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
2015. 7. 5. 09:00 하부내포성지 만수리 공소
130년 선배님!
대선배님, 한없이 부끄러운 후배입니다!
오늘은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대축일’입니다. 그 수호자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입니다.
보호해주는 사람, '김대건'
저는 현재 한국 교회에서 살아 활동하고 있는 사제들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김대건 신부님은 한국 성직자들 가운데 하나인 저의 ‘수호자’입니다. ‘수호자’라는 칭호는 한문자로 ‘守護者’라는 것인데, 문자대로 해석하자면 ‘보호해주는 사람’입니다. 세례 받은 신자들은 자기의 세례명을 정한 성인을 수호자로 모십니다. 그렇듯이 그 ‘수호자’의 이름을 선택한 신자는 그 이름답게 살아야 그 수호자로부터 삶의 길을 보호 받을 것입니다.
수호자의 이름을 선택한 것은 그 이름처럼 살아간다는 뜻
그러므로 ‘수호자’의 이름을 선택한 사람은 그 이름의 주인공처럼 살아감으로써 또한 그 이름을 수호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가톨릭 신자들은 세례 받으며 선택한 이름의 ‘수호자’를 닮아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입장입니다. 예를 들어, 세례 받을 때 ‘바오로’라는 세례명을 선택한 신자는 자신의 ‘수호자’를 바오로 사도로 모신 처지로서 그 바오로처럼 살아가겠다고 결심한 사람입니다.
한국 교회의 모든 사제는 김대건 신부님 처럼 살아가야
그렇듯이 한국의 모든 성직자(사제)들은 김대건 신부님처럼 살아가겠다는 길을 선택한 처지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국 교회의 한 사제인 저는 김대건 신부님처럼 살아가야 하는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제가 김대건 신부님처럼 살아가고 있는가? 저는 이에 대한 대답을 자신 있게 할 수 있는가? 오늘 저는 김대건 신부님 앞에서 그 대답을 할 수가 없습니다.
한국 모든 사제들의 맏형, '김대건'
김대건 신부님을 ‘수호자’로 삼은 한국의 모든 사제들은 그분을 사표로 모시고 있지요. 그래서 한국의 모든 사제들은 김대건을 ‘맏형’이라 부릅니다. 그런 입장에서 그 ‘맏형’의 몇 번째 아우인가를 저 스스로 알아보았습니다. 제가 그분의 아우로써 어떤 처지인가 따져보았는데 다음과 같이 헤아려집니다. 김대건 신부님께서 1번으로 사제가 되었는데, 그분 이후로 저는 833번째 아우입니다. 그 833번째까지의 세월이 129년차입니다. 그분은 저의 130년 선배님이십니다. 그리고 그분 돌아가신지 올해로써 169년 되었습니다. 그분은 사제 되고 1년 후에 순교자로서 돌아가셨고, 저는 사제되고 40년이 넘도록 죽지 않고 살아 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1년 동안 하신 일과 제가 40년 동안 한 일의 비교를 하자면 뭐라 평가해야 할 것인가?
1년 사제생활로 생을 마친 그분!
40년 사제생활로 아직 살아있는 나!
그분보다 40배 정도의 값있는 삶이었나?
이걸 수치적 단순비교로 말할 것은 아니겠지요! 양적(quantitative) 비교를 하지 말자는 변명을 할 수 있지요! 하지만 질적(qualitative) 비교를 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질적 비교에 있어서 저의 삶을 김대건 맏형과 견줄 엄두를 감히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그분의 생애에 관한 이야기를 어찌 저의 입으로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김대건 신부님의 편지 일부
그래서 오늘, 그분을 나의 수호자로 감히 기억하면서 저 자신은 부끄러운 ‘유구무언’으로 다음의 글을 오늘의 강론으로 대신해야겠습니다. 그 글은 김대건 신부님의 편지 일부입니다. 그분의 못난 아우가 그분의 편지를 교우님들과 함께 읽고 싶습니다.
교우들 보아라. 우리 벗아, 생각하고 생각할지어다. 천주 무시지시로부터 천지 만물을 배설(配設)하시고, 그중에 우리 사람을 당신 모상과 같이 내어 세상에 두신 위자(慰藉)와 그 뜻을 생각할지어다.
온갖 세상일을 가만히 생각하면 가련하고 슬픈 일이 많다. 이 같은 험하고 가련한 세상에 한번 나서 우리를 내신 임자를 알지 못하면 난 보람이 없고, 있어 쓸데없고, 비록 주은(主恩)으로 세상에 나고 주은으로 영세 입교하여 주의 제자 되니, 이름이 또한 귀하거니와 실이 없으면 이름이 무엇에 쓰며, 세상에 나 입교한 효험이 없을 뿐 아니라, 도리어 배주 배은하니, 주의 은혜만 입고 주께 득죄하면 아니 남만 어찌 같으리오.
