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주일, 2013 1 27일 오전 10시

만수리 공소 윤종관 신부


우리 가운데 늘 일어나는 일

하늘로 날아오릅시다!



오늘 우리는 미사 중에 봉독하는 성경을 들으면서 매우 감동적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 까닭은, 오늘 제1독서로 읽는 느헤미야서 8(210)과 오늘 복음으로 선택한 루카복음서 4(1421)이 매우 현장감 있는 분위기를 보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 자신들도 이 성경이 보도한 현장에 참석한 입장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자신들도 오늘의 성경 사건 현장에 참가한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까닭은, 루카복음의 11절에서, 즉 루카라는 성경기자가 성경 저술을 시작하면서 첫 마디로 우리에게 하는 말이 참으로 중요한 깨우침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 첫 마디는 우리 가운데에서 일어난 일들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미사 때마다 성경 말씀이 봉독 되면 그 성경의 현장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루카는 우리에게 자기가 전해주기 위하여 기록할 모든 사건이 우리 가운데에서 일어난 일들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루카가 이렇게 강조한 까닭이 왜일까 하는 것을 우리는 오늘의 느헤미야서 8장과 루카복음서 4장에서 깨달을 수 있습니다.


1독서 느헤미야서 8장은 바빌론에 노예로 끌려갔던 유다인들이 수십 년 만에 해방되어 고국 예루살렘에 돌아와 첫 기도 모임을 열고 사제 에즈라의 강론을 들으며 감격하여 울었다고 보도합니다(느헤 8, 2~9 참조). 그리고 이 날은 하느님께서 함께 하시는 거룩한 날, 곧 해방의 날이므로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축제를 올리는 날이 되었다고 보도합니다(느헤 8, 9~10 참조). 


바빌론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70년 동안 유다 백성들은 예루살렘에서와 같이 성전에 모여 기도할 수 없는 것이 가장 큰 서러움이었습니다. 이탈리아의 대음악가 베르디(Verdi)의 유명한 오페라 나부코(Nabucco)’ 중에 노예들의 합창(Sklavenchor)’이 그 유다인들의 바빌론 노예 생활의 서러움을 감동적으로 표현합니다. 그 합창을 참 좋아하는 저는 우리 하부내포성지의 카페 배경음악으로 깔아놓고 카페를 열 때마다 듣고 있습니다. 그 합창의 노랫말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사랑하는 조국이여, 그대를 향해 그리움이 달려가노라!(Teure Heimat, nach Dir geht das Sehnen)!” 이러한 그리움으로 끼리끼리 몰래 모여 성서를 읽고 기도하는 것이 그 70년간의 노예 생활 중 유일한 위안이었습니다만, 이제 조국에 돌아와 공식적으로 모일 수 있고 그래서 그들의 지도자 사제로부터 해 뜰 때부터 한낮이 되기까지”(느헤 8, 3) 성경 말씀을 실컷 들을 수 있음은 그들이 실감하는 해방 그 자체였던 것입니다.


몰래 성경 읽다가 들키면 붙잡혀가던 바빌론 시절, 그러나 이제는 백주 대낮에 광장에 모여서 성경 말씀을 실컷 들을 수 있으니! ! 이것이 광복이로고!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이 날의 광복선포, 이 해방선언을 들어 봅시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단 술을 마시십시오. 오늘은 우리 주님께 거룩한 날이니, 미처 마련하지 못한 이에게는 그의 몫을 보내 주십시오. 주님께서 베푸시는 기쁨이 바로 여러분의 힘이니, 서러워하지들 마십시오.”(느헤 8, 10)


