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2013 2 10일 오전 10시

만수리 공소 윤종관 신부


설날의 기도가 일년 내내 이루어지기를..!

오늘의 축원이 모두에게 축복이기를..!



계사년(癸巳年) 새해를 맞이하여 모든 교우님들의 가정에 축복을 기원합니다. 뱀띠의 해라는 계사년이 사실상 오늘 설날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띠를 말하자면 사실상 음력으로 따져야 맞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제 29일에 태어난 아기라면 뱀띠가 아니고 용띠입니다. 오늘 태어나는 아기가 있다면 곧, 뱀띠이지요.


올해를 계사년이라 하는 까닭은 오랜 우리 동양의 전통적 역법에 따라 60년 만에 한 번씩 오는 해의 이름이지요. 60년을 일컫는 육갑은 1012지로 엮어지는데 그 12지에 해당되는 열두 가지 동물로 띠를 정하여 그에 따른 띠가 12년 만에 한 번씩 오지요. 그 띠에 대한 속설들이 있습니다만, 저는 그 속설 자체가 의미가 있다 하기보다는 그 띠에 해당되는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 그 해의 특별한 축복을 빌어주는 것이어야 아름다운 새해맞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이틀 전에 이곳 제가 사는 만수리 동네 사람 몇 분들과 임진(壬辰)년을 마감하는 송년 겸 새해 계사년 맞이를 위해서 파티를 한 일이 있습니다. 용의 해를 마감하고 계사년 뱀의 해를 맞이하기에 앞서서 용 비스름하기도 하고 뱀 비스름하기도 한 뱀장어로 안주 삼아 술 한 잔씩 하기로 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민물 장어는 너무 비싸고 하니 바닷장어로 하기로 하여 갯장어 몇 마리 구해다가 동네 아저씨들과 즐긴 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계사년 원단(元旦)을 맞이하여 뱀에 대한 이야기부터 꺼내봅니다.


작년 임진년은 용띠의 해였기에 용띠라는 박근혜 씨가 대통령 당선 된 것 같기도 합니다만, 용이 괜스레 용이 아닌 것이지요. 그게 생긴 건 뱀 같으면서 다리가 달리고 이상스레 날개 같은 것도 달린 것 같은데, 그건 아무도 실물을 본 일이 없는 상상의 동물이거든요. 우리말에 개천에서 용 난다라는 말이 있는데, 개천이 있어야 용도 나올 수 있습니다. 우리의 흔한 지방 전설에 따르면 어느 개천의 좀 으스스한 곳엔 용이 하늘로 올라간 곳이라는 등의 형상이 야릇한 물구덩이나 바위 구멍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런 곳은 뱀이 나올 만한 곳입니다. 뱀은 대개 너덜 같은 돌무더기가 많은 곳에서 동면하다가 봄볕 따스할 때 기어 나오거든요. 땅속에서 동면하던 개구리가 뛰어 나오면 그걸 경칩(驚蟄)이라 하는데, 그게 양력으로 3월 초순입니다. 그런 경칩 계절이 확실한 봄의 징후인데, 개구리는 방정맞게 튀어나오다가 못된 사람들한테 보신용으로 잡혀 죽습니다만, 뱀은 슬며시 봄볕을 타고 나와서 껍질 벗고 자신의 삶을 찾아 사람 눈에 띄지 않게 번식하러 갑니다. 그러므로 뱀은 슬기롭게 처신하지요. 그래서 성경에 뱀을 슬기롭다고 일컫기도 한 것 같고, 사실은 사막지대의 중동 지역에서 영물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뱀은 건조한 사막에서든 그리고 물이 많은 습지에서든 적응하여 사는 동물이라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견하실 때 그들을 마치 이리 떼 가운데 보내시는 것처럼 걱정하시면서 뱀처럼 슬기롭게처신하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만(마태 10, 16 참조), 사실 성경에 뱀에 대한 언급은 모두 교활하고 해독을 품은 동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큰 뱀은 용을 뜻하는 것이 성경의 표현입니다. 중국문화권의 영향 하에 있는 우리 동양 문화권에서는 용을 상서로운 동물 혹은 권세 상징의 상상 동물로 여깁니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비현실적 지향성으로써 하늘과 땅 사이를 아우르는 신령성의 상징일 뿐입니다. 그러나 뱀은 현실적으로 우리가 사는 땅을 기어 다니는 것으로써 매우 간교함을 형상화 하는 동물입니다. 그래서 뱀은 매우 조심해야 할 동물인 반면 그러한 뱀의 생존에 어떤 신령성이 깃들어 있는 것처럼 여겨서 함부로 대하면 아니 되는 것이면서도 어떤 강력한 생명력을 지닌 것으로 여겨지기도 해서 속물적 보신 탐식가들이 섭취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뱀의 해 계사년을 오늘 맞이하면서 저는 뱀띠에 해당되는 모든 분들에게 올해가 특별히 좋은 한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뱀처럼 슬기롭게이 한해를 잘 지내시고 보람을 찾으시되, 주변을 스치면서 마치 용이 승천한 자국을 남기듯이 주위의 사람들에게 그런 식으로 행운을 꿈꾸게 하는 역할을 하라고 당부 드리고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작년 용띠의 해에 대통령 당선 된 분이 우리 국민들에게 행운을 가져다주는 역할을 하고, “개천에서 용이 나온다는 말처럼 낮은 물이 흐르는 개울 바닥 같은 우리네 어려운 실정의 세상 바닥에서 국민들의 보다 나은 삶의 꿈이 펼쳐지기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개천에서 용이 나오는 세상이어야 기회가 균등한 사회이거든요. 먼저 힘을 가진(기득권의) 권세가들(용들)의 세상이 아니라 땅바닥을 기듯이(뱀처럼) 세상 바닥에서 살자고 허덕이는 사람들의 행복이 보장되는 곳, 그곳이 개천에서 용 나오는 세상입니다.


