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주일, 2013년 1월 20일 오전 10시
만수리 공소 윤종관 신부
왜 술에 물 타?
대답: "우리의 작은 노력, 하느님의 전능을 이끌어냅니다."
오늘 요한복음서의 2장 1~11절에 보도된 기사를 읽어보면서 짐작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갈릴래아 지방의 '카나'라는 마을에서 어느 집 혼인잔치가 있었는데, 거기에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님과 예수님께서 참석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아마 예수님의 친척이나 잘 아는 집의 혼인잔치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성경의 보도를 자세히 보면, 예수님께서 어머니와 단 둘이서만 그 혼인 잔치에 가신 게 아니라 당신의 제자들과 함께 초대 받으셔서 가셨습니다. 아마 성대한 잔치였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제자들과 함께 초대를 받으실 정도의 집안이라면 꽤 부자 집이었을 수도 있고, 그리고 혹 이미 예수님의 제자들 중 어떤 사람의 잘 아는 집안의 혼인 잔치였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를 추측하여 우리가 짐작 할 수 있는 것은 그 혼인이 있던 집은 가난한 집이 아니라 나름 잘 사는 집이었을 것 같습니다.
이런 집안의 혼인 잔치 중에 곤란한 일이 생겼습니다. 잔치 중에 술이 떨어진 것입니다. 이게 무슨 낭패란 말입니까? 부자 집이었던 것 같은데 말입니다. 그런 와중에 성모 마리아님께서 아들 예수님께 “술이 없구나.”하고 그 낭패스런 사정을 알렸습니다. 그런 걸 보면 그 혼인집은 아마 예수님과 친척 관계라도 되는 사이인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성모 마리아님은 친척여자로서 아마 그 혼인집의 부엌(과방)일을 거들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왜냐면, 친척도 아닌 괜한 여자가 남의 집 잔치에 술 떨어진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을 게 아니겠어요?
여기서 더 희안한 일이 벌어집니다. 어머니 마리아님께서 과방 일을 거들다가 아들 예수님께 와서 술이 떨어졌다고 걱정하는 말을 하자 예수님의 반응이 너무나 생뚱맞습니다. “뭘 어쩌자는 겁니까?”하는 식의 예수님 대답인 것입니다(요한 2, 3∼4의 내용 참조). 예수님께서 아마 함께 참석한 제자들과 파티석상에서 신나게 술을 잡수시면서 흥겨워하고 있는데 어머니가 웬 김빠지는 말을 하는 것이었겠지요. 그렇지요! 잔치 집에서 흥겹게 술 마시며 부하들과 함께 떠들고 있는데, 거기 따라온 어머니가 술 떨어졌다고 말하니 “어머니, 나보고 어쩌라는 겁니까?”라고 대답한 것입니다.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요한 2, 4)라고 반문하신 걸 보면 예수님께서 어머니 마리아님께 짜증조로 반항하신 것 같기도 합니다.
저는 이런 추측을 하면서 좀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들이 똘만이들을 데리고 친척집 잔치에 와서 술을 적당히 마시지 웬 그리 일어나지 않고 계속 마시고 앉아 있느냐고 어머니께서 잔소리를 하신 것은 아닌지…, 그래서 기분 나빠진 아들이 퉁명스럽게 “잔소리 좀 그만 하세요.”라고 한 게 아닌지 싶습니다. 아마 예수님께서 사람들과 술을 지나치게 마시고 있어서 어머니 마리아님께서 걱정이 되어 그러신 게 아닌지…, 그러자 아들 예수님께서 어머니의 잔소리에 짜증나서 그리 대답하신 것이 아닌지…, 저는 그런 추측이 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 잔치 집에서 주거니 받거니 잔을 돌리면서 술을 마시다가 주정을 부릴까 염려스러운 나머지 어머니께서 “얘, 술 떨어졌다.”하신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자 아들이 “엄마, 왜 그러세요?”하면서 반항한 것 같기도 합니다.
저도 교우 분들과 술을 마시고 좀 취해서 허튼 소리로 떠들며 주정을 부린 경력이 많습니다. 제가 안면도 성당에 있던 시절에 월급 줄 식복사 둘 수가 없어서 저의 어머니를 모셔다 놓고 밥 시켜 먹고 살던 때가 있습니다. 그 시절에 제가 교우 분들과 술을 먹고 비틀비틀 들어오면 어머니께서 저에게 그런 비슷한 잔소리를 하셨습니다. “사람들, 술 안 먹고 못사나…?”하시면서요.
그런데 사실, 술은 좋은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의 항변으로 성경에 나오는 말씀을 외워두고 삽니다. ‘전도서’라고 이름 붙인 구약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술은 인생을 즐겁게 한다.”(코헬 10, 19) 술좌석을 좋아하는 저의 금과옥조(?)이지요.
