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32일 오후 6시 10분경 명동에 도착했다. 오자마자 명동성당과 가톨릭 회관을 배경으로 사진을 여러컷 찍었다. 스마트폰으로 촬영된 여러 장의 연결된 사진들은 구글+ 사진에 자동업로드되어서 파노라마 사진으로 재구성된다. 놀라운 기술력이고, 아래와 같은 파노라마 사진이 자동완성된다. 

2015년 3월2일(월) 오후 6시 10분 경 가톨릭회관과 명동성당 전경


골목길 한 구석에 숨어있는 순대국밥 집에서 6,000원짜리 국밥을 한그릇 먹었다. 벌써 네 번째다. 지난 주는 기차를 시간에 맞춰 간신히 잡아탄 까닭으로 저녁을 걸렀다


6천원짜리 순대곰탕은 여느 순대국과는 약간 다르다. 맛은 좋다. 


명동성당 건너편 좁은 골목길에 있는 집. 젊은(?) 할머니 두 분이 주방과 홀에서 조화롭게 협업중이다.  


톨릭회관 3층 대강당. 640분경 도착했는데, 아직은 사람이 많지 않았다.  편에 자리를 잡고 강의들을 준비를 했다. 아래 사진은 6시 40분 경에 촬영한 강의장의 모습


 

가톨릭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에서 진행하는 제109차 사회교리학교가 2월 2일(월)부터 13주간에 걸쳐 <기본과정> 강의를 개최 중에 있다. 서울 중구 명동2가 1번지 가톨릭회관에서 매주 월요일 저녁 7시부터 하루 2시간씩 열리는 이번 강의는 5월 4일(월)을 끝으로 13회의 모든 강의를 끝낸다. 필자는 그동안 4번의 강의를 꼬박꼬박 들었다. 3월 2일(월)은 다섯번째 시간으로 강의제목은 <사목헌장(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이고, 박정우 가톨릭대 성신교정 신부님이 강사로 나섰다. 다음은 제5주차 수업인 2015년 3월 2일(월) 오후 7시부터 9시까지 열린 강의 중 1교시 노트이다. 

 

다음 내용은 강의 정리자의 기억과 기록을 바탕으로 재편집된 것이며, 부정확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실제 강의와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사회교리주간기도문으로 강의시작 


 박정우 후고 신부님(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교수)


저는 지금 혜화동 성신교정 교수신부로 있습니다. 91년 사제품을 받고 잠원동 보좌신부를 하다가 공부를 좀 잘하긴 했지만, 좋아하진 않았어요. 그래서 가고 싶지는 않았지만 교구에서 가라고 해서 예수회가 운영하는 미국 뉴욕의 포담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2004년 귀국했습니다.



그 뒤로는 양천구 목동성당 부주임을 1년 반 정도 하다가, 공부를 했기에 학교로 들어갈 줄 알았는데, 황우석 사태가 생기면서 생명위원회 사무국장을 하라고 해서 2005년부터 5년정도 있었는데, (서울) 교구청에서 제가 눈에 띄니까 이거저거 시키는 겁니다. 그런데 당시에 이기우 신부님이 정의평화 위원장이셨어요. 그래서 이기우 신부님이 위원장이셔서 저에게 너 미국에서 공부하고 왔으니, 사회학 강의하라! 그래서 정평위에 들어와서 사회교리 강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이기우 신부님이 갑자기 외국을 나가신다고 하시년서 3년 동안 정의평화위원회 활동을 하게 되었고, 주교회의 총무를 서울교구 위원장이 겸임한다고 해서 정의평화위원회 활동과 함께 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이번 과정의 강의에 앞서 기도를 드리는) 사회교리 주간기도문을 2011년 제가 만들었어요. 그러면서 이 문헌편 말고, 고동색 표지로 되어있는 주제편도 제가 기획해서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자랑을 하면서 (좀 멋적어하시면서) 하하! 시작하겠습니다.

 

사회교리는 신학생 때 배우긴 해요. 하지만 그 때는 어린 나이에 사회도 잘 모르고, 공부와 시험을 위해서, 여러분 학생 때와 마찬가지로, 그래서 다 잊어버려요. 그러다가 정의평화위원회 소임을 맡으면서 다시 공부하고 보니, 정말 중요하구나! 그러다가 이명박 정부 들어서서 주교회의 총무 6년을 했어요. 이명박 전 대통령과 임기가 비슷했는데, 그 당시에 용산참사, 제주도 해군기지, 쌍용차, 이런저런 곳 쫓아다녔어요. 사실 성향은 그렇기보다 집에 있는 성품인데, 소임상 그런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지금은 후배들에게 다 물려주고 신학교에서 어리고 아름다운 학생들에게 사회교리 강의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2015년 3월 2일(월) 저녁 6시 58분. 강의시작을 준비하는 박정우 후고 신부님과 수강생들


사회교리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사회교리란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강의에 들어오실 때마다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이야기를 들으셨겠지만, 그건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교회가 잘못하고 게을렀던 측면이 있습니다. 예비자 교리 때 그리스도의 실천부분에서 다뤘어야 하는 부분이 바로 사회교리입니다. 특히 십계명 할 때 다뤘어야 할 부분인데, 옛날 교리서엔 잘 안되어 있었어요. 물론 우리 탓만은 아닙니다. 바티칸에서도 사실은 교리서에서 그런 부분이 잘 안되었을 때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이 표준교리서 건의를 받아들여서 1992년에 전세계 교회가 표준으로 쓸 수 있는 가톨릭 교리서를 받아들여서 사회교리가 반영된 가톨릭교회 교리서가 만들어졌습니다. 굉장히 늦죠.

