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6주일/ 2015. 5. 10. 09:00
하부내포성지 도화담 공소
여성! 아름다운 여성! 어머니!
여성은 있지만, 어머니가 없어져가는 이 세상!
사랑의 계명에 관한 말씀
우리는 지난주일(부활 제5주일)에 봉독한 ‘포도나무와 그 가지들의 비유’(요한 15, 1∼9)에 이어지는 ‘사랑의 계명’에 관한 말씀(요한 15, 9∼17)을 오늘 봉독합니다. 이렇게 이어지는 요한복음서 15장 1∼17절은 그 유명한 ‘포도나무와 그 가지들의 관계’에 비유하여 예수님께서 당신과 우리 사이의 생명적 관계를 참으로 아름답게 표현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으로써 ‘참 사랑’이란 다름 아니라, 포도나무와 그 가지가 한 생명을 갖고 있듯이 한 생명으로 사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가정과 어머니와 여성
이러한 ‘참 사랑’에 관하여 이야기하면서 저는 오늘 가정과 어머니와 여성을 연관 지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지금 우리가 지내고 있는 5월은 1년 중 가장 아름다운 절기이며, 교회는 ‘성모성월’로, 그리고 일반 사회에서는 ‘가정의 달’이라 일컫기도 하고 또 ‘여성의 달’이라 하기도 합니다.
사랑하면 어머니의 사랑
‘사랑’이라는 말을 하게 되면 사람은 누구나 가정 안에서부터의 사랑을 자연스럽게 연상할 것입니다. 그것도 가정에서 어머니의 사랑을 가장 먼저 연상할 것입니다. 인간의 삶 가운데 가장 먼저 체험하는 사랑은 어머니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이라는 곳은 나를 사랑하시는 어머니가 계시는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학교 시간을 끝내고 돌아가는 어린이가 또는 객지에 나가 살다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자식이 찾아가는 가정이란 그래서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가정 거기에 어머니가 계시지 않다면 돌아온 자식의 마음은 참으로 허전할 것입니다.
어머니는 가정의 본질적 존재
어머니라는 존재는 그래서 한 가정이 성립될 수 있는 가장 본질적인 존재입니다. 그건 어째서 그러하겠습니까? 한 마디로 ‘생명을 낳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어머니에게서 한 생명으로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식을 낳은 어머니는 그 자식에 대해서는 세상의 어느 무엇보다 최우선적인 헌신을 합니다. 어머니는 자녀를 위한 것이라면 무슨 일이든 합니다. 어머니의 사랑이라는 것은 그래서 무조건적입니다. 그러한 어머니의 사랑 때문에 자식은 어떤 위급한 상황이 닥치면 그래서 어머니를 찾게 됩니다.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말은 '사랑'이 아니고 '어머니'
인간이 가장 좋아하고 가장 많이 쓰는 말이‘사랑’이라는 말과 ‘어머니’라는 말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많이 부르는 노래란 ‘사랑’을 주제로 하는 것을 보면 인간이 가장 좋아하는 말이 곧 ‘사랑’이라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나이를 많이 먹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어머니’라는 말마디만 들으면 가슴이 저려오는 그 까닭이란 어머니로부터 가장 고귀한 사랑을 받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많이 들어도 싫지 않은 이야기가 곧 사랑 이야기이고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어머니는 인간 삶의 출발이며 바탕
그렇듯이 ‘사랑’과 ‘어머니’란 인간의 본성에 관련 된 것이고 본원적으로 거기에 인간 삶의 출발과 바탕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세상에서는 그 ‘사랑’과 ‘어머니’에 대해서 오늘날 매우 왜곡된 현상을 볼 수가 있습니다. ‘사랑’이라면 걸핏 남녀 간의 연애관계 정도로 노래 불러지고 있고, 오늘날 ‘어머니 되기’나 ‘어머니 노릇’을 멀리하는 현상이 그것입니다.
