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2.13(토). 재의 예식 다음 토요일
천주교 대전교구 전민동 성당 토요오전 9:30 미사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그분 뒤를 따르고 있는가?
오소서 성령님. (교중. 새로 나게 하소서!)
[복음]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레위라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레위는 모든 것을 버려둔 채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레위가 자기 집에서 예수님께 큰 잔치를 베풀었는데, 세리들과 다른 사람들이 큰 무리를 지어 함께 식탁에 앉았다. 30 그래서 바리사이들과 그들의 율법 학자들이 그분의 제자들에게 투덜거렸다. “당신들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이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 (루카 5,27~32)
오늘 복음에서는 '레위'라는 세리에게 주님께서 "나를 따라라"라고 하면서 부르시는 장면입니다, 지난 주일 복음(루카 5,1~11)은 예수님께서 베드로 배에 타셔서 사람들을 가르치시고, 베드로를 부르신 장면이었죠.
오늘 제1 독서(이사야 58,9ㄷ-14)는 어제 제1독서(58,1~9ㄴ)에서 '단식이란 이런 것이다.'라고 하면서 들려주신 말씀이었는데, 그것에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제1독서 끝에서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셨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또 오늘 화답송(시편 86(85),1-2.3-4.5-6)에서 보면, <주님, 제게 당신의 길을 가르치소서. 제가 당신의 진리 안에서 걸으오리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가지로 생각을 해봤는데, 일단 레위와 베드로를 부르시는 장면을 보면, 베드로는 자신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했고. 레위는 주변 사람들이 예수님같은 사람을 따르면 안된다고 이야기하는 그래서 바리사이들과 울법학자들이 “당신들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이오?”(루카 5,30ㄴ)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것을 그냥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화난 듯한 음성으로 세게)
“당신들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이오?”
제가 여러분을 혼내는 게 아니고요. 이렇게 충분히 강조해서 이야기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 겁니다. 그만큼 레위나 베드로. 이들을 어찌되었든 예수님께서 갑작스럽게 불렀는데, 이 사람들은 자타가 공인하는 부족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 같은 분에게 가까이 가면 안되는 사람들처럼 느껴진 것입니다.
그런데 결과는 어떻습니까? 베드로나 레위는 모든 것을 다 버리고 그냥 모든 것을 버려둔 채 일어나서 그 분을 따랐습니다. 베드로도 자기 배나 그물이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따라나섰던 것이다 이런 말씀입니다. 우리는 매일 매일 복음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들을 묵상하며 살아갑니다. 참 좋은 말씀들입니다.
오늘 제1독서((이사야 58,9ㄷ-14)) 끝 부분은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셨다.>입니다.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신다. 그리고 회딥송에서는 <주님, 제게 당신의 길을 가르치소서. 제가 당신의 진리 안에서 걸으오리다.>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데,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고, 우리는 그 길을 걷겠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을 것 같았던 베드로와 레위에게 손을 내미시고 손을 잡아 주셨는데, 우리는 과연 그 길을 따르고 있는 것입니까? 물론 우리가 전혀 안 따른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주님께서 친히 오늘 나에게 갑자기 오셔서 "나를 따라라."라고 말씀하시는데, '나는 과연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그분 뒤를 따르고 있는가?' 이런 생각을 해봐요.
아마 그렇다면 분명히 바리사이들이나 율법학자 같은 이들이 와서 “당신들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이오?” "어째서 베드로처럼 한낱 고기나 잡던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오?" 이렇게 말할 겁니다. 여러분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그런 소리를 들으시나요? 그것이 아니라면 좀 더 철저하게 주님께서 직접 말씀하셨던 것을 받아들이면서 더욱 노력하며 따라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오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를 부르시는 데, 그 부름은 우리가 적당히 편안한대로 받아들일 만큼만 받아도 되는그런 말씀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그리고 그 길을 따를 때, 세상과의 갈등 속에서 십자가에 매달려서 돌아가시는 예수님은 적어도 그 당시 여러 상황들 속에서 그 당시 사람들에게, 특히 그 당시 힘있는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거나 그들과 함께 어울리거나, 그들의 동조를 받거나 그러지는 못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오로지 자신의 길을 가셨던 겁니다. 그래서 우린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이 시대를 편하게 살고 있다면 그것은 주님과 거리감을 갖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그 당시 예수님의 목소리를 들었던 이들은 그당시 가난하고 어렵고 힘든사람들이었다면, 오늘날 <늘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 속에 하느님의 목소리가 들어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이런 생각입니다. 예수님께서 두 명의 제자를 부른 것을 이야기했지만, 그것이 일단 저울질을 해보고 제자로 부른 게 이닙니다. 그들을 있는 그대로 불러주시고, 그들은 아무런 준비가 없는 상태에서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고 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죠. 우리도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 많은 준비시간이 필요한 게 아니고. 어느날 갑자기 <주님께서 나를 불러주시는구나!, 나를 쓰시겠다고 하시는구나!>하면서 거기에 그냥 응답하면 되는 겁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주님을 향해 열려 있고, 주님이 여러 경로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에 대해 귀를더욱 기울이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부르시면 즉시 따라 나서는 것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끝에는 주님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정확히 이것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최근에 세상과의 소통을 위해서 트위터, 페이스북 이런 것을 개통해봤는데, 평소에 제가 전에 알았지만, 그 이후에 별로 연락이 없던 사람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물론 저는 우리 본당 신자분들이 최우선이지만, 그 외에도 저를 바라보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여러분도 마찬가지죠. 그러면서 우리는 하느님 안에서 만나고 하느님 안에서 힌 가족이 되는것이죠. 그래서 참 많은 사람들. 여태까지 여러분이 거쳐오며 만났던 사람들, 좋은관계를 맺었던 사람들이 언젠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늘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고 여러분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과 함께 주님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 길을 가야 하겠습니다. 모두가 다 한 가족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길을 가야 하겠습니까? 신앙인다운 모습으로 어떻게 주님의 말씀을 따르며 사는가가 가장 중요할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모두 하느님 나라와 전체적으로 연결이 되는 것이란 생각을 합니다.
이번 사순절은 하느님이 직접 불러주셨고 직접 말씀히셨다고 하죠. 회답송처럼 당신께서 가르치신 길을 내가 따르겠다고 고백하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길과 그 목소리를 잘 듣고 주저함 없이 따라 나서는 이런 것들을 많이 묵상하면서 사순시기를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잠시 묵상합시다. (끝)
2016.2.13(토). 오전9: 30 재의 예식 다음 토요일 미사
전민동 성당 방경석 알로이시오 주임신부님 강론
이 글은 신부님 말씀을 받아적은 후 정리한 것이기에 실제 말씀과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또한 본문 내의 성경구절은 글의 구성을 위해 삽입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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