 

여러분 중에 1992년 이전에 세례 받으신 분들도 많겠죠. 그런데 1992년에 표준교리에 사회교리 부분 특히 십계명. 예를 들어 7계명은 '도둑질하지 마라'인데, 그것은 구체적으로 경제에 관한 얘기입니다. 경제윤리에 대한 얘기가 나옵니다. 



일곱째 계명은 이웃의 재산을 부당하게 빼앗거나 차지하거나 어떠한 형태로든 이웃에게 재산상의 손해를 끼치는 것을 금한다. 이 계명은 현세의 재물과 인간 노동의 결실에 대한 관리에서 정의와 사랑을 명한다. 그리고 이 계명은 공동선을 위해서 재산의 보편적인 용도와 사유 재산권을 존중할 것을 요구한다.(「가톨릭교회 교리서」,2401항), 



4계명 역시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것은 단순히 효도만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권위나 권력과 관련된 것인데요. 그런 게 제대로 우리말로 번역된 것은 2004년입니다. 2004년 번역되면서 기존의 우리 교리서도 조금씩 개편되며 사회교리 부분이 반영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넷째 계명은 사회 안에 있는 다른 관계들도 명확하게 해 준다. … 고용주와 고용인, 통치자와 시민 사이의 올바른 관계는 정의와 형제애를 추구하는 인간의 품위에 맞는 본성적인 선의를 전제로 한다.(「가톨릭교회 교리서」, 2212-13항) 공권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은 봉사하기 위해 이를 행사해야 한다. … 아무도 인간의존엄성과 자연법에 어긋나는 것을 명령하거나 입법화할 수 없다.(2235항)



어떤 태도와 가치관으로 살아야 할 것인가?


사실상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환경 평화 등이 우리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서 그런 각 부분에 대해서 우리가 어떤 태도와 가치관으로 살아갈 것인가. 이것은 교리 배우면서 함께 고민하고 배웠어야 할 내용들이었습니다. 단지 내가 성당 나가서 하느님한테 잘 보여서 복을 받고, 그저 남편 직장 잘 되고 가족이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성당에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얼마나 한 인간으로서 진실하게 또 더욱 영적인 문제와 근원적인 문제에 대해서 고민하면서 진실하고 의미있게 이 삶을 살 것인가?' 그러면서 '절대자를 찾고 그 안에서 내가 정말 영적으로 충만한 삶을 살 것인가?' 이러한 것들을 함께 고민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그래서 2004년 나온 개편 교리서는 사회교리 내용을 반영되었습니다. 그래서 최근에 공부하시는 분들은 사회 교리를 많이 접하실 것이고, 최근에는 주교회의에서 결정되어 견진교리에 사회교리 내용이 대폭 강화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도 사회교리가 중요합니다

 

1891년의 <새로운 사태>가 시작이다


1891년 선포된 <새로운 사태>에서 레오 13세 교황님이 산업 혁멱 이후에 유럽이 겪은 노동의 문제에 대해서 시초로 말씀하신 것은 구체적 사회문제를 복음의 빛에 비추어서 보았을 때, '이것이 올바른 것이고, 이것이 하느님의 뜻이다.'라고 했던 것이죠. 인간의 존엄성. 돈보다 사람이 중요하다. 노동자도 인간이다.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 국가는 당연히 공동선을 위해서, 정의를 위해서, 그리고 양 계층이 조화롭게 살기 위해 국가와 교회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신 것으로 이미 배우셨죠. 그 이후에 그 전통을 이어받아 급변하는 사회에 교회가 적극적으로 복음에 비추어, 복음적 가치에 비추어 어떻게 성찰하고 판단하고 실천해야 하는지 계속 지침을 주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그러다가 교회가 조금씩 바뀌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결정적으로 교회 모습이 바뀐 것이 바로 1960년대 있었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입니다그래서 오늘 배우는 사목헌장이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발표한 16개 문헌 중 가장 중요한 4개의 헌장 중 하나입니다그래서 제2차 바티칸에 대해서 여러분이 잘 알아야 하고, 따라서 사회교리학교를 수강한 분들은 이 책 공의회 문헌집을 반드시 갖고 있어야 합니다. 

 

4대 헌장 ... 전례, 교회, 계시, 사목헌장


교회에서 성서와 교리서 다음으로 가장 많이 봐야할만큼 중요한 문헌이 바로 이것입니다우리 교회가 현대세계에서 무엇을 가르치는지, 교회가 누구인지, 그리스도인이 누구인지, 평신도, 성직자 수도자가 누구인가 그런 정체성을 질문하고, 나름대로 전세계 주교님들과 교부들이 모여서 4년 동안 논의하고 토론하고 투표하고 만들어낸 문헌입니다. 공의회 문헌 주제는 전례에 관한 것, 교회, 그리고 계시 즉 하느님의 계시, 우린 무엇을 믿는가 그리고 사목헌장 이렇게 4개가 헌장입니다. 전례헌장, 교회헌장, 계시헌장, 사목헌장. 이것이 가장 중요한 4대 헌장입니다. 