우리네 속설에 따라 12년 만에 한 번씩 자기 띠의 해를 맞이합니다. 살아 있으면 누구나 적어도 12년 만에 한 번은 자기의 세상을 맞이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서 그에 걸맞은 특별한 축복의 덕담을 다섯 번 듣다보면 회갑이 되어 자신의 태어난 해를 다시 만나게 되지요. 그게 환갑이지요. ‘환갑이라는 게 뭡니까? 자기 태어난 해를 맞이한다는 것이지요. ‘환생한다는 뜻일까요? 그러므로 새봄에 뱀이 허물을 벗듯이 새로운 해를 맞이하면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삶을 성숙시켜 간다고 저는 생각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우리 속설에 섣달그믐밤을 잠자지 않고 지내야 눈썹이 희어지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 ‘이라는 명절의 이름이 삼가는 날또는 사리는 날이라는 뜻이라는데, 아마 삼가면서 깨어 있는 자세로 새해를 맞이하지 않으면 팍 늙어버린다는 의미에서 섣달그믐밤에 잠자지 마라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저는 일부러라도 섣달그믐밤에서 정월초하루 새벽으로 건너오면서 이 설날의 강론 원고를 씁니다. 그래야 제가 하고 싶은 말이 실감날 것 같아서 그리합니다. 왜냐면 값없이 한해에서 다른 한해로 넘어가는 나이를 먹고 싶지 않거든요. 값을 내면서 그 제야(除夜)를 해야만 원단(元旦)을 바라보면서 새롭게 기운이 솟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깨어서 즉 사리면서 이 새해를 정신 차려 조심스럽게 맞이하라고 올해의 설날을 이렇게 매서운 추위 속에 맞이한 것 같습니다.


그렇게 오늘 이 설날은 조심하여 경거망동을 삼가는 날이라는 뜻의 신일(愼日) 사리는 날이라는 뜻으로 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날이듯이 오늘 미사의 제2독서 야고보 사도 말씀에서 우리는 안개와 같이 사라져버릴 존재이기에 하느님께서 허락하시는 삶을 살도록 늘 조심스런 생활을 해야 함을 다짐하게 됩니다(야고 4, 13-15 참조). 얼어붙은 눈길을 조심하듯이 그렇게 새해의 길을 걸어가라는 뜻으로 오늘 이렇게 강추위 속에 새해 첫날이자 주일을 맞아 교우님들께서 미사를 봉헌하러 오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조상들의 속설에 눈이 많이 내린 겨울을 지나 정초를 맞이하면 풍년이 든다 하는데 작년과는 달리 올해엔 우리나라 국민의 삶이 풍요로워지기를 기원하면서 오늘의 이 명절 미사성제를 올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우리 민족이 오래 전승하여 온 바대로 이 설날에 덕담으로 서로에게 축복을 빌어줍니다. 그렇게 진정으로 서로 비는 마음을 오늘 제1독서의 민수기를 읽으면서 지니게 됩니다. 모세가 자기 백성을 위해 복을 빌어주도록 당부하신 하느님의 말씀을 우리는 듣는 것입니다(민수 6, 22-27 참조).


그러면서 오늘 예수님께서 루카복음서에 말씀하신 바대로 항상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자세여야 행복을 얻는다는 깨우침으로(루가 12, 38 참조) 한해를 또한 살아가기로 더욱 다짐하게 됩니다.


그리고 오늘 이 명절에 우리는 조상들을 기리며 그들을 위한 미사성제를 봉헌합니다. 그 까닭은 우리가 오늘 이렇게 있을 수 있음은 조상들의 음덕(蔭德)임을 잊지 않기 때문입니다. 음덕이란 무엇입니까? 우리가 사는 게 다 조상들의 그늘 아래라는 것입니다. , 나를 뼈와 살로 태어나게 생명을 물려주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는 이 땅을 지켜 물려주었고, 우리 삶의 방식 즉 정신적 가치 체계와 도덕적 가르침과 문화를 형성하여 물려주었으며, 더욱 참 인간으로의 삶이 되게 하는 신앙을 전해준 조상들의 덕인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어제 섣달그믐에 저의 가문 선산을 찾아 조상들 묘에 절을 올리고 기도하면서 저에게 그분들께서 물려주신 음덕 가운데 특별히 가톨릭 신앙의 가문을 이루어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하면서 기도했습니다. 그 묘역 가운데 6대조 할아버지께서 천주교 신앙을 시작하셨다는 저의 가문 전승을 기억하여 그분 묘 앞에서 한참 동안 하늘을 쳐다보았습니다.