이 해방선언을 들으면서 저는 우리나라의 1945815일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들은 것이 생각납니다. 일본왕(일본 사람들이 신처럼 떠받들어 천황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풀죽은 목소리를 녹음해서 라디오 방송으로 발표했는데, 그게 연합국에 대한 항복 선언이었지요. 소위 천황이라는 자가 신처럼 이른바 신풍(神風 가미카제)’으로 세계를 향하여 미친 돌격전을 하다가 항복을 했으니, 그 누구보다도 그 전범자·압제자 밑에서 수십 년 신음하던 조선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어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그날 정오의 그 항복방송을 들은 조선 사람들은 그 대낮 그 시간에 서로 눈치만 보면서 조용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서대문 형무소에 갇혀있던 죄수들(그 중에 독립투사로 잡혀있던 사람들)이 그날 저녁때 형무소에서 나와 만세를 부르며 해방을 알렸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시민들이 덩달아 거리로 나와 만세 불렀다는 것입니다. 저는 사실이 그랬는지 보질 못해서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만,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수긍이 갑니다. 일제의 폭정에 숨죽이고 살던 일반 백성들은 그 일왕의 풀죽은 항복 발표를 긴가민가했을 것입니다. 일제 수십 년간 그 위대한(?) ‘천황 폐하의 그늘에 소극적으로 길들여진 소위 황국신민들이었으니까요. 그러나 황국신민이기를 적극적으로 거부했던 소위 불령선인들즉 독립지사들은 올 것이 왔다.”라고 즉시 알아차리고 감옥을 박차고 나와 만세 불렀던 것입니다. 그러자 일반 시민들도 따라서 만세를 부를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그 815일과 똑같은 상황을 오늘 제1독서에서 보게 됩니다. 느헤미야와 에즈라가 백성들에게 큰 소리로 말하는 현장을 우리는 목격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여러분의 주님이신 하느님께 거룩한 날이니, 슬퍼하지도 울지도 마십시오. 맛있는 음식을 먹고 단 술을 마시십시오.” 이런 말을 듣고 온 백성은 자기들에게 선포된 말씀을 알아들었으므로, 가서 먹고 마시고 몫을 나누어 보내며 크게 기뻐하였다.”는 현장 보도(생 중개방송?)를 우리는 오늘 듣고 있습니다. 바빌론에서 70년 노예생활을 하던 우리가 정말 해방되어 고국에 돌아왔단 말인가? ! 정말 그렇구나! 우리의 사정 이야기를 백주 대낮 대로에서도 실컷 나눌 수 있네! 목숨 위태롭게 숨어서 소식 나누던 것을! ! 진짜네!


이러한 오늘의 느헤미야 실록을 들으면서 우리는 나자렛 안식일 회당의 그 자리에 루카의 안내로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일어나 두루마리(성경)를 펴시고 큰 소리로 읽어주십니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이사야의 예언 인용).” 이런 성경말씀을 읽으시고는 예수님께서 계속 말씀하십니다. “오늘 이 성경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서 이루어졌다.”(루카 4, 21)


그런데, 이어서 하신 예수님의 이 말씀에 대해서 저는 선뜻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성경말씀은 그렇다 치고, 그것이 여기 예배에 참석한 사람들 가운데 어찌하여 이루어졌단 말인가 말입니다. ‘성경에 씌어있는 그 옛날이야기가 주일미사에 참례한 우리들에게 갑자기 이루어졌다니, 예수님의 뻥 대단하네!’ 제가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이거 루카복음서 한국말 잘못 번역된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래서 라틴어 성경에는 뭐라고 되어있나 살펴보았습니다. 예로니모 성인께서 라틴어로 번역하셨다는 불가카(Vugata) 성경의 바로 이 대목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있습니다. “이 성경은 오늘 너희들의 귀 안에서 이루어졌다(Quia hodie impleta est haec scriptura in auribus vestris.)”


번역이 좀 이상하지요? 귀 안에서 이루어졌다?

여기서 저는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귀 안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은 이것이 옛날이야기도 아니고 앞날의 이야기도 아니고, 이 말을 듣고 있는 지금 당장 여기서 실현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언을 당신 자신에게 적용하시는 예수님께서 오신 것 자체가 벌써 우리의 구원인 것입니다. 이렇듯 희망을 잃고(가난한) 노예 살이 하는(묶인) 절망의 어둠 속에서(눈멀어서) 억눌려 신음하는 중생에게 구세주가 오셨다는 것 자체는 벌써 구원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렇게 절망으로 짓눌린 우리라면, 그런 우리에게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이제 그 구원을 우리 자신의 몸에 직접 받아들임으로써 우리의 것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문득 오래전에 읽었던 만화 생각이 납니다. 동아일보(20001218일자)에 실렸던 황중환 씨의 ‘386라는 연재만화의 다음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아주 오래전에는 새들에게 날개가 없었답니다. 새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새들은 몸집에 비하여 두 다리가 아주 가느다랗게 생겨서 걸어 다니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서 새들은 자기들에게 볼품없고 연약한 다리 두 개만을 주신 하느님을 원망하며 신세를 한탄하였답니다. 그러자 어느 날 하느님께서 새들을 불러 모으시고는 등에 지고 다니라면서 커다란 짐을 두 개씩 주셨습니다. 새들은 궁시렁거렸습니다. “에이! 가느다란 두 다리로 몸 하나 가누기도 힘든데, 왜 이런 짐까지 지고 다니라신담!” 이렇게 새들은 투덜댔습니다. 그 때 어디선지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낙엽들이 바람에 날리는데, 하느님께서 짐으로 주신 것이 새들의 등에서 나뭇잎처럼 펄럭이는 것입니다. 새들은 하느님의 명령을 어겼다가 혼이 날 것 같은 두려움으로 그 짐 두 개씩을 놓치지 않으려고, 그 짐이 펄럭이는 대로 몸뚱이를 움직였답니다. 아니!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새들의 몸이 공중에 둥둥 뜨는 것이 아니겠어요. 하느님께서 주신 그 짐을 가지고 투덜거리던 새들에게 그것은 두 개의 날개였답니다. 그래서 새들은 어디든 다리 품 팔지 않고도 자유롭게 갈 수 있는 날개를 가지고 오늘까지 훨훨 날아다닐 수 있답니다.