교령, 선언이라고 부르는 것


그 다음에 교령이라고 부르는 것인데, 매스미디어라고 하는 사회매체, 동방 가톨릭교회, 그리고 일치 운동, 특히 갈라진 형제인 개신교 내지 다른 그리스도교와의 일치, 그리고 주교에 대한 교령, 그리고 수도생활에 관한 교령, 여기 계신 수녀님들은 수도생활에 관한 교령을 다 공부하셨을 겁니다. 그리고 사제 양성에 관한 교령, 평신도 사도직에 관한 교령, 교회 선교활동에 관한 교령, 사제생활에 관한 교령, 그리스도인 교육에 관한 선언, 비그리스도교와 교회의 관계에 관한 선언, 즉 우리는 타 종교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그리고 종교 자유에 관한 선언 등 선언이라고 불리는 건 3, 헌장 4, 나머지는 교령이에요.


가장 중요한 『사목헌장』의 원래 제목은?


그래서 헌장, 교령, 선언 순으로 중요합니다. 이걸 읽어보면, 가톨릭교회가 어떤 것이구나. 교회가 믿는 게 무엇이고, 교회구성원이 어떤 사람이고, 이런 정신으로 살아가는구나. 그걸 다 이해할 수 있습니다. 현대 카톨릭시즘의 총체를 담은 게 이 문헌인 것입니다. 그 중에서 공의회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사목헌장입니다. 그런데 <사목헌장>의 원래 제목은 <현대 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헌장>입니다. 현대세계! 교회는 이천년간 있어왔지만, 오늘날 현대 세계 안에서 교회는 어떤 사명을 띠고 있는가? 그런데 '사목'이란 단어는 'pastoral'(패스터럴, 사목), 개신교에서는 '목회'라고 번역하는 데, '목'(牧)은 '양을 친다'고 하거나 기른다고 할 때, 쓰는 용어니까, 신자들을 돌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목헌장은 단지 신자들만을 위한 책이 아닙니다. 전 세계의 선량한 뜻을 가진 모든 사람들에게 교회가 제시하고 손을 내밀며 대화하자는 것 혹은 초대한 것입니다


다른 문헌과는 다른 사목헌장


그래서 다른 문헌과 성격이 다릅니다. 다른 문헌은 딱딱하고 교훈적이라면, 이것은 에세이같은, 철학적 에세이, 세계 현상에 대해 함께 고민해가는, 그러면서 모든 인류가 더불어 살아가면서 인간적 세상을 만들자는 초대 분위기의 글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대해서


2차 바티칸 공의회 얘길 먼저 하겠습니다. 언제 열렸냐면 1962년 시작해서 1965년 끝났습니다. 그래서 1962년 10월 11일부터 1965년 12월 8일까지 진행되었습니다. 그래서 올해가 공의회 폐막 50주년입니다. 2012년에 개막 50주년이라고 해서 공의회에 대한 얘기를 많이 했고요. 올해는 폐막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4년 동안 맨날 회의한 게 아닙니다. 그것은 회기가 있었어요. 1회기부터 4회기까지 보통 10월부터 12월에 모입니다. 정작 주교님들이 모여서 어떤 주제로 토론한 것은 두달 내지 세달 그 정도고, 나머지는 정리하고 준비하는 기간이었어요. 그래서 1962년 10월에 처음 열렸고 총 4회기에 걸쳐서 회의가 진행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회의 소집한 교황님이 바로 요한 23세 교황님이셨어요. <지상의 평화>, <어머니와 스승> 이 두 회칙 쓰신 분입니다. 얼마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과 성인으로 선포되신 분이죠.

 