세상의 참 사랑은 오직 어머니 사랑 뿐
그렇게도 많이 노래로 불러지는 ‘사랑’이 정말로 사랑인가 하는 점에 대해서 저는 의구심을 떨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 그렇게도 식은 죽 먹듯이 횡행하는 이혼현상에서 그것이 ‘거짓 사랑’임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참 사랑’을 말한다면 오로지 ‘어머니의 사랑’, 그것뿐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면 어머니란 자식이 미운 짓을 한다하더라도 그 자식에 대한 사랑은 거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남녀 간에 사랑하여 만났다 하면서도 서로 맞지 않아 이혼한다면 그것은 이제 사랑이 변질 되었거나 출발부터 거짓 사랑이었다는 뜻이지요. 하지만 어머니의 사랑이란 자식이 맘에 맞지 않다 하더라도 변함없이 기우리는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말할 수 있는 가장 참다운 사랑은 어머니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가정붕괴현상은 어머니 사랑의 왜곡에서 비롯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그 참 사랑이 왜곡된 현상을 오늘날 너무나 자주 보게 됩니다. 우리가 주변에서 흔한 얘기로 듣는 가정 붕괴의 현상이란 바로 그 어머니의 사랑이 왜곡되고 있는 데 기인한 것입니다. 자녀를 버리고서라도 이혼하는 사람들의 많은 경우가 그러합니다. 자식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는 어머니라면 어찌 이혼하여 자녀와 헤어질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어머니 노릇’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입니까? 그리고 이른바 여성의 사회활동을 빌미로 자녀 낳기를 거부하는 이 시대의 여성들이란 ‘어머니 되기’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입니까?
모성 역할의 고귀함이 퇴색되는 이 시대
그래서 이 시대에는 여성의 사회성이 부각되면서도 모성 역할의 고귀함은 퇴색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이러한 현상은 출산율 세계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는데, 이렇게 나가는 우리 사회에서 여성은 보이지만 어머니는 점점 보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우리의 오늘에 있어서 남녀가 결혼은 하되 자녀 낳기를 거부하는 이 경향은 곧바로 가정이라는 것이 사라질 징조인 것입니다. 남녀가 애욕으로 만나 서로의 개성과 각자의 사회활동만을 추구하는 그 사이에 가정은 사라지고, 거기 인간이 체험하고 인간 자신을 형성해주는 ‘사랑’이라는 그것은 인간 사이에 바랄 수가 없게 될 것입니다.
여성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
그래서 저는 그 ‘참 사랑’이란 가정에서 어머니를 통하여 인간이 체험하는 그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사람이란 가정에서 어머니의 사랑을 정상적으로 받아 성장하여 진정 사람답게 형성된다고 저는 말하고 싶습니다. 그러므로 여성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무엇이겠습니까? 이른바 이 시대 여성의‘섹시함’에 그 아름다움이 있는 것이 아니라, 진정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은 어머니로서의 모습인 것입니다. 여성으로서 가정에서 어머니가 되는 존재, 그리고 사회활동이 최우선적이기보다는 어머니 노릇을 가장 고귀한 여성의 고유성으로 인식하는 사회가 되어야 우리의 세상은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나고 어머니로부터 사랑을 받아 성장하여 진정 사람이 되어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먼저 성장하는 곳은 사회가 아니고 가정
그렇게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사람으로 성장하는 그 곳은 먼저 사회가 아니고 가정입니다. 그것은 밖에 나가 있던 자녀가 집에 돌아왔을 때 어머니가 계시지 않은 집이라면 그곳을 진정 가정으로 볼 수 없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가정이란 곧 ‘어머니 품’ 그 자체인 것입니다. 어머니가 계셔야 가정입니다. 어머니의 그러한 위상, 그것은 어머니가 곧 ‘생명의 샘’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머니로서 여성은 가장 존귀해집니다.
어머니는 생명의 샘
어머니가 곧 ‘생명의 샘’이라는 저의 이러한 표현은 결코 지나치지 않습니다. 아버지를 일컬어 ‘생명의 샘’이라 한다면 온당치 않습니다. 그 반증으로 특수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흔한 일은 아닙니다만, 유복자(遺腹子)의 예입니다. 어머니 뱃속에 애기가 있는 상태에서 아버지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하더라도 애기는 홀로 된 어머니로부터 태어나고 어머니의 사랑으로 잘 자랄 수 있습니다. 이런 특수한 예로써, 애기가 아버지와의 끈이 떨어져도 살 수 있지만 어머니와의 끈이 끊어져서는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와는 달리 어머니를 일컬어 ‘생명의 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난 주일에 예수님께로부터 들은 ‘포도나무와 그 가지들’에 관한 말씀에서처럼 한 인간은 어머니로부터 생명의 끈이 끊어져서는 옳게 살 수가 없습니다.
