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세례 축일, 2013 1 13일 오전 9시 @ 도화담 공소

만수리 공소 윤종관 신부


세례! 천지개벽!

물에 빠지셨다 나와 기도하실 때!



오늘,온 백성이 세례를 받은 뒤에 예수님께서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를 하셨다.”(루카 3, 21)고 하는 성경의 보도를 들으면서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처럼 세례 받는 사람들 틈에 끼어 세례를 받으셨구나 하는 생각입니다. 그분도 우리네 보통 인간들과 비슷한 처지로 세례를 받았구나 하는 생각인 것이지요.


그런데 저는 저 자신이 세례를 언제 받았는지 스스로 기억하지 못합니다. 저는 누대에 거쳐 천주교 신앙의 집안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태어나 사흘 만에 당시 공소회장님께로부터 세례를 받았답니다. 유아세례를 받은 것이지요. 그 사실을 저는 크면서 어른들에게서 들어서 알게 된 것이지요. 그런 저는 영세 대부님을 본 일도 없습니다. 제가 공소회장님에게서 세례를 받고나서 얼마 후에 본당 신부님께서 공소 판공을 하러 오셔서 보례를 해주셨다는데 그때 공소회장님의 집안 어른을 저의 대부로 정하셨답니다. 이 사실도 저는 다 커서 신학생 때 들어서 알게 되었지요. 그 대부님은 제가 초등학교도 다니기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대부가 무엇 하는 분인지 어떤 분이지도 모르고 저는 성장했지요.


그리고 초등학교 5학년 때 견진성사를 받았는데 그 견진대부로는 저에게 세례를 주었던 공소회장님이 서주셨는데 그때 이미 아주 연로하신 분이시라서 얼마 후 그만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저는 대부님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사람입니다. 저는 그래서 우리 교우님들이 세례 받으면서 대부 대모님이 정해지고 대자대녀들과 인연을 맺어 사시는 것을 볼 때 부럽기만 합니다. 저로 말하자면 고아신자인 셈이지요. 대부대모의 사랑을 받는 교우님들과 비교해서 저는 불쌍한 신자이지요. 저도 큰 다음에 세례를 받을 걸 그랬나 싶습니다.


그러면 오늘 성경에서 본 예수님의 세례 때엔 그분의 대부님이 누구였을까요? 성경 기록에 예수님의 대부가 있었다는 말이 없는 걸 보면, 예수님도 저처럼 고아신자라고 해야 할까요? 제가 이렇게 유아세례 받은 저의 처지를 예수님의 세례와 엇대어 비교하는 게 좀 우스꽝스럽지요! 예수님은 사실상 성인세례를 받으신 분인데 말입니다. 그렇다면 다 큰 성인으로서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께선 유아였던 저와는 달리 확실하게 대부를 정하실 수 있으셨지 않겠습니까?


저의 이러한 우스꽝스런 질문에 대한 확실한 답이 있습니다. 오늘의 성경 기록에 그게 나옵니다. 세례 받으신 예수님의 대부 목소리가 들려온 것입니다. 그걸 성경은 다음과 같이 보도하고 있습니다.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루카 3, 22)라고 말입니다. 그분의 대부님은 하늘에 계신 분이시군요! 그 하늘에 계신 분께서는 이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 비둘기를 내려 보내셨습니다. 성령을 말입니다.


이제 여기서 성경의 기록대로 예수님의 세례 현장에 가봅시다.백성은 기대에 차 있었으므로, 모두 마음속으로 요한이 메시아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였다”(루카 3, 15)라고 오늘의 성경이 보도하고 있는 현장이 그곳입니다.


요한은 당시의 세상 돌아가는 꼴을 질타하면서 회개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사람이었습니다(루카 3, 36 참조). 그리고는 회개하러 그에게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세례를 받으라면서 욕설을 합니다.독사의 자식들아!”라고 말입니다(루카 3, 7). 속에 든 독과 같이 못된 행실을 감추고 독사의 날름거리는 혓바닥처럼 회개한다는 말만 해선 어떻게 믿어줄 수 있느냐면서 회개의 실제 열매(행실)를 보이라고 고함칩니다(루카 3, 79 참조). 그리고 회개의 실천이란, 독차지할 줄만 알고 빼앗고 억누를 줄만 아는 이 더러운 세상을 나눔과 베품의 정의로운 세상으로 바꾸는 것이라고 역설하는 요한이었습니다(루카 3, 1014 참조). 이러한 요한이 독사들에게서 독을 빼는 세례 즉 물에 담가 독을 씻어내는 세례를 베풀자 사람들은 이제 새로운 세상이 온 것으로 착각합니다. 즉 요한을 새 세상 만들어주는 구세주로 여기게 됩니다. “마음속으로 요한이 메시아가 아닐까하는 사람들이 모인 광야, 그곳이 곧 예수님도 찾아온 그 현장이었던 것입니다.


요한을 구세주로 여기는 그 현장에서 요한은 아직 세상이 바뀔 수가 없다고 말합니다.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오셔야만 세상이 바뀐다고 말합니다(루카 3, 1518 참조).