그래서 오늘은 술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오늘 예수님의 첫 기적으로 소개되고 있는 요한복음서 2장의 카나 촌 혼인잔치에서 그 주제가 ‘술’이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사람들은 즐기려고 음식을 장만한다. 술은 인생을 즐겁게 한다.”(코헬 10, 19)는 성경말씀이 있듯이, 예수님께서도 카나 마을의 어느 혼인잔치 집에 가셔서 사람들과 함께 즐기시다가 그 집의 술이 떨어진 딱한 사정을 보시고 물을 술로 변하게 하는 기적으로 그 잔치의 흥을 성공적으로 돋구어주셨다는 오늘 성경의 보도 내용은 술 좋아하는 저의 엉뚱한 주장에 상당히 고무적인 내용이지요(요한 2, 1-11의 내용).
우리 속담에 “술맛이 나빠지면 도가 집 어르신네 노름한 것을 안다.”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서 ‘도가(都家)집’이란 양조장(釀造場)을 일컫는 말인데, 어째 술맛이 싱거워진 까닭이란 아마도 그 양조장 주인이 노름판에서 돈을 잃고 그것을 보상하기 위해서 그 잃은 돈의 분량만큼 술독에 물을 부어 판다는 뜻으로 이러한 속담이 생겼다 합니다. 아마 스스로 잘못한 탓을 다른 사람들이 기워 갚게 하는 얌체 짓을 비꼬는 속담인 것 같습니다.
마치 국가의 경제정책이나 경제 단체의 경영이 잘못되어 애꿎은 국민들이 세금으로 그 부실을 때우게 되는 꼴이 그런 경우인 것 같습니다. 이즈음 박근혜 당선자 측에서 노인들에게 약속한 공약에 관한 터무니를 딴 데로 돌리려는 꼼수를 부리고 있다는 뉴스입니다만, 그렇다면 술대접하겠다고 하고서는 딴 장난으로 그 술대접 받을 사람들을 속이는 경우라 할 것입니다. 술맛 떨어지게 하는 꼴이지요. 이명박 정권 5년 동안 눈에 보이는 성과란 4대강 살리는 사업을 했다는 것뿐인데, 그게 결국 4대강을 죽이는 꼴로 들어났으니, 그걸 다시 살려내려면 결국 국민들만 골탕 먹게 되었습니다. 이게 바로 도가집 어르신네 노름한 바람에 술맛이 나빠진 꼴입니다. 술통에 물만 잔뜩 탄 꼴이지요.
그런데 우리 가톨릭교회의 미사 중에 술에다 물을 타는 전례가 있습니다. 술맛 떨어지게 말입니다. 사제가 성체로 축성할 빵과 포도주를 봉헌하는 과정 중에 포도주에 물을 타서 준비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께 봉헌하는 포도주 값이 아까워서 물을 타는 것일까요? 사제가 노름이나 딴 짓을 하고 미사의 제주(祭酒)에다가 그렇게 얌체 짓을 하여 제전비용(祭典費用)을 때우는 것일까요?
고대의 유다교 관습에 포도주에 물을 타서 마시는 풍속이 있었는데, 그것은 술의 농도를 약하게 하여 마시려는 의도였다 합니다. 그런 고대의 풍속은 우리말에 복(福)은 반복(半福), 꽃은 반개(半開), 그리고 술은 반취(半醉)가 좋다는 말을 연상케 합니다. 이것은 만취(滿醉)하여 몸과 정신을 해롭게 하는 것보다는 술의 흥취를 적절히 즐겨야 한다는 뜻인 것입니다. 복(福)도 너무 넘치면 그로 인하여 화(禍)가 이르게 되고, 활짝 핀 꽃은 곧 질 때가 되어 부패의 악취(惡臭)를 뿜어내기에 이르지만 반쯤 핀 꽃은 그 아름다운 향기를 발산하는 것이듯이, 술도 반쯤 취하여 그 맛과 흥을 즐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술에 물을 탄다는 것은 얕은 수의 호도(糊塗)로 사실의 왜곡을 유도하는 짓을 일컫는 말입니다. 정치인들이 비난 받을 짓을 해놓고 여론을 헷갈리게 하는 경우가 그렇지요. 그렇듯 얌체 짓을 하는 사람들을 두고 “물 탄 막걸리 같은 소리를 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사제가 포도주에 물을 타서 하느님께 봉헌하는 것은 그렇듯 얌체 짓일까요? 어찌하여 사제는 포도주 성작에 물을 타는 것일까요?
미사 중에 제물 준비를 하는 사제가 포도주에 물을 타면서 다음과 같이 기도합니다. : “이 물과 술이 하나 되듯이 인성을 취하신 그리스도의 신성에 저희도 참여하게 하소서.”