그렇습니다! 새의 가느다란 다리처럼 우리는 연약한 처지로 간신히 지탱하는 삶입니다. 그런데도 살기가 너무 힘듭니다. 세상에서 나에게 너무나 많은 짐을 부과합니다.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농사꾼으로서, 장사꾼으로서, 노동꾼으로서, 남의 일 맡은 일꾼으로서, 너무너무 힘듭니다. 앞이 안 보입니다. 애들 때문에, 늙으신 부모님 때문에, 늘 병에 시달리는 식구 때문에, 내 몸도 여기저기 쑤시고 기운 없는데, 수입은 밑바닥이고, 혹시나 서민정책 앞세우는 후보가 대통령 되면 나아질까 했는데 그것도 아닌 것 같고, 무슨 일을 새롭게 해보아도 잘 풀리지도 않고 빚만 들어나니 말입니다. 성당에 가 봐도 별 도움도 없이 마음 부담만 더 들고 말입니다. 성당서도 돈 내라는 말을 해대니 말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연약한 다리로 간신히 지탱하는 나의 이 모든 힘든 사정이 정말로 무거운 짐 덩어리인데, 사실 알고 보면 그게 나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고 있습니다. 날개처럼 말입니다. 식구들 때문에 힘들지만, 나라 사정이 어지럽지만, 내 몸이 말을 안 들어주지만, 그렇기 때문에 무언가를 계속 해야만 한다는 나의 각오와 노력이 곧 나의 날개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합니다. 기도란 무엇입니까? 하늘을 처다 볼 줄 아는 행위인 것입니다. 새처럼 말입니다. 그러다보면 문득 나의 삶이 붕붕 떠오릅니다. 하늘을 처다 보는 그런 기도는 새의 날개처럼 하늘을 대답으로 삼는 것입니다. 절망은 없다는 대답인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한다는 것은 늘 우리가 희망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성경말씀은 너희의 귀 안에서 이루어진다.”하고 말입니다. 이 말씀은 즉, “말씀이 들리면 주저앉지 말고 일어나라. 듣고 앉아만 있으면 뭐 하냐? 일어나 너 자신을 추슬러야, 될 것이 되는 거다.” 우리 자신의 날갯짓을 촉구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날갯짓은 곧 사랑하는 행위를 뜻합니다. 이에 대해서 오늘 바오로 사도께서 코린토 112장에 한 몸의 여러 지체를 예로 들어 설명해주고 있습니다(1코린 12, 1230 참조). 사랑의 행위를 뜻하는 날갯짓이란 하느님께로부터 하사받은 우리 삶 속의 짐을 믿음으로 놓치지 말고 짊어지는 일인 것입니다. 그러한 믿음의 힘으로 사랑을 실천할 희망을 가지고 우리는 세상이라는 이 땅 위에서만 집착하지 않고 비상(飛上)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믿음과 사랑과 희망에 대하여 다음주일에는 바오로 사도께서 코린토 113장에 설명하면서 사랑을 특찬 하는 말씀을 하실 것입니다.


우리 귀속에 들려온 예수님의 구원 선포로 우리는 지금 그렇게 절망의 굴레를 끊고 천상의 행복을 향하여 눈을 뜨고, 우리를 짓누르던 세상 부조리의 짐을 벗어버리며, 그분이 제시하시는 곳으로 날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소망으로 사랑의 짐을 지고 날 수 있도록 주님 앞에 우리의 날개를 활짝 폅시다. 즉 우리의 믿음을 고백하며 실천합시다. 그런 믿음 실천이라면,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늘 우리 가운데에서 일어나는 일’(루카 1, 1,)입니다.

 

출처: 가톨릭성지 하부내포 공식 Daum 카페

http://cafe.daum.net/southnaepo/Dvt8/9



부여외산면 만수리공소 담당 하부내포 성지 윤종관 가브리엘 주임 신부

19476월 충남 부여 출생. 1960년 소신학교인 서울 성신중학교에 입학, 가톨릭대 신학부를 거쳐 197412월 사제가 되었다. 이탈리아 로마 우르바노 대학원 석사와 베를린 자유대학 박사과정 유학을 마치고 1985년 귀국해 해미 본당 초대 주임으로 6년간 성지를 조성했고, 2001년 안면도 본당이 설립되자 대전 도마동 본당 주임과 대전 서구지구장직을 2년 만에 끝내고 자청해 갔다. 열악한 환경의 안면도 사목 6년을 마친 윤종관은 2007년에 버려지고 잊혀진 하부내포 성지 전담 사제로 부임했다.

Posted by 편집장 슈렉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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