그런데 그 현장에서 회개의 표시로 세례를 받는 사람들 틈에 끼어 세례를 받은 한 사람(예수님)이 기도를 하자 하늘이 열렸습니다(루카 3, 21 참조). 이게 무슨 일인가요? 하늘이 열리다니요! 천지개벽인 것이지요! 세상이 몽땅 바뀌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천지개벽을 이루는 세례는 그래서 요한이 말하기를 물의 세례가 아니라 불의 세례라고 했습니다(루카 3, 1617 참조). 그리고는 그 세례 받은 한 사람(예수님) 위에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내려왔습니다. 요한이 미리 말했듯이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분”(루카 3, 16)이라는 것이 이때 증명 된 것입니다. 그러자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루카 3, 21)하고 말입니다.


여기서 저는 다시 우스꽝스런 저의 생각을 이어봅니다. “, 나도 세례 받을 때 그렇게 하늘이 열리고 성령 내려오시고 하느님 아버지께서 나를 당신 마음에 드는 아들이라고 하셨겠구나.” 하고 말입니다. 저보고 착각하고 있네.” 라면서 비웃으실 분도 계시겠지요.


저의 이 우스꽝스런 생각이 정말 착각일까요? 아닙니다. 착각이 아닙니다. 사실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례 받음으로 해서 새로운 세상을 맞이한 사람들입니다.


세례 받은 사람들은 생각이 바뀌고 행실이 바뀐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그렇게 바뀐 사람들 눈에는 세상이 바뀐 것을 체험하게 되고, 아니 더 나아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그렇듯이 우선 생각이 바뀌고 행실이 바뀐 사람이 되는 체험을 저 자신의 과거 추억을 가지고 비유를 삼아보겠습니다.


제가 해군사관학교 사관후보생 교육을 받을 때의 일입니다. 젊은 사제로서 군종신부로 임관하기 위해 39년 전 진해에서 4개월 동안 해군 사관후보생 훈련과정 중의 추억입니다. 4개월간의 체험을 다 말하려면 어쩌면 그 4개월 과정만큼 4개월 동안 설명해야 할지도 모를 그런 이야기 거리들이 있습니다만 그 가운데 한 가지, 오늘 회개하려고 온 사람들과 함께 예수님께서 잠기신 요르단 강물을 상상하면서 말하고 싶은 사건이 있습니다.


진해 해군 사관학교 사관후보생대를 완전군장으로 출발하여 40Km 행군을 하던 날의 이야기입니다. 진해를 출발하여 창원시와 마산시를 거쳐 되돌아 나와 해병유격훈련장에 이르는 행군이었습니다. 무거운 군장으로 하루 꼬박 행군하여 마지막 구간에 진입하기 전에 마산 자유수출공단의 하수처리장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훈련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하수처리장을 수영장 삼아 군장상태로 들어가 헤엄을 쳐야만 했습니다


전후좌우로 왔다 갔다 반복하여 두 시간 동안 그 더러운 하수처리장에서 헤엄을 치는 것이었습니다. 온몸을 그 더러운 물속에 잠수하여 노래를 불러야 했습니다. 때는 오월, <어버이 날>을 며칠 지난 때였습니다. “나실 때 괴로움 다 잊으시고하는 어머니 노래를 부르라는 것입니다. 그 노래를 부르면서 오물 덩어리를 입술에 스쳐야 했습니다. 노래를 부르는 우리 동료 사관후보생들은 모두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지요. 행군에 지친 온몸의 살갗이 군장에 스쳐서 벗겨지고 더러운 물에 불려서 쓰리고 아팠습니다


두 시간 가량 그런 인간적 한계 상황을 버티고 나서 그 더러운 물에서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귀신같은 몰골로 유격훈련장까지 달리면서 우리 모두는 참으로 어느 때보다도 더 우렁찬 군가를 부르면서 뛰었습니다. 유격훈련장에 도착하여 대충 몸을 씻었지만 그 후 며칠간의 그 유격훈련장 체류기간 내내 역겹게 코를 찌르며 우리 서로의 몸에서 풍기는 악취를 배겨내기란 정말 지옥 같은 고통이었습니다. 그러한 훈련과정을 거치고 나서 본대에 돌아와 다음과정의 교육에 들어갔을 때에는 모두가 훈련의 고됨을 마치 즐거움인양 받아들이는 자세로 변한 것 같았습니다.


누구보다도 가장 뚜렷한 태도 변화를 한 사람은 바로 저 자신이었습니다. 동료 사관후보생들이라야 대학교를 갓 졸업하고 입대한 저보다 나이가 훨씬 어린 청년들이었기 때문에 저는 그들 사이에서 나이 많은 선배요 더욱 사제로서 늘 그들과는 다르게 근엄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일종의 차별 행위를 하고자 하는 강박감 속에서 교육을 받아오던 중이었습니다만, 그 똥물 속의 잠수 훈련을 받은 후에는 그런 강박감을 떨쳐버렸던 것입니다. 그 더러운 구렁텅이에서 함께 뒹군 처지에 이제는 나이고 신분이고 스스로 따질 일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 청년들과 똑같이 악을 써가며 달리고 고함치며 군가를 부르는 한 청년의 처지로 스스로 변한 저의 모습이었습니다. 이제는 최악의 상황에 기꺼이 몸을 맡기게 된 것이지요. 그보다 더 처참한 대접을 받을 수 있으랴 싶은 그런 한계상황에서 체득한 새로운 삶의 태도라 할 수 있는 것이었지요.