많은 이들이 사랑했던 시골아저씨 요한 23세 교황


요한 23세 교황은 진정 전 세계의 많은 신자들뿐만 아니라 비신자도 사랑했던 교황님이십니다. 보통 교황님은 로마의 귀족 출신들, 전통있는 가문에서 선출합니다. 그런데 이분은 가난한 농부의 아들, 시골출신이셨어요. 그래서 의외였던 것이죠. 이 분이 바티칸의 핵심 요직에 있던 분이 아니고, 주로 변방에 있던 분이었어요. 특히 터키나 불가리아 등 동방교회 쪽 외교관 출신이셨습니다. 그러다가 마지막 파리에서 프랑스 주재 대사를 하셨죠. 그러다가 뒤늦게 베네치아 추기경으로 계실 때 선출된 연세가 78세였다고 해요. 비오 12세가 서거하셨을 때, 그 당시 추기경 많지 않았어요. 70 여명 되었는데, 그 분들이 모여서 할 때 보통은 누가 교황이 될 것인지 어느정도 합의가 되었는데, 비오 12세 돌아가시던 당시는 합의할만한 적당한 인물이 없었던 것 같았어요. 그래서 별로 튀지 않고, 연세도 많은, 그래서 임시 교황 역할할 만한 기껏해야 몇년 못 살만한 요한 23세를 뽑았다고 해요. 키도 작고, 이웃집 아저씨 같은 이 분이 가톨릭 교회를 확 바꾸어놓을 대 사건을 일으킬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해요1958년 선출이 되고, 1959년 1월 25일 전에 '교회일치 주간'에 바오로사도의 회심 축일 그 미사 때, 미사 끝나자 마자, 공의회를 열어야되겠다 발표하십니다. 왜 그런 생각을 하셨냐고 하니, 그냥 성령께서 이끌어주신 것이다. 그런 생각 들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언제인지 모르지만, 바티칸의 창문을 열어야되겠다 공기가 답답하다. 신선한 공기를 교회 안에 들어오게 해야겠다. 이런 말씀도 하셨다고 해요. 여기 계신 분들이나 저나 60년대 초반의 시절을 경험하신 분이 많지는 않겠지만, 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의 교회 분위기는 지금과 굉장히 많이 달랐습니다. 1500년대에 한차례 종교개혁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중세의 가톨릭 교회는 부패해있었고, 그래서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에 가톨릭 안에서도 개혁의 바람이 불었습니다. 정신을 차린 것입니다. 그렇게 외부의 공격을 받다보니, 그 와중에서 공의회의 필요성을 느끼면서 그것을 통해 가톨릭의 체제를 정비하고, 제도를 개혁하는 등의 변화를 이끌어낸 것입니다. 공의회가 개최가 됩니다.

 

트리엔트(트렌트) 공의회로부터 450년 후


트리엔트 공의회(1545-49년)의 제1차 회기 모습... 30여 명의 주교와 소수의 루터교 신학자들이 참석한 제 1차 회기의 모습이다. 후반부에 250여명의 청중이 들어오기도 했다고 한다. 트리엔트 공의회는 가톨릭 교회와 개혁자들 사이의 갈라진 틈을 메우지는 못했지만, 1960년대까지 가톨릭 교회 내에서 유효했던 종교적.실천적 조항들을 결정하였다.


그래서 1545년부터 종교개혁의 공격 내지는 혼란을 정리하기 위한 공의회가 열리게 됩니다. 그렇게 트리엔트(트렌트) 공의회에서 여러가지 사항들을 정비하게 됩니다. 정비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공의회 이후로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정해진 가톨릭 교회의 시스템이 별로 변하지 않았던 겁니다. 그런 모습으로 20세기까지 온 겁니다. 450년 가까이 흘렀죠. 그런데 세상은 어떻습니까? 르네상스가 있고 자연과학이 발달하면서, 계몽주의가 등장하고 인간의 이성이 중요해졌습니다. 그리고 사회는 급격히 변화하고, 개인의 존엄성, 인권, 자유주의 등의 개념이 쏟아져나옵니다. 그런데 급박하게 사회가 변하는 가운데 변하지 않는 것은 교회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점점 교회는 사회와 구분되고 유리되는 듯한, 더군다나 미사도 라틴어를 공용어로 쓰면서 미사도 라틴어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라틴어를 이해하는 사람사람은 별로 없었고, 그러면서 전례의 복잡성에 대한 비판 등이 일어나면서 전례 간소화를 주장하는 전례 개혁 운동도 일어난 것입니다. 그 와중에 이런저런 문제 다 함께 논의해보자. 그러면서 공의회 소집을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교황은 '이 공의회는 인류의 일치와 평화를 추구하고, 현대 세계 안에서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어떤 사명을 갖고 교회가 살아가야 할까를 함께 논의하는 공의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똑같이 반복하려고 모인 게 아니다


과거 공의회를 열 때는 이단이 생겨서 그 이단을 단죄한다든지, 그런 교회 내적 이유로 공의회가 열렸다면, 이건 성격이 달라서, 세상과 대화하기 위해서 그리고 교회를 현대화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공의회를 처음 준비했던 위원들, 교황청 내 고위성직자들은 '왜 공의회를 해야하는지?' 이해를 못했어요. 그러면서 초안을 준비했던 위원들은 기존의 교회의 모습을 그대로 확인하는 약간은 보수적인 준비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공의회는 정말 성령의 이끄심이란 게 드러납니다. 실제 공의회가 열리면서처음 교황청의 고위 성직자 각 성(省)이라고 하죠. 성 장관 중심으로 위원들이 만든 초안들이 다 교부들이 의해서 거부당한 겁니다. 우리가 똑같이 반복하려고 모인 게 아니다. 그러면서 완전히 초안이 뒤집히고 좀더 진보적인 신학자들의 의견이 수용되고, 공의회 분위기가 완전 바뀐 겁니다.