씨를 심는 농부를 보건대, 때를 맞추어 밭을 갈고 거름을 넣고 더위에 신고를 돌아보지 아니하고 아름다운 씨를 가꾸어, 밭 거둘 때에 이르러 곡식이 잘 되고 영글면, 마음에 땀낸 수고를 잊고 오히려 즐기며 춤추며 흠복할 것이요, 곡식이 영글지 아니하고 밭 거둘 때에 빈 대와 껍질만 있으면, 주인이 땀낸 수고를 생각하고 오히려 그 밭에 거름 내고들인 공부로써 그 밭을 박대하나니, 이같이 주 땅을 밭을 삼으시고 우리 사람으로 벼를 삼아, 은총으로 거름을 삼으시고 강생 구속하여 피로 우리를 물 주사, 자라고 영글도록 하여 계시니, 심판 날 거두기에 이르러 은혜를 받아 영근 자 되었으면 주의 의자로 천국을 누릴 것이오. 만일 영글지 못 하였으면 주의 의자로서 원수가 되어 영원히 마땅한 벌을 받으리라.
우리 사랑하온 제형들아, 알지어다. 우리 주 예수 세상에 내려, 친히 무수한 고난을 받으시고 괴로운 데로조차 성교회를 세우시고 고난 중에 자라게 하신지라. 그러나 세상 풍속이 아무리 치고 싸우나 능히 이기지 못할지니, 예수 승천 후 종도 때부터 지금까지 이르러 성교회 두루 무수 간난 중에 자라니, 이제 우리 조선에 성교회 들어온 지, 5·60년에 여러 번 군란으로 교우들이 이제까지 이르고 또 오늘날 군란이 치성하여 여러 교우와 나까지 잡히고 아울러 너희들까지 환난 중을 당하니, 우리 한 몸이 되어 애통지심이 없으며, 육정에 차마 이별하기 어려움이 없으랴. 그러나 성경에 말씀하시되, 작은 털끝이라도 주 돌아보신다 하고 모르심이 없어 돌보신다 하셨으니, 어찌 이렇다 할 군란이 주명(主命) 아니면 주상주벌(主賞主罰) 아니랴.
주의 성의를 따라오며, 온갖 마음으로 천주 예수의 대장의 편을 들어, 이미 항복받은 세속 마귀를 칠지어다.
이런 황황한 시절을 당하여, 마음을 늦추지 말고 도리어 힘을 다하고 역량을 더하여, 마치 용맹한 군사가 병기를 갖추고 전장에 있음같이 하여 싸워 이길지어다.
부디 서로 우애를 잊지 말고 돕고 아울러 주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환란을 걷기까지 기다리라. 또 무슨 일이 있을 지라도, 부디 삼가고 극진히 조심하여 위주 광영하고 조심을 배로 더하고 더하여라.
여기 있는 자 20인은 아직 주은으로 잘 지내니 설혹 죽은 후라도 너희가 그 사람들의 가족들을 부디 잊지를 말라.
할 말이 무궁한들 어찌 지필로 다 하리, 그친다.
우리는 미구에 전장에 나아갈 터이니 부디 착실히 닦아, 천국에 가 만나자. 마음으로 사랑하여 잊지 못하는 신자들에게, 너희 이런 난시를 당하여 부디 마음을 허실히 먹지 말고 주야로 주은을 빌어, 삼구를 대적하고 군란을 참아 받아, 위주 광영하고 여등(汝等)의 영혼 대사를 경영하라.
이런 군란 때는 주의 시험을 받아, 세속과 마귀를 쳐 덕공을 크게 세울 때니, 부디 환란에 눌려 항복하는 마음으로 사주구령사(事主救靈事)에 물러나지 말고 오히려 지나간 성인 성녀의 자취를 만만 수치하여, 성교회 영광을 더하고 천주의 착실한 군사와 의자 됨을 증거하고 비록 너희 몸은 여럿이나, 마음으로 한 사람이 되어, 사랑을 잊지 말고 서로 참아 돌보고 불쌍히 여기며, 주의 긍련하실 때를 기다리라.
할 말이 무수하되, 거처가 타당치 못하여 못한다. 모든 신자들은 천국에 만나 영원히 누리기를 간절히 바란다. 내 입으로 너희 입에 대어 사랑을 친구하노라.
맏형님의 글을 읽고 이 아우는 다음과 같은 말 밖에 못합니다.
“대선배님, 한없이 부끄러운 후배입니다!”
원문출처: 하부내포성지 Daum 카페
http://cafe.daum.net/southnaepo/Dvt8/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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