우리 각자는 자신의 가문에서 직접적인 혈통의 조상들을 기립니다만, 오늘 같은 명절에는 더욱 넓은 시각으로 가문의 조상 말고도 우리 선대의 모든 분들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억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명절 풍습은 그래서 우리가 각자 자기 가문의 조상뿐만이 아닌 우리 선인(先人)들 모두를 기리게 합니다. 이러한 마음으로 저는 오늘 설날 미사를 봉헌한 후에 서짓골 순교성인 안장지를 찾아가서 성묘를 할 계획입니다. 비록 그곳이 외교인들의 토지라서 아직 봉분 묘를 만들어 드리지 못하였더라도 제가 후손으로서 찾아왔습니다하면서 절을 올릴 것입니다.


우리 각자가 자기 가문의 조상만을 기억하는 일이라면 굳이 오늘 같은 명절이 아니라도 각자 조상의 제삿날(忌日)을 지내는 것으로 충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같은 명절에는 모든 사람이 함께 조상들을 기리게 되는 의미로 합동 위령 미사를 봉헌하듯이 우리네 모든 선인들을 기리는 날입니다. 달리 설명을 드리자면, 오늘 이 명절은 김씨 박씨 이씨 최씨 등등 모든 성씨의 온 백성이 보편적으로 조상을 기린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우리 모두 하나하나가 정신적으로 한 유대임을 깨닫고 모두의 행복이 각자의 행복임을 일깨워주는 날이 이 설날입니다. 그래서 이 설날의 명절 음식으로 동그랗게 떡을 썰어 넣어 끓인 떡국을 먹는 까닭은 우리 모두 둥그렇게 하나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미사를 봉헌하면서 제 가문의 조상들과 더불어 우리 공소의 각 신자 가정마다 기억하는 조상들뿐 아니라 제가 어렸을 적부터 저의 고향 동네에서 이런 명절에 저의 세배를 받으시며 저에게 진심으로 덕담을 베풀어 주시던 모든 돌아가신 동네 어른들을 함께 기억하는 기도를 드리고 싶습니다. 또한 직접적으로 저의 성장과정과 지금까지 살아온 생의 역정에서 가르침과 보살핌을 주신 스승들과 은인들 그리고 간접적으로 알게 모르게 저에게 마음을 써주신 모든 선인들을 기리는 마음으로 오늘의 기도를 드립니다. 그리고 특별히 순교성인들의 안장지를 찾아가 그분들 덕분으로 내가 이렇게 자그마한 신앙의 은혜로 살고 있음을 감사드려야겠습니다.


그러한 견지에서 이 명절은 우리 민족 공동의 축제이자 우리 모두가 하나의 신앙 안에서 커다란 가족임을 느끼게 하는 날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복을 빌어주고, 그리고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또 일일이 다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축복을 비는 것입니다.


진정 서로에게 감사하고 서로의 복을 빌어주며 또 한해의 삶을 진정 서로 모두에게 행복이 깃들도록 조심스런 배려로 대하며 새로운 한해를 함께 시작하는 오늘 이 설날은 참으로 아름다운 날입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가 이렇게 지내는 이 고유한 명절 자체를 하느님께서 우리 민족에게 주신 은총의 날로써 감사드립니다. 그러한 은총에 대하여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오늘을 시작으로 하여 우리는 더욱 한 해 동안 늘 하느님께 감사드릴 수 있는 날들이 계속되기를 모두에게 축원합시다. 오늘의 축복이 곧, 한 해 동안 내내 이루어지는 축복이기를 소망하여 주님께 기도하기로 합시다.

 

출처: 가톨릭성지 하부내포 공식 Daum 카페

http://cafe.daum.net/southnaepo/Dvt8/11



부여외산면 만수리공소 담당 하부내포 성지 윤종관 가브리엘 주임 신부

19476월 충남 부여 출생. 1960년 소신학교인 서울 성신중학교에 입학, 가톨릭대 신학부를 거쳐 197412월 사제가 되었다. 이탈리아 로마 우르바노 대학원 석사와 베를린 자유대학 박사과정 유학을 마치고 1985년 귀국해 해미 본당 초대 주임으로 6년간 성지를 조성했고, 2001년 안면도 본당이 설립되자 대전 도마동 본당 주임과 대전 서구지구장직을 2년 만에 끝내고 자청해 갔다. 열악한 환경의 안면도 사목 6년을 마친 윤종관은 2007년에 버려지고 잊혀진 하부내포 성지 전담 사제로 부임했다.

Posted by 편집장 슈렉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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