 

2,600여명이 모인 최대 회의


그리고 과거의 공의회라고 할 때, 그 전에 열렸던 제1차 바티칸 공의회(1869~1870, 비오 9세)는 1870년이었는데, 그 때만 해도 교황청이 정치적으로 교황령도 잃어버리고, 세속적 영향력이 점점 더 줄어들 때, 교황의 권위를 지키고 싶은 수동적이고 방어적 분위기에서 회의가 열렸다면, 그리고 그 당시만 해도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이었는데, 1960년대는 달랐습니다. 과거의 몇 백명 되지 않는 소수의 주교님들만 모였다면,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무려 2,600명이 참가했고, 중국과 베트남을 제외한 거의 모든 교회가 다 참여를 했습니다. 그리고 교황님의 지향은 '인류의 일치, 화해와 일치다. 교회의 쇄신이다.' 불가리아와 터키 등의 타종교 지역에서 교황대사를 하시면서, 타 종교와의 대화, 화해, 협력 이런 걸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셨어요. 그러면서 '일치와 화해의 공의회가 되어야 한다.'라고 하시면서 개신교의17개 교파를 초대합니다. 그 외에도 그리스도교 안에도 개신교 외에 정교회, 동방교회 등 그리스도교의 타 교파들 대표들을 초대하신 겁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모습


보편 공의회의 정신에 맞는 ...


그야말로 보편공의회 정신에 맞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공의회는 그리스도교 초기부터 있었지만, 그것은 보편적인 공의회라기보다 유럽의 몇몇 지역 주교들이 모여서 연 공의회도 많고, 황제가 힘을 발휘해서, 황제의 뜻에 따라, 황제가 모아서 공의회가 치뤄진 것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2차 바티칸 공의회야말로 전 세계 2,600명이 모였습니다.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변화된 세계 안에서 우리 교회가 어떤 위상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논의하자 그래서 아까 말씀드린 16개 주제로 논의를 하게 된 것입니다.


가장 먼저 통과된 건 전례개혁이었다


여기서 결정된 것과 변화된 것을 보면 제일 먼저 통과된 게 전례개혁입니다. 그건 그동안 많은 운동이 있어 왔기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서 먼저 결정이 된 것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라틴어를 쓰던 것에서 모국어로 미사를 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성직자가 벽을 보고 미사를 했죠. 그래서 오래된 성당을 보면 벽에 붙은 제대가 있어요. 그래서 신부님들 제의를 보면, 뒤가 굉장히 화려합니다. 수를 놓은 문양이 그렇습니다. 지금도 그런 경향이 있긴 한데, 신자들이 신부님 등을 보게 되니 그렇습니다. 우리가 미사를 본다고 하죠. 미사를 볼 수 밖에 없죠. 잘 모르니까. 복사만 옆에서 라틴어로 주고받고. 이번 프란치스코 교황님 오셨을 때 1부는 라틴어로 하셨어요. 그래서 교황님 기도문은 라틴어로 하고 우리 것은 한국말로 하고. 


In nomine Patris, et Filii, et Spiritus Sancti, Amen (인 노미네 빠트리스, 엣 필리이, 엣 스삐리투스 상띠 아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그 정도 라틴어는 다 알았습니다. 예전 어르신들은 그 라틴어를 다 따라하셨답니다.  Dóminus vobíscum.(도미누스 보비스꿈,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Et cum spíritu tuo.(엗 꿈 스삐리뚜 뚜오., '또한 당신의 영과 함께.'란 뜻이지만, 한국어 전례미사에서는 '또한 사제와 함께'라고 되어 있다.) 그걸 옛날에는 어르신들이 다 따라하셨다는 겁니다. 그리고 복사하려면 예전에는 어려운 시험에 통과해야 했습니다. 라틴어를 다 외워서 신부님과 주고받아야 하니까요. 그런데 그런 라틴어 대신 우리말로 각자 말로 하고, 과거 제사의 성격이 강조되었다면 이제는 공동체가 함께 참여하는 축제로서의 미사가 강조됩니다. 참례하는 미사, 공동체의 단지 보는 미사가 아니라 참례하는 미사를 중요시하면서 독서나 복사 등에서 미사에 신자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물론 나중에 여성이 독서와 복사에 참여한 것은1980년대 이후에나 개방이 되었지만, 1960년대에 평신도에게 전례에 참여할 수 있는 그런 것이 강조되었던 것입니다. 


열린 마음의 성숙한 태도로 대한다


그러면서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신앙과 종교 자유에 관해서 좀 더 성숙한 태도를 갖게 된 것입니다. 사목헌장에 나오지만, 단지 개신교, 타종교 뿐만 아니라 무신론자에 대해서도 열린 마음으로 더 넓은 마음으로 대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모든 인류를 사랑하시고 모든 인류가 구원되길 원하신다. 모든 사람을 구원으로 이끄시고, 교회는 바로 그런 일치의 표지이고 구원을 향한 성사가 되어야 한다. 단지 우리 천주교 신자끼리 우리끼리 다른 믿지않는이들은 다 배제시키고, 마치 노아의 방주에 탄 사람처럼, 다른 이들은 물에 빠져 죽든지 말든지 상관안하는 그런 식으로 우리만 구원되면 된다는 좁은 생각에서 벗어나서, 모든 사람을 다 함께 데리고 하느님 나라로 가야 한다는 인식 이 공의회를 통해 생긴 겁니다.