사제가 그렇게 술에 물을 타면서 바치는 기도의 뜻을 우리는 잘 알아들어야 합니다. 이 기도는 우리 인간이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함을 뜻하면서, 성작 안의 포도주에 물이 들어가 서로 분리될 수 없듯이 우리도 참 제물로 하느님께 바쳐지시는 그리스도로부터 떨어져 나가지 않고 우리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하려는 뜻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 하면서 우리는 포도주에 붓는 한 방울의 물과 같이 우리의 사소한 노력이라도 기꺼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에 합쳐 바치고 우리의 인간적인 허약성과 부족한 점까지도 있는 그대로 하느님께서 받아주시기를 간구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우리의 작은 봉헌과 우리의 보잘것없는 희생도 위대한 그리스도의 제물과 하나 되는 기적 같은 일이 이루어집니다. 별것도 아닌 우리의 희생이 그 값없는 물 한 방울 같이 그리스도로 상징되는 포도주와 하나 됩니다. 카나 마을의 혼인잔치에서 그리스도에 의하여 물이 값진 포도주로 변하였듯이 우리도 그리스도와 같은 하느님께의 제물로 승화되어 우리 자신을 바치는 것입니다.
여기서 오늘 우리는 성모님께서 그 잔치 집 일꾼들에게 살짝 귀띔해주신 말씀과 예수님께서 당부하신 간단한 말씀에 주의를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창 잔치가 무르익을 시간에 과방에 술이 떨어져 난처해진 그 잔치 집의 일꾼들에게 성모님께서 이르신 말씀은 곧, 오늘도 교회가 신자들에게 전하는 가르침인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예수님께서 시키는 대로 하여라.”(요한 2, 5)하는 일깨움인 것입니다. 우리가 물로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 신자가 되었음은 곧, 무엇이든지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서 판단하고 믿고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우리에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간단하게 이르시는 말씀입니다. “물독에 물을 채워라.”(요한 2, 7)하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새로운 물로 즉, 우리 자신을 비우고 깨끗한 마음으로 채우고, 그 다음에 이르시는 주님의 실천 명령을 따라야겠습니다. “이제는 그것을 퍼서 과방장에게 갖다 주어라.”(요한 2, 8)하고 이르시는 말씀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퍼주는 사랑의 실천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러한 우리의 실천은 문득 하느님께서 몸소 빚으신 포도주처럼 “이 좋은 포도주가 웬일이란 말인가!”(요한 2, 10 참조)하는 탄성을 들을 정도로 놀랄만한 결과를 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기울이는 순수한 노력, 그것이 아무런 값도 없는 듯한 물 같이 보일지라도, 그것이 오로지 주님의 말씀을 따라 실천한 것이라면 주님의 값진 포도주 같이 변화되는 값어치를 발휘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작은 노력은 항아리에 신선한 물을 가득 채우듯이 오로지 순수로 실천되는 것이라면, 저 잔칫상의 사람들이 즐기게 된 그 값진 포도주처럼 우리 주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 것입니다. 거기에 우리의 작은 노력으로 우리 가운데 드러나는 하느님의 영광을 느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초에는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요한 2, 4)하시면서 그 첫 기적 행사를 거절하신 듯 하였습니다만, 무엇이든지 당신이 시키시는 대로 하는 사람들을 통해서는 당신의 능력을 결국 드러내셨습니다. 그렇듯이 아직 우리의 모든 구원이 이루어질 때가 이르지 않았다 하더라도 주님의 뜻을 따르려고 노력하는 우리 사이에 문득 하느님께서 보여주시는 당신의 영광과 우리의 구원 사건이 성취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즉 우리의 작은 노력은 하느님의 전능을 이끌어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작은 노력으로, 그러나 순수한 뜻으로, 그리고 최선의 실천으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과 하나 되는 결실을 얻게 됩니다. “이 물과 술이 하나 되듯이 인성을 취하신 그리스도의 신성에 저희도 참여하게 하소서.”하는 사제의 예물 준비 기도처럼 그렇게 살아가는 우리여야 합니다.
출처: 가톨릭성지 하부내포 공식 Daum 카페
http://cafe.daum.net/southnaepo/Dvt8/8
부여외산면 만수리공소 담당 하부내포 성지 윤종관 가브리엘 주임 신부
1947년 6월 충남 부여 출생. 1960년 소신학교인 서울 성신중학교에 입학, 가톨릭대 신학부를 거쳐 1974년 12월 사제가 되었다. 이탈리아 로마 우르바노 대학원 석사와 베를린 자유대학 박사과정 유학을 마치고 1985년 귀국해 해미 본당 초대 주임으로 6년간 성지를 조성했고, 2001년 안면도 본당이 설립되자 대전 도마동 본당 주임과 대전 서구지구장직을 2년 만에 끝내고 자청해 갔다. 열악한 환경의 안면도 사목 6년을 마친 윤종관은 2007년에 버려지고 잊혀진 하부내포 성지 전담 사제로 부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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