가정의 중심인 생명의 샘
그 ‘생명의 샘’이 우리 가정의 중심입니다. 그렇게 가정의 중심인 어머니는 곧 ‘사랑의 샘’입니다. 나를 사랑해주고 나 자신이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첫째 장소요 으뜸가는 곳이 바로 어머니가 있는 가정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적 체험이 가정을 스스로 지탱하게 하는 내적 힘으로 작용되어야 할 터인데, 그러한 체험이 오늘의 가정 속에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는 가정 구성원(가족)들이 가정 밖으로 급급한 각자의 목표를 향하여 제각각 흩어져 나감으로써 그 가정 유지의 내적인 힘이 쇠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회에 나가서 할 일들이 더 중요하고 더 많고 더 급한 사람들로 살아갑니다. 이 시대의 어머니들마저 그렇습니다. 가정의 중심인 어머니가 가정 밖으로 나가버림으로써 가정에 중심이 없어져버립니다. 생명의 샘, 사랑의 샘이 증발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생명이 흘러넘치고 사랑이 가득 채워져야 할 가정에서 샘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거기서 사랑이 생명의 물줄기로 가족 모두에게 흘러야 하는데 말입니다.
예수님이 말하는 사랑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사랑으로 돌아가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포도나무와 그 가지들’의 비유는 생명의 관계를 그 본질적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가족 관계가 바로 그 생명의 관계 아닙니까? 한 생명으로 살지 않으면 말라져 제거되어야 할 가지가 됩니다. 가족 각자가 가정이라는 한 나무와 붙어서 열매를 맺을 수 있음은 곧 한 생명력의 결실을 말함이 아니겠습니까? 그러한 한 생명으로의 삶을 상실한 오늘날 우리의 현실을 축복의 생명적 상태로 되돌리라는 명령이 곧 ‘사랑의 계명’입니다. ‘포도나무와 그 가지들’에 관한 말씀에 이어서 반복적으로 말씀하시는 이 ‘사랑의 계명’은 곧 한 생명을 누리는 길을 제시하신 말씀입니다.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 13)고 하시며, “그와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한 15, 12)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도 그렇게 전적으로 서로에게 생명의 상호 증여를 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생명의 상호 증여가 곧 '사랑의 계명'
그렇습니다. 생명의 상호 증여가 곧 ‘사랑의 계명’입니다. 가정은 어머니가 그리하듯이 서로 생명의 증여를 이루는 사랑 그 자체여야 합니다. 자녀를 통한 자신의 대리 성취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참된 부모의 사랑은 아닙니다. 그리고 자녀를 낳지 않으면서 부부로 산다는 편의주의가 참된 사랑일 수는 없습니다. 작위적 조절로 자녀 양육을 하는 것이 본래적 부모의 사랑은 아닙니다. 그러한 작금의 우리 풍조를 반성하는 날이 곧 ‘사랑의 계명’을 거듭 강조해 듣는 오늘이요, 지금 가정의 달 5월입니다. 이달의 마지막 날 31일은 ‘낙태 반대의 날’입니다. 그날을 Beautiful Day라 한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여성은 '섹시해서'가 아니라 '어머니'이기에 아름답다
그리고 더욱 기억합시다. 여자는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여자가 아름답다는 것은 ‘섹시해서’가 아닙니다. 어머니! 그 어머니가 되는 여성이기에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참으로 고마운 여성, 어머니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여성, 어머니입니다. 우리 모든 인간의 고향이요, 사랑 그 자체로 기억되는 여성이 어머니입니다. 그 어머니인 여성 때문에 우리 모두는 사랑을 실제적으로 체험하는 인간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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