퍼센트가 70퍼센트의 재화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1퍼센터의 사람이 전체의 30퍼센트의 재화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불공정하고 불공평한 사회를 가져온 것이 신자유주의입니다. 돈이 우선이고 그걸 위해 사람이 존재하는, 사람의 가치는 오로지 경제성에만 있는, 인권? 그 사회에서는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우리 나라 권력은 가진자들을 보호하는 형태로 가고 있죠. 거기에 대해서 나는 배부르니까 우리 사회의 돌아가는 것에 나는 벗어나있으니까. . . 그렇지 않다고 주교님께서, 교황님께서 말씀하시고,그래서는 안된다고 성경이 우리 교회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회교리 주간을 보내면서, 세상을 보기 전에 먼저 교회의 가르침이 무엇인가, 성경의 말씀들이 무엇인가 한번 더 고민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교황님의 트위터라는 글에서 우리 다음 세대들에게 이 험한 세상을 이겨나가는 그런 지혜와 용기를 후손들에게 가르쳐주지 말고, 그렇지 않은 사회를 물려주라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생존경쟁에서 살아남는 요령을 가르쳐주지 말고, 사회를 그렇지 않기 만들라는 것입니다. 제 이야기가 아니라 교황님 말씀입니다. 우리는 먼미래 100년 후, 200년 후 자손들을 위해 우리가 불리움을 받은 게 아니라, 이 시대를 위해서 불리움을 받았다. 그리고 불리움을 받은 데에는 반드시 소명을 받았다. 이러한 점 생각하며 대림 2주일 잘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2014-12-7(대림2주일) 오전10시 30분 @ 전민동성당

방경석 알로이시오 주임신부님 강론


이 글은 강론 말씀을 필자가 재구성한 것이기에 실제 말씀과 다를 수 있습니다.

또한 본문 내의 성경구절은 글의 구성을 위해 삽입된 것입니다.



Posted by 편집장 슈렉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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