 

무신론자들까지도 다 형제들이다


개신교, 타종교, 심지어 무신론자들까지 다 형제들이다. 우린 인류공동체라는 인식을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사목헌장에서 대표적으로 표현하고 있어요. 굉장히 중요한 변화입니다. 우리가 맏형이다. 그러면서 그냥 자부심만 갖고 우리 교회 안에 있어야 구원되는거지, 너네들은 잘못된 종교를 믿고 있으니 너네들 아냐. 물론 개신교도 우리를 향해 이단이라고 하지만, 이제는 좀 더 형님같은 마음으로 그건 몰라서 그러는 거야. 하느님은 모든이를 다 사랑하시고, 모든 이를 다 구원하시는 분이야. 심지어 믿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조차도 구원의 가능성 있다고 과감하게 얘기하기 된 것이 바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서입니다.


갈라진 형제들


그래서 아까 문헌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매스미디어, TV, 라디오 등의 사회매체가 발달하면서, 현대 세계에 이런 것들을 통해 잘 복음 전달해야겠다. 그래서 매스 미디어에 종사하는 사람이 중요하다. 잘 활용해야 겠다는 이런 것도 포함되고, 동방 가톨릭교회, 교회사를 보면, 가톨릭 교회가 로마를 중심으로 로마제국 안에서 번성하다가 제국이 동-서로마가 갈라지죠. 그런데 동로마제국은 현 이스탄불, 당시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발전합니다. 거긴 그리스말을 썼죠. 국가가 갈라지면서 교회도 서로 교류가 뜸해지면서 서로 각자 희랍어쓰고, 다른 쪽은 라틴어쓰고, 그러다가 이제 로마가 더 세다, 동쪽이 세다라고 서로 싸우다가 1046년 경, 11세기에 갈라집니다. 그래서 이쪽은 정교회. 그 중에 각 지역별로 정교회는 독립되어 있어서 러시아 정교회, 그리스 정교회 등 그러다가 얼마전 이집트에서 IS에 학살당한 일이 있죠. 그 이집트의 콥트 그리스도교. 콥트 전례를 쓰는가톨릭도 있죠. 그렇게 동방 지역에서 고유하게 가톨릭 교회와 별개로 유지되어 왔던 그리스도교 중 다시 돌아온 이들을 동방가톨릭교회라고 해요. 그 사람들은 우리와 똑같은 전례를 하지 않고, 자기 나름의 언어와 예식 요소가 있습니다. 그걸 교회가 인정을 한 것입니다. '너희는 너희 나름대로의 전례를 유지해라.' 그러나 로마 교황청의 교황님을 교회의 수장으로 인정을 하고 다시 가톨릭 교회와 유대관계를 맺은 겁니다. 그들을 '동방 가톨릭교회'라고 부릅니다. 전례는 조금 다르지만 말이죠.

 

주님 안에서 다 한 형제


그러면서 우린 결국 주님 안에 한 형제라고 하는, 그리고 진리가 누군가 소유하는 게 아니고 가톨릭 교회도 진리 안에 참여하는 것이지, 타 종교에도 존중하고 존경할만한 진리를 전해줄만한 요소가 있다고 인정해주는 굉장히 큰 변화입니다. 우리가 가장 높다. 우리안에 들어오지 않으면 구원이 없다라는 태도에서 벗어나서, 우리는 같이 진리를 추구하는 형제자매이다. 물론 우리 가톨릭 교회가 하느님께서 의도하신 가장 완벽한 교회라는 사실을 포기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타 교회를 폄하하거나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진리는 소유하는 게 아니라 함께 참여하는 것


심지어 무신론자들에 대해서, 물론 무신론자의 오류에 대해서 지적을 하면서도, 무신론자가 하느님을 거부하는 첫번째 이유는 그리스도인이 잘 못살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오히려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에 이들을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게했다는 반성이었습니다.그것도 큰 변화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우리는 가장 보편적인 인류의 과제.  세상의 평화라든지, 그런 것들을 위해 무신론자들과도 협력할 수 있다는 변화를 보입니다

 

그 중에서 가장 큰변화는 교회관(觀)입니다. 과거 교회는 교회를 여러가지로 표현해 왔는데, 보이지 않는 성사,그리스도 신비체, 여러 표현있는 데, 사실은 제도로서의 교회를 많이 강조해왔습니다. 제일 위에 교황님, 추기경, 대주교, 주교, 성직자, 수도자, 제일 밑에 평신도 이렇게 피라미드 구조 위계구조 가진 교회. 그런 제도로서의 교회를 과거에 강조했다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교회는 하느님 백성이다. 주교든, 추기경이든, 교황이든, 평신도이든 우린 다 공동체다. 세례를 받음으로써 하느님 백성이다. 공동체다. 누가 높고 낮음이 중요한 게 아니다.  그것도 굉장히 큰 변화입니다. 교회를 이해하기 위한. 그러면서 동시이 평신도들의 역할과 품위, 세례를 받았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가.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 주교가 되고 성직자가 되는 것은 부차적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3중 임무


세례를 받음으로써 하느님의 자녀가 되면서 동시에 세례받은 이는 누구나 그리스도인의 3중임무를 다 받은것이다. 뭐죠? 세가지 의무? 예언직, 사제직, 왕직 혹은 봉사직입니다. 이게 어려운 게 아니에요. 성경에 보면 뽑힌 사람들은 기름을 부어서 축성하는 겁니다. 기름을 부어서 거룩하게 하는것이죠. 세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있고, 그게 이 세가지 상징입니다.