이 추억담이 마치 저의 자랑을 위한 것처럼 소개되었습니다만, 오늘 세례 받으신 예수님의 모습을 연상하기 위하여 저의 이야기를 늘어놓아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회개해야 할 죄악의 인간들 대열을 함께 하시어 세례를 받으심으로써 세상이 바뀌게 된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얼마나 더러운 존재인지 깨달아야 진정 회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회개의 대열 속에 몸소 들어가신 분이 오늘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의 모습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자신들의 죄를 씻어내려 들어간 그 더러운 물에 당신 자신의 온몸으로 잠기셨던 그분이 오늘 요르단 강물에서 세례를 받으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이 그 물에서 올라와 기도를 하시자 하늘이 열렸습니다


차단되었던 땅과 하늘 사이가 이제 소통하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인간의 모든 죄악을 그분이 당신 몸에 무치고 감사를 드리시는 그 순간에 하늘이 열린 것입니다. 죄 없으시면서도 당신 자신의 죄인 듯 그 죄악을 당신 몸에 씌워서 감사드린 그분 때문에 새로운 삶의 기운 즉 성령이 내리고 하늘과 땅이 화합하는 새 세상이 된 것이지요. 그러한 하늘과 땅의 화합의 사다리가 되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그분이 결국 그러한 천지 화합의 사다리처럼 땅과 하늘 사이에 매달리시게 되는 사건은 골고타의 십자가 사건이 됩니다. 십자가는 그래서 하늘과 땅을 연결하여 땅에서 하늘로 오르는 사다리인 것입니다.


그 십자가란 그래서 인간의 죄악 위에 세운 사다리입니다. 역설적이게도 십자가는 인간의 죄악으로 만들어져 하늘로 오르게 하는 사다리입니다. 십자가를 한번 새삼스런 시선으로 살펴보세요! 인간의 죄악을 모두 뒤집어쓰신 분이 당신의 온몸으로 형상을 이룬 것이 곧 십자가이지 않습니까? 그분이 그렇게 자신의 몸만들기를 시작하신 사건, 곧 인간들의 죄를 씻는 물속에 잠기시고 하늘을 향해 기도를 하신 사건을 오늘 성경이 보도한 것입니다. 죄악으로 멸망하게 된 우리 인간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주시기 위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악으로 찌든 세상에 빠뜨리신 사실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의 이 더러운 세상의 죄를 상징하여 죄악을 씻은 더러운 물속에 우리와 함께 들어가 당신 몸을 담그신 그분(미사 중 영성체하기 전에 바치는 기도의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으로 말미암아 세상이 바뀌게 된 것처럼, 우리 세례 받은 사람들 또한 세상 속에서 세상의 죄를 뒤집어쓰고 살면서 세상의 회개를 즉 세상 바뀜을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 바람으로 사랑 나눔회라는 모임을 이끌고 계신 이광석 님의 다음 시를 읽어봅니다.



물이 물을 만나 선()해지듯이

사람이 사람을 만나 물처럼 선한

세상을 만나고 싶다.

물이 물을 업고

더 큰 물길을 건너가듯이

삶의 등짐에 어깨가 처진 사람들과

주름살을 맞대고 싶다.

말을 하지 않아도

눈빛으로 말귀를 알아듣는 물,

마음을 드러내지 않아도

마음보다 먼저

제 소리를 만들 줄 아는 물,

언제나 가까이 다가가도

오래된 시집처럼

세월의 이끼를 잡고 있는 그대

물보다 아름다운 당신의 침묵에

흠뻑 젖고 싶다.

출처: 가톨릭성지 하부내포 공식 Daum 카페

http://cafe.daum.net/southnaepo/Dvt8/7



부여외산면 만수리공소 담당 하부내포 성지 윤종관 가브리엘 주임 신부

19476월 충남 부여 출생. 1960년 소신학교인 서울 성신중학교에 입학, 가톨릭대 신학부를 거쳐 197412월 사제가 되었다. 이탈리아 로마 우르바노 대학원 석사와 베를린 자유대학 박사과정 유학을 마치고 1985년 귀국해 해미 본당 초대 주임으로 6년간 성지를 조성했고, 2001년 안면도 본당이 설립되자 대전 도마동 본당 주임과 대전 서구지구장직을 2년 만에 끝내고 자청해 갔다. 열악한 환경의 안면도 사목 6년을 마친 윤종관은 2007년에 버려지고 잊혀진 하부내포 성지 전담 사제로 부임했다.

Posted by 편집장 슈렉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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