 

하느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 하느님께 예배드리고 제사 드리는 사제, 그리고 백성을 다스리는 왕.

이 세 직무를 맡은 사람은 기름을 발라서 구별한다고 해서 이들을 '성별'한다고 했죠. 거룩하게 만들어서 따로 구별하는 것이죠. 요즘은 '축성'이란 표현을 쓰죠. 기름을 부어서, 발라서, 그래서 그리스도란 용어 자체가 기름부음받은 이라는 뜻이죠. 하느님께서 특별히 뽑아서 세운 자다. 예언은 하느님 가르침 전하는 것이고, 사제는 하느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고, 왕이라고 하는 것은 잘 알아야 하는데, 우린 왕직과 봉사직이란 단어를 교환해서 사용가능한데, 성경에서 나오는 '왕'이란 직책은 백성에게 봉사하는 것입니다. 왕과 봉사가 같은 뜻입니다. 다스린다는 게 억압한다는 게 아니고 과거 왕의 역할은 백성들을 외적 침입으로부터 보호하고 생명을 지키는 것이 첫번째고, 두번째는 먹고 살게 해주는 것, 그래서 백성들이 잘 살도록 해주는 게 왕의 역할입니다. 억누르는 게 아니고 그야말로 봉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왕이시다'라고 할 때는 그런 섬김의 의미가 있습니다. 세상 통치자들은 남의 위에서 군림하려고 하지만 너희는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


나는 섬기러 왔다


나는 섬김을 받으로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왔다. 그리고 높아지려는 사람은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섬김에서 나오는 권위. 그것이 교회에서 말하는 봉사이고 권위와 권력의 의미입니다. 이것이 사회교리와 연결됩니다. 모든 권위는 하느님으로부터 온다. 사도 바오로가 강조했죠. 그래서 권위를지닌 사람, 통치자들. 그들 말을 잘 들어야 한다. 얼핏 보면 부정적 느낌이 듭니다. 그러나 통치자들에게 다스릴 수 있는 권한 줬다면 거기 따르는 도덕적 책임도 함께 주신 것입니다. 봉사하고 섬기지 않는다면, 하느님께서 그 권위를 걷어가십니다. 즉 통치행위에는 도덕적 전제가 있습니다. 도덕적 질서 안에서 올바른 권위를 행사할 때 그야 말로 봉사할 때, 그래서 우리정치와 관련된 얘기하면, 사목헌장에도 나오는데, 저항권, 정치하는 이는 공동선 위해 하는 것이란 것입니다. 

 

정리하면 교회관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즉, 피라미드 구조의 위계질서가 아니라, 우린 모두 하느님 백성이다. 그것이 우선적 정체성입니다. 하느님을 섬기고, 하느님 나라를 추구하며, 하느님 나라에 속한 하느님의 백성일 뿐이란 것이죠. 그러면서 평신도 역, 수도자 역할은 따로있다. 그래서 공의회 문헌은 자신이 처한 신원에 따른 문헌들이 다 있으니까, 여러분이 평신도라면 평신도로서, 수도자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나는 누구인가를 공의회 문헌 통해 공부하셔야 하겠습니다.

 

우린 하느님을 한 어버이로 섬긴 한 백성이다


그래서 타종교와의 일치, 궁극적으로 우린 하나가 되자. 우린 하느님을 어버이로 섬긴 한 백성이다. 그것입니다. 그런 의식이 공의회에 깔려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이 '기쁨과 희망.' 사목헌장의 문헌의 제목인데, 그 문헌 제목을 여러분이 갖고 계신 교재는 제가 서울 정평위 위원장 그만 둔 후에 만든 것이라 좀 다른 부분이 있는데, 제목자체가 틀리네요. '현대 세계의 사목헌장'이 아니고, '현대 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헌장'입니다. 그 다음에 문헌 제목의 뜻이라고 배경 설명이 되어 있는데, 사실 '기쁨과 희망'이 문헌의 제목인데, 교회 공식문헌 제목은 첫 두 단어를 가지고 제목을 삼기에 일부러 첫 두 단어는 상징적 단어를 사용합니다. 그래서 '기쁨과 희망'도 사목 헌장의 첫번째인 제1항의 첫 문장이 '기쁨과 희망'으로 시작되어 제목이 그런 것이죠. 그래서 이 공의회 문헌의 구성을 한번 보겠습니다. 


공의회 문헌의 구성

 

먼저 머리말이 있습니다. 머리말이 제1항부터 제3항까지입니다. (1. 온 인류 가족과 교회의 긴밀한 결합, 2. 공의회는 누구를 향하여 말하는가?, 3. 인간에 대한 봉사)


그 다음에 서론이 따로 있어요. 제4항부터 제10항까지입니다. 그런데 서론의 제목이 있습니다. 제목은 '현대 세계의 인간상황'이라고 해서, '현대 세계'는 당시 1960년대를 말합니다. 1960년대는 굉장히 큰 변화를 겪었던 때였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지 20년이 안된 시기죠. 그리고 과학은 굉장히 발달하고, 전쟁 후 경제의 성장으로, 물질문명과 물질에 대한 추구, 그러면서 가치관 혼란. 그러면서 미국 같은 경우에는 베트남전쟁이 시작되고, 히피와 자유주의, 성해방, 그리고 젊은이들의 사회권위에 대해 배타적이고 반항적인 분위기. 그러면서 경제적으로도 성장하면서도 뭔가 불안한 그런 불균형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서론. 4. 희망과 고뇌, 5. 급격한 변화, 6. 사회질서의 변화, 7. 정신과 도덕, 종교의 변화, 8. 현대 세계의 불균형, 9. 인류의 보편적인 열망, 10. 인류의 심각한 의문)


그래서 인류는 보편적인 뭔가 더 의미있게 잘 살아보려는 열망이 있지만, 경험하고 있는 것과의 부조화스러운 상황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그 뒤로 제1부와 2부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 제1부는 '인간의 소명과 교회'. 제2부는 '몇가지 긴급한 과제'입니다. 그야말로 (2부에서는) 혼인과 가정, 문화, 정치경제, 평화, 이런 주제들에 대해서 얘기합니다. 그리고 제1부 <인간의 소명과 교회>는 제1장이 <인간의 존엄>입니다. 제2장이 <인간공동체>, 제3장이 <전 세계의 인간활동>, 제 4장이 <현대 세계 안의 교회 임무> 이렇게 되어 있는데 이 제1부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영어로도 읽어보시면 좋을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 읽어도 문장이 뛰어나고 철학적 성찰을 담고 있습니다


인간의 소명과 교회 (1) 인간의 존엄에 대해서


도대체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그래서 제1부 <인간의 소명과 교회> 안에서 제1장이 <인간의 존

엄>인데, 우리 교회의 그리스도교적 인간관이 담겨 있습니다. 개별 인간으로서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 인간하면 기본적으로 하느님의 모상이다. 하느님 모상이란 게 어떤 존재인가? 인격을 가지고 있다. 지성과 자유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존엄하다. 그러면서도 인간은 죄를지을 수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이기도 하다. 그런 가운데 인간의 도덕과 양심, 인간이 지닌 자유, 또 인간이 경험할 수 밖에 없는 죽음, 그런 실존적인 문제들을 정리를 합니다. 이 내용은 교회의 여러 문헌에서 계속 인용됩니다.  그래서 '인간은 하느님을 찾을 수 밖에 없는 존재이다'라는 말이 나오는 거에요. 그런데 여기서 무신론이 언급됩니다. 무신론이 교회를 위협하고 있지만, 그러나 무신론 자체도 이런 여러가지 종류의 무신론이 있는데, 무신론 주장하는 자들의 탓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그 까닭은 그리스도인이 잘 살지 못했기 때문이란 것. 그래서 어찌되었든, 하느님을 모르고는 우리 인간이 제대로 존재할 수 없고,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 알려 주시려고 오신 분이 예수그리스도이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하느님께로 이끈다. 우릴 구원으로 이끈다. 그런 얘기를 1장에서 합니다.


(2) 인간공동체와 (3) 전 세계 인간활동


1장이 개인에 대한 얘기라면, 2장은 공동체, 인간은 더불어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존재이다. 그래서 공동체와 관련된 윤리와 책임, 공동선 등 얘기를 죽 합니다. 그 다음에 3장은 <전 세계 인간활동>이라고 해서, 2장 <인간공동체>가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말했다면 3장 <전 세계 인간활동>은 좀 더 구체적으로 인간이 하는 여러가지 활동들, 문화적인 것들, 과학과 기술 등 그런 것을 긍정하는 것입니다. 과거에 교회가 자신감이 없었을 때는 조금만 교회를 비판하는 문학이나 과학 등이 나오면 굉장히 긴장하면서 부정했다면, 여기서는 굉장히 여유있게, 과학이나 기술이나 문학이나 이런 것들이 모두 하느님이 우리 인간에게 주신 지성의 결과이다. 그래서 이것으로 하느님을 찬미하자. 하느님이 인간에게 지성과 자유를 주었으므로, 그것이 도덕적인 것인지, 윤리적인 것인지, 진정 진리인지 잘 따져보자. 여유 있게 대응을 한 것입니다.


(4) 현대 세계 안의 교회의 임무


제 4장 <현대 세계 안의 교회의 임무>에서는 비로소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과거에 일방적으로 교회가 세계에 대해서 가르치려고만 들었다면, 이제는 '아니다.' 이제는 세상으로부터도 도움을 받아야 한다. 발달한 과학기술이나 여러가지 지식으로부터 도움을 받고 서로 주고받으며 동시에 인류를 위해서 함께 협력하며 나아가야 한다. 가장 중요한 교회 사명은 무엇인가? 인간의 구원이죠. 인간을 위해서 교회가 존재합니다. 그래서 인간이 겪고 있는 모든 문제들을 우리가 함께 고민하면서 서로 협력하면서 풀어나가자는 것입니다. 그것이 제1부에 해당됩니다.


그러면 제 2부는 <몇가지 긴급과제>인데,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는 것입니다. 


오늘의 간식. 간식이 매주 바뀐다. 



2015년 3월 2일 월요일 오후 7시 58분

사회교리 기본과정 제5주차 수업 

박정우 신부의 [사목헌장, 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 1교시 끝

 

Posted by 편집장